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

4월 19일 - FORECAST

코로나19로 임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의 합법화가 검토 중이다. 팬데믹은 저물고 있으나, 비대면 진료는 이제 시작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17일 정부는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을 토대로 비대면 진료를 상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시 허용된 상태다. 2022년 4월 18일부로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모든 거리두기 조정안은 폐지됐다. 팬데믹은 저물고 있으나, 비대면 진료의 본격화는 이제 시작이다.

WHY_ 지금 비대면 진료를 읽어야 하는 이유

코로나가 휩쓸고 간 2년은 미래 세계의 체험판이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는 일상 속 극도의 편리함을 이끌어 냈다. 클릭 몇 번으로 밥을 먹고 일하고 쇼핑한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끌어 올린 기술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비대면 진료도 마찬가지다. 비대면 진료 논쟁에서 드러나는 신구 집단의 갈등, 시스템과 기술의 충돌을 파악할 때 우리는 기술의 미래에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다.


DEFINITION_ 임시

현행 의료법상 국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다. 전화와 화상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다만 코로나19의 확산이 심화하며 정부는 2020년 2월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시 허용했다. 같은 해 9월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10월엔 최혜영 의원이 일부 질환자 대상의 원격 모니터링을 제안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NUMBER_ 352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실시된 비대면 진료는 352만 3451건에 이른다. 2년간 하루 약 5000여 건이 이뤄졌다. 올해 1월 기준 국내 최대 원격 의료 플랫폼 닥터나우의 누적 사용자 수는 90만이다. 진료 신청 및 결제 후 의사와의 전화 혹은 화상 통화가 이뤄지는 것은 10분 내외다. 자택으로 약이 배달되는 것은 수도권 기준 1~2시간 내외다.


RECIPE_ 비,대면

비대면 진료 성장의 핵심은 코로나 특수다. 감염 가능성을 줄이고 이동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면이 부담스러운 질환에서 또 다른 장점이 드러난다. 닥터나우의 증상별 검색에서 눈에 띄는 카테고리는 사후 피임, 탈모, 비뇨기과, 정신 건강 등이다. 면대면 소통을 피하고 싶은 진료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여성 질환 상담 플랫폼 닥터벨라와 같이 특정 집단의 페인 포인트를 공략한 원격 의료 상담 서비스도 출시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만성질환자에게도 비대면 진료는 행운이다. 2020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비대면 전화 진료 대상은 고혈압(43.6퍼센트), 당뇨(20.5퍼센트)를 비롯한 만성 질환이 대다수였다.


KEYMAN_ 의협

대한의사협회는 비대면 진료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국내 의사 63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회원 77.1퍼센트가 전화 상담·처방 제도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전국엔 7만 5211개의 병원과 2만 3995개의 약국이 있다. 닥터나우가 현재 제휴 중인 국내 의료 기관은 400여 개다. 전체 의료 기관의 0.4퍼센트에 불과하다. 비대면 진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CONFLICT_ 의사,약사,플랫폼
의료 플랫폼과 의사협회의 마찰 외에도 쟁점은 다양하다. 의사 vs 의사; 동네 의원과 개원가와 대학 병원의 입장은 다르다. 의료법 개정안 발의 전 더불어민주당이 비대면 진료를 반대한 근거는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었다. 약사 vs 약사; 대한약사회가 모든 약사를 대표하진 않는다. 내손안의약국 박정관 대표는 원격 진료에 대해선 부분 찬성하지만, 오히려 헬스케어 시장을 독점하려는 플랫폼에 반감을 표하며 약사가 비대면 진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플랫폼 vs 플랫폼; 닥터나우, 굿닥, 똑닥, 올라케어, 바로필, 나만의 닥터, 약딜 등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새로운 레퍼런스 자본주의의 시작이다.


