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은행들이 달라졌어요

5월 13일 - FORECAST

은행이 배달 플랫폼을 론칭하고 라방을 한다. 우리가 알던 은행이 아니다. 은행의 장래희망은 무엇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은행업은 보통 가장 보수적인 산업 섹터로 분류된다. 어쩌면 ‘혁신’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은 ‘금산분리’라는 규제에 묶여 신사업을 근본부터 차단당해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기업이 은행까지 지배하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폐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은행은 이제 번화가 1층이 아니라 우리의 스마트폰 안에 존재한다. 시대가 변했으므로 은행도 변신을 시작한다.
WHY_ 지금 은행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은행을 점점 잊고 있는 사이 가장 보수적인 섹터로 꼽히는 은행이 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은행에 간 지 1년이 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은행의 고객이기 때문에. 따라서 은행의 변신은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DEFINITION_ 은행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업”이란 예금을 받거나 유가증권 또는 그 밖의 채무증서를 발행하여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또, “은행”이란 은행업을 규칙적·조직적으로 경영하는 한국은행 외의 모든 법인을 말한다. 즉, 고객의 돈을 맡아두거나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돈을 벌지도, 쓰지 않고 현대사회를 살아갈 방법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99.99퍼센트의 확률로 은행의 고객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사실을 곧잘 잊게 된다. 은행을 방문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에게 은행은 어떠한 ‘장소’가 아니라 스마트폰 속에 존재하는 어플리케이션, 즉 무형의 서비스일 뿐이다.
NUMBER_ 311개

은행은 우리의 인식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시중은행의 점포는 1년 사이에 311개가 줄었다. 전체의 약 5퍼센트 안팎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 시중은행이 최근 영업점 고객들의 내방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봐도, 전체 계좌 보유 고객 중 30퍼센트는 단 한 차례도 지점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0퍼센트 안팎의 고객들은 은행에 방문은 했지만 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고객들도 대부분은 영업점 방문 주기가 최소 1년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당연한 일이다. 현금을 만질 일이 현격히 줄어들었으니 직접 은행을 찾을 일도 적어진다. 4년 전인 2018년도 기준으로도 우리나라의 현금결제 비중은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선택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이 너무 많다. 사람이 찾지 않는 영업점에는 비효율이 쌓이고 결국 은행은 오프라인 영역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규모도 줄이고 창구 수도 줄이고 인력도 줄인다. 1층에 있던 영업점들이 2층이나 3층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KEYMAN_ 김 주임

그런데 이렇게 은행 창구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은행의 마케팅 통로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적금을 넣으러, 이번 달 이자를 갚으러 꼬박꼬박 은행을 방문했다. 그리고 은행 창구에는 ‘김 주임’이 있었다. 매번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가 생겨났다. 은행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인사를 나눠 온 김 주임이 권해주는 적금상품이나 특판예금을 들면 우산이나 치약, 달력 등도 챙겨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김 주임을 만날 일은 없어졌다. 소비자는 이제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을 때만 앱에서 정보를 검색한다. 은행이 먼저 고객에게 말을 걸고 홍보할 강력한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RECIPE_ 라방

그래서 은행들은 시대에 걸맞은 마케팅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라이브커머스, ‘라방’이다. 은행과 고객 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는 무조건 ‘돈거래’이다.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직접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김 주임은 없다. 그러나 라방 호스트가 있다. 간지러운 말재주와 신나는 구성으로 소비자를 한 시간 안에 사로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A 은행 고객인 내가 왜 B 은행 앱을 깔아야 하는지 설득해 낼 능력이다. 라방에는 은행 로고가 찍힌 우산이나 달력은 없지만 대신 스타벅스 모바일 상품권이 쏟아진다. 하나은행이 작년 7월 자체 유튜브 채널 하나TV를 통해 실시한 ‘환전지갑’ 상품 관련 라방은 총 17만 8436명이 시청했다. 하나은행은 꾸준히 라방을 실시하고 있으며 아예 홈쇼핑 채널에까지 진출했다. 우리은행도 작년 말 라방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RISK_ 디지털 리터러시

