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는 죽었다

4월 26일 - FORECAST

프랑스 국민은 다시 한 번 마크롱을 지지했다. 그러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현지시간 4월 24일, 2022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58.55퍼센트를 득표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상대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를 17.1퍼센트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마크롱의 승리보다 주목받는 것은 줄어든 표차다. 두 후보의 성적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랑스 정치에 드리운 그림자의 실체는 무엇인가?
WHY _ 지금 프랑스 대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프랑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 상임 이사국(P5)이자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이다. 이번 대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EU와 NATO의 결속을 좌우하는 선거였다. 극우파 르펜의 부상이 달러 강세, 유로화 약세를 부르기도 했다. 마크롱의 승리 이면엔 프랑스 사회의 거대한 균열이 읽힌다. 프랑스의 정치 지형은 전 세계 자유주의 진영의 현주소다.
DEFINITION _ 리턴 매치

리턴 매치였다. 5년 전에는 32퍼센트포인트 격차였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확연히 표차가 줄었다. 2017년 프랑스 대선 당시 국민전선(FN)의 르펜은 제 3지대와 중도를 파고들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앙 마르슈!(LREM)의 마크롱에게 패하며 최연소 대통령의 탄생을 바라봐야 했다. 기성 정치와 다른 신선함이 마크롱을 당선시켰다. 우크라이나의 전설이 되어가는 젤렌스키가 그랬다. 공화당(LR)과 사회당(PS)이 양분해온 정치 구도의 종말이었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프랑스는 5년 중임제다. 마크롱은 1958년 5공화국이 태동한 이래 중임에 성공한 네 번째 대통령이자 현직에서 연임에 성공한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 다만 이번 승리엔 신선함도 통합도 없었다.
REFERENCE _ 공화국 전선

2017년 투표를 잘 보면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24.01퍼센트, 르펜이 21.3퍼센트다. 결선은 66.1퍼센트 대 33.9퍼센트였다. ‘반 르펜’표가 집결했기 때문이다. “극우만은 막아야 한다”는 깃발 아래 헤쳐 모였다. 이른바 ‘공화국 전선’의 기원은 2002년 프랑스 대선이다. 당시 좌파는 후보 난립으로 인해 1차 투표에서 대거 탈락하고 현역 대통령이던 공화국 연합(RPR)의 자크 시라크와 마린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2파전이 됐다. “Save the Republic”이라는 구호 아래 좌파가 공화국 연합에 힘을 실어 줬다. 공화국 전선의 탄생이었다. 2017년에도 단일 대오를 유지했던 이 전선은 이번 선거에서 깨졌다. 결선 직전까지 초접전의 양상을 보였다.
MONEY _ 8억 9330만 유로

마크롱은 왜 흔들렸을까? 가장 최근의 사건은 ‘맥킨지 게이트’다. 프랑스 상원 조사위원회는 3월 17일에 〈Consultocratie : un quinquennat de conseils〉라는 이름의 조사 결과를 냈다. 문어발식으로 정부 기관에 침투해 있는 컨설팅 업체들이 각종 중요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법인세를 회피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보급 등의 주요 정책 자문 비용으로 8억 9330만 유로, 우리 돈 1조 2000억 원이 컨설팅 업체에 지출됐다. 이 중심엔 10년간 한 푼의 법인세도 내지 않은 맥킨지가 있었다. 프랑스의 유력 매체《르몽드》도 대선을 3주 앞두고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와 마크롱의 유착 관계를 파헤쳤다. 컨설팅 업체를 쓸 순 있다. 그러나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 맥킨지는 화이자와 유착 관계로 프랑스 등 주요국들에서 화이자 백신 도입을 적극 권장했으며, 마크롱이 최초 대선에 출마할 당시 정권 창출을 도왔다. 소셜 미디어에는 다음과 같은 해시태그가 퍼졌다. #McKinseyGate
CONFLICT _ 노란 조끼 시위

코로나19는 모든 집권 세력에 공평했다. 모든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다만 마크롱 정부는 그 이전에 판데믹급의 홍역을 앓았다. 2018년 11월 17일부터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Le Mouvement des Gilets Jaunes)’다. 첫날부터 30만 명이 모였다. 프랑스 정부가 당해 유류세 23퍼센트, 휘발유 유류세를 15퍼센트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프랑스 교통법에 따라 차량에 늘 비치해야 했던 노란색 조끼를 입고 시위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목적은 좋았으나 재원은 19.1퍼센트만 생태적 전환을 위한 기금에 활용됐다. 나머지는 일반 회계 예산 및 타분야에 쓰였다. 유류세나 탄소세 등은 역진세의 성격이 있다. 생태 배당 등 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서민이 쉽게 피해를 입는다. 부유세 인하와 동반된 유류세 인상 조치로 노동자의 반발은 거셌다. 시위는 점차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변질했고 폭력성을 띠었다. 마크롱 정부는 유류세 인상을 폐지했지만 시위는 계속됐고 노동자 총파업까지 일어났다. 지지율은 23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 돈이 쓰였고 앙 마르슈는 2020년 지방 선거에서 참패했다.
RECIPE _ 민생