REFERENCE_ 미국

미국은 원격 의료(Telehealth) 분야의 세계적 선두 주자다. 넓은 영토 탓에 의료 서비스 격차가 큰 것이 원인이다. 텔레닥(Teledoc)은 이용자 수 1100만 명을 보유한 미국 최초의 원격 의료 회사다. 팬데믹이 등장한 2020년 1년새 주가가 139퍼센트 상승하는 등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최근엔 테크 공룡들이 비대면 헬스케어에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2020년 미국 원격 진료 업체 아메리칸 웰(American Well)에 1억 달러를 투자했다. 아마존 또한 올해부터 원격 의료 서비스 아마존 케어(Amazon Care)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한다. 우리나라 비대면 진료 시장이 현재와 같은 성장세로 커진다면, 글로벌 테크 기업의 헬스케어 타깃이 되는 것은 가까운 미래다.


RISK_ 데이터

특정 기관에 가지 않고도 나의 진료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편의다. 문제는 데이터 관리다. 내가 언제 어디가 아파서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플랫폼상에 일목요연한 기록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정확도에 있다. 의료 데이터는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나의 정보가 단순히 광고 알고리즘과 마케팅 전략으로 소비되는 것과 위험성의 차원이 다르다. 의사의 처방이 부정확하게 전달되는 전산 오류로 환자가 위험에 처하는 사고는 종종 발생했으나 이러한 EHR(Electronic Heatlh Records)의 위험은 쉽게 간과된다. #포춘,〈EHR이잘못되면생기는일〉


MONEY_ 100억

업계의 눈이 향하는 곳은 블록체인이다. 닥터나우는 지난해 말 100억 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다음으로 주목할 주주는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 해시드다. 올해 1월엔 닥터나우와의 MOU를 체결했다. 의료 데이터의 블록체인화는 정확성, 안정성, 접근성으로 이어진다. 모든 업데이트가 가시적이고 즉각적으로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환자의 권리도 확대한다. 기존엔 의사가 개인의 진료 기록을 관리 및 열람했다. 라이선스를 가진 사업자가 정보를 독식하는 구조였다. 블록체인의 도입은 개인이 자신의 의료 기록에 누가, 언제, 어느 범위까지 접근할지 정하는 권리 확보를 의미한다. 의료 데이터 탈중앙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INSIGHT_ 민간

의료는 공공재라는 인식이 예전 같지 않다. 의료계 민간의 영역 및 역할은 확대하는 중이다. 코로나19 백신이 하나의 큰 트리거였다.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의 인증서 로그인 서비스는 네이버와 카카오를 통해 이뤄졌다. 빅테크 기업과 질병관리청의 협업이다. 비대면 진료도 한 시작이다. 현재 사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는 ‘법’이라고 답했다. DT 시대 정부의 역할은 모든 의료 체계를 통제하고 국민 건강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다. 의료 단체 및 플랫폼과의 조율을 거쳐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안을 찾는 것이다.


FORESIGHT_ 좋은 의사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 더 이상 나와 가까우면서도 평점이 좋은 병원을 검색하고자 지도 앱과 포털창을 전전할 필요 없다. 별점이 높은 병원을 클릭하면 된다. 명의가 밀집한 수도권과 타 지역간 격차도 일부 해소된다. ‘좋은 의사’의 기준도 달라진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의사, 시설이 깔끔한 병원, 간호사가 친절한 병원 등 좋은 의사와 병원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양했다. 반면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비대면 진료는 빠르고 핵심적인 서비스다. 중증 질환자는 여전히 오프라인 병원을 찾겠으나 경증 질환자가 원하는 것은 필요한 만큼의 서비스일 뿐이다. 결국 질병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좋은 의사는 다르게 정의된다. 누군가에겐 따뜻하고 친절한 의사가 여전히 좋은 의사라면, 누군가에겐 빠르고 편리한 클라우드 시스템이 좋은 의사로 자리 잡을 미래가 머지않았다. 


현 의료 제도의 모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의사들은 왜 그래?》를 추천합니다.
바쁜 국민과 바쁜 의사들의 갈등 속에서 공중 보건 위기의 실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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