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중립국들

5월 17일 - FORECAST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선언했다. 중립국이 사라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4월 말부터 가시화하던 핀란드와 스웨덴의 공동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시작됐다. 현지시간 15일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과 산나 마린 총리는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공동 기자 회견을 열고 나토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스웨덴은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이 가입 신청을 지지했다. 두 나라의 중립국 지위 포기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여파를 부를 것인가?
WHY _ 지금 북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립국화 모델은 강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한반도는 냉전의 산물이자 미-중 패권의 지정학적 요충지다. 이제껏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동북아 균형자론’, ‘실용외교’, ‘중견국 외교’, ‘한반도 운전자론’ 등. 디테일은 다르지만 요컨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쥐겠다는 소망이 담겼다. 새로운 정부를 맞은 지금, 우리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촉각을 세워야 한다.
DEFINITION _ 노르딕 밸런스

북유럽 지역 내의 세력 균형을 ‘노르딕 밸런스’라고 한다. 이번 중립국화 폐기는 일종의 현상 타파다. 노르딕 밸런스의 무게는 엄중하다. 핀란드 헬싱키는 스위스 제네바와 더불어 각종 국제 조약 탄생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재편되던 유럽의 세력 지도에서 약소국이던 북유럽과 동유럽은 대개 피해자였다.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 중립이 승인된 스위스, 1955년에 중립국 지위가 승인된 오스트리아 등은 약소국의 외교적 대안이 됐다. 서유럽, 동유럽, 소련이 난전을 벌인 양차 세계 대전과 미소의 냉전을 지나며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들 역시 양자택일의 압박이 있었다. 이들 국가는 당장의 경제·군사적 의미가 크진 않았으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다. 발트해를 둘러싸고 있고 북해와 맞닿아 있으며 아일랜드, 영국에 이어 대서양이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북유럽 국가들 가운데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는 친서방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정서적으로는 서구, 전략적으로는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중립을 선택했다.
REFERENCE _ 중립국 모델

중립국의 형태는 다양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당초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이 고조될 당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소련과 핀란드의 근현대사적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이는 스웨덴의 중립국 모델과 다르다. 스웨덴은 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독일을 소외시키지 않은 외교적 전략을 편다. 핀란드는 조약에 근거한 중립국 모델이다. 소련과 맺은 1948년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Treaty on Friendship, Cooperation and Mutual Assistance)이 그것이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러시아제국의 피지배국이기도 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의 침공으로 벌어진 ‘겨울전쟁(1939~1940)’, ‘계속전쟁(1941~1945)’ 등을 치러냈다. 소련 붕괴 후 EU 가입으로 친소 국가에서 벗어났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이 밖에 우리가 아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라오스 등을 ‘영세 중립국’이라 한다. 자위를 제외하고 영원히 전쟁에 관계하지 않는 대표적 중립국 모델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사실상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며 영세 중립국 모델이 흔들리던 차에 핀란드나 스웨덴의 모델까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NUMBER _ 1340km

핀란드와 러시아는 134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나토 가입 절차는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가속한다. 발트 3국과 인접한 러시아의 얇은 영토 ‘칼리닌그라드’도 포위되며 발트해 인접 지역이라는 의미도 약해졌다. 당초 나토의 동진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에서 대표적 중립국 두 곳을 나토에 뺏기며 푸틴은 조롱당하는 모양새다. 다만 푸틴의 속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러시아주의의 부활도, 나토의 동진도, 결국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와 연결되었다고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한 러시아’를 선전해 독재를 이어온 푸틴의 공멸책이다. 요컨대 ‘동생 국가’에 대한 으름장이자 반서방, 그들의 표현으로는 나치 척결의 깃발을 내건 전쟁이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스웨덴의 그것보다 더 속 쓰린 이유는 단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핀란드와 러시아의 역사적 맥락 때문일 것이다. 소련 시절, 서방과의 일종의 대화 창구가 되어줬던 핀란드가 과거의 정적 미국의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러시아는 ‘안보 불안’ 못지않게 ‘체면을 구긴’ 면이 크다.
KEYMAN _ 사울리 니니스퇴

정책 결정자들의 이른바 ‘태세 전환’은 보이지 않는 잇속 다툼이 있음을 시시한다. 사울리 니니스퇴는 대통령에 취임한 2012년부터 푸틴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가지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몇 안 되는 서방의 지도자다.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우크라이나에 위기가 고조될 때도 중립국으로서 푸틴과 서방의 이야기 창구가 돼줬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선언이 더 충격적인 이유다. 5월 14일의 통화에서 니니스퇴에게 “나토 가입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발언한 푸틴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 신청 공식 발표 후의 통화에서는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니니스퇴가 푸틴의 속내를 잘 안다는 점을 가정하면 이미 푸틴과 상당한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러시아가 이미 내부 대응 체계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3월만 해도 나토 가입 검토를 거부하다 입장을 바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역시 한 달 전쯤 니니스퇴와의 통화에선 나토 가입을 지지했으나 급작스레 입장을 바꿔 니니스퇴를 당혹스럽게 했다. 현재는 반대 기조를 완화한 상태다.
CONFLICT _ 터키의 속내

