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는 통화중
완결

공중전화는 통화중

영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500만 통의 통화가 공중전화로 이루어진다. 누가 공중전화박스를 찾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8년 뤼미에르 런던(Lumiere London) 아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금붕어가 헤엄치는 수족관으로 개조된 브리티시텔레콤의 공중전화박스 ©Photograph:Stephen Chung/Alamy

1.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전화박스

우리 동네의 길거리 위쪽에는 공중전화박스가 하나 있었다. 교통섬 한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 곁에는 쓰레기통과 신호등, 그리고 차량방지기둥이 있었다. 나는 그 공중전화박스의 존재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통이나 신호등, 차량방지기둥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나는 딸과 함께 종종 공중전화박스 게임을 하곤 했다. 참고로 그 전화기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곳의 한쪽에 서서 그 공중전화의 번호로 전화를 거는 흉내를 내면, 딸이 그 전화를 받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전화통화를 하면서 전화기로 할 수 있는 여러 복잡한 일들을 처치하곤 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전화로 약속을 했다가 다시 그 약속을 바꾸었으며, 그리고는 내 딸이 약속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다시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늦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공중전화박스 게임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게임을 하지 않고는 그 전화박스를 지나치기가 어려워졌다. 딸아이에게 있어서 그 전화박스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일단 그것은 실제 전화박스였고, 한때는 어른들이 진지하게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전화박스는 또한 매우 특이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전화기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아이에게 있어서 전화기라는 것은 작고 반짝거리는 직사각형의 물건이었고, 나의 코트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실외의 작은 공간에 끈이 연결되어 있고 찰칵거리며 통통한 버튼이 달린 수화기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재미있고도 신비로운 것이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나 마을, 동네에서도 공중전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최후의 공중전화박스들 말이다. 일단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공중전화는 어디에서든 여러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한동안 뭔가 어색한 공중전화의 존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거리의 모퉁이에 완전히 무시된 채로 자랑스럽게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중전화가 한창 인기를 누렸던 199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영국에서 공중전화박스의 개수는 약 10만 대에 달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공중전화박스는 2만여 대에 불과한데, 실제로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2만여 대라는 숫자는 꽤나 많아 보인다. 그런데 사실 공중전화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매년 5백만 건의 통화가 공중전화에서 발신된다. 5백만 건이라니! 불가능한 수치로 보인다. 나는 분명히 아무도 없는 어느 공중전화박스에서 어떤 남자가 하루 종일 강박적으로 아무 번호나 눌러서 1분 정도의 통화를 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많은 수치였다.

여러분이 지금도 볼 수 있는 전화박스들의 상당수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껍데기들일 뿐이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아직 사라지지는 않은 존재들이다. 예전의 바로 그 자리에 과거의 유물로 남아, 이제는 그저 쓰레기통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용도가 바뀌기도 했다. 브리티시텔레콤(BT)이 ‘전화박스 입양(Adopt a Kiosk)’ 프로그램을 시작한 2008년 이후로 7000개 이상의 공중전화박스가 개당 1파운드의 가격에 지역사회에 매각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낡은 붉은색 전화박스였다. 그렇게 매각된 전화박스들은 현재 미니 도서관, 미술 갤러리, 식물 전시실 같은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전화박스에는 제세동기가 구비되어 있어서, 응급상황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다.

살아남은 전화박스들은 영국이 스스로 생각하는 영국의 이미지의 특별한 부분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Oxford Street)에 있는 어느 기념품 가게를 지나가면서 살펴보니, 그곳의 전면 진열대에는 빨간색 전화박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층버스, 검은색 택시, 구식 우체통과 같은 아이템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에니드 블라이튼(Enid Blyton)의 동화책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들이었다. 솔퍼드대학교(Salford University)의 전기통신학 교수이자 영국 최고의 전화박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나이절 린지(Nigel Linge)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영국의 시골 풍경을 그린다면, 거기에는 오리가 헤엄치는 연못, 교회, 펍(pub)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공중전화박스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중전화박스와 관련하여 린지의 머릿속에 가장 처음 남아 있는 기억은 그가 살던 카운티 더럼(County Durham)의 윌링턴(Willington)이라는 탄광촌의 주거단지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던 일이었다. 그의 가족은 1980년대까지도 집에 전화기가 없었다. “우리 영국만큼 공중전화박스에 대해서 많은 열정을 가진 나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린지는 이야기한다.

