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S의 계절

4월 29일 - FORECAST

S의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월급은 그대로인 시대다. 고통의 크기는 공정하지 않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종로5가역 낙원상가 주변에는 3000원짜리 국밥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근처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한 끼를 책임져 주는 가게들이다. 최근 전 세계적인 고물가의 영향으로 외식 물가도 뛰어오르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의 발표에 따르면 9000원이었던 냉면 한 그릇은 10000원으로 올랐다. 그렇다면 3000원짜리 국밥을 4000원으로 올려도 괜찮을까? 국밥집 사장님들은 그렇게 했다간 손님들이 더는 올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WHY_ 지금 S의 공포에 대해 읽어야 할 이유

세계은행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했기 때문에. 이것은 거대 담론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말해 물가는 치솟는데 내 월급은 그대로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이웃 누군가는 빈곤과 허기의 늪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는 비극이기 때문에.
DEFINITION_ S의 의미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시대가 끝을 향하고 있다. 재난의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던 ‘유동성 잔치’는 벌써 끝났다. 이제 남은것은 전 세계를 당황케 한 기록적인 물가상승과 이에 따른 ‘S의 공포’이다. 사실, S가 온다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이다. 그런데 이 S의 정체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또 누군가는 슬로우플레이션을 예상한다. 세계은행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한다. 물가가 치솟는데, 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이걸 잡기 힘들거란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슬로우플레이션쪽에 무게를 둔다. 물가는 올라도 경기 침체가 같이 오는 정도는 아닐거란 희망이다.
RISK_ 전쟁과 전염병

그렇다면 그나마 견딜만한 슬로우플레이션을 기대할 만한 걸까? 안타깝게도 호재는 없고 악재는 많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여파를 우려한다. 전쟁이 예상 밖으로 장기화하면서 원자재 가격상승과 유럽 지역의 경제성장 둔화가 우려되고, 이에 따른 영향은 아시아 국가들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완전히 끝나지 않은 코로나19도 중요한 변수다. 몇 주간의 상하이 봉쇄에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앞으로 몇 차례의 봉쇄가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KEYMAN_ 윤석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IMF는 우리나라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0%로 전망했다. 이는 아시아 선진국 8개국 평균인 2.4퍼센트보다 1.6%p 높은 수치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이다. 저성장, 고물가 기조가 자명하다. 저성장과 고물가는 각각 따로 해결하기에도 복잡한 문제다. 그런데 이 둘이 뒤엉켜있으니 고차 연립방정식 수준이 된다.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바로 새로 들어설 정부다.
CONFLICT_ 자아분열

그런데 이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해결하려다 보니 새 정부의 기조에 벌써 자아분열이 보인다. 재정 당국은 돈을 풀겠다고 나서는데 통화 당국은 돈줄을 죄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인수위는 2차 추경이 통과되는 즉시 소상공인·소기업 551만 개 사에 손실 규모에 따른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액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소상공인 방역지원금 액수는 600만 원, 추경 규모는 30조 원대라는 전망이 나온다. 30조 원이라는 돈이 추가로 풀린다는 얘기다. 반면, 통화 당국에 해당하는 한국은행의 슬로건은 ‘긴축’이다. 총재가 공석인 상황에서도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겠다는 얘기다. 한쪽에선 돈을 풀고, 한쪽에선 돈을 거둬들인다.
NUMBER_ 4%

그렇다면 이 둘을 순차적으로 해결하면 안 될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벼랑 끝에 내몰린 골목상권을 살려낸 다음 물가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4%라는 숫자가 너무 치명적이다. 쌈장에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서민의 훌륭한 안주가 되는 풋고추 100g은 지난 2021년 4월에는 990원이었지만 1년 만에 2039원으로 뛰었다. 오뚜기 콩기름 100g도 같은 기간 3849원에서 5480원으로 올랐다. 누군가에겐 주말 나들이 한 두 번을 줄여 가계부 숫자를 맞춰야 하는 아쉬움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끼니를 굶어야 하는 비극이 된다. 탑골공원 주변의 노인을 주로 상대하는 국밥집들의 한 끼 가격은 대개 3000원이다. 치솟는 물가에 맞춰 가격을 올린다면 이제 누군가는 무료 급식소로 발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MONEY_ 임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지점이 있다. 물가가 오를 때 임금도 그만큼 오른다면 곤란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없다. 보통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 경제지를 읽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이유다. 인건비가 올라서 물가가 오른다고 하는데, 내 인건비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임금-물가간 전가효과’를 분석한 결과, 물가 충격은 4분기의 시차를 두고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물가 상승은 하반기 임금 인상으로 나타날 것이란 얘기다. 그리고 그 임금 인상이 물가를 더욱 밀어 올릴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도 나온다.
REFERENCE_ 일본

임금도 물가도 올려보려다가 실패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의 별명은 한 때 ‘윤전기 아베’였다. 윤전기로 돈을 찍어내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아베노믹스’ 정책 때문이다. 엔화를 많이 찍어내면 달러 대비 엔화의 가치가 하락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상승한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임직원의 소득이 상승해서 경기가 살아나고 물가도 따라 오르리라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가정이었다. 그러나 오류가 발생했다. 기업이 돈을 벌긴 했지만 기술개발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기업이 번 돈은 임직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일본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급여는 2000년에 연간 455만 엔이었지만 2020년에는 433만 엔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래서는 경기도 살지 않고 물가도 오르지 않는다. 결국, 전 세계가 긴축을 선언한 2022년, 엔화의 가치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INSIGHT_ 세금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적어도 지금이 돈을 마음 놓고 풀어도 되는 시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줄을 죄어야만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방법이 있다. 바로 세금이다. 유동성 잔치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 기업들의 실적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전반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세금을 걷어 서민과 소상공인 등 지원해야 할 곳에 지원하면 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유동성 잔치를 제대로 벌인 적도 없다. 기껏해야 소소한 홈파티 수준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지원해야 할 사람들에게 지원이 제대로 가지 못했다.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면 필요한 만큼 걷어서 해결하면 된다.
FORESIGHT_ 공정과 상식

물론, 이 간단하고 논리적인 방법은 현실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유는 두 가지, 재정 당국과 선거이다. 기획재정부는 곳간을 비우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따라서 돈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통화 정책, 즉 금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곳간이 그득히 차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곳간을 채우려면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그 단어, ‘증세’를 말해야 한다. 당장 6월에는 지방선거가, 2024년 4월에는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있다. 물가가 올라서 큰일이 아니다. 물가가 올랐지만, 소외계층을 위한 예산은 오르지 않아서 큰일이다. 기업이 만들어 파는 물건값은 올랐는데 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은 그대로라서 큰일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이러한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리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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