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삶

2022년 열다섯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요즘 북저널리즘이 먹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습니다. “밥 먹었어?” 이 질문이 안부 인사로 쓰였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했습니다. 지금은 밥을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었다면,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먹었느냐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식사의 경험은 자기 과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브랜딩 전략의 키워드가 되기도 합니다. 김혜림 에디터의 〈테이스트 오브 브랜드〉가 짚어낸 것처럼 먹는 경험이야말로 브랜드 경험의 정점이기 때문입니다.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물가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마트에서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고물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잘 먹고 있는 시대 2022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량 부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현구 에디터의 〈식량 안보의 딜레마〉가 지적한 것처럼 식량 자원을 둘러싸고 국제적 분쟁이 가시화하는 형국입니다.

사람은 먹는 존재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식탁 사진을 올리는 순간이 아니라도, 우리는 먹는 행위를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어있습니다. 먹어서 사람도 살리고, 전쟁도 막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먹어서 누군가를 굶기고, 어딘가의 폭동을 촉발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먹어야 합니다.
 

이 많은 새우는 어디서 왔을까?


요즘 새우가 참 흔합니다. 잘 손질된 냉동 새우 한 봉지, 새벽 배송으로 받아 냉동실에 넣어두면 든든하죠. 라면을 끓일 때 한 줌 넣어도 맛있고, 여유가 있다면 감바스를 해 먹어도 좋습니다. 새우가 더는 고급 식재료가 아니란 얘깁니다. 몇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이 많은 새우는 어디서 왔을까요? 인천 앞바다 어딘가에 새우가 바글바글 서식하는 새우천국이 존재할 리는 없습니다. 당연히 양식된 새우입니다. 주로 동남아시아의 맹그로브 숲을 밀어내고 양식장을 만듭니다. 맹그로브 나무는 더운 지역의 큰 강변이나 바닷가 진흙 바닥에서 자라납니다. 물속에 잠긴 뿌리가 거꾸로 치솟아 자라나 호흡을 하기 때문에 얼기설기 얽힌 모양의 뿌리가 장관을 이루죠. 토양의 침식을 막아내고 해양 생물들의 서식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소저장 능력이 대단합니다. 육지의 숲보다 최대 다섯 배까지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는 지구의 공기청정기입니다. 그래서 맹그로브 숲의 별명이 ‘바다의 열대우림’인 것이겠죠.
 
그런데 새우에 맛을 들인 인류가 이 맹그로브 숲을 밀어내고 대규모 새우 양식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맹그로브 면적의 25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보면 2005년부터 2019년 사이 70퍼센트의 맹그로브 숲이 사라졌습니다. 새우 양식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파괴된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의 면적은 1980년 이후로 약 45억 평에 달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새우와 같은 갑각류 양식은 돼지고기나 닭을 사육할 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합니다. 값싸게 즐기는 새우 몇 마리의 비용이 생각보다 치명적입니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난민의 상관관계


우리가 새우를 즐기며 배출하는 탄소는 지구 온난화에 가속도를 붙입니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0.5도 상승할 때 약 1억 명의 난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2도 이상 상승하면 약 7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평화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2010년도의 상황을 살펴보면 온난화와 난민 사이의 관계가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러시아에 큰 가뭄이 들었고 밀 수출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순식간에 공급 부족에 빠진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곡물 부족은 불편함의 영역이 아니라 생존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밀 가격이 약 70퍼센트까지 치솟으면서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아랍의 봄’입니다. 그중 시리아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혹독했죠. 이미 2007년도부터 가뭄으로 인해 빈곤이 만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반정부 시위가 격화했고 유혈진압에 나선 정부의 대응은 내전이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시리아 내전으로부터 시작된 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는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날이 뜨거워지니 농사가 잘 안된다는, 그런 단순한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기후 변화는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을 근본부터 뒤흔듭니다. 굶주림은 인간의 이성보다 앞서는 감각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성을 잃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굶주림이야말로 이성을 정지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증권가는 ‘애그플레이션’에 꽂혀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곡물 가격 상승을 투자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어쩌면 더 큰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끝난다고 이 애그플레이션이 안정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이어 세계 밀 생산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의 상황을 보면 인류가 본격적으로 식량 부족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가 밀려옵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수도 뉴델리의 기온은 최근 44도를 기록했습니다.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펀자브주는 지난달 평균 온도가 7도가량이나 상승하면서 밀 수확량이 40퍼센트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한 공급 부족이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된다면, 이번엔 대체 어디서 몇 명의 난민이 더 발생하게 될까요?

인도의 봄이 뜨거워진 까닭은 북극이 빠르게 온난화하면서 이례적인 제트기류가 뜨거운 공기를 품고 인도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북극이 빠르게 온난화하는 까닭은 태양열을 반사해 내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극의 빙하가 점점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인간이 배출하고 있는 탄소 때문입니다.
 

인간이 정의로워질 차례


전쟁과 이상기후로 곡물 생산 감소를 피할 수 없다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겠죠. 해결책은 밥과 빵을 덜 먹는 것일까요? 의외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류가 생산해 내는 곡물의 약 40퍼센트 가량은 동물 사료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밥이 아니라 고기를 덜 먹는 것이 논리적인 해결책입니다.

부자 나라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곡물을 소비하는 동안 8억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계 소득 상위 10퍼센트가 온실가스의 약 50퍼센트를 배출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부유한 나라 15개국이 전 세계 자원 초과 사용량의 74퍼센트에 책임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잘 먹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결핍이 발생하고 있다면 문제는 생산 부족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기후 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재난입니다.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식량 생산이 가능한 지역은 북진합니다. 미국과 유럽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자원을 사치스럽게 사용하는 부자 국가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태평양 어딘가의 작은 섬을 수몰시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정의로워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뿐입니다. 특히, 인간이 먹어서 생긴 문제라면 그 누구도 아닌,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잘’ 먹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정되어 있는, 잘 먹는 삶


잘 먹는 삶은 왠지 까탈스럽고 불편할 것 같지만 모든 것은 그저 관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잘 먹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냉장고 한 켠의 냉동 새우가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우리가 무엇을 더 먹을 것인지, 무엇을 덜 먹을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먹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새로운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잘 먹는 삶을 요즘의 유행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비건’이나 ‘가치소비’가 마케팅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진심이 빠진 착한 식단이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유행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행이야말로 이유가 있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행은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전에 경험하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죠. 모처럼 유행인데, 경험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잘 먹는 삶은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배양육 등 푸드테크의 발전이 증명합니다. 세상이 맛있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지금, 미래의 식량을 창조해 내는 기술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돈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몰려듭니다. 결국 잘 먹는 삶은, 우리의 현재이자 예정된 미래이기도 합니다. 그저 조금씩,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잘 먹는 삶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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