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101
1화

프롤로그 ; 기본소득의 시대는 온다

“우리에겐 진보를 GDP와 같은 경제적 수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의해 측정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다 실패해도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구상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투자가 청년의 꿈을 대체했다


기차를 타고 대구에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옆 좌석에 펼쳐진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OO 완벽 투자의 기법’ 앞 좌석의 청년도 유사한 책을 읽고 있었다. 《경향신문》이 2020년 9월 전국의 20~3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9.1퍼센트가 한 번이라도 주식 투자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답한 사람이 42.8퍼센트에 달했다. ‘투자에 빚이 필수’라는 데 동의한 비율도 22.2퍼센트였다.

청년들의 ‘영끌’과 ‘빚투’는 열심히 일해야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주에 있고 최소한 당사자에게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한국 사회의 그 누구라도 다음의 두 명제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질 좋고 품위 있는 일자리가 극히 적다. 둘째, 그런 일자리가 있다 해도 봉급을 모아서 원하는 삶의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미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에 뛰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가능성이 0보다는 크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 양식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환경이 바뀌면 행동 양식도 바뀐다. 꿈이 사라진 세상은 청년이 주식 투자에 미래를 걸게 했다.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청년의 꿈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한국 정치를 뒤흔드는 기본소득 논의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예비 후보들의 공약에 모두 ‘기본소득’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기본소득은 후보에 따라 “한국형 기본소득제”나 “생애 주기별 맞춤형 기본소득”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했고 기본소득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더라도 그 개념에는 동의한다는 후보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겉 포장만 같을 뿐, 안에 든 내용물은 다 달랐다. 각자가 주장하는 소득 보장 정책에 모두 ‘기본소득’이란 이름표를 붙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어쨌든 이 당시엔 ‘기본소득’이란 용어에 대해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2019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 시행된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기본소득에 대한 적대적 표현이 늘었다. 주요 정치인들 사이에서 “악성 포퓰리즘”이라든가 “사회주의 배급 제도”라는 등 기본소득을 향한 비난이 등장했고, 3년 전 “한국형 기본소득제”를 제창했던 정치인은 입장을 바꿔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 보험”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이 정쟁의 코드로 변질되고 있었지만, 기본소득은 여전히 “K-기본소득”이나 “한국식 기본소득”과 같은 표현 등으로 여러 정치인의 공약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2020년 제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같은 해 9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당 강령 1조 1항에 기본소득을 명시했다.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

이것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신호탄이었다. 주요 정치인들은 기본소득과 다른 자신만의 소득 보장 정책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안심소득”, “공정소득” 등을 제시한 것이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지급 방식이 약간 다른 “참여소득”도 한 정치인에 의해 호출됐다.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배급제도”라 비난했던 정치인은 이번에는 기본소득을 “베네수엘라 급행열차”로 부르며 비난을 계속한다.

2022년 대선에서 기본소득은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특정 후보와 관련되어 호명되고 인용됐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그 후보의 기본소득은 점점 왜소해지고 다른 의제 뒤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특정 정치인으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의 정책과 정견을 통해 해소될 의제도 아니다.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전환’을 위해 오래전부터 구상된 것이다. 얼마를 어떻게 주는가 하는 당장의 정책적 설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이 우리의 지구와 세상을 과연 바꿀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인식의 확산이 중요한 것이다. 포장지의 이름이 ‘기본소득’이라 하더라도 내용물은 다를 수 있다. 이를 유념하여 항상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기본소득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 기본소득이 도대체 뭐기에, 이를 둘러싸고 모든 주요 정치인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일까? 기본소득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늘 높지만, 이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깊은 소통은 여전히 부족하다. 기본소득은 위험한 것 아닐까? 기본소득은 너무 큰 패러다임의 변화는 아닐까? 적은 돈으로 뭐가 바뀌긴 할까? 기본소득은 과연 청년이 꿈을 되찾게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물음에 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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