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101
8화

패러다임의 전환

기본소득의 기초, 커먼스


1장에서 언급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정관의 제2조 ‘목적’의 내용을 다시 인용할 때가 왔다.

“기본소득이라 함은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앞에서 이 정의의 뒷부분을 살펴봤다. 즉, 기본소득의 5대 원칙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다른 복지 제도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살핀 것이다. 이제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왜 그래야 하는가? 왜 기본소득은 꼭 보편적,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나눠주어야 하는가? 선별에 어려움이 따르는 건 사실이지만 왜 꼭 이미 돈이 넘쳐나는 사람에게도 주어야 하는가? 꼭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지급해야 하는가? 부자일수록 가구원도 많은데 개인 단위 지급은 결국 가족 성원이 많은 중산층 이상에게 유리한 것 아닌가? ‘규모의 경제’를 반영하여 가족 성원이 늘어날수록 1인당 지급액은 조금씩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위 정의의 앞부분에 있다. “기본소득이라 함은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이다. ‘공유부 혹은 공동의 부(wealth of commons)’란 무엇인가? 한 책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가 생산한 부 중에서 성과의 원리에 따라 특정 주체의 몫으로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몫, 곧 모두의 몫이다. 모두의 몫은 특정 주체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기 때문에 개별적인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1] 왜 특정 주체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을까? 고전 경제학은 국민 소득이 임금, 이윤, 지대로 분해된다고 설명한다. 그때 그 몫은 각각 노동, 자본, 토지라는 생산의 3요소에 각 주체가 기여한 성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공동의 부’는 말 그대로 그 부의 기여도를 개별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모두에게 귀속되고 개인별로 평등하게 아무 조건 없이 분배되는 것이다. 공동의 부에 대한 선별 분배나 차등 분배는 원천적으로 부당하다.

어떤 것이 공동의 부인가? 커먼스(commons)는 보통 ‘공유지’로 자주 번역된다. 이는 협의(狹義)긴 하지만, 한편으로 커먼스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례로 ‘경의선 공유지 운동’을 들 수 있다. 국유지인 경의선 철도 부지를 국가가 멋대로 ‘사유화’하여 대기업의 배타적 수익을 보장하려던 것에 시민들이 맞서 싸운 것이다. 실제로 commons는 원래 common land를 의미했다. 유럽의 지역 사회는 공동으로 이용하는 개방 농지, 공동 방목지와 삼림, 황무지가 중세내내 존재했다. 이 역사적인 공유지에 영주와 대지주가 울타리를 치고 폭력적으로 농민을 몰아냄으로써 배타적인 사유지로 전환한 사건을 역사책은 ‘인클로저(enclosure)’라 부른다. 이렇게 공유‘지’에 쓰이던 커먼스 개념은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Garret Hardin)의 저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을 통해 공유자원 일반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커먼스는 “우리의 조상, 조부모, 부모가 우리에게 물려준 자연적·물리적 환경을 포함한 공적 부”[2]로서 우리가 공동으로 누리고 있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커먼스는 한국어로 ‘공유재’, ‘공동자원’, ‘공유자산’, ‘공동영역’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지만 어느 것도 적확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보통은 그냥 커먼스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누리고 있는 물려받은 일체의 공적 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이 스탠딩은 저서 《공유지의 약탈》에서 커먼스를 자연 공유지, 사회 공유지, 시민 공유지, 문화 공유지, 지식 공유지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현대 자본주의가 이 공유지의 약탈로부터 지대 수익을 얻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대항 전략은 지대 수익자로부터 부담금을 과세하여 공유지 기금을 조성하고 그 기금에 의거해 공유지 배당을 하는 것이 된다.

자연 공유지(natural commons)는 토지, 광물과 기타 자연물, 삼림, 야생 생물, 강과 호수, 해안, 공기, 하늘 등이다. 자연 공유지는 지배자, 대기업, 식민주의자에 의해서 가장 심하게 파괴되어 온 커먼스이다. 자연이 지구상에 처음 생겨날 때 당연히 소유자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제는 지하수까지 독점적으로 소유하여 배타적인 수익을 얻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당하게 사유화된 커먼스는, 돌릴 수만 있다면 공동 소유로 원상회복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본질이 자연 공유지라고 해서 쉽게 소유권을 부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농사를 짓는 땅은 오랜 기간의 축적된 노동의 산물이다. 이를 도외시하고 무조건 ‘자연 상태’로 돌리라는 것은 황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토지가 원래 공동의 부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토마스 페인은 1797년에 이미 《토지정의(Agrarian Justice)》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땅은 자연 상태에서 인류 공동의 재산이다. 땅이 경작되어 개인 소유가 되는 것은 개선된 가치이지 땅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땅의 소유자는 그 땅의 기초지대(ground-rent)를 공동체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그 기초지대를 걷어서 21살이 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50살 때부터 매년,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그것은 토지 소유 제도의 도입으로 자신의 천부적 유산을 빼앗긴 모든 사람의 정당한 권리이다.”