이처럼 있음직하지 않은 열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지나가면서 발견하는 모든 전화박스들의 안쪽에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그 안쪽에는 일반적으로 깨진 유리조각과 버려진 음료수 캔들이 있었고, 소변임에 틀림없는 냄새가 났다. 좋아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캠든(Camden)에 있는 어느 낡은 붉은색 전화박스는 부서져 있었는데, 문짝도 없었고 바닥에는 플라스틱 병과 갈색의 낙엽이 깔려 있었으며, 금발 미녀를 광고하는 유리창에는 손으로 쓴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의 수화기를 들어서 귀를 대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화를 걸 수 있다고 알려주는 기다란 통화대기음이 들렸다. 아주 오래된 소리였다. 그러자 청소년기였던 1990년대 중반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당시에 나는 친구들과 약속을 정하기 위해서 공중전화를 아주 많이 이용했다. 버스정류장 근처나 지하철역의 바깥에는 공중전화박스들이 있었다. 가끔은 수신자부담 전화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나 아니면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을 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공중전화박스는 실존과 과거의 사이에 끼어있는 물체가 되었다. 지금의 공중전화박스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길거리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여전히 버티고 서있다. 아델(Adele)의 노래인 ‘헬로(Hello)’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덩굴에 뒤덮인 채로,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 2012년에 발표한 정규앨범 <테이크 미 홈(Take Me Home)>의 커버에서는 멤버들 모두가 기어오르는 대상으로, 프리티리틀씽(PrettyLittleThing)이 선보인 최근의 광고에서는 베이지색 반바지와 조끼를 입은 몰리-메이 헤이그(Molly-Mae Hague)가 쓰다듬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린지는 “많은 젊은이들이 전화박스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공중전화박스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은 물론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그 기이하고 육중한 문을 굳이 힘겹게 열고 들어가서 전화를 걸게 되는 경우가 언제인지도 궁금했다.

2. 공중전화박스, 추억 그 너머

공중전화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곳의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담배 냄새와 세척액 냄새, 버튼을 누르면서 손가락에 묻은 금속 냄새들 말이다. 한때 전화박스 내부의 선반에는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었고, 문짝에는 성매매 전단지가 도배되어 있기도 했다. 전화기가 생겨난 초창기부터 1976년에 기존의 수동 교환기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수화기를 들어서 전화를 걸고자 하는 번호를 여성 교환수에게 말해야만 했다. 희한하게도 교환수는 늘 여성이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선 경우도 많았다. “전화를 걸기 위한 줄은 길모퉁이의 가게를 돌아서까지 이어졌습니다.” 브리티시텔레콤이 폐기하는 오래된 전화박스들을 수리하여 재판매하는 회사인 엑스투커넥트(X2 Connect)의 마틴 화이트(Martin White) 대표의 말이다. 나는 노팅엄셔(Nottinghamshire)의 뉴어크(Newark)에 있는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에서 화이트를 만났다. 공중전화박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비즈니스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화이트가 내게 말했다. “수천여 개가 추가로 폐기될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걸로 모두 끝이겠죠.” 화이트라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 자신조차도 공중전화를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것이 “6년 전쯤?”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각 38살과 36살인 그의 자녀들은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아는 한은 말이다.

