제2의 나사가 될 수 있을까?

3월 29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였던 항공우주청 설립의 가닥이 잡히고 있다. 새로운 우주 개발 시대를 맞아 우주 산업 전체를 책임지고 이끌 부처가 필요하다는 논지였다. 항공우주청 설립은 한국의 뉴 스페이스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 수 있을까?
WHY_ 지금 항공우주청 설립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항공우주청 설립은 정부 주도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넘어선 과제다. 우주 산업이라는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길을 넓히는 과정이면서 한국의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윤석열 당선인은 우주 분야의 개발이 국방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항공우주청은 무엇을 목표로 움직여야 할까? 한국형 뉴 스페이스의 모습은 어떨까?
DEFINITION_ 항공우주청

그간 한국의 우주 개발은 독립 부처 없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국토교통부 등으로 분산돼 산발적으로 추진됐다. 항공우주청은 모든 항공 우주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기구로서 출범하는 것이 목표다. 항공우주청 유치와 더불어 윤 당선인은 우주 산업 클러스터 조성도 추진한다. 우주 개발에 필수적인 위성, 소재, 부품, 발사체 생산 기업 협력지구를 조성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MONEY_ 1225조 원

글로벌 은행 모건스탠리는 2021년 기준 430조 원 규모의 우주 산업이 2040년 1225조 원으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이 이뤄졌던 올드 스페이스 시대는 저물었다. 지금은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인 우주를 놓고 경쟁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다. 정부 부처의 주도로 진행되던 한국 우주 산업도 이에 발맞춰 변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REFERENCE_ NASA

항공우주청은 미국항공우주국(NASA)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NASA는 민간 우주기업 육성 방식을 택해 ‘스페이스X’의 성취를 가능케 했다. 스페이스X는 현재 2000대 이상의 소형위성을 운영하고 있다. 나사와 스페이스X가 협력하여 재사용 발사체를 개발했고, 기존 발사체보다 가격은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 새로운 기업가 정신과 국가적 우주 개발의 양분이 이룬 성취였다. 이제 나사는 기업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지시하지 않는다. 기업이 내놓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나사가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쪽에 가깝다.
NUMBER_ 68.1퍼센트

현재 항공우주청의 유력 후보지는 경남 사천이다. 경남 사천에는 최근 위성 개발에 진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해있다. 사천의 기존 민간 자원을 활용해 우주 클러스터 개발에 속도감을 붙이려는 선택이다. 경남의 항공 산업 생산 실적 점유율은 2020년 기준 68.1퍼센트, 우주산업 생산실적 점유율은 43.3퍼센트다. 산-학-연-관이 모두 구축된 사천은 항공우주청 설립의 최적지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CONFLICT_ 대전

안철수 위원장은 대선 후보 시절 우주청을 대전에 유치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 대전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항공우주청을 대전에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부 부처가 모인 세종시와 가깝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모여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지역의 산업 활성화가 걸린 문제인 만큼 지자체 사이의 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RECIPE_ 뉴 스페이스

민간 주도의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특히 큰 규모의 사업인 경우 정부와 민간의 활발하고 주체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정부의 예산과 기술 이전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성장에 한계가 분명하다. 시장 중심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거액 투자와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의 뉴 스페이스 기업은 350개, 유럽과 중국은 각각 250개와 150개에 달한다. 정부나 민간, 어느 한 곳만 있어서는 세계의 우주 개발을 따라잡기 어렵다. 항공우주청이 민간과 정부 사이의 시너지를 가능케 한다면 한국형 스페이스X의 형체가 뚜렷해진다.
KEYMAN_ 김동관

지난 3월 7일, 한화 그룹 내 우주 사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스페이스 허브’가 출범 1주년을 맞았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팀장을 맡고 있다. 스페이스 허브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구성돼 발사체, 위성 등의 제작 분야와 통신 등의 서비스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김동관 사장은 스페이스 허브 출범을 기념하며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인 항공 모빌리티 산업의 부상, 아르테미스 참여 등과 더불어 우주 산업 역량이 중요해졌다. 지난 해 8월, 스페이스 허브를 통해 한화 시스템은 34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우주 산업은 한화에게 100년을 먹여 살릴 사업 아이템이 됐다. 새로운 정부 뿐 아니라 도약을 원하는 기업에게도 우주는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RISK_ 기존 부처

항공우주산업 육성 관련 용역은 올해 11월 완료될 예정이다. 정부 출범에 맞춘 5월에 중간 결과물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항공우주청이 대통령 직속기관이 될지, 총리 산하기관이 될지, 정부 부처 내에 소속되는 형태일지 등 구체적인 사안은 결정된 바 없다. 그럼에도 제기되는 하나의 우려는 항공 관련 사업을 항공우주청에 포함시킬지의 문제다. 항공은 본래 국토부의 사업 영역이었다. 새로운 항공우주청이 항공 분야를 통합한다면 기존 사업을 운영하던 국토부 및 과기부와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항공 분야를 제외하는 것 역시 위험성이 크다. 대기권 위로 규모를 한정한다면 원하는 사업을 자유롭게 펼치기 어렵다. 항공우주청의 설립에 따라 기존 부처의 사업 분야 및 산학 시설까지, 모두의 시스템이 바뀔 수 있다.
INSIGHT_ 제2의 나사

지금의 나사는 냉전 시기의 나사와 다르다. 국방력과 안보 향상을 위해 국가가 우주 개발을 앞세웠던 시대, 나사는 그 어느 기관보다 강했다. 수많은 음모론이 나사를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도 해내지 못한 재사용 발사체를 스페이스X가 성공시킨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나사는 민간사업을 뒷받침하는 부처로 축소됐다. 미래의 우주 개발을 이끄는 동력은 나사가 아닌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에게 있다. 항공우주청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당장 K-일론 머스크가 탄생하기는 어렵다. 첫 출범인 만큼 산업 전반을 지탱할 무게추가 필요하다. 결국은 국가 주도가 중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주도의 항공우주청은 하나의 과도기다. 점차 민간의 힘을 키우고 확장해 나가 새로운 우주 시대를 열어야 한다.
FORESIGHT_ 벽을 넘어서

우주 개발은 5년 내에 결과를 낼 수 있는 단기적 사업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새로운 대륙을 정복하며 몸집을 불렸듯, 우주는 이제 새로운 대륙이 됐다. 지속 가능한 우주 개발은 임기를 가리지 않는다. 기존 방식을 답습한다면 한국의 우주 개발이 용두사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부처 간의 협업을 통해 초반 기틀을 튼튼히 닦아야만 지속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내에서 우주 산업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성과 중심의 단기적 프로젝트보다는 밑거름을 다지는 장기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 먼저다. 우주 개발은 우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초 과학의 발전과 활발한 투자 산업을 만들 수 있는 산업이다. 5년 단임제의 벽을 허물고 미래 먹거리를 만들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2022년 열릴 새로운 달 탐사와 우주 개발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소란해진 고요의 바다〉를 추천합니다.
뉴 스페이스의 시대, 전 세계의 우주 고지전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지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