페인의 논지는 이렇다. 자기 땅에서 열심히 노동하여 얻은 성과는 땅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가 경작하기 전부터 땅은 원래 거기 있었다. 소유자가 그 땅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소유권’이란 방식으로 임대료도 없이, 살아 있는 동안 인류의 땅을 잠시 빌려 쓴 셈이다. 내지 않은 임대료를 기초지대 혹은 바닥지대라 부를 수 있고, 그것을 걷어 노인 기본소득과 청년 기초자산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커먼스를 빼앗긴 모든 사람의 정당한 ‘권리’이다. 페인은 10퍼센트의 상속세를 걷어 재원으로 삼자고 했다. 소유자가 세상을 떠날 때, 지금까지 내지 않은 기초지대를 내고 가라는 의미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된다. ‘인류 공동의 부’는 공적 소유(public ownership) 즉 ‘국유’나 협동적 소유(cooperative ownership) 즉 ‘조합 소유’ 같은 특정한 소유 형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적 소유(private ownership)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커먼스는 소유 형태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할 공동의 몫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적 소유 안에 포함된 공동의 부는 어떻게 모두에게 귀속시킬 수 있을까? 위의 페인의 예로 보면 ‘경작되어 개선된 땅’과 ‘땅 그 자체’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땅으로 존재한다. 즉, 사적 소유와 공동의 부를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가 없다. 결국 사적 소유 안에 있는 공동의 부를 귀속시키는 방식은 보유세나 상속세 등의 형태로 징수하는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커먼스의 수익 배당으로 바라보는 생각은 지성사에서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조세라기보다는, 공동의 부를 독점 사용한 것에 따른 일종의 ‘부담금’이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페인의 관점을 재해석해 보면 땅의 ‘자연적 소유’는 공동의 것이지만 ‘인공적 소유’는 경작자의 배타적 소유다.[3] 전자만을 인정하면 과거 사회주의의 사고대로 무상 몰수와 국유화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땅을 경작한 사람의 노력을 부정하고 그의 노력의 소산인 인공적 소유를 빼앗는 일이다. 후자만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소유권을 신성시하는 사고로, 사유 재산권 이전에 공유가 사실적으로 존재했음을 부인하고 사유 재산제의 독점적 폐해에 눈 감는 것이다.

페인은 공유와 사유, 커먼스와 사유 재산제,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만들었다. 페인은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을 커먼스의 수익 배당으로 규정함으로써,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커먼스에 대한 모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다. 커먼스의 수익 배당 또한 사유 재산권의 원리와 동일하게 ‘소유자에 따른 분배 원칙’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공유지에 대한 공유자(commoner)이므로 공동으로 평등한 분배를 받고, 사유 재산에 대한 소유자는 자신만의 배타적인 수익을 얻는다. 페인의 논법은 개인의 노력과 개인의 재산, 공동체의 원천적인 권리와 공유지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양극단을 배제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질적 전환이다. 그 전환의 중심에 커먼스의 수익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있다.

농지와 관련된 페인의 논리는 자연 공유지 일반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천연자원을 채굴한 사람이 채굴을 통해 천연자원의 가치를 증대시켰더라도 천연자원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연 커먼스에 노동을 투입하거나 자본을 투자했다고 해서 그것을 독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유지에 대한 공유자들의 원천적인 공유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연자원 개발자의 수익의 일부를 과세의 형태로 되찾아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것은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의 관점에도 부합한다. 이 대표적인 사례가 앞에서 살펴본 알래스카 영구기금이다. 제주 삼다수의 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공적 커먼스


그렇다면 사람에 의해 생긴 인공적 공유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가이 스탠딩은 인공적 공유지를 사회 공유지, 시민 공유지, 문화 공유지, 지식 공유지 등으로 나누고 있다. 사회 공유지(social commons)는 “치안, 우편, 대중교통과 도로, 하수도 체계, 홍수 예방, 공원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뿐만 아니라 공공 주택, 아이와 노인 돌봄, 보건의료와 사회서비스” 등 “정상적인 생활에 필수적인 기관들과 생활 편의 시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세금과 기부금, 그리고 가끔은 자발적 공유화를 통해 돈이 들어갔다.”[4] 사회 공유지는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들의 집단적 노력과 공공 기금의 집합체이므로, 이를 사유화하는 것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인류 유산에 대한 약탈이다.

시민 공유지(civil commons)는 “사법(정의)에 대한 권리”로서 “보편적이고, 정당한 법 절차에 기초하며, 법 앞에 평등”[5]이 표현된 보통법의 관행이다. 문화 공유지(cultural commons)는 “예술, 스포츠, 대중 매체, 공공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콘서트홀, 공연을 위한 공공장소”, 더 나아가 “공공 건축, 도시 경관, 풍경”[6]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식 공유지(knowledge commons)는 “정보(뉴스와 사실), 지식(아이디어), 교육(학습 과정)”의 세 공유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생성되고 공유되며, 모두가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7]을 말한다.

“우리 모두의 부가 우리 자신이 하는 것보다 우리 앞에 있었던 사람들의 노력, 성취, 운과 훨씬 더 관련이 있다는 것을 성찰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볼 때 우리 모두는 그러한 집단적 부에 대해 공정한 몫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의 선조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형태의 ‘지대’ 소득(물리적·금융적·지적 재산의 사적 소유에서 나오는 소득)은 공유되어야 한다.”[8]