화이트의 회사 한쪽에 있는 넓은 공간에는 버려진 전화박스들이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가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트는 그것들을 새롭게 단장을 한 다음에 온갖 부류의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그들은 예를 들자면 환자들의 지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양로원, 자택의 정원에 일종의 사회적 유산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개인 고객들, 그리고 십대였을 때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던 전화박스를 구입하려고 찾아 나선 노인처럼 향수에 젖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영국만의 특색을 가진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해외의 고객들도 상당히 많다. 화이트는 최근에 두바이의 어느 쇼핑몰에도 공중전화박스를 하나 실어 보냈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낡아버린 공중전화박스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영국 공중전화박스의 개략적인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 화이트가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표준화된 전화박스의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12년에 공중전화박스의 운영을 넘겨받은 중앙우체국(GPO)이 1921년에 선을 보인 크림색의 K1(키오스크 원)이었다. 중앙우체국이 공중전화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체국과 공중전화는 모두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공공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오래된 붉은색 전화박스들은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Sir 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하여 1935년에 선보인 K6 모델이다. 이것은 조지5세 국왕의 즉위 25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튜더(Tudor) 왕가의 왕관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 비호감의 끝을 보여주었던 1980년대의 모델이다. 색깔은 칙칙한 회색과 검은색이었고, 뚜껑은 네모나고 납작했다. 그러니까 이전 버전이 가진 활활 타오르는 붉은색과 둥그런 지붕으로 된 대담한 양식들을 모두 버린 것이었다. 두바이의 쇼핑몰 중에서도 이런 모델을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사실 공중전화박스는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도 문제가 많았다. 린지 교수는 “공중전화박스로는 결코 돈을 벌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데다 현금이 가득했던 공중전화박스는 걸핏하면 파손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전화통엔 불이 났다. 브리티시텔레콤이 1981년에 중앙우체국으로부터 독립하여 1984년에 민영화된 이후에도 회사는 1990년대까지 공중전화박스의 개수를 꾸준히 늘려갔다. 2000년대 초에 들어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고 나서야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박스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공중전화박스들은 이제 상당수가 사용되지 않지만, 그 상태가 어떻든 간에 비용은 소요되었다. 작동하는 것들은 유지보수를 위해서, 망가진 것들은 철거를 위해 돈이 들었던 것이다. 2020년 4월까지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로 연간 450만 파운드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브리티시텔레콤은 공중전화박스를 전부 다 그냥 없애버릴 수도 없다. 설령 없애고 싶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공중전화박스 업무는 오프콤(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Ofcom)의 규제를 받는 ‘보편적 서비스 의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프콤에서 연결성(connectivity)을 책임지고 있는 셀리나 차드하(Selina Chadha) 이사는 이와 관련하여 “브리티시텔레콤은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리티시텔레콤은 오프콤과 지역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공중전화박스를 철거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제한사항이 있다. 즉, 이동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역,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점, 직전 1년 동안 52건 이상의 통화가 발생한 곳, 긴급통화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곳 등 ‘예외적인 상황’에 해당하는 공중전화들은 없앨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티시텔레콤은 수익성을 저해하는 수천 대의 공중전화박스를 유지보수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리티시텔레콤의 노상통신 국장(head of street)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e)은 “노상에서 제공하는 전화통신 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회사는 ‘스트리트 허브 2.0(Street Hub 2.0)’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여 인도 위에 롤링(rolling)형 광고를 보여주는 키가 크고 평평한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서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와 통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다. 광고 게시 공간의 일부는 지자체와 지역사업체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네, 이건 수익성을 위한 시도입니다.” 브라운이 자신있게 말했다.

얼핏 보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중전화박스가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입증하는 사례들이 있다. 지난해 11월 아르웬 폭풍(Storm Arwen)이 지나간 후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력과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했다. 차드하 이사의 말에 따르면, 재해가 일어난 이후 그녀는 해당 지역들에서 공중전화박스를 계속해서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오프콤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공중전화박스에서 15만 건의 응급구조 서비스 통화가 걸렸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같은 기간 동안 아동상담 서비스인 차일드라인(ChildLine)으로는 2만5000건이, 우울증 상담 서비스인 사마리탄즈(Samaritans)로는 2만 건의 통화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왔다고 한다. 너무나도 개인적이거나 고통스러워서 집전화나 휴대전화로 그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공중전화를 이용했던 것이다. 
 
