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별로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공론화되었던 주제를 살펴보면 지난 5년간 우리 사회가 어떤 고민을 했으며 어떤 논의와 갈등을 겪었는지 알게 됩니다. 2017년 12월에는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2019년 4월에는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183만 명이 참여했고 맞불 성격의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에도 33만 명이 몰렸습니다. 조국 전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는 임명 찬성에 75만 명, 반대에 30만 명이 동의했습니다. 2020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146만 명이, 반대로 문 대통령을 응원하는 청원에는 150만 명이 클릭했습니다.
이쯤 되면 청원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의사 표현입니다. 헌법상 정당을 해산시킬 권한이 청와대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원은 이어집니다. 국민이 청원 게시판을 ‘온라인 광장’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청원 게시판을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앞다투어 단독 경쟁에 나섭니다.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민심’인 양 보도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습니다. 언론사가 기사를 만드는 일종의 도구로 청원 게시판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사용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진영 싸움에 언론이 플레이어로 뛰어들면서 ‘민심’의 한 면만을 부각하기 위한 꼼수였습니다. 참여 인원이 스무 명인 청원 화면을 캡처해 올리면서 대단한 일인 양 기사를 쓰는
경우도 나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씁쓸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청원 게시판은 광장의 역할을 해 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니 청원에 힘이 실리고, 힘이 실리니 결과를 내고, 언론이 계속해서 주목하는 선순환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청원 동의를 얻어낸 국민청원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낸 청원이 총 9건이었으며, 동의한 인원을 다 합치면 769만 명에 달합니다. 이를 통해 성폭력 처벌법이 개정되었고, 주범 조주빈 등에 중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또한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경비원 갑질 사망사건 관련 청원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법과 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국민청원이 탄생시킨 ‘윤창호법’과 ‘민식이법’을 둘러싸고는 광장이 만들어 낸 변화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법조계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광장의 목소리에 압도된 입법부가 제대로 심의하지 않은 채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법을 세심하게 다듬어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실제로 '민식이법'의 경우, 지지 여론에 힘입어 청원 마감 하루 전날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보완 입법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로 인해 초래된 사회 혼란은 우리가 지불해야 할, 광장의 비용으로 남았습니다.
공터로 모인 정치
한편, 팬데믹을 거치면서 정치권은 또 다른 광장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입니다.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권은 ‘조직표’가 예전만큼 모이지 않는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선거철이 되면 예약을 잡기가 힘들었던 동네 술집들은 밤 10시가 되면 문을 닫았습니다. 지역의 당협위원장이 섣불리 건배라도 외쳤다간 사진이 찍혀 ‘방역 역풍’을 맞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가 주목을 받게 됩니다.
각 정당은 전략적으로 커뮤니티들의 성향을 분류해 모니터링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자신들을 지지하는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에 민감해졌습니다. 이들을 일종의 ‘조직표’처럼 관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승리하기 위해서 어떤 커뮤니티의 목소리에 충실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커뮤니티들은 광장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매몰차게 내쫓는, 아주 폐쇄적인 공터일 뿐입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담론들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담론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의견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딪히며 잡음을 내는 광장과는 달리, 이곳에 ‘다른 의견’이란 없습니다. 같은 의견이 계속해서 공고해지면서 과정은 사라지고 목적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옳고 그름이나 불의와 정의도 상관없어지는, 집단적 오만함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정치와 커뮤니티의 공생관계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결국 시민이 쥐고 있습니다. 광장의 힘을 경험했던 바로 우리만이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