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열심히 산다.”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님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열심히 산다고, 다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람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저에게도 만날 때마다 말씀해 주십니다. “아람, 참 열심히 산다.”
다들 열심히 사는 세상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나의 성실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언제 어떻게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를 포함해서 꽤 많은 사람의 등을 떠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런데 진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처음 그 과정을 들었을 때는 제대로 이해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공공연한 일이었고 만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지만 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서울대학교 A 교수와 그의 딸 차유나(가명)를 서초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그동안 탐사취재를 통해 밝혀낸 입시 부정
의혹에 관해 수사해 달라는 겁니다. A 교수는 자신의 딸과 동아리 후배의 이름을 SCI급 논문에 올렸습니다. 해당 연구는 심지어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을 받아 진행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2020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해당 논문에 ‘연구 부정’ 판정을 내렸지만 차유나씨는 2017년 고려대학교 의대에 편입학 했습니다. 지금은 모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중입니다.
다양한 기회, 그러나 불공정한 기회
학벌의 세습이 곧 계급의 세습이 된다는 우려는,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학벌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자라났죠. 이 욕망이 대치동과 사교육 시장을 살찌웠습니다. 그래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은, 재능과 성실함 만으로도 성취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치러 차례로 줄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미래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또, 다양한 학생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입시제도가 다변화됩니다. 시험 성적 이외에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꼭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글 쓰는 재능이 있다면, 봉사 활동에 열심인 학생이 있다면, 지역 격차에도 불구하고 꿈을 키우는 학생이 있다면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종’의 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