©Photograph:Antony M/Alamy

3. 공중전화가 구한 생명들

잉글랜드 북서부에 있는 휴양지역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의 바로데일(Borrowdale)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 시스웨이트(Seathwaite)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는 아마도 잉글랜드에서 가장 외딴 지역에 있는 공중전화일 것이다. 이 공중전화는 잉글랜드의 최고봉인 스카펠 파이크(Scafell Pike)로 이어지는 길가에 위치한 어느 농장의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남성이 이 전화박스에서 999(영국 긴급재난신고 번호)로 구조전화를 걸어왔다. 40미터가 넘는 테일러 질 포스(Taylor Gill Force) 폭포를 향해 올라가던 중에 13살짜리 아들이 넘어져서 다리에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응급구조 관제원은 케스윅(Keswick)의 산악구조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해당 팀에서는 아홉 명의 자원봉사자를 보내어 소년을 들것에 실은 다음에 산악지역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최근에 나는 지금까지도 작동하고 있는 이 공중전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바로 매년 5백만 건의 공중전화가 걸린 지점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귀를 대보았는데, ‘뚜’하는 통화대기음이 들리자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만약에 당신이 다친 아이를 두고 산길을 따라 내려와서 우연히 마주한 공중전화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없을 것이다.

평생을 바로데일에서 살아온 프레다 채프먼(Freda Chapman)의 말에 의하면, 브리티시텔레콤은 이 지역에 있는 4대의 공중전화를 없애기 위해서 몇 년 동안이나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철거 여부를 문의해 올 때마다 우리는 매번 그 계획을 거절했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2016년에 개최된 어느 회의 자리에서, 브리티시텔레콤은 위에서 소개한 시스웨이트의 그 공중전화에서 1년에 378건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밝혔다. “하루에 겨우 한 통 정도입니다.” 프레다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이용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브리티시텔레콤은 또한 바로데일에 있는 로스웨이트(Rosthwaite), 시스웨이트, 시톨러(Seatoller), 스톤스웨이트(Stonethwaite)와 같은 마을에게 그곳의 공중전화박스들을 꽃이나 책을 전시하는 용도로 지역사회가 직접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채프먼은 이렇게 말했다. “공중전화박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거라면, 그건 참으로 멋진 제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중전화박스가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바로데일 지역에는 한 종류의 공중전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스웨이트에 있는 건 1980년대 버전이고, 시스웨이트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시톨러와 스톤스웨이트에 있는 건 왕관이 장식된 독특하고 고풍스러운 공중전화박스이며, 건조한 돌담과 비탈진 짙은 언덕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아주 매력적인 환경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누구라도 화보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이 모델은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교회에 있는 존 손 경(Sir John Soane)의 가족묘를 본떠서 만든 것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들은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그곳의 현실은 멀리서 보기와는 다르게 험난할 수도 있다. 도보 여행자들이 넘어지는 사고는 언제나 일어난다. 케스윅의 산악구조팀은 지난해 모두 126차례의 구조 활동을 펼쳤다. 구조팀의 일원인 롭 그레인지(Rob Grange)는 그곳에서 만약 간신히 기어 내려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계곡에 있는 몇 채 안 되는 농가들 중의 절반은 휴가용 민박집이며 연중 거의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다고 말한다. 그레인지는 눈보라와 같은 험난한 날씨를 떠올리기라도 하듯 먼 곳을 응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덕 지대에서 내려오더라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브리티시텔레콤이 2016년에 개최한 시스웨이트 공중전화박스에 대한 회의 내용을 공개하자 케스윅 산악구조팀은 페이스북에 그 소식을 게시했고, 그러자 앨러데일(Allerdale) 지역의회에 밤새 수백 건의 항의가 빗발쳤다.

시스웨이트의 공중전화는 살아남았지만,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있는 다른 수많은 마을의 공중전화박스들에는 철거 예정을 알리는 브리티시텔레콤의 파란색 포스터가 부착되었다. 채플 스타일(Chapel Stile) 마을에서 한때 공중전화박스가 서 있었던 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새롭게 깔린 아스팔트 광장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무런 표시가 없는 무덤 같았다. 
 
