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전야

2022년 열두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757일 만입니다. 이제, 일상입니다.


설레거나, 벅차거나, 하다못해 개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미 일상으로, 제 마음은 먼저 돌아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2022년 4월 17일, 일상 전야입니다. 일상의 시대를 다시 시작하기 전, 낯선 전염병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때의 몇 장면을 다시 되짚어볼까 합니다. 2년 전, 우리가 전혀 새로운 재난을 만났던 그 때, ‘우리’의 정체에 대해 바이러스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그 때 말입니다.
 

코로나19, 기회


첫 번째 장면은 2020년 3월 19일의 백악관입니다. 기자들 앞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이 《워싱턴포스트》의 한 사진기자에게 포착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Corona Virus)라는 단어가 검게 지워지고,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는 용어로 수정되어 있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인에게 그 고통이 누구 때문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얼마 안 돼 트럼프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것이 다시 오기 힘든 정치적인 기회라는 점을 포착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단단한 지지기반이 되었던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은 자신들의 경제적 몰락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리고 그 몰락의 원인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나 중국 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면서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위험은 피하는 동시에 열광적인 지지자들의 충성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았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 세계에 인종차별을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 것입니다. ‘혐오’가 더 이상 ‘혐오’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아시아인이 무차별 인종차별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의 수위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닙니다. 혐오는 원래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것, 남에게 숨겨야 마땅한 것이었죠. 그러나 전염병을 이용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자 했던 정치인에 의해 그 혐오가 정당화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인류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성취한 그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020년 초, 우리는 곳곳에서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단 감염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우리’로부터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종교 집단이었습니다. 이미 불법 의혹과 사회적 폐해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수차례 있어 왔던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태원에서 집단 발병이 일어난 뒤 의문이 제기됩니다. ‘조심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혐오의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확진자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족했지만, 조금 늦었지만, 코로나19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들에게도 기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기회 말입니다.
 

열일곱, 유엽이


두 번째 장면은 2020년 3월 10일, 경상북도 경산시의 한 약국 앞입니다. 비도 왔고, 날이 추웠다고 합니다. 열일곱의 정유엽군은 기저질환이 있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섰습니다.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후 유엽이는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돌았습니다. 당시 방역 당국의 지침은 발열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3~4일 경과를 관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엽이 가족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혹여 피해가 될까, 나라에서 정해둔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부터 유엽이의 상태가 심각해집니다. 고열로 몸이 펄펄 끓는 아들을 데리고 지역의 한 병원을 찾은 아버지는, 그러나 제대로 된 진료나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해열제 몇 알만을 처방받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유엽이의 상태가 악화했습니다.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병원장의 말에 아버지는 손이 덜덜 떨렸다고 합니다. 영남대 병원에 겨우 자리가 나 구급차를 좀 태워달라고 했지만, 코로나19 의심 때문에 거절당했습니다. 그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아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던 아버지의 마음에는 어떤 말들이 떠돌았을까요. 영남대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애매했던 것입니다. 음성이지만 미심쩍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검사만 열세 번을 받으며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뒤늦게 음압 병실에서 치료받았지만 결국 유엽이는 2020년 3월 18일, 숨을 거뒀습니다. 사망 원인은 폐렴이었습니다. 21세기 한국에서, 건장한 10대 후반의 남성이 폐렴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이후 아버지는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 중 여럿이 그러했듯, 내 아들의 죽음이 무언가로 남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유엽이 아버지 정성제씨는 공공의료의 확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만 살았더라도 유엽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유엽이가 살던 곳에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재난 상황에서 의료 공백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유엽이 아버지는 이야기합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370km를 걷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듣기까지는 500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감염병 재난 앞에 지역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몇 달 되지도 않아 우리는 ‘함께 살아남기’에 이미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엽이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유엽이의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우리는 변화하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더 나아졌는지 묻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가 끝이 아닐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재난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또 어떤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요? 막을 수 있는 것이라면 미리 막아야 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더 늦을 시간이 없습니다.
 

무차별


마지막 장면은 2020년 2월 19일, 청도대남병원입니다. 이날 이 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국내 첫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정신과 폐쇄병동의 환경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침대가 없는 온돌방에 환자 예닐곱 명이 매트리스를 깔고 눕거나 앉아 생활했습니다. 수용소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이곳에 바이러스가 퍼지자 병원도, 정부도 당황했습니다. 결론은 코호트 격리였고, 정신 병동 입원 환자 103명 중 101명이 감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 7명이 사망했습니다.
 
팬데믹 이전, 우리는 ‘시설’의 존재에 대해 무감각했습니다. 정신병원, 요양병원, 장애인 시설 등 사람들을 수용해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 말입니다. 시설 밖의 사람들은 그 존재를 거의 잊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처음 감염병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이런 시설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코호트 격리’라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격리한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상의 방역이 아니었습니다. 행정적인 방역이었습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무차별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조는 공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팬데믹 전반기, 인류가 바이러스로부터 숨어 시간을 벌고자 했던 당시에 누군가는 안전할 수 있었으나 누군가는 숨지 못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숫자로도 기록되지 못한 노숙인,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조차 끊겨 급속도로 허약해졌던 독거노인, 학교가 문을 닫은 사이 가정 폭력과 방임 속에 버려진 아이들. 이들 모두 팬데믹을 겪어내느라 우리 사회가 분주했던 사이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결함을 명확히 드러낸 것입니다. 재난은 항상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끊어냅니다. 그리고 그 고리가 끊어지면 공동체가 바닥부터 무너집니다. 757일 동안, 우리는 이러한 결함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각성은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무게


전염병 재난은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일깨워줍니다. 그 앞에서 ‘내’가 안전해지는 방법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걸리면 반드시 그다음 사람이 걸립니다. 따라서 그저, ‘우리’가 덜위험해지는 방법만이 있을 뿐입니다.

동시에 전염병은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이야기합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분, 즉 타자화를 통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퍼뜨립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그 누구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타자화를 통해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방역 체계를 흔드는 혼란과 소수의 정치적 이득일 뿐입니다.

다음 팬데믹은 언제가 될지 모릅니다. 이번 코로나19처럼 길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짧지만 더 잔인한 바이러스일 수도 있겠지요. 다음 재난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논픽션 작가 욜라 비스는 저서 《면역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지난 757일간, 저 자신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환경이었는지 되묻게 됩니다. 부디, 다음 재난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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