인공적 공유지도 자연 공유지처럼 특정 주체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동의 부인 것은 명백하다. 이에 관해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인용한 것으로 유명한 “거인의 어깨(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말이 있다. 그는 1676년 경쟁자였던 영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과의 서한에서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건 거장들의 어깨 위에 서서 봤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그 뉴턴조차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법체계와 저작권 시스템은 소위 ‘창작자’가 모든 것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과도하게 늘어난 저작권 보호 기간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영국 앤(Anne) 여왕 치하인 1710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은 14년의 출판 저작권을 보호했고 작가가 생존해 있으면 14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었다. 미국의 1790년 저작권법은 이를 모방해서 만들어졌다. 1831년의 법 개정으로 이 기간은 28년 보호, 14년 연장 가능으로 늘어났는데, 여기엔 ‘웹스터 사전(Webster Dictionary)’의 편찬자로 유명한 노아 웹스터(Noah Webster Jr.)의 로비가 있었다. 1909년에 연장 가능 기간은 28년이 되었다. 1976년에 저작권은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져 개인은 사후 50년까지, 법인은 창작 이후 75년까지로 늘어났고, 1998년에는 개인은 사후 70년까지, 법인은 창작 이후 120년 혹은 발표 이후 95년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기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저작권의 대상도 문학 작품, 음악과 가사, 대본과 음악, 안무, 무언극, 그림, 조각, 그래픽, 영화, 음향 등 전방위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증손주, 고손주까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창작’한 작품 덕에 꾸준히 배타적 수익을 얻는 이 시스템은, 저작권의 명분으로 거론되는 창작자의 보호나 창의성 고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오로지 이해 당사자와 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것으로, 공공의 부에 대한 체계적인 약탈이다. 실제로 1998년에 미국에서 통과된 ‘저작권 기간 연장 법’은 속칭 ‘미키마우스 보호법(Mickey Mouse Act)’으로 불린다. 이 법으로 인해 1928년에 등장한 월트디즈니사의 미키마우스는 2024년 이후에나 저작권이 풀리게 됐다.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월트디즈니뿐 아니라 타임워너, 유니버설 등 대형 영화사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 NFL, NBL, NHL, MLB 등 프로 스포츠 리그들이 대대적인 로비를 했다.

과도한 지적 재산권은 지식 공유지를 고갈시킨다. 저작권 보호는 저자의 사망과 함께 종료되거나 과거처럼 14년간 존속되는 것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창작자의 노력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창작자의 노력은 ‘어깨 위’의 것임을 정확히 규정하고 발끝에서 어깨까지 지식을 쌓아 온 인류의 공유지를 인류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인공적 공유지는 ‘전승된 부’이기도 하지만 ‘협동적 부’이기도 하다. 즉 공유자(commoner)의 공유화(commoning) 과정 없이 공유지(commons)는 생성되지 않는다. 지식은 한 명의 천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식 공동체의 의식적, 무의식적 협업이 없이는 한 사람의 지식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예컨대 건물의 가격은 그 건물을 만드는데 든 자재비와 노동 비용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건물의 입지 조건, 즉 역세권인지, 교육 여건이 좋은지, 공원이 옆에 있는지 등 사회 경제적 여건에 따라서 가격이 좌우되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그 건물 소유자의 노력에 따른 것이 아니다. 입지 조건은 도시 계획이, 그 주변의 자영업자들, 문화 창조자들, 그 지역에 살고 있거나 그 지역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역시 특정 주체의 성과로 귀속될 수 없는 공동의 부다.

이 시대의 인공적 커먼스를 대표하는 것은 빅데이터다. 빅데이터는 인간 활동 전 영역에 대한 디지털 기록물이다. 우리의 위치 정보, 체크 및 결제, 승하차, 마우스로 클릭하고 손가락이 터치한 모든 정보가 데이터로 하나하나 쌓인다. 개인의 개별 데이터 단계에서는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플랫폼 자본이 개별 데이터를 수집, 집적, 가공하여 빅데이터를 생성하는 순간 비로소 데이터의 가치도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플랫폼이 빅데이터의 유일한 공로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디지털 활동이 없어 개별 데이터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플랫폼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빅데이터가 만들어질 수 없다. 개별 원천 데이터와 빅데이터의 관계는 토마스 페인이 원천적 토지와 개간된 토지와의 관계를 설명한 논리 구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토지의 가치를 증대시킨 사람이 토지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페인의 말은 빅데이터에도 적용된다. 플랫폼 자본은 원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데이터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9]

원천적 토지 공유자로서의 만인이 그 토지의 개간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를 ‘기초지대’로서 배당받을 권리가 있듯이, 원천적 데이터 창조자로서의 만인은 그 데이터의 집적·가공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를 빅데이터 공동 소유권에 따라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지금은 인간의 디지털 활동에 따라 매 순간 생성되고 갱신되는 빅데이터를 플랫폼이 배타적으로 소유함으로써 플랫폼은 빅데이터 활용에서 나온 수익 전체를 독식한다.

시가 총액으로 본 세계 기업의 순위를 보면 1위부터 8위까지 2위인 석유 기업 아람코 (Saudi Aramco)를 제외하고는 모두 플랫폼 기업이다. 2006년 유튜브가 구글에 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될 때 유튜브의 직원은 65명에 불과했다. 2조의 ‘기업 가치’를 65명의 노동자가 ‘노동의 가치’로만 만들었다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 2조로 평가받은 기업 잠재력의 핵심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을 신청하고, 댓글을 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디지털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빅데이터 수익을 플랫폼이 독식하는 것은 현대판 인클로저(enclosure), 빅데이터 인클로저다. 마땅히 공유자로서의 인류에게 그 수익의 일부를 배당해야 한다. 배당의 방법은 마땅히 개별 공유자에게 평등한 n분의 1이다. 자연 공유지와 마찬가지로 역시 개별 주체의 기여도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커머닝할 것인가


애초에 누구의 것일 수가 없었던 자연적 커먼스, 오랜 세대에 걸친 인간의 협동적 활동에 의해서 생성되어온 인공적 커먼스는 인클로저, 상업화, 사유화, 식민화 등의 방법으로 약탈당해왔다. 실제 커먼스의 주인인 커머너는 그 이용, 혜택, 수익으로부터 배제됐다. 그렇다면 이 공동의 공적 부를 어떻게 하면 다시 만인의 것으로 돌릴 수 있을까? 첫 번째 떠오르는 방법은 ‘재공유화(re-commoning)’다.