컴브리아(Cumbria)의 스톤스웨이트에 있는 고풍스러운 붉은색 공중전화박스 ©Photograph:T. Hedley/Alamy

4. 잊혀지고 방치된 통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남쪽으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노스 웸블리(North Wembley)의 상점가에는 바로데일의 네 곳과는 정반대의 운명을 겪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사용되지도 않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4대의 공중전화박스가 서있는 것이다. 메리 데일리(Mary Daly) 지역의원은 유감스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예쁘고 빨간 공중전화박스들은 아닙니다.” 이 중 3개는 1980년대의 전화박스인데, 각각 다양한 상태로 파손되어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좀 더 현대적인 것으로 대략 5년 전에 설치된 것이었는데, 4대 중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 주민인 캐서린 커닌(Katherine Cunneen)은 이렇게 말했다. “저걸 사용하는 사람을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요.” 바로데일의 주민들이 지역의 공중전화박스를 지키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했던 것처럼, 커닌 역시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 공중전화박스들을 없애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커닌은 노스 웸블리에서 거의 50년 동안 살아왔다. 그녀가 패딩턴(Paddington)에 있는 공공주택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운이 참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택을 한 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근처에는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 백화점과 세 개의 영화관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화려했던 매장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네를 떠났고, 그 자리는 수많은 테이크아웃 전문점들이 차지했다.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녔고 주택공급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중전화박스들이 이 지역의 쇠퇴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흐린 오후에, 그녀는 나에게 공중전화박스처럼 방치 되어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지역의 도서관으로 바꾸거나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포즈를 취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그런 종류의 공중전화박스였다. 어떤 전화박스에는 마치 녹조류처럼 보이는 것이 벽면을 타고 퍼져 있었다. 또 다른 전화박스는 마치 안쪽에서 자행된 범죄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해서, 또는 그곳이 화장실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하여 내부를 하얗게 칠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리치몬드(Richmond)에서라면 과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커닌이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특히나 황량한 공중전화박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 전화박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에서 급하게 내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그곳에서 어떤 남자가 걸어 나오면서 바지 지퍼를 올리는 걸 봤다고 한다.

공중전화박스는 언제나 다양한 범죄들이 발생하는 무대가 되어 왔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다 기이하게 은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그레이터 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의 볼튼(Bolton)에 있는 공중전화박스에서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몇 년 전, 웨스트 서식스(West Sussex)의 리틀햄프턴(Littlehampton)에서는 어떤 성범죄자가 지나가는 학생들이 전화를 받게 하려고 공중전화박스 한 곳에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곤 했다. 2018년에는 노팅엄(Nottingham)에 있는 브릿지웨이(Bridgeway) 쇼핑센터의 외부에 설치된 공중전화들 몇 대가 철거되었다. 이곳의 공중전화 한 곳에서 1년 동안 무려 3000여 통의 전화가 발신되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마약 중개상들이 걸었던 전화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브리티시텔레콤의 대변인은 그러한 통화가 모두 “관광객들이 걸었던 것”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했지만, 지역 주민들이 이에 반박하자 다시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솔직히 말해서 브릿지웨이 쇼핑센터에 그렇게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노스 웸블리에서는 커닌이 이 문제를 관할 구역의 메리 데일리 지역의원에게 가져갔고, 데일리 의원은 이 사안을 지역의회에 상정하여 브리티시텔레콤으로 하여금 낙후된 공중전화박스들을 철거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직 공중전화박스들이 남아 있다. 결국, 공중전화박스를 철거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브리티시텔레콤의 몫이었다.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커닌은 이야기 한다. “공중전화박스는 인도 위에 있습니다. 그들이 그 전화박스를 소유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인도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2015년 당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시내 고번힐(Govanhill)에서 눈에 띈 공중전화박스 ©Photograph:Murdo MacLeod/The Guardian

5.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

한편, 영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중전화박스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상품이 되어서 이제는 도둑맞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체셔(Cheshire)의 첼퍼드(Chelford)와 도싯(Dorset)의 홀트우드(Holtwood)에서는 공중전화박스가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학습장애를 가진 성인들을 위한 주간 보호시설인 홀트우드 팜(Holtwood Farm)의 관리자인 조쉬 프리처드(Josh Pritchard)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살펴보니, 공중전화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감리교회의 옆에 있었던 그 전화박스는 프리처드가 일하는 보호시설이 인수하여 미니 도서관으로 개조할 예정이었다.

