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안보의 딜레마

4월 12일 - FORECAST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위기가 오고 있다. 푸드 테크는 식량난을 해결할 구원자가 될 것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2014~2016년의 평균치인 100을 기준으로 하는데 지난 2022년 3월엔 159.3을 기록했다. 이 지수가 도입된 1996년 이래 최고치다. 역대 최고치는 141.4로, 그 이전 달인 2월의 기록이었다. 식량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푸드 테크는 식량난을 해결할 열쇠가 될까?
WHY _ 지금 식량 안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후 변화도 식량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예견됐다. 먼 나라, 먼 미래의 얘기로 치부하는 사이에 위기는 가장 사소한 곳을 파고들었다. 식탁과 장바구니, 냉장고는 전장이 됐다. 러시아인들은 맥도날드 철수로, 세계인들은 식량 인플레이션으로 위기를 체감했다. 미국은 소비자 물가 지수(CPI)가 7.9퍼센트, 우리나라는 4.1퍼센트가 올랐다. 거론되는 모든 위기를 재확인해야 할 때다. 지금의 위기는 안보와 직결된다. 그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밀접한 것은 먹거리다.
DEFINITION _ 애그플레이션

FFPI는 육류, 유제폼, 곡물, 식물성 유지, 설탕의 가격 지수로 나뉜다. 자세히 보면 특히 곡물과 유지의 가격 상승이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러시아는 밀 최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유 수출국이자 밀, 옥수수, 보리 등의 주요 수출국이다. 2000년대 이후 두 나라의 곡물 수출 정책 변화가 국제 곡물 가격 주요 변동 요인이었다. 이미 기후 변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로 가시화하던 식량 위기는 ‘유럽의 빵 바구니’가 뒤집히며 곡물 가격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는 고스란히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이어지고 있다. FFPI 지수
NUMBER _ 20/20

우크라이나 당국이 추산한 올해 곡물 수확 감소량은 20퍼센트다. 전쟁에 따른 파종 면적 감소 때문이다.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7퍼센트, 곡물 자급률은 20퍼센트 정도다. 세계 7위 곡물 수입국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산지 대체로 조달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공공 비축분 확대, 수입처 다변화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우크라이나발 식량 위기는 전 세계의 공통 과제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인도네시아발 식용유 파동은 팜유 가격을 50퍼센트 높였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쪽이 당한다.
KEYMAN _ ABCD

거대 기업은 곡물 시장을 구원할 수 있을까? 곡물 시장의 MAAMA는 ‘ABCD’다. 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드레퓌스(Louis Dreyfus)다.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80퍼센트를 점유하는 공룡 기업들이다. 식량 인플레이션에 오히려 엄청난 반사이익을 누리며 웃었다. ADM의 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5퍼센트 이상 올라 70달러 선에 거래됐다. 곡물 재벌로 불리는 카길 가문 세 명은 세계 5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카길은 미국 전체 비상장기업 중 2위다. 이들 기업은 곡물 시장의 전통적 강자였지만 기후 위기에 맞춰 사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ADM은 탄소 포집과 바이오 연료, 번지는 대체육, 카길은 배양육 등의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ABCD가 푸드 테크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들의 XYZ는 어떨까.
CONFLICT _ 푸도폴리

미국의 먹거리 운동가 위노나 하우터는 저서 《푸도폴리(Foodopoly)》에서 먹거리의 생산과 가공, 유통을 소수의 대기업이 통제하고 이를 정치 권력이 뒷받침하며 우리의 식탁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가공·유통을 한 회사가 수직적으로 통합하다 보니 공장식 축산, 정크 푸드 등의 식품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독립적 농민은 사라지고 생산자는 수탈당한다. 곡물 빅 4의 독점은 어느 정도일까? 이들이 점유한 것은 곡물 교역량뿐이 아니다. 곡물 저장 시설의 75퍼센트, 곡물 운송을 위한 항만 시설의 50퍼센트를 독점했다. 40퍼센트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카길은 애초에 1865년에 설립 당시 ‘곡물 저장 시설업’으로 등록했다. 인공위성을 띄워 전 세계 밀밭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은 곡물 및 원자재의 글로벌 공급망 독식에서 나온다. 거대 자본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REFERENCE _ 세계 식료품 가격 위기

식량 대란은 처음이 아니다. 2007~2008년, 세계는 지금과 유사한 식품 가격 급등을 경험했다. 밀, 옥수수, 귀리 등의 가격이 폭등하며 유류비 증가를 이끌었고 이는 비료·사료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기후 변화와 수요 증가를 상수로 놓으면 문제는 투기 자본이다. 푸도폴리에서 지적한 그대로다. ABCD를 비롯한 식품 메이저들이 금융 자본과 유착하며 곡물을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본 결과다. 당시 한국 정부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식량 대란 뒤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서 식량 안보는 중대 사안이었다. 해외 농업 진출을 위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곡물 유통망을 확보하려 했지만 카길 등의 방해로 무산됐다. 우리나라의 첫 곡물 터미널 인수는 2019년 포스코가 우크라이나에서 이뤄냈다. 연간 밀 수요량의 76퍼센트에 달하는 물량이 들어오는 터미널이 됐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다.
MONEY _ 2720억 달러

