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 세계에 인종차별을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 것입니다. ‘혐오’가 더 이상 ‘혐오’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아시아인이 무차별 인종차별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의 수위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닙니다. 혐오는 원래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것, 남에게 숨겨야 마땅한 것이었죠. 그러나 전염병을 이용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자 했던 정치인에 의해 그 혐오가 정당화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인류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성취한 그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020년 초, 우리는 곳곳에서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단 감염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우리’로부터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종교 집단이었습니다. 이미 불법 의혹과 사회적 폐해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수차례 있어 왔던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정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태원에서 집단 발병이 일어난 뒤 의문이 제기됩니다. ‘조심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혐오의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확진자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족했지만, 조금 늦었지만, 코로나19는 트럼프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들에게도 기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기회 말입니다.
열일곱, 유엽이
두 번째 장면은 2020년 3월 10일, 경상북도 경산시의 한 약국 앞입니다. 비도 왔고, 날이 추웠다고 합니다. 열일곱의 정유엽군은 기저질환이 있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을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섰습니다.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후 유엽이는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돌았습니다. 당시 방역 당국의 지침은 발열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3~4일 경과를 관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엽이 가족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혹여 피해가 될까, 나라에서 정해둔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부터 유엽이의 상태가 심각해집니다. 고열로 몸이 펄펄 끓는 아들을 데리고 지역의 한 병원을 찾은 아버지는, 그러나 제대로 된 진료나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해열제 몇 알만을 처방받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유엽이의 상태가 악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