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후'는 안멋져

5월 19일 - FORECAST

리오프닝 수혜주인 줄 알았던 뷰티 업계가 심상치 않다. 마스크를 쓰고 지낸 2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일상을 다시 시작하면서 기대를 모았던 대표적인 리오프닝 산업이 바로 화장품 업계다. 마스크로 가려왔던 얼굴을 드디어 드러내게 되면서 화장품 수요도 폭발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1분기 성적표를 열어보니 LG생활건강도 아모레퍼시픽도 만족스럽지 않다. 이유는 무엇일까? 마스크를 쓰고 지낸 2년 동안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WHY_ 지금 뷰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리오프닝 수혜주인 줄 알았던 뷰티 업계가 심상치 않다. 예상만큼 매출이 오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LG생활건강은 올 1분기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났다. 아모레퍼시픽의 로드샵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에뛰드 매장들은 문을 닫았다. 화장품은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한다. 뷰티 업계 대장주들의 위기는 시대와 문화가 급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NUMBER_ 20퍼센트

LG생활건강은 회사 이름과는 달리 뷰티 분야에서 성장을 거듭해 왔다. 2021년 LG생건의 영업이익 포트폴리오를 보면 68퍼센트가 화장품, 생활용품과 음료가 각 16퍼센트씩을 차지한다. LG 화장품 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초고가 라인, ‘후’이다. 한때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 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화장품으로 알려졌다. 작년 기준으로 LG생건 화장품 매출 중 20퍼센트가 중국에서 판매된 ‘후’ 브랜드에서만 발생했다. 탄탄한 중국 시장에서의 위치를 바탕으로 LG생건은 작년 업계 1위를 수성해 왔던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매출을 앞지르기에 이른다.
RISK_ 중국?

그런데 올해 1분기, 상황이 급변했다. 17년 연속으로 영업이익 성장세를 기록하며 성장 신화를 써 왔던 LG생건이 갑자기 전년 대비 영업이익 ‘반토막’이라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상하이 봉쇄를 필두로 한 중국 현지 사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LG생건의 설명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큰 고가 브랜드 ‘후’의 부진이 결국 전체 실적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물론 현재 중국 영업 환경은 최악이다. 이동 통제, 도시 봉쇄, 물류 대란 등 시장 환경은 좋지 않다. 그러나 에스티로더는 온라인에서 수익을 만회했고 아모레퍼시픽도 ‘설화수’를 급성장시키며 브랜드의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중이다. LG 생건의 위기는 중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방판 10%대, 카운셀러 판매도 22%대의 영업이익 하락을 기록했다.
KEYMAN_ 이영애 vs 송혜교

‘후’와 ‘설화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화장품 브랜드이니만큼 광고 모델을 보면 전략이 읽힌다. ‘후’의 모델은 배우 이영애, ‘설화수’의 모델은 배우 송혜교이다. 여기서 타겟 연령층이 갈린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며 비교적 고연령층을 노리는 ‘후’에 비해 ‘설화수’는 비교적 젊지만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고자 하는 소비자를 노리는 것이다. 이영애는 2006년부터 ‘후’의 모델로 활동해 왔다. 벌써 17년이다. 커피향은 안성기씨와 함께 깊어졌을지 모르겠지만 뷰티 브랜드는 16년간 모델과 함께 나이 들었다. 반면 ‘어머님’들을 위한 선물로 인식되어온 ‘설화수’는 2020년 ‘아름다움은 자란다’라는 캠페인으로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한 뒤, 여전히 트랜디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고 있는 송혜교를 통해 소비 여력이 있는 젊은 층의 지갑을 공략하고 있다.
RECIPE_ Young and Color

게다가 한국 화장품이 해외에서 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고 굳이 한국 화장품을 구입할 때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중국과 같이 화장품 업계에서 후발주자에 해당하는 경우 한국 화장품은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는 인식이 있다. 이영애 씨가 주인공을 맡았던 〈대장금〉과 같은 사극 콘텐츠를 통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겸비했다. 반면 최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통해 인기를 얻은 드라마 콘텐츠나 K-POP의 팬에게는 한국이 ‘트렌디’한 나라다.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의 메이크업을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한국 화장품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색조 화장품 라인을 탄탄히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LG생건은 지난 4월 미국 더크렘샵의 지분을 인수했다.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젊은 소비자층을 대상으로 색조 위주의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도 백화점 라인인 ‘HERA’의 모델로 블랙핑크의 제니를 기용해 색조 라인을 강조하고 있으며 색조 전문 브랜드 
‘에스쁘아’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CONFLICT_ 에뛰드