에르도안이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 견해를 낸 것은 ‘쿠르드노동자당(PKK)’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이란계 민족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것은 터키이며,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에도 퍼져있다. 수니파 이슬람으로 분류되지만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집단은 아니다. 이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분리주의에 기반한다. 다만 통일된 움직임은 아니다. 내부 분열도 심하다. 이들 중 터키에서 활동하는 게 PKK이며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무력을 기반으로 한 강경 노선을 편다. 터키의 오랜 골칫거리다. 한편 스웨덴과 핀란드에는 쿠르드족 이민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으며 스웨덴 의회에는 6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 기회로 쿠르드족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사실 터키의 입지는 복잡하다. 부차 학살 이전만 해도 터키는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로 중재자 입장을 자처했다. 그 배경엔 에르도안의 독재가 있다. 무려 19년째 집권하며 ‘칼리파’에 비견되는 에르도안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정권이 모인 나토에서 다소 튀는 존재다. 중동의 맹주 자리를 탐하며 성공적 독재 정권을 이끌어야 하는 에르도안의 속내는 갈팡질팡한 터키의 스탠스로 드러난다.
RISK _ 중국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속 쓰린 국가는 또 있다. 중국이다. 중국에게는 이 사건이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나 중국이 ‘분쟁 지역’이라고 여기는 대만이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진영으로 공식 흡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에 좋은 중립국이 미국을 맹주로 하는 나토에 편입된 것이다. 전자를 살펴보면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와 연관돼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출범한 나토의 중국용 버전이 바로 쿼드(Quad)이기 때문이다. 동남아국가연합인 아세안(ASEAN)이 중립 혹은 기존의 비동맹 노선을 버리고 쿼드 전선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나 핀란드같이 ‘동생 국가’로 여겼던 대만의 입장 변화도 껄끄럽다. 후자 역시 친유럽 외교를 펼치던 중국에게 부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유럽의 독자 안보 체제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아시아는 아시아의 방식대로, 유럽은 유럽의 방식대로 역내 균형을 강조하는 중국의 외교 기조는 사실 미국의 영향력을 걷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현지시간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사건이 “중국-핀란드 관계에 새로운 요인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계 섞인 논평을 냈다. 터키와 같은 속앓이다.
RECIPE _ 깃발 아래 헤쳐 모여

중립국이 사라진다. 이는 곧 세계 질서가 ‘깃발 아래 헤쳐 모여’ 식으로 양분되는 결정적 신호다. 미중 갈등의 심화로 가시화하던 ‘신냉전’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일에서 “자유주의냐 권위주의냐”의 구분으로, 이제는 “친러냐 반러냐”의 패러다임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앞서 터키와 중국의 속앓이는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기인한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정체성, 국민의 사회·문화·역사적 맥락, 외교적 실리가 복잡하게 얽혀 불협화음을 낸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토, 즉 미국과 유럽 각국의 단일대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터키의 사례처럼 불안 요소는 상존한다. 확실한 깃발이 없음에도 선택을 강요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중에는 분명히 우리나라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이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MONEY _ 재난 자본주의

러시아가 본격적인 ‘악의 축’을 자처하며 러시아 제재는 곧 ‘선’이 되었다. 다만 그에 따른 고통은 공평하지 못하다. 전쟁발 곡물 위기와 유류세 폭증은 미국에는 8퍼센트가 넘는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이지만 빈국에는 당장의 식량난이자 경제 붕괴다. 미국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공급망 체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금 자원 부국에 대한 의존이 심화하고 자본주의 논리가 개입한다. 당장 세계 2위 밀 생산 국가인 인도조차 기후 위기로 인한 밀 생산 감소로 수출을 금지했다. ‘기후 정의’의 측면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 교수는 이 전쟁이 결국 미국의 경제 패권을 강화하는 결과로 귀속될 것이라 지적한다. 다소 과잉된 해석도 보이지만 큰 틀에서 미국이 ‘세계 패권 유지’ 노선을 선택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미국과 유럽의 태도가 미묘하게 다른 것에 힌트가 있다.
INSIGHT _ 동상이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거대한 수 싸움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소식은 ‘나토 강화, 러시아의 불안과 폭주 예상’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이 유럽 안보 지형의 거대한 변화는 진영 간 연대라기보다 역설적으로 각자도생의 결과물일 수 있다. 현지시간 4월 24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우크라이나 수도를 깜짝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은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매서운 함의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타격을 입어 다신 이런 침공을 반복하지 못하기를 희망한다”라는 말은 곧 대러 전략의 변화를 의미한다. 완전히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몰아내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다만 모든 유럽 국가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확전 위험을 안아야 하는 것도, 러시아의 에너지 제재로 직접적 타격을 입는 것도 유럽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드자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5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평화 회담 시작을 촉구했으며, 에마뉘엘 프랑스 대통령 역시 9일 스트라스부르의 유럽 의회 연설에서 유럽 정치 공동체 창설을 제안하며 ‘유럽 자체적 집단안보체제 구축’ 필요를 언급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우리는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자주권과 유럽 대륙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취지의 발언도 곁들였다. 전쟁 장기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독일 역시 이 전쟁의 장기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 불편한 동상이몽은 푸틴의 전쟁 의지에 따라 나토의 분열 가능성을 예고한다.
FORESIGHT _ 경제, 안보

바이든은 오는 5월 20일에 형식상 ‘공식방문’으로써 방한이 예정돼있다. 이튿날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하고 22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주요 방한 목적 중 하나로 경제 안보가 꼽히고 윤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굳건한 한미 동맹 강조 및 대북 선제 타격 발언 등으로 보수적 안보관을 드러낸 바 있어 회담에 이목이 집중된다. 21세기에 들어 중립국 모델이 한계를 드러내는 가운데 한국은 중립국은 아니지만 경제, 안보를 분리해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은 철저히 글로벌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경제와 안보의 지도를 각각 다르게 그려냈다. 그러나 경제와 안보가 통합되어 재편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는 양자택일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을 개시할 경우 경제 안보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나라 중 하나는 한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무거운 짐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쟁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를 추천합니다.
어떤 사회, 역사적 문맥을 따라 전쟁이 시작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