르펜은 영리했다. 르펜보다 더 극우 성향인 ‘재정복!’의 에릭 제무르와 달리 푸틴과 적당한 거리를 뒀다. 국민연합의 색채를 빼며 온건한 이미지를 노렸고 마크롱의 정책적 실수를 잡아내며 민생에 접근했다. 에너지 부문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의 세율을 20퍼센트에서 5.5퍼센트로 크게 인하하고 생필품의 가격을 낮추겠다 공언했다. 30세 이하 소득세 납부 면제 및 다자녀 가구 저금리 대출, 무엇보다 연금 수급 연령을 60세로 낮추자는 것이 주효했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안과 정반대다. 다만 외교나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중도를 잡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EU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르펜의 주요 외교 공약은 EU 탈퇴, 난민 추방 등이었다. 이번엔 EU 개혁,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등으로 일부 순화했다. 다만 킹 메이커는 따로 있었다.
KEYMAN _ 멜랑숑

지난 4월 13일 프랑스의 팡테옹-소르본 대학에는 100명이 넘는 학생이 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마크롱도, 르펜도 싫다는 젊은 층의 시위였다. 이들의 표심은 올해 70세가 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뤽 멜랑숑에 향했다. 그는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극좌파 성향이다. 마크롱도, 르펜도 아니라는 시위 구호 “Ni Macron, Ni LePen”은 이번 시위가 비호감 대선이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지난 대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들은 기후 위기, 생태, 사회 정의, 인종차별, 이민자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18~24세 8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34퍼센트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높고 투표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멜랑숑은 두 후보 모두에 부정적 발언을 냈고, 당선의 향배를 가를 부동층의 표심은 마크롱에게 미세하게 기울었다.
NUMBER _ 제3의 길

마크롱의 5년은 과거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좌우의 대립을 넘은 온건주의 성향으로 자국에 횡행하는 문제를 끌어안고자 했지만 경제적으론 친기업 정책을 펴고 노동자의 삶을 약화하며 극단주의가 득세할 구실을 줬다. 좌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 셈이다. 멜랑숑과 르펜이 저소득층에게 호소력이 있던 이유는 마크롱의 자유주의가 품지 못한 계층을 정확히 보여준다. 만약 1차 대선 투표에서 마크롱이 아닌 르펜과 멜랑숑이 맞붙었다면 극우와 극좌가 결선을 치르는 세기의 대선이 되었을 것이다. 마크롱의 힘은 이념과 외교 정책에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EU 이사회 의장국 수장으로서 중재자를 자처하고 르펜과 달리 친 유럽 노선을 주장했다. 일견 합리적 주장 같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RISK _ 프렉시트

브렉시트는 51퍼센트의 찬성으로 이뤄졌다. 난민 사태가 주요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로 타격을 받은 유로존을 부양할 의지가 없던 탓도 있다. 프랑스 역시 이 여론에서 안전하지 않다. 르펜과 멜랑숑 역시 반EU, 반NATO 노선이다. 멜랑숑은 2017년 대선 공약으로 프랑스의 NATO 탈퇴를 공언한 바 있고 르펜은 EU 탈퇴를 외쳤다. 현재 반마크롱의 적대적 공생 관계인 극우와 극좌 포퓰리즘이 모두 프렉시트(FREXIT)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핵 위협이 높아지고 유럽의 지정학적 불안이 높아질수록 유럽 개별 국가들은 다극 체제를 믿으며 ‘유대(chainganging)’할 것인지 강대국에 붙어 ‘책임전가(buck-passing)’를 할 것인지의 선택 위에 놓이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럽의 균열 조짐은 푸틴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INSIGHT _ 앙시앵 레짐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른다. 패자는 승복하고 갈등은 봉합되기에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언젠가부터 세계 주요 국가들은 비호감 선거를 치르고 있다. 선거로 사회가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선거 후 사회 분열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적대적 공생 관계로 권력을 양분하던 구체제는 저물고 그 자리를 양극단의 포퓰리즘이 대체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프랑스에 ‘톨레랑스(tolérance)’는 없다. 저소득층의 파시즘은 불안의 정서다.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분열을 멈추기는 어렵다. 마크롱의 이번 승리가 힘겨웠던 이유다. 마크롱의 승리를 유독 반기는 유럽의 지도자들 역시 안전하지 못하다. 쫓기는 쪽보다 쫓는 쪽, 기성 정치인보다 신인, 온건주의보다 급진주의를 선호하는 현상이 자유주의 국가들에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정치 지형 역시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의 5년은 도전이다.
FORESIGHT _ 춘추전국

마크롱 정부 2기의 앞길은 험난하다. 프랑스는 오는 6월 하원 총선을 치른다. 멜랑숑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을 노린다고 공언했고 이를 토대로 좌파 결집을 유도하고 있다. 사실상 여소야대가 확정적인 상황에서는 보통 제1야당의 대표를 총리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을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이라고 한다. 이번 대선에서의 패배를 “눈부신 승리”라고 표현한 르펜 후보 역시 국민연합의 대거 입성을 기대하고 있다. 에릭 제무르의 재정복과 연합해 극우파 블록을 형성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프랑스는 대선에서 승리한 세력이 아닌 다른 쪽을 밀어주며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 주도해온 유류세 인상과 연금 개혁은 고사하고 마크롱이 강점을 드러낸 외교 정책까지 흔들릴 수 있다. 2024년의 미국, 2027년의 프랑스와 한국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상하는 유럽의 인종주의의 근원을 알고 싶다면 《백인주의의 발명》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