그런데 아무리 라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은행 창구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김 주임’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고령층 등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를 고려하면 은행 창구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금융 생태계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은행을 1년에 한 번 방문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우리 동네의 은행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부담스럽다. 은행은 우체국이나 소방서처럼 일종의 관공서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은행 없는 동네’가 될 수 있다면 주민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RECIPE_ 혼종

키워드는 ‘혼종’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한지붕 두 은행’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 용인 수지구에서 공동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고령층 고객 비율이 높은 지방부터 우체국에 점포를 운영할 방침이다. 또, KB국민은행과 손잡고 공동점포 개소를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여전히 핵심 자원인 유통망과도 혼종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나은행은 CU 편의점과 손잡고 화상 상담이 가능한 PLCS(상업자 표시 편의점)을 열고 있고, KB는 이마트 노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KB디지털뱅크 NB강남터미널점을 개소했다. 노브랜드 매장 안에 캠핑카를 형상화한 KB국민은행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역시 화상상담전용창구를 운영한다.
REFERENCE_ 티맵과 땡겨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은행의 혼종 전략은 따로 있다. 금융을 넘어선 과감한 시도들이 그것이다. KB국민은행은 ‘티맵’에 1000억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신한은행은 배달 플랫폼 ‘땡겨요’를 출시해 적극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지만 예정되어있던 수순이다. 이제 은행의 경쟁자는 빅테크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카카오부터 토스까지, 인터넷 은행들을 필두로 한 빅테크 기업들이 무섭게 금융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빅테크의 가장 큰 무기는 플랫폼이다. 플랫폼과 그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로 금융을 편리하고 개인적인 서비스로 변화시켰다. 이제 은행도 플랫폼이 필요하다. 전국 구석구석 뻗어있었던 오프라인 영업점을 하나씩 거둬들이는 대신, 소비자의 스마트폰으로 깊숙이 침투할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INSIGHT_ 플랫폼

게다가 모빌리티나 배달 등과 같은 생활 서비스는 구체적인 고객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이 된다. KB국민은행이 투자하는 ‘티맵’은 내비게이션, 택시 호출, 주차 등 ‘이동’과 직접 연관된 서비스뿐 아니라 음식 예약·주문 서비스, 핫플레이스 추천 서비스 등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개별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누군가는 신한은행에 쓰지도 않는 입출금 통장만 갖고 있는 고객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땡겨요’를 통해 10만원짜리 고급 초밥 정식을 배달해 먹는 고객일 수도 있다. 소비 성향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가 쌓이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가 있어야 고객에게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세상이다. 정보는 넘쳐나고 광고는 공해에 가깝다. 내게 필요한 상품을 제시해 줄 때 비로소 소비자가 움직인다. 은행은 이제 플랫폼을 꿈꾼다. 그리고 그 너머의 빅테크를 꿈꾼다.
FORESIGHT_ 금산분리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생활 서비스 진출을 막을 수 없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장벽이 있다. 바로 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금산분리라는 규제이다. 은행권은 지금까지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거나 관련 업체와 제휴를 맺는 식으로 시장에 진출해왔다. 당국이 예외를 인정해 주거나 금융권 바깥의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금융과 비금융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Big-blur)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은 일명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새 정부의 기조는 규제 완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만, 은행이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득이 될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은행이 무기로 휘두를 수 있는 고객의 데이터를 둘러싸고 보안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논란도 불거질 수도 있다. 다만 신한은행의 배달플랫폼 '땡겨요'가 표방하는 ‘프로토콜 경제’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신한은행은 수입이 불확실해 대출에서 소외되어온 배달 노동자를 대상으로 ‘라이더 대출’ 상품을 선보이는 한편,  ‘땡겨요 사업자 대출’ 활성화를 노리고 있다. 땡겨요를 통해 매일 발생하는 매출과 단골고객 데이터 등을 모두 결합해 대출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배달플랫폼 운영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은행의 본질을 실속있게 채울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은행들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그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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