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장님만 울어야 하나요

3월 30일 - FORECAST

50조를 들여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한 인식 변화 없이는 우리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역대 가장 늦은 만남이었다. 윤석열 당선자가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와 인사 관련 이견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속내는 주도권 싸움이자 자존심 대결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뭣이 중헌디?’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 및 보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만남은 결과를 낳았다. 추경에 대한 양측의 공감대 형성이 있었던 것이다.
WHY_ 지금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보상 문제가 우리 사회의 경제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 경제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자영업자이거나, 자영업자의 고객이거나, 자영업자에게 재화나 용역을 판매하고 있는 경제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DEFINITION_ 손실보상 

전 세계가 팬데믹을 2년 넘게 겪어내고 있다. 바이러스는 인류 모두의 건강을 위협했지만, 감염병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공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타격이 자영업자에게 집중되었다. 정부 지침으로 일정 기간 운영을 아예 못 하거나 영업시간을 제한받았지만, 정부는 집합 금지 조치로 인한 손실에 대해 ‘보상’이 아닌 ‘지원’을 택했다. 강제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보상은 처음부터 전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자영업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이 드러난다. 공동체를 위해 자영업자가 희생하니 함께 ‘도와줘야 한다’라는 시혜적인 의견은 공감대를 얻는다. 코로나19 기간 중에 있었던 ‘착한 임대인’ 캠페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희생이 법적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렸다. 손실보상법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난 2021년 7월에야 만들어졌다. 그마저도 소급 적용은 되지 않는다. 헌법 제23조 3항에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7월 전까지의 집합금지·영업제한으로 인한 손실을 소급 보상하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KEYMAN_ 윤석열

해당 소송을 낸 자영업자 단체는 이번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당선인을 지지한 바 있다. 손실보상에 5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공약 때문이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온전한 손실보상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번 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이를 위한 추경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RECIPE_ 추경 

다만 현재 재정 당국은 이번 정권 임기 내 추경 편성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16조 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편성할 당시에도 추가 추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28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 이후 2차 추경을 위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인수위 측은 기재부 쪽에 지출 구조조정 방안등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고, 4월 국회에 추경안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차 추경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동의하는 만큼, 이는 기정사실에 가까워졌다.
RISK_ 재정 정상화

그러나 문제는 50조 원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규모의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결국 나라가 빚을 더 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 신용현 대변인은 “불가피하게 모자라는 것은 국채 발행을 해야겠지만 규모는 아주 최소화할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국채 발행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집권하게 될 국민의힘은 국채 발행에 부정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국채 발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보여왔다”며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게 기본 방향이지만 아직 세부 방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정준칙 도입을 공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빚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정이 필요하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다른 곳에 쓸 돈을 과감히 줄이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 직접 일자리 등과 관련한 예산이 주요 조정 항목으로 거론되고 있다. 두 번째는 쓸 돈을 조정하는 것이다. 신 대변인은 “50조 원이라고 하는 게 딱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윤 당선인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자영업자들이 주장하는 소급 적용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CONFLICT_ 최저임금과 1회용품

얼마를 어떻게 마련해서 보상할 것인지는 지금 당장의 문제다. 그러나 자영업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앞으로의 한국 경제를 좌우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 사회는 자영업자의 희생에 대해 면밀하게 계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영업자들이 단체를 결성하고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어떠한 이익단체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나 경영자 단체, 변협이나 의협 같은 특정 직역 단체 등이 줄기차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오는 동안 자영업자들은 각자의 동네에서 치킨을 팔고 김밥을 말았다. 그래서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고려는 항상 후순위로 밀려났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편의점 사장님이 갑자기 떠안게 될 충격을 우리 사회는 적극적으로 나누어 부담하지 않았다. 다음 달 4월 1일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한 사업장에는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불편함이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자영업자에게 떠넘긴 꼴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부담과 불편을 감수해야 할 때, 우리 사회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해 온 것이다. 목소리가 없는 자영업자에게 부담을 지워 소비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NUMBER_ 24.6퍼센트  

그 이유는 우리 경제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도 너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중 자영업자 등 비 임금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4.6퍼센트로, OECD 회원국 중 8위를 기록했다. 미국 6.1퍼센트, 독일 9.6퍼센트, 일본 10.0퍼센트 등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따라서 근로자 4명 중 1명인 자영업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자학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구조는 최저임금 인상, 세입 증가를 통한 복지 증대 등이 불러오는 파장을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는 유독 자영업자가 많을까. 복잡한 메커니즘이 얽혀있지만,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작은 회사의 발전을 막아서고,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이 1차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힘을 싣고 스타트업 등 새로운 기업의 출발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이다.
REFERENCE_ 중소기업카르텔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면 원청이나 하청이나 근로자들의 임금 및 복지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담합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유럽이지만, 독일에서는 아예 중소기업카르텔 제도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정부가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수평을 맞춘 것이다. 우리도 당장 이런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물론 너무 급진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사례를 연구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전향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정부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기능을 쪼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부에 이관하고 조직 통폐합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중기부 노조는 “정부 조직의 효율성을 취하려다 정작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가 훼손될까 심히 염려된다”며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INSIGHT_ 경제의 중추

소상공인·자영업자나 소기업에 대해 우리 사회는 충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큰 기업 위주로 성장세를 만들어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소기업들 (small business)를 가리키는 관용구로 ‘경제의 중추 (The backbone of the economy)’라는 말을 쓴다. 실제로 미국 GDP의 40퍼센트 이상이 소기업들로부터 나온다. 내수 경제가 구조적으로 탄탄한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들에 대한 인식부터 부재하다.
FORESIGHT_ 시장 원리

윤석열 당선인의 경제 모델은 민간이 주도하는 ’공정 혁신경제’이다. 소득 주도 성장에서 기업 중심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예측된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정책 기조는 중소기업들에게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대기업 종속 심화의 덫이 될 수도 있다. 또,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과감한 지원 약속과는 별개로, 새 정부가 이들을 우리 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인정하는 시각을 가질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무서운 기세의 성장은 당분간 없을 것이며, 급변하는 국제 경제 상황 속에서 내수 경제의 기초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다음 재난이 닥쳐왔을 때는 더 이상 자영업자에게 희생을 떠맡길 수 없을 것이다. 소기업이 자라나지 않는 이상 청년들은 계속해서 노량진으로 몰리고, 중장년들은 치킨집을 열 것이다. 뭣이 중헌지, 차기 정부가 제대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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