세계에 먹을 것이 없어진다는 우려는 푸드 테크 시장을 키웠다. 이번 CES 2022의 5대 트렌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의하면 전 세계 푸드 테크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2720억 달러로 추산된다. CES를 여는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오는 2027년까지 이 시장이 3420억 달러(4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여기엔 농업, 밀키트, 대체 식품, 푸드 업사이클, 외식 산업에 사용되는 기술까지 다양하다. 인구 증가, 농지 감소, 기후 위기로 인한 공급 문제,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반발, 음식물 처리 비용과 환경 오염 등에 전 지구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푸드 테크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부상한 것은 애그 테크(AgTech)다. 
RECIPE _ 애그 테크

영국의 포워드 푸딩(Forward Fooding)은 매년 ‘더 푸드 테크 500’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2021 보고서에서는 생태계 변화에 맞서 애그 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정된 기업 중 30.8퍼센트가 애그 테크 기업이었고 차세대 식음료 산업이 26.2퍼센트로 뒤를 이었다. 애그 테크에서 가장 많이 시도된 기술은 가정용 스마트팜과 도심형 수직 농장이다. 흙과 햇빛이 없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생태 환경을 AI와 사물인터넷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2019년 리스트 1위 ‘에어로팜(Aerofarms)’은 실내 재배 기술의 1인자다. 농업의 ‘애플’로 불린다. 이번 2021년 1위 인팜(Infarm)도 그렇다. 인팜은 지난 2021년 2월에 대형 재배 센터(IGC)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20국에 100개의 IGC를 설립하고 45만 평 수준의 효율을 목표한다고 밝혔다. 4위에 오른 ‘벤슨 힐(Benson Hill)’은 작물 재배에 특화된 기업이다. AI를 통한 재배 소프트웨어로 지속 가능한 사료나 초고단백질 콩과 같은 슈퍼 푸드를 만들어낸다. 애그 테크가 아니더라도 생명 공학 식품 역시 큰 주목을 받는 분야다. 대체육을 넘어 ‘Lavva’로 유명한 대체 유제품, 곤충·진균류, 미세조류 식품 등은 식탁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특히 UAE의 푸드 테크 챌린지에서 부각된 미세조류는 농토 부족 문제를 초월하고 바이오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어 잠재력이 크다. 
RISK _ 수용성

복병은 소비자다. 대체 식품에 대한 수용성은 아직 불확실하다. 한국 소비자의 대부분은 대체 식품을 비건 제품으로 인식하는 데 그친다. KREI의 〈식품산업의 푸드테크 적용 실태와 과제〉에서는 대체 축산 식품의 과제로 국내 소비자의 인식 및 수용성을 꼽았다. 대체 축산 식품에 대한 인지도는 식물성 고기를 제외하면 낮은 편이었다. 특히 곤충 식품이나 배양육, 식물성 계란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섭취 경험도 적었다. 소비 의향 척도 역시 식물성 고기와 식물성 계란을 제외하면 낮게 나타났다. 건강 증진과 생명체 도축의 윤리성을 공감하더라도 안정성과 향, 맛 등을 무시할 순 없다. 실제 신식품에 대한 요인별 민감도도 위와 같은 순위로 나타났다. 푸드 테크가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당면한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KREI 보고서
INSIGHT _ 공공재

더 이상 음식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다. 위노나 하우터는 먹거리가 상품이 아닌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인류가 먹거리를 공공재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장주의는 식량에 자본이 결탁하는 것을 방조했다. 지금의 식량 위기는 돈이 없어 한 끼 굶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당연했던 메뉴들이 사라지는 문제다. 꿀벌과 나비 개체 수의 감소는 기후 위기가 우리의 식탁과 냉장고를 더 매섭게 덮칠 것이라는 신호다. 곡물 대란이 오기 전부터 세계는 곡물은 넘치는데 식량은 부족한 곳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1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9억 3000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했고 이는 매해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전 세계온실가스 배출량의 8~10퍼센트가 여기에 기인한다. 아직도 전 세계 인구의 10퍼센트가 기아 문제에 시달린다. 식량 위기와 음식물 쓰레기 문제의 동시적 발생은 지금의 식량 문제가 일종의 안보 딜레마라는 점을 시사한다. 식량은 공공재인가 안보의 대상인가 기술 혁신의 대상인가. 식량 정책은 사회의 문제의식을 따른다. 식량에 대한 인식은 곧 공존에 관한 질문이다.
FORESIGHT _ 식량 안보의 지정학

푸드 테크의 다양한 시도가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되는 순간은 아무래도 먼 이야기다. 근미래는 어떨까? 미중 분쟁이 촉발한 국제적 암투는 우주, 첨단 데이터 기술에서 시작해 자원과 식량을 향한다. 식량 안보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인 14억을 먹여야 하는 중국 입장은 다르다. 지난 2월 13일 중국에서 열린 전국 농업회의에서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지시한 ‘식량 안전’이 논의됐다. 중국에겐 국가 대전략에 해당한다.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다. 자연 재해의 주기가 짧아짐은 물론, 각종 천연 자원에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난립하기 때문이다. 식량 위기는 이미 공급망 대란을 거치며 안보 논쟁으로 격화했다. 앞서 에너지도 그랬다.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은 《뉴 맵(The New Map)》에서 석유 시대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 지정학의 시대를 예고했다. EU 택소노미는 논란 끝에 천연가스와 원전을 품었고 천연가스는 러시아의 무기가 됐다. 친환경이라 보기 어려운 원전의 위상이 기묘하게 높아진 이유에는 안보 논리도 숨어있다. 식량 위기에 지정학이 개입하는 순간 외교적 수가 가득한 식량 분쟁이 시작된다.


푸드 테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푸드테크의 테슬라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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