2021년 9월 26일 독일 연방 하원 선거가 진행되는 날 베를린에서는 시민 투표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 시민 투표는 ‘도이체보넨 몰수(Deutsche Wohnen & Co. enteignen)’ 운동이 추진한 것으로서 4개월 동안 베를린 유권자 18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성사된 것이었다. 시민 투표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도이체보넨 등 10여 곳의 부동산 임대 기업이 보유한 24만여 채의 부동산을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유상 몰수하여 재국유화하고, 재국유화한 공기업은 다시 민영화할 수 없게 하여 이윤이 아닌 공익에 따라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유권자 과반이 투표에 참여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베를린 시민이 베를린 시 의회에 법률안 제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법적 이행 의무는 없지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었다.

통일 직후 베를린의 공공 임대 주택은 48만 2000채로 전체 주택의 28퍼센트였지만 그중 25만 채 이상이 민간에 팔렸고 그동안 임대료는 급등했다. 특히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임대료는 42퍼센트가 상승하여 독일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아무리 임대료가 올랐어도 그렇지, 합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민간 기업의 부동산을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몰수한다니. 사회주의자들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 투표 추진자들은 독일 기본법 15조에 근거하여 이 조치가 완전히 ‘합헌’임을 주장한다.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 수단은 국유화를 목적으로, 보상의 성격과 범위를 규정한 법률에 근거해 공적 소유 혹은 기타 유형의 공공 기업으로 이전할 수 있다”라고 법은 말한다. 시민 투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투표자의 56.4퍼센트가 찬성표를 던져서 가결되었다. 반대표는 39퍼센트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공공 임대 주택의 비율이 매우 낮지만, 유럽은 20세기 초부터 높은 비율의 사회 주택이 제공되었다. 1981년 영국 가구의 삼 분의 일이 사회 주택에 살았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면서 사회 주택의 비율은 극적으로 곤두박질쳤다. 사회 주택은 매각되어 사유화된 상품이 되었고 개인 소유나 민간 부동산 회사의 소유로 바뀌면서 이전보다 높은 월세로 임대됐다. 도시 재개발 사업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지구가 등장할 때마다 사회 주택 비율이 현저히 줄고, 그곳은 중산층과 부유층이 사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공유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바람이 불면서 지역민들에게 임대되던 주택이 ‘에어비앤비’용 주택으로 바뀌면서 임차해서 살 수 없는 주택으로 변하기도 했다. 도이체보넨 몰수 운동은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재공유화 운동이다.

사회 주택만이 공유지인 것이 아니다. 건물이 서 있는 모든 토지, 아니 건물이 서 있지 않더라도 모든 토지가 다 공유지다. 페인의 주장처럼 사유화된 모든 토지에 포함된 공동의 부를 인정하고 그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 공유화, 커머닝의 적절한 방법일 것이다. 지하자원은 어떤가? 지하자원은 사회 주택처럼 사람들이 함께 채굴하거나 분할해서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자원을 채굴하려면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기업의 활동으로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단순히 채굴하는 기업이 사기업이면 공유지가 사유화된 것이고 공기업이면 공유지인 것이 아니다. 소유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몫이 모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면 커먼스에 대한 약탈이다. 모두의 자연적 공유지인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얻은 수익의 일부를 배당하는 것이 유일한 커머닝 방법이다. 지하자원의 채굴이 지구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그 채굴을 중단하는 것, 그것이 그 단계의 커머닝일 것이다.

빅데이터는 어떤가? 빅데이터 인클로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플랫폼에 데이터 주지 않기 운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디지털 경제를 거부하고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다. 디지털 경제의 발전은 거대 이윤을 획책하려는 플랫폼 자본의 음모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랜 세대에 걸친 인간의 집단 지성과 집합적 노동이 만들어낸 인류 모두의 성과다. 인류 모두가 그 성과를 누리고 그 편의를 활용해 더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또한 플랫폼에게 우리의 데이터를 주고 싶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주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플랫폼이 사회 구조 곳곳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의 일분일초가 시시각각으로 데이터를 플랫폼에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주지 않는 방식의 리커머닝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플랫폼의 힘이 네트워크 효과에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플랫폼 서비스의 가치와 플랫폼 비즈니스의 수익이 ‘수확체증’[10]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플랫폼 사용자 입장에서도 같은 업종에서 수많은 업체가 ‘완전 경쟁’하면서 데이터를 분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편익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열 개의 메신저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면 우리는 메신저 열 개를 써야 할 것이다. 독점은 플랫폼 자체에 내재한 본성이다. 그런데 독점은 막대한 경제적 ‘지대’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경제적 지대의 원천은 무상으로 제공된 막대한 개별 데이터의 집적에 있다. 따라서 원천 데이터의 창조자로서 만인은 데이터 분산을 기도할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로 생긴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는 커머닝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빅데이터 인클로저에 맞서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시 정부가 ‘바르셀로나 기술 주권 이니셔티브(Barcelona Initiative for Technological Sovereignty·Bits)’로서 제시한 바 있다. 모든 데이터를 집적하는 ‘시市 데이터 커먼스’를 구축하여 빅데이터가 사적 서비스 제공자나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소유가 되지 않게 하고 그 집적과 분석 및 활용을 모두 민주적 통제와 의사 결정하에 두는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에 의거한 산업 정책을 시도할 때는 협동조합에 우선 배정하는 것으로 하고, 빅데이터 활용으로 생긴 수익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이 주도하는 스마트시티(SmartCity)[11] 모델에 맞서 어떻게 커먼스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대항적 전략으로서 깊이 검토해 볼 만하다. 유의할 것은 지자체 주도의 플랫폼이라고 해서 전시성 사업에 그치지 않아야 하며 대자본의 플랫폼을 압도하는 대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먼스 펀드


