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사회의 에이블테크

5월 6일 - FORECAST

김포국제공항에 시각 장애인용 무인 항공권 발급기가 도입됐다. 편의를 증진하는 에이블테크에선 어떤 미래를 엿볼 수 있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지난 5월 3일 김포국제공항에 시각 장애인용 무인 항공권 발급기가 도입됐다. 지난달엔 국내 최초 배리어 프리(barrier-free) 택시가 출범했고, 시각 장애인용 점자 디스플레이 ‘닷 패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편의를 증진하는 에이블테크에선 어떤 미래를 엿볼 수 있을까?


WHY_지금 에이블테크를 읽어야 하는 이유

첨단 기술은 결국 상용화된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는 항공 산업의 목적은 단순히 우주 탐험이 아니다. 인류가 극한의 환경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식품, 의료, 의복 등 일상 분야에서 상용화될 수 있는 기술들이 탄생했다. 에이블테크도 마찬가지다. 특정 집단과 세대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채 드러나지 않은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미래 기술의 초석이다.


DEFINITION_에이블테크

에이블테크(Able-tech)는 장애인의 불편을 덜고 편의를 증진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국내에서 통용되는 용어다. 해외에선 보조 과학 기술(Assistive Technology, AT)로 불린다. 이번에 김포국제공항에 도입된 시각 장애인용 키오스크에선 점자와 음성을 활용한 특수 키보드로 항공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현재는 제주항공에 한해 이용 가능하다. 한국공항공사는 타 항공사와의 연동을 늘리고, 지역 공항 등으로 키오스크 설치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NUMBER_ 2대

지난달 코액터스·이큐포올·닷을 비롯한 소셜벤처들의 협업으로 ‘모두를 위한 택시’가 국내 출범했다. 코액터스는 청각 장애인이 운행하는 ‘고요한택시’를 만든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트렁크를 개조한 타 장애인 택시와 달리, 일반 택시처럼 승객이 옆문으로 탑승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했다. 이큐포올의 수어 번역 서비스는 스크린을 통해 탑승자와 운전자의 소통을 돕는다. 이 출시한 ‘닷 패드’는 시각 장애인용 점자 디스플레이로 경로 및 예상 도착 시간을 촉각 및 음성으로 전한다. 배리어 프리 택시는 출범 의의도 크지만 앞으로의 과제가 더 많다. 현재 서울에서 운행 중인 차량은 단 두 대, 요금은 일반 택시의 두 배다.


MONEY_ 비용

좋은 기술도 가격 문턱이 높으면 그림의 떡이다. 특수 안경을 통해 영상 기반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라(Aira)는 스탠다드 요금제 기준 월 2시간 이용에 12만 원이다.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한 묘사를 듣는 데 5분에 5000원이 든다.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닷 패드 기기 한 대 가격은 약 500만 원이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요긴하나 개인 구매자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미국 모빌리티 기업 윌(WHILL)이 개발한 자율 주행 휠체어는 한화 570만 원선이다. 국내에서 전동 휠체어 가격으로 6년에 한 번 지원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 209만 원의 2.7배다.

CONFLICT_ 비급여

D-Tech(Disability Tech) 공모전을 주최한 디라이트 조원희 대표에 따르면 멘토링 단계에서 ‘업체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다수의 기업이 ‘규제 완화’라고 답했다. 의료법상 보험 급여 대상이 되는 기기 및 보장구는 한정적이다. 국내 의료기기법상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많은 기기 혹은 서비스는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돼 비싼 가격대로 책정되고, 소비자 입장에서 선뜻 구매하기 힘들다.


RISK_ 업데이트

에이블테크의 더 큰 리스크는 기술의 속도다. 기본적인 통화 기능만 탑재된 피처폰이 처음 나왔을 때 시각 장애인의 휴대폰 활용은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문자, 사진 촬영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며 ‘이용할 수 없는 기능’이 생겼다. 스마트폰 시대 개막 후엔 터치 인터페이스가 상용화되며 사회는 시각 장애인에게 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했다.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점자 스마트워치, 손 대신 입술 접촉으로 사용 가능한 립스틱 마우스 등 그간 여러 형태의 정보 보조기가 출시됐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될 때마다 장애인이 반복해서 겪는 문제다. 급속한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DT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도 하드웨어적으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시대를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됐다.

RECIPE_ 호환성

정보 접근성 격차를 완화할 열쇠는 호환성에 있다. 속속들이 출시되는 다양한 서비스와 앱들을 빠르게 연동할 수 있는 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다. 개별 앱들을 실행하는 코어 허브다. 애플과 구글, 삼성과 같은 빅테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가능한 많은 에이블테크 기업과 호환·연동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닷(dot) 측은 애플과의 협업으로 닷 패드에서 아이폰 화면을 확인할 수 있는 호환 기능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REFERENCE_ 화웨이

화웨이의 스토리 사인(Story Sign)은 청각 장애인 어린이용 수화 앱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동화 텍스트를 비추면 캐릭터가 수화를 하며 동화를 읽어 준다. 화웨이 및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이용 가능하지만, 아이폰에선 구현되지 않는다. 청각 장애인-통역사-비장애인이 통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인 함께 걷는 미디어랩 박성환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자 통역이 가능한 전용 단말기는 이미 있다. 하지만 이 기능을 스마트폰에 접목시킬 때 접근성은 훨씬 높아진다.” 개별 앱의 디테일이 각광받는 플랫폼 전성 시대다. 그러나 에이블테크에선, 개별 앱의 전문성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해당 플랫폼들의 연결성이다.


INSIGHT_ 아이덴티티

장애인의 선택은 많은 경우 타인의 호의와 선의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나의 취향과 습관이 노출되고, 언어와 행위는 불가피하게 재해석된다. 인간만큼 따뜻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낯선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삶의 결정권을 내가 온전히 쥐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 수 있다. 에이블테크는 편의 증진의 영역을 넘어 아이덴티티를 다룬다. 기술의 발전은 누군가의 결정권을 가장 실질적으로 존중할 수 있는 방안이다.


FORESIGHT_ 교육

에이블테크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린워싱과 같이 에이블테크가 ESG 경영의 간판으로 소비되지 않고, 또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해당 서비스를 실제로 잘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아야 한다. 즉 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소개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알려 주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키오스크가 아닌 선생님의 몫이다. 코액터스의 고요한택시나 닷패드의 통역 서비스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기술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것은 다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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