공중전화박스를 훔치는 건 쉽지 않다. 땅속으로는 전원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으며, 구조물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또한 이걸 땅위로 들어 올려서 실어 나르려면 크레인이 장착된 트럭이 필요하다. 홀트(Holt) 교구회(parish council)의 실리아 무어(Celia Moore) 의장은 분명히 야간에 범행이 발생했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공중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모두 묻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프리처드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중전화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게 있어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사건입니다. 이곳에는 교회와 우체통과 공중전화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되었네요.” 마을의 이미지에서 가장 다채로웠던 특징이 사라져버렸다. 교구회는 이 사건을 경찰에 알렸지만,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공중전화박스 절도는 위급한 범죄가 아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도대체 누가 왜 가져갔는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분명히 공중전화박스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리처드의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몇 푼이라도 벌겠다고 그랬던 거겠죠.”

공중전화박스 시장은 몇 가지의 차원으로 구분된다. 우선 브리티시텔레콤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서 전화박스를 판매하는 법인 형태의 거래소가 있다. 그리고 이베이(eBay) 마켓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박스를 3000파운드에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에디 오트웰(Eddie Ottewell)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RKC이스테이츠(RKC Estates)라는 또 다른 형태의 회사가 있다. 오트웰은 10년 전 쯤에 ‘싱킹 아웃사이드 더 박스(Thinking Outside The Box)’라는 자선단체를 통해서 브리티시텔레콤의 오래된 붉은 전화박스들을 개당 1파운드에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아마도 오트웰이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온라인에서 공중전화박스의 임대권을 경매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것이다. 오트웰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오트웰을 알고 있으며 공중전화박스 경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맷 해리스(Mat Harris)에 따르면, 오트웰은 매물로 나온 목록들 가운데 브라이튼(Brighton), 그리니치(Greenwich), 햄프턴 코트(Hampton Court), 햄스테드(Hampstead) 등 좋은 위치에 있는 전화박스들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커피나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등 주로 간이매점을 운영하는 그의 고객들은 그런 장소들을 지나는 유동인구가 풍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리스는 RKC이스테이츠가 햄스테드 지역 한 곳에서만 5-6개의 공중전화박스를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RKC이스테이츠의 웹사이트에 의하면 해당 공중전화박스의 월 임대료는 400파운드이며 초기 수수료는 1500파운드에서 4200파운드 사이이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브라이튼 선착장 근처의 아주 좋은 위치에 있는 몇몇 공중전화박스들은 개당 1만 달러에 매물로 나왔었다. 반면 그리니치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는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지 않는 한” 오트웰이 소유권을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는 “그가 투자했던 100파운드가 지금은 100만 파운드의 가치가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공공서비스를 위해 태어났던 이 독특한 모양의 공중전화박스가 민영화를 거치면서 시대착오적인 물건으로 취급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결국에 그 마지막 단계는 수익성을 추구하는 상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 모든 것이 공중전화박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6. 수화기 너머의 인생에 관해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누가, 도대체 누가 공중전화에서 그 많은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발 그러기를 끝없이 바라면서 여러 공중전화박스들 주위에서 아주 오랫동안 수상한 사람처럼 숨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목격한 유일한 통화는 나 스스로 걸었던 것이었다. 나는 캠든(Camden)에 있는 전화박스에서 공중전화 서비스를 담당하는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내가 지금 서있는 공중전화박스의 노후한 상태를 신고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공중전화박스의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 것은 몇몇 엔지니어들이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을 때가 전부였다. 그들은 그 공중전화박스의 옆에 있는 전기제어판을 손보고 있었다. 엔지니어 중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가서 전화기를 들고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외쳤다. “된다!”