인류 공동의 부를 독점 사용한 것에 대해서 부과한 부담금은 그해에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배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커먼스도 있다. 지하자원처럼 재생되지 않거나 고갈되는 공유지의 경우이다. 1977년에 경제학자 존 하트윅(John Hartwick)은 ‘세대 간 공평’을 보장하기 위해 고갈 자원의 사용에서 나오는 지대 소득 가운데 충분한 액수를 투자하여 미래 세대도 그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을 ‘하트윅 규칙(Hartwick’s Rule)’이라 부른다. 즉 재생 불가한 자원에 대해서 우리는 일시적 소유자일 뿐이고 그 유산을 낭비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트윅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 공유지의 경우는 그 공유지에 부과한 부담금을 바로 다 배당해 버리지 말고, 이를 모아 공동부 기금(Commons Fund)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기금을 합리적으로 운용해서 나온 수익을 정기적으로 배당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알래스카 영구 기금’의 방식이다. 전 세계 60개 이상의 나라에 존재하는 ‘국부 펀드’도 알래스카와 같이 배당금이 있는 펀드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커먼스 펀드는 정치적 개입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민주적 통제 없이 정부가 선거 승리를 위해서 단기간에 함부로 배당하는 일 따위가 있어선 안 된다. 배당이 과하면 기금이 축소되면서 세대 간 공평의 원칙이 훼손될 것이다. 기금의 안정적 운용이라는 대원칙 아래 배당의 크기가 결정되어야 한다. 기금의 투자에 있어서도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공유자들 스스로 배당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지하자원의 채굴 속도를 높이고 공유지를 고갈하려는 유혹이 들 수도 있다. 따라서 기금의 운용이 생태적 가치를 견결하게 지킬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커먼스가 고갈되거나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아니다. 자연 공유지라 하더라도 적절하게 관리될 경우 영구적으로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남을 수 있다. 숲과 물 등이 그러하다. 인공 공유지는 상당수가 고갈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예컨대 빅데이터는 점점 커질 것이며 그곳에서 걷은 부담금을 다 쓴다고 해서 다음 해에 배당할 재원이 마르는 일은 절대 없다. 따라서 이런 커먼스의 경우는 꼭 기금에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커먼스 펀드에 넣어서 운용 수익의 일부를 배당할 것인지, 아니면 매년 걷어서 n분의 1로 분배할 것인지 공유자의 합의로 결정하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건 배당은 기본소득의 원칙으로 보편적,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동일한 액수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고갈되는 지하자원이라고 해서, 수익이 크다고 해서, 무조건 개발을 하고 그 개발 수익의 일부를 기금화해서 미래 세대와 함께 나누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예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 미래 세대와 진정하게 함께 나누는 길일 수도 있다. 셰일가스를 얻기 위한 프래킹(fracking) 즉 수압파쇄법이 대표적인 예다. 프래킹은 심각한 지하수 및 상수원 오염, 커다란 온실가스 배출, 지반 침하 혹은 지진 가능성을 야기하므로 하루빨리 금지되어야 한다. 셰일가스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로 기금을 만든다면, 마치 원자력 수익의 일부를 다시 원자력 연구 개발에 동원하는 원자력 기금처럼 셰일가스 채굴을 계속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다. 프래킹 금지가 당장 정치적으로 어렵다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해서 점점 재생 에너지와의 관계에서 경쟁력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마땅한 지하자원도 없는데 어떻게 펀드를 시작할 수 있을까? 유의미한 크기의 펀드가 아니라면 운용 수익도 보잘것없을 것이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에 대해서 말할 때 항상 돌아오는 반론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안 나는 나라라는 것이다. 산유국이 아니어도 복지 국가가 될 수 있듯이, 지하자원이 없어도 커먼스 펀드를 할 수 있다. 금융 자산과 부동산 등에 과세하여 기금의 출발점을 삼으면 된다. 과세의 방법으로는 상속세, 증여세, 보유세, 거래세 등 다양한 방법을 조합해야 할 것이다. 금융 인프라는 대표적인 커먼스이고 토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자산 과세를 통해 커먼스 펀드를 시작한다면, 소득 불평등 뿐만 아니라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목적의 기금이 조성되는 것이다. 커먼스 펀드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지속 가능한 재원인 동시에, 사적인 부에 비해 공적인 부를 늘리는 전략으로 격상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심각한 자산 불평등의 해소는 작은 목돈을 청년들이 분산 소유하는 ‘기초자산’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유지분권’ 방법과 ‘커먼스 펀드’ 방식으로 해결 가능할 것이다.

자연 공유지를 오염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도 부담금을 부과해서 기금에 더할 수 있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행위에 대한 탄소세 부과는 기후 위기 시대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탄소세가 실효를 거두려면 높은 탄소세율이 필요한데 그 경우 서민의 상대적 부담이 커지는 역진성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전술했듯이 탄소세로 걷은 재원은 반드시 배당을 해서 저소득층의 에너지 요금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하트윅 원칙에서 볼 때 공유지 오염의 결과는 후세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탄소세 재원의 일부는 즉시 배당하지 않고 커먼스 펀드에 넣어야 할 수도 있다.

