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대

2022년 열세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을지OB베어’가 결국 문을 닫습니다.


6번째 강제집행 끝에 철거된 것입니다. 저는 딱 한 번 을지OB베어에서 잔을 기울였던 일이 있습니다. 그 기가 막힌다는 노가리 양념장 맛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함께 맥주를 마셨던 친구의 불콰했던 얼굴과, 맥주 종류를 두고 말도 안 되는 논쟁을 벌였던 그날의 대화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을지로의 가게 중에서는 ‘만선호프’에서의 추억이 깊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 기가 막힐 일이 있을 때 근처에서 친구와 술 약속을 잡게 되면 자연스럽게 을지로 노가리 골목으로 향했고,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앉고 나면 그곳이 만선호프였습니다. 해가 바뀔수록 그 골목에서 만선호프가 아닌 곳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을지로 옛 인쇄 골목의 공간 대부분을 만선호프가 차지했고, 장사가 잘되니 이렇게도 가게가 커버리는구나 감탄하기도 했죠.

노가리 골목을 장악한 만선호프는 건물주가 되었습니다. 을지OB베어가 자리 잡았던 바로 그 건물의 건물주 말입니다. 오랫동안 옛 건물주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리를 지켰지만, 새 건물주와 용역업체의 물리력에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늦은 밤, 순식간에 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성공한 호프집이 쇠락한 호프집을 밀어냈습니다. 을지OB베어가 밀려 나간 그 자리에는 만선호프의 화장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걸 대체 어떤 종류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포의 권리


건물주가 원하는 만큼 세를 내지 못한다면 임차인이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세를 주기 싫다는 건물주 앞에서 버티는 임차인이 잘못된 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법이 그렇고 사회의 상식이 그러한데 왜 우리는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우리가 노포에게도 어떤 권리가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공간을 소유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임차인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 술집이, 그 설렁탕집이, 그 카레 집이 바로 그곳, 그 공간에 머물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포가 사라질 때 흔히 그 맛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노포의 존재 가치는 깊은 맛뿐만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 맛보다 더 깊을, 그곳에 켜켜이 쌓여 온 추억이 더 중요할 지도 모릅니다. 노포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손님을 맞이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그 공간에 가치를 축적합니다. 건물주는 돈을 받고 공간을 빌려주었을 뿐, 그 공간에 중요한 의미를 쌓는 것은 그 공간을 지금 당장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곳을 점유할 어떤 권리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법에 담기지 못한 권리이므로 무시되고 있습니다만, 정말 이대로 무시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 가게가 문을 닫을 때 사장님 한 분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깊이 배어든 시대의 문화, 단골손님들이 두고 간 마음들, 동네 상인들과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생겨난 지역 공동체의 힘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 허울뿐이었던, ‘백년가게’ 같은 얄궂은 현판 따위 말고, 말입니다.
 
그런데 눈을 돌려 외식업계 전반을 살펴보면, 앞으로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십 년, 이십 년을 버텨 노포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란, 2022년 대한민국의 식당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을지OB베어의 경우와 같이 건물주와의 갈등이나 임대료 문제가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배달 앱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입니다.
 

5000원짜리 국밥


코로나19를 겪으며 배달 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한번 써 보면 당연히 다음에도 쓰게 됩니다. 굳이 음식점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식업체들의 배달 앱 매출 비중이 최근 3년 사이 6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예전처럼 치킨이나 피자가 아니라 한식을 주로 시켜 먹습니다. 매출 기준으로 절반이 조금 안 되는 비율을 차지합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변화한 생활 패턴이 갑자기 제자리를 찾을 리는 없습니다. 배달시켜 먹는 버릇이 이미 들었는데 굳이 음식점에 찾아가 점심시간에 줄을 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배달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수수료입니다. 배민1 기본형 요금제를 채택한 사장님은 주문 1건당 배달료 6000원을 내야 합니다. 고객과 나눠서 낼 수 있지만 배달료 6000원을 내걸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배달료 외에 주문중개수수료도 붙습니다. 음식값의 6.8퍼센트입니다. 또 결재정산 수수료도 빠집니다. 3퍼센트입니다. 10000 원짜리 국밥 한 그릇을 팔면서 고객과 배달료를 반씩 부담한다고 치면, 고객은 13000원을 지불하게 되지만 사장님이 배민으로부터 입금받게 되는 금액은 5726원입니다.

국밥 한 그릇에 13000원은, 제게는 약간 비쌉니다. 맛이 꽤 좋았으면 싶습니다. 그러나 사장님은 5726원을 받고 팝니다. 최소 기준에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고기 한 덩이, 파 한 뿌리가 아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국밥을 파는 사장님도, 사 먹는 저도 손해일 뿐입니다.
 
배달 앱 수수료 문제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때 미국 배달 앱의 수수료율은 약 30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2021년, 미국 뉴욕시 의회는 우버이츠와 같은 주요 배달 앱의 수수료 상한선을 정했습니다. 배달 수수료는 15%, 광고 수수료 5%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의 규제를 상시 적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시 의회의 프란시스코 모야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당을 희생시켜 수십억 달러짜리 회사들, 그리고 그 투자자들이 더 부자가 되도록 하려고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배민 같은 배달 앱 업체가 식당 사장님들과 계약을 맺을 때는 계약서를 쓰고, 계약이 변경될 경우 사전에 통지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았지만 부처 간 영역 다툼에 끼여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이제 새로 들어설 정부의 플랫폼 기업 관련 기조는 ‘자율규제’입니다.
 

맛있는 시대


맛도 있지만 ‘저렴한’ 식당은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식당을 지키려면 더 이상 저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달을 하면 하는 대로, 배달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대로 부담에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살아남게 되는 것은 경기에 상관없이 그 수요가 존재하는 비싸고 맛있는 식당들일 겁니다. 그리고 음식 솜씨와 숙련도를 외주 줄 수밖에 없는 가맹점 사장님들의 전쟁터, 프랜차이즈 식당들 뿐이겠지요.

요즘처럼 맛있게 먹기가 손쉬웠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식도락 과잉의 시대입니다. 먹방 콘텐츠를 비롯해 ‘잘 먹기’ 위한 콘텐츠가 도처에 넘쳐납니다. 그런데 잘 먹기가 참 힘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잘 먹고 살기가 참 힘듭니다. 이 맛있는 시대를 오래도록 즐기려면, 참 낡고 힘 빠진 그 단어가 결국 필요합니다. ‘상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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