다만, 한때 명동 거리의 주인공이었던 로드샵 부문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계열의 경우 ‘이니스프리’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분기 영업이익이 64% 감소했고, ‘에뛰드’는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매장 감소 등에 따른 고정비 축소로 인한 뼈아픈 이익이다. 이들 외에도 한 때 어디서든 만날 수 있었던 로드샵 화장품을, 요즘에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종로나 강남 등 주요 상권에서 로드샵 화장품 매장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올리브영’ 등의 편집숍이 들어섰다.
DEFINITION_ 인디 뷰티

이유는 올리브영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진열되어 있는 주요 화장품 중 처음 보는 브랜드의 제품을 하나 골라 뒷면을 확인해 보자. ‘화장품 제조업자’ 항목에 열에 아홉은 ‘한국콜마’나 ‘코스맥스’가 적혀있다. 이들은 국내 양대 화장품 제조사개발생산(ODM)기업이다. 자체 브랜드는 없지만, 화장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를 담당한다. 소비자들이 화장품 업계의 BIG2를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장업계'의 BIG2는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존재가 최근 쏟아지고 있는 인디 뷰티 브랜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마치 반도체의 '설계'만을 담당하는 '팹리스'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설계하고 메인 색조와 제품 콘셉트 등을 확실히 할 능력이 있다면 '파운드리'에 해당하는 화장품 ODM 기업들이 제조는 맡아서 해 주는 방식이다. 한국콜마는 지난 2020년 오픈한 ‘플래닛147’을 통해, 코스맥스는 지난 4월 정식 오픈한 ‘코스맥스 플러스’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화장품과 뷰티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제 브랜드 아이디어와 판로만 확보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화장품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브랜드가 다양해지면 편집숍의 경쟁력이 강화한다. 이런 경향은 우리 뷰티 업계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온라인 화장품 시장은 포화상태에 접어든 반면, 홍콩 태생 ‘WATSONS’ 등 전통적인 오프라인 편집숍의 파이를 ‘The Colorist’등 신형 뷰티 편집숍이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인보다는 학생 등 Z세대를 타깃으로 해, 트렌드에 따라 신상품 업데이트를 빠르게 진행한다. ‘The Colorist’에 입점한 한국 브랜드는 ‘후’나 ‘설화수’가 아니라 ‘아임미미’나 ‘포니 이펙트’와 같은 인디 브랜드이다.
REFERENCE_ 스타일난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 ‘스타일난다’는 지난 2018년 글로벌 뷰티 브랜드 ‘로레알’에 6천억 원이라는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이유는 코스맥스와 합작 해 론칭한 인디 뷰티 브랜드 ‘3CE’가 그야말로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시즌마다 유행이 변화하는 것은 똑같지만 그 변화를 따라가는 소비자의 속도는 예전과 다르다. 라인업이 슬림하고 추구하는 브랜드 콘셉트가 명확한 인디 브랜드는 빨라진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굳이 패션 월간지에 광고를 싣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으로도 충분히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메이저 브랜드가 제시하는 이번 시즌 컬러에 맞춰 립스틱을 사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립스틱 컬러와 질감을 선보인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한다.
INSIGHT_ 다른 선택

팬데믹 기간을 거치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소비자는 이제 화장품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브랜드가 달라도 만들어진 공장은 같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마스크를 벗고 다시 메이크업을 하게 되겠지만 이번에는 2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브랜드의 블러셔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화장품에 돈을 쓰는 김에 예전보다는 조금 더 비싼 페이셜 크림에 눈길을 줄 수도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금보다 더 좋아진다면 아주 오랜만에 이런저런 브랜드의 립스틱을 매장에서 테스트 해 볼게 될 날도 멀지 않다. 거대한 것은 이제 더이상 트렌디하지 않다. 작고 개성 있는 것이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한다. 특히나 브랜드의 이미지가 소비자의 선택을 가르는 화장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후'는 어느새 안멋지다. 인디 뷰티 브랜드의 비건 립스틱이 멋지다. 그리고 이제 한국 시장에서 멋져야 글로벌 시장에서도 멋지다.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금 현재의 한국’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FORESIGHT_ 보복 경험

팬데믹 이후 우리는 거대한 유행보다 개인의 취향이 더 의미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관계가 희미해지고 스스로와 마주할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ODM 시스템으로 품질이 보장된 인디 브랜드의 미래가 밝은 까닭이다. 또, 집안에 갇혀있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국경을 넘나들었다. 우리 콘텐츠의 선전은 뷰티 업계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제 관건은 '보복 경험'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멈춰있던 경험의 수요가 소비보다 먼저 폭발하는 것이다. 편집숍으로 몰리는 발걸음은 이미 소비자가 엔데믹 시대를 맞아 경험을 찾아 나섰다는 방증이다. 제품을 사용해 보는 수준을 넘어 과연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다.


리오프닝과 함께 성장할 편집숍에 관해 궁금하다면 〈이것은 화장품 가게가 아니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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