환경 오염에 대한 교정은 강력한 금전적 부담을 지우는 것과 전면적 금지를 병행해야 한다. 항공기는 승객 1인당 탄소 배출량이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많은데, 항공기 이용 빈도는 개인의 재력에 비례한다. 부유층일수록 항공기를 많이 타므로 부담금을 많이 내게 된다. 국내 전용 공항을 폐쇄하고 특정 거리 이내의 항공 운행은 금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주로 부유층의 여행에 사용되는 크루즈 선 역시 엄청난 생태 파괴를 낳는다. 따라서 크루즈 운행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하며 전면적으로 금지하기 어렵다면 강력한 부담금을 물려야 한다. 스카이라인을 훼손하고 있는 옥외 광고판과 설치물에도 부담금을 부과해서 커먼스 펀드에 추가해야 한다. 국립 공원 사용료도 국립 공원의 보존과 유지를 위한 비용 외에는 커먼스 펀드에 투입해야 한다.

자연 공유지 오염에 대해 교정 과세를 도입하는 것은 여러 번 언급했지만 배당액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생태 파괴에 대한 재정적 억지력을 형성하여 공유지를 지키고 공유지 상실을 막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오염에서 나온 부담금의 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은 부담금 수입이 0이 되는 것이 목표다. 만약 오염 부담금을 바로 기본소득으로 배당하지 않고 커먼스 펀드에 투입했다면 미래에 오염 부담금 수입이 0이 되더라도 커먼스 펀드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과거의 부담금은 펀드의 일부로서 미래에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것은 과거 세대가 자행한 환경 파괴에 대해 미래 세대에 속죄하는 기념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 과세의 중요성


빅데이터야말로 앞으로 기본소득의 재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기업에게는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 제조업 시대에 만들어진 법인세는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이 있는 곳의 수익에 대해서 과세한다. 플랫폼 기업은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하여 서버를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에 두고 엄청난 세금을 회피한다. 서버가 있는 곳이 고정사업장이라는 논리다. 이렇듯 법인세 시스템은 변화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코리아의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글플레이(Google Play)’의 매출은 서버가 있는 싱가포르의 ‘구글아시아퍼시픽’ 매출로 잡혀 한국에서는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구글코리아는 싱가포르 법인의 영업을 보조하는 지원 기구에 불과하며, 주식회사가 아니고 유한 회사라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기 전인 2019년까지는 공시 의무도 없었다.

구글코리아는 2020년 최초로 영업 실적을 공개했는데, 2020년 구글코리아의 매출은 2201억 원이었고 영업 이익은 155억 원이었다. 2020년 네이버의 매출이 5조 3041억 원, 카카오의 매출이 4조 1568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이상하리만치 적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구글플레이 매출이 전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공개한 ‘매출’은 한국에서의 광고 수익만을 공개한 것이다. 구글플레이 국내 매출은 6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국에서의 매출’이 아니므로, 구글코리아는 2020년에 겨우 97억 원의 법인세를 냈다. 같은 해 네이버 한국 본사가 낸 법인세가 4633억 원인 것과 비교할 때 다국적 플랫폼이 얼마나 큰 규모로 탈세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애플코리아도 유한 회사인데, 방법은 다르지만 결론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애플코리아가 2020년 10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한국에서 거둔 매출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7조 971억 원이었다. 그런데 영업 이익은 고작 1114억 원밖에 올리지 못했다. 영업 이익률이 1.6퍼센트밖에 안된다. 작년에 애플이 미국 증권 거래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른 전 세계 애플의 영업 이익률은 30퍼센트에 육박했다. 한국보다 18.6배가 높은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애플코리아는 싱가포르 소재 법인 ‘애플 사우스 아시아’에서 애플 기기를 매입할 때 원가를 높게 잡는 식으로 한국 법인의 수익을 낮췄다. 매출 원가가 매출의 95.5퍼센트에 달한다. 쉽게 말해 100만 원 짜리 아이폰을 싱가포르 법인에서 사 올 때 96만 원을 주고 사 온다고 계약서를 만들어 매출액의 대부분을 싱가포르로 보내는 것이다. 그 결과 2021년 애플코리아는 한국에 법인세를 고작 629억 원밖에 안 냈다. 구글보다 더 냈으니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박수쳐야 할 것인가?

그래서 국세청은 2019년 법인세법 개정에 따라 물리적 사업장이 없더라도 ‘활동 내용’에 따라 고정사업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2020년 1월 구글에 약 5000억 원의 법인세를 추징했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일단 국세청에 법인세를 납부하고 나서 조세심판원에 불복 신청을 했다. 불복 신청이 기각되자 구글코리아는 행정 법원에 제소하여 공식적인 법적 다툼을 시작한 상황이다.

플랫폼 기업은 한국에서만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구글이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법인, 그리고 조세 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사이에 수익을 주고받으면서 각 나라의 세법과 조세 조약을 악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방법은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12]라는 풍자적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막대한 수익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세금을 내는 초국적 플랫폼 업체에 대한 과세의 필요성과 적절한 과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물리적 사업장 개념에 기초한 수익에 대해 과세하는 법인세로는 인터넷 망을 넘나드는 플랫폼 업체에 적절히 과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매출이 발생한 곳에서 매출액 대비로 과세하는 ‘디지털세’, 일명 ‘구글세’의 방안이 검토됐다.

2021년 10월 OECD 주도로 글로벌 기업의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BEPS)’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글로벌 과세 룰에 대해서 136개국이 합의했다. 이 합의는 규정 내용에 따라 두 가지의 핵심을 ‘필라(pillar)’[13]라는 단어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2023년부터 글로벌 연결 매출액 200억 유로(27조 원) 이상이면서 영업 이익률이 10퍼센트를 넘는 글로벌 기업은 10퍼센트를 넘긴 초과이익 중 25퍼센트를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세금으로 나눠 내야 한다. 이것이 ‘필라 1’이다. 한국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에 해당하며 국제적으로 100여 개의 업체가 해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최저한세율 15퍼센트 제도를 도입하여, 다국적 기업에 대한 특정 국가의 실효 세율이 최저한세율보다 낮을 경우 그 기업은 기업의 본사가 있는 국가에 차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것이 ‘필라 2’다.