그렇지만 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엑스투커넥트의 마틴 화이트 대표는 공중전화가 있었기에 연인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으며, 그녀와 결국 결혼했다. 바로데일에 사는 프레다 채프먼의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자신의 남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마을의 공중전화로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공중전화박스 큐레이터인 앤드류 헐리(Andrew Hurley)의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매주 일요일 밤 8시에 동네의 공중전화박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내가 들었던 사례들 가운데 공중전화박스를 가장 헌신적으로 사용했던 사람은 랭커셔(Lancashire)의 브레더튼(Bretherton)에 사는 에릭 듀허스트(Eric Dewhurst)였다. 듀허스트는 오래된 공중전화박스의 맞은편에서 혼자 살았는데, 그래서 그는 그 전화박스를 마치 개인 전화처럼 사용했다. 거의 매일 그는 20펜스짜리 동전이 든 가방을 들고 길을 건너가서 그곳에 아예 자리를 잡은 채로 일상적인 전화통화를 했다. 주로 통화를 하는 상대는 그의 형인 빌(Bill)이나 조카인 캐롤(Carole)과 일레인(Elaine)이었다. 한번은 그들이 듀허스트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었는데, 그는 그걸 만져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삼촌은 그렇게 바뀌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일레인의 말이다. 참고로 한번은 그들이 듀허스트에게 솜이불을 주려고 했는데, 그는 자신의 침대에서 한 장의 두꺼운 솜이불보다는 ‘수백 장의 얇은 담요’를 덮고 자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만약 비가 내리고 추운 날씨였다면 듀허스트는 부츠를 신고 여러 겹의 코트를 껴입었을 것이며, 여기에 더해서 노끈으로 묶은 비옷으로 마무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받았다.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게 마치 듀허스트의 전화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전화가 울리면 일단 그걸 받은 다음에 길 건너에 있는 그의 집으로 잽싸게 뛰어가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했다. 2019년에 듀허스트가 죽고 나자, 브레더튼에 있는 그 공중전화도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었다. 그건 정말로 1인용 전화박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곳에 책을 채워 넣어두고 그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브레더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에릭 듀허스트가 두껍게 코트를 껴입은 채로 한 손에는 동전 주머니를 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런던 남부의 윔블던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들 (이 지역은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이라서 오프콤은 공중전화박스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 ©Photograph:Amer Ghazzal/REX/Shutterstock

7. 공중전화는 통화중

만약 그 공중전화가 신형 ‘스트리트 허브 2.0’으로 바뀌었다면, 듀허스트는 그곳을 이용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아니, 아예 들어갈 공간이 없다. 나는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었던) 캠든의 오래된 전화박스 인근에 신형 설비들이 몇 대 설치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내부에 장착된 팬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저 크기만 거대한 검은색의 직사각형일 뿐, 그것은 큰 화면과 키패드, 그리고 충전용 포트와 이어폰 잭이 달린 커다란 스마트폰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곳에 서서 모든 포트에 기기를 연결한 채로 편안하게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시스웨이트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던 다리를 다친 아이의 아빠가 떠올랐다. 공중전화에서 걸려오는 그 모든 응급구조 전화들, 차일드라인과 사마리탄즈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들, 아르웬 폭풍이 강타한 후에 공중전화박스를 계속해서 유지하길 원했던 주민들, 지금도 여전히 휴대전화에 정을 붙이지 못한 채 혼자 살고 있는 수많은 에릭 듀허스트들이 떠올랐다. 오프콤의 셀리나 차드하 이사가 말하듯, “때로는 공중전화가 생명줄이 된다.” 물에 빠져 어찌할 도리 없이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던지는 밧줄은 한 사람의 손과 다른 사람의 손을 연결해준다. 공중전화박스에 연결된 전화선은 한 사람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연결해준다.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살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오프콤은 영국의 통신사업이 민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모두가 길거리의 전화박스에서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소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나는 그러한 주장에서 그들이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폭풍우가 더욱 자주 찾아올 것이고, 에너지 수급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격이 급등할 수도 있으며, 우리의 가정에서는 전기가 언제나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프콤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공중전화박스가 얼마나 중요할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름 까다로웠던 탐구과제를 끝내기에 앞서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 전화박스에서 전화 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면, 최소한 거기로 전화가 걸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 거라고 말이다. 공중전화들도 한때는 수없이 울렸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을 것이다. 도시로 떠나간 자녀에게 전화를 거는 부모에게는 특별히 많은 시간을 양보했을 것이다. 연인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 번호로 전화 주세요! 나 지금 공중전화박스에 있어요!’

엄마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바빴을 것이다. 나는 그 상태로 10분을 기다렸다. 공중전화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서 있는 게 점점 어색해져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서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나의 휴대전화로 그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벨소리가 울렸다. 다른 어떤 인간관계의 신호일 수도 있었던 자그마한 그 소리가 길거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