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2022년 열일곱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다들 열심히 산다.”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님이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열심히 산다고, 다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람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저에게도 만날 때마다 말씀해 주십니다. “아람, 참 열심히 산다.”

다들 열심히 사는 세상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불안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나의 성실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언제 어떻게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를 포함해서 꽤 많은 사람의 등을 떠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런데 진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처음 그 과정을 들었을 때는 제대로 이해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공공연한 일이었고 만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지만 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서울대학교 A 교수와 그의 딸 차유나(가명)를 서초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그동안 탐사취재를 통해 밝혀낸 입시 부정 의혹에 관해 수사해 달라는 겁니다. A 교수는 자신의 딸과 동아리 후배의 이름을 SCI급 논문에 올렸습니다. 해당 연구는 심지어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을 받아 진행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2020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해당 논문에 ‘연구 부정’ 판정을 내렸지만 차유나씨는 2017년 고려대학교 의대에 편입학 했습니다. 지금은 모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중입니다.
 

다양한 기회, 그러나 불공정한 기회


학벌의 세습이 곧 계급의 세습이 된다는 우려는,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학벌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자라났죠. 이 욕망이 대치동과 사교육 시장을 살찌웠습니다. 그래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답이 정해진 문제를 풀어내는 기술은, 재능과 성실함 만으로도 성취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치러 차례로 줄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미래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또, 다양한 학생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입시제도가 다변화됩니다. 시험 성적 이외에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꼭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글 쓰는 재능이 있다면, 봉사 활동에 열심인 학생이 있다면, 지역 격차에도 불구하고 꿈을 키우는 학생이 있다면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종’의 탄생입니다.
 

모순적이게도, 다양한 기회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기회의 불공정을 낳았습니다. 다양한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수상 경력이나 논문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는 돈이 있어야, 특권을 가진 부모가 있어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스펙들입니다.
 

사람을 베어버릴 수 있는 특권


여기서 특권이란 것은 어느 정도의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셜록〉이 고발한 서울대학교의 A 교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취재 기자는 A 교수와 함께 일했던 연구원과 어렵게 통화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논문에 공저자로 올리면 연구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묻는데요, 기자에게 돌아온 것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의문을 표하면 졸업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 에도 시대에 무사 계급은 ‘키리스테 고멘’이라는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칼로 베어 버려도 면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평민이나 하층민에게 모욕을 당했을 경우 무사는 이들을 칼로 베어 죽이더라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실로 대단한 면책권입니다. 비슷한 권력이 21세기 대한민국 특권층에게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자들과 후배 교수들의 경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 말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불의 앞에 눈을 감도록 만듭니다. 사회의 규범과 스스로의 신념을 압도해 버리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권력이 나의 목을 쥐고 흔드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가해자가 됩니다. 불공정과 공정 사이의 선을 무시하고 고개 돌리게 됩니다. 이런 권력이야말로 참으로 악한 권력입니다.
 


떳떳한 이유


그렇다면 이들은 스스로가 내포하고 있는 ‘악’에 관해 인식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는 당연하며 자식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당연히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감히 그들에게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도, 대학도 바로잡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잘못이 없는데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이 완벽한 세상을 살아본 일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아마도 발명된 일조차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인류는 그 불완전한 체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 규칙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시스템이 부여하는 기회조차 불공정하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순간, 우리는 무력해집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잘 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특권층이 학벌을 세습하는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넘치게 이룰 수 있는지, 그래서 무언가를 물려줄 수 있는지를 돌아보며 한없이 작아집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절망케 하는 사회에 미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유산


“우리는 문제 해결 없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문화가 이상하다고 봅니다.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요. 〈셜록〉은 행동주의를 더 강하게 밀어붙일 생각입니다.”

A 교수 등을 고발한 〈셜록〉의 박상규 대표 기자는 북저널리즘에 이런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상식적으로 봅시다. 미성년자가 석박사도 1년에 한 편 쓰기 힘들다는 논문을 썼다니, 이걸 쉽게 믿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대학뿐입니다. 논문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는 대학이 이토록 쉽게 미성년자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을까요? 합리적인 의문이 드는 지점이죠. 대학은 속은 걸까요, 속아준 걸까요? 논문 부정을 기획하고 이걸 이용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대한민국 특권층입니다. 계급적으로 상류층이고, 계층적으로 엘리트입니다. 대학은 이들에 관대했다는 걸 넘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상속을 하면 상속세를 납부합니다. 당신이 쌓은 부는 우리 사회 전체에 기반한 것이니 투자를 하든 세금을 내든 의무를 다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특권층의 ‘그들만의 리그’는 권력을 세습하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이용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유산이란 이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주 지난하고 불쾌한 일이지만 이러한 불공정의 사례와 과정을 촘촘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야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은 잘못이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작은 변화라도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변화야말로,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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