이 조치로 법인세가 낮은 나라나 조세 피난처를 통해서 세금을 회피해 왔던 다국적 기업들의 세금 징수가 어느 정도는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통해 국가별로 조세 수입의 명암이 엇갈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보다 유럽권 선진국의 조세 수입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것을 ‘디지털세’ 도입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초과이익분에 대해서만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분산해서 세금을 낸다는 개념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디지털세 도입은 아니다. 정확히는 디지털세 도입을 주장하는 유럽의 공세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서, 선진국 사이의 잠정 합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명심할 것은 이것은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글로벌 세제 도입이지 빅데이터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고정사업장이 없더라도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서 과세할 수 있다는 것은 조세 개념에 있어 일종의 발상 전환이다. 그러나 단지 선진국 사이의 조세 권한을 둘러싼 다툼을 넘어, 디지털화된 경제에서 빅데이터의 의미와 그에 대한 인류 전체의 몫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빅데이터는 모두의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전파할수록 논의의 기회는 열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개념도 원칙적으로 ‘일국적’ 개념이 아니라 ‘전 지구적’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전 지구적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면 커먼스 수탈에 앞장섰던 선진국에서 개발 도상국으로 소득을 재분배하게 된다.

 

소득세도 커먼스 과세


지금까지 커먼스 펀드를 통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공유지분권 설정을 통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공동의 자본을 형성하여 ‘배당’ 방식의 기본소득을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자산 불평등에 대항하는 소유 구조 변동의 일환으로서 이 두 가지 안은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금액의 크기를 고려하면 역시 기본소득의 가장 큰 부분은 소득에 대한 과세, 즉 ‘소득세’로부터 나올 것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기본소득 로드맵에 따르면 2023년 월 30만 원 기본소득 안[14]에서 186.7조 원의 총 재원 중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42.6퍼센트에 달한다. 2023년 기본소득 안은 공유지분권과 공동부 기금의 구상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공유지분권에 따른 배당과 화폐발행이익(seigniorage)을 포함한 2033년 월 91만 원 기본소득 안[15]에 따르면 총 재원 565.7조 원 중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38.4퍼센트에 달한다.

여기서 소득세는 기존 소득세와 달리 신설되는 것으로서 기본소득 목적에만 사용하는 목적세로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일반 재정과 섞이지 않고 조세 투명성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득세는 근로 소득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의 노동자들은 근로 소득 외의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소득세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근로 소득세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소득세법에 따른 소득은 종합 소득(이자 소득, 배당 소득, 사업 소득, 근로 소득, 연금 소득, 기타 소득), 퇴직 소득, 양도 소득으로 구성된다. 기본소득 목적세로서 소득세를 신설할 때는 이 소득세 각 항목에 대한 세부적인 안이 세워져야 한다. 절대 근로 소득세만으로 재원이 채워지는 일은 없다. 따라서 소득세를 10퍼센트 더 걷는다고 근로 소득세가 10퍼센트 올라가는 일은 없다. 또한 근로 소득세가 5퍼센트 올라간다 하더라도 누진세제를 도입하면 인상의 효과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고 공정하게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소득세는 커먼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소득이 단순히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만 생각하면, 소득세는 이에 대한 처벌처럼 느껴질 수 있다. 소득세 과세를 불공정 과세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초고소득자의 소득은 주로 근로 소득보다 자본 소득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본 소득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16년 귀속 국세청 천분위 자료에 따르면 근로 소득 상위 0.1퍼센트의 근로 소득 평균은 6억 6005만 원인 것에 반해, 배당 소득 상위 0.1퍼센트의 배당 소득 평균은 8억 1768만 원이었다. 근로 소득과 배당 소득의 0.1퍼센트가 동수의 사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고소득층의 배당 소득의 규모를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이 자료는 ‘종합 소득’ 통계이므로 부동산 매매 차익과 같은 양도 소득은 빠져 있고, 종합 소득에 미포함되어 ‘분리 과세’된 이자 소득, 배당 소득 등도 빠진 것이라 고소득층의 자본 소득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특히 고공 행진을 계속해 온 부동산 가격의 추이를 생각할 때 부동산 불로 소득은 엄청난 액수가 될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간혹 주요한 개혁 과제로 제시되는 ‘최고 임금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임원의 보수 상한액을 정하자는 최고 임금제는 흔히 ‘살찐 고양이법’으로 불리는데,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양이는 이미 근로 소득만으로 살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정기 급여와 성과급만으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이사로 그 금액은 184.1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많은 연봉도 자본 소득에 비하면 적다. 김택진 대표이사는 2020년 주식에 따른 현금 배당만으로 224억 원을 넘는 돈을 받았다. 2019년부터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어떨까? 2021년에만 배당 소득을 2577억 원 수령했다. 배당의 근거인 주식 지분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탈법· 편법을 위해 국민연금까지 동원되어 만들어졌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그 자본 소득의 정당성이 더욱 취약하다.

소소한 자본 소득은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의 결과일 수 있다. 일체의 자본 소득을 백안시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2000억 원이 넘는 배당 소득은 관련 회사 소액 주주들의 피해, 국민연금에 돈을 꼬박꼬박 입금해 온 모든 국민들의 피해로 만들어진 결과로서 사실상 거대한 ‘공유지 수탈’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과세는 커먼스 과세로 보아야 한다. 부동산 양도 소득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우리나라에서 양도 소득에 고율 과세하고 부동산 보유세를 신설하는 것은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토지라는 커먼스를 통한 과다한 수익에 과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 소득은 그렇다 쳐도 근로 소득 등 소득 일반은 어떨까? 근로 소득은 주로 능력과 노력의 결과이므로 그에 대한 과세는 선함에 대한 처벌이 아닐까? 앞서 인용한 국세청 천분위 자료에 따르면 소득 평균을 상위 1퍼센트까지 확장할 때 배당 소득보다 근로 소득이 더 많다. 이러한 근로 소득은 개인이 가진 성실함의 징표가 아닐까? 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소득의 차이는 자본 소유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지식, 친족 관계와 기타 특권적 사회관계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차이다. ...... 소득 차이의 주요한 원천인 사회적 자본의 접근은 대체로 외부성의 산물이다. ......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집합적 소유로 간주되어야 할 이 외부성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 미국이나 북서 유럽과 같은 부유한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은 소득의 90퍼센트 이상을 만들어낸다고 결론 내려진다. 그러므로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90퍼센트의 소득세를 걷어 사회적 자본의 실제 소유자들에게 그 부를 돌려주라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에서라면 70퍼센트의 비례세만 거둬도 전체 세금의 절반으로 모든 정부 지출을 충당하고 그 나머지만으로도 모든 주민에게 연간 8000달러, 즉 3인 가족에게 2만 5000달러의 유산을 지급할 수 있다.”[16]

허버트 사이먼의 주장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소득 차이는 외부성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외부성의 핵심은 지식과 관계 등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인데, 그것은 만인의 것이다. 따라서 소득세를 걷어서 만인에게 나눠주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실제 소유자에게 되돌려주는 셈이다. 사이먼의 주장은 기본소득이 ‘공짜로’ 주는 것이라든가, 일도 안 했는데 주는 불로 소득이라는 비판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기본소득은 커먼스의 실제 소유자인 커머너에게 정당하게 소득을 귀속시키는 행위다. 세상에 정말로 공짜로 주는 게 있다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사적 상속, 그러니까 숱한 자본 소득일 것이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공돈’이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적 상속과 자본 소득 역시 부정해야 마땅하다.

물론 개인의 소득 중 외부성의 크기가 90퍼센트인지 70퍼센트인지 정확하게 가려내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외부성, 즉 소득을 얻은 개인의 성과로 귀속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남보다 좋은 환경, 교육, 운, 도움을 준 사람들, 이런 것이 전부 외부성이다. 이 외부성이 자본 소득의 차이도 낳고 근로 소득의 차이도 낳는다. 이 외부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기본소득은 당연한 것이다. 개인의 노력과 성과보다 사회적 자본, 즉 커먼스가 먼저 존재했으니 인과 관계를 따지면 기본소득이 개인의 소득보다 우선한다. 기본소득이 개인 소득에 대한 과세로 재원이 마련된다고 할 때 기본소득은 마치 개인 소득의 ‘재분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先)분배’다. 모두의 몫을 개별적인 모두에게 조건 없이 돌려주고 난 이후에야 성과에 따른 분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성과에 따른 분배와 충돌하지 않는다. 개인이 기여한 노동에 대한 몫을 개인에게 돌려주듯이, 특정 개인에게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외부성, 거기에 기초하는 공통의 몫을 모두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한 사회의 개인이 갖는 소득은 개별적 성과에 따른 ‘조건적’ 소득인 시장 소득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무조건적’ 소득인 기본소득의 합이 될 것이다.
[1]
금민, <공유부와 기본소득: 공유부 배당의 정의 실현>,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 2021.08.14.
[2]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5쪽.
[3]
금민, 〈공유부 배당의 논변구조와 기본소득론의 사회상>, 《월간좌파》, 2017년 5월호, 2017., 55쪽.
[4]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177쪽.
[5]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235쪽.
[6]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293쪽.
[7]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323쪽.
[8]
가이 스탠딩(안효상 譯), 《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창비, 2019., 382쪽.
[9]
금민,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지금 바로 기본소득》, 동아시아, 2020., 171-172쪽.
[10]
수확체증이란 투입된 생산 요소가 늘어날수록 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대말은 수확체감인데, 수확체감의 법칙은 전통 산업 경제에서 통용된 다. 제한된 토지에 노동력을 계속 투입했을 때 총생산량은 증가해도 한계 생산량(생산량 증가분)은 줄어든다. 반면 수확체증의 법칙은 지식 기반 경제나 지식 자본에 적용된다. 어떤 플랫폼이 다수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그들의 데이터를 가졌을 경우 해당 플랫폼의 수익은 수확체증적인 반면 다른 사업자는 쉽사리 도전장을 내지 못한다.
[11]
스마트시티 또는 스마트 도시는 다양한 유형의 전자 데이터 수집 센서를 사용하여 자산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 지역이다.
위키백과
[12]
다국적 기업의 흔한 조세 회피 방법을 풍자하는 말이다. 아일랜드에 두 개의 법인, 네덜란드에 하나의 법인, 법인세가 없는 국가에 하나의 법인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더블 아이리쉬는 애플이, 더치 샌드위치는 구글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13]
OECD,〈Statement on a Two-Pillar Solution to Address the Tax Challenges Arising from the Digitalisation of the Economy〉, 2021.10.8.
[14]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 박종철출판사, 2021, 226쪽.
[15]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 박종철출판사, 2021, 229쪽.
[16]
Herbert A. Simon, 〈A Basic Income for All: UBI and the flat tax〉, 《Boston Review: A Political and Literary Forum》, 200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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