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라고? 우리 다 죽어!

5월 24일 - FORECAST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많은 것을 남겼다. 어음만 받은 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많은 것을 남겼다. 언론은 손익 계산서를 쏟아내고 있지만, 어차피 받은 것은 어음뿐이다. 지금 계산서를 찍어봤자 오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번 방한이 남긴 것은 질문이다. 중립국이 사라지고 있는 국제 관계의 현실 속에서 한국은 어디에 속할 것이냐는 질문 말이다. 그러나, 최선의 전략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WHY_ 지금 조 바이든의 방한을 읽어야 하는 이유

국제 사회의 권력관계가 격변하고 있다. 패러다임이 뒤집히는 시기다. 이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면 결과는 잔인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미국의 질문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깐부인지를 질문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답변은 ‘YES’다. 평가는 엇갈린다. 실익을 챙기고 동맹을 강화했다는 평가와 동시에 ‘차이나 리스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둘 다 맞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상황 인식이다. 무엇이 현실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끝없는 토끼굴에 빠질 뿐이다.
DEFINITION_ 경제와 안보

그렇다면 2022년의 현실은 어떤 모습인가? 경제가 곧 안보인 시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추상적이었던 이 구호가 실체를 드러냈다. 상징적인 장면은 바로 러시아 탱크에 끼워 넣어진 가전제품용 반도체다. 서방의 제재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 부품 수입이 막힌 러시아가 냉장고나 TV와 같은 백색가전용 반도체를 뜯어다 탱크에 박아넣고 있는 것이다. 즉, 반도체가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는 시대다. 한때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며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 경제와 안보는 동의어가 되었다. 중국의 무서운 경제적 영향력에 미국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중국을 실질적인 안보 위협의 대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NUMBER_ 18퍼센트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 즉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세계 1위는 대만의 TSMC로 50퍼센트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2위가 바로 삼성전자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시장점유율은 18퍼센트에 불과하다. 대만이 과점하고 있는 반도체 생산의 권력 불균형이 미국 입장에서는 불안하다. 대만이 중국과 지정학적 갈등에 노골적으로 휘말릴 경우 미국 기업의 공장들이 멈춰 설 수 있다는 불안이다. 반도체 수급이 흔들릴 경우 안보력에도 금이 갈 수 있다는 불안이다. 미국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한국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키울 것이라는 관측에는 근거가 있다.
MONEY_ 6조 3천억 원

삼성으로 시작한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은 현대로 끝났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단독 면담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례적으로 백악관 유튜브를 통해서도 생중계되었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로 하고 미국에 6조 3천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언론은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 즉 로봇 산업이나 자율주행 기술 등을 확충할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언론은 내년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되는 조지아주에 8천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는 데에 주목했다. 바이든의 입이 귀에 걸렸던 진짜 이유다.
KEYMAN_ 조 바이든

이게 바로 ‘바이든 스타일’이다.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힘을 빌려 자기 정치를 하는 수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워싱턴 포스트도 이번 순방을 두고 동맹국들에 ‘의존’해서 중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항하는 것이라 평했다. 상원에서 오랫동안 외교위원장직을 수행하며 갈고닦은 실력이다. 일단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실력 행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트럼프의 방식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바이든은 이제 달라진 국제 관계에서 ‘깐부 외교’로 승부를 보려 하고 있다.
CONFLICT_ Pax Americana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세계 제1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올라섰다. 때마침 경제적으로 강력한 위협이 되었던 일본도 80년대 말에 거품이 꺼지면서 길고 긴 경치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미국은 ‘세계화’라는 기치를 세우고 전 세계를 하나의 경제적 시장으로 재편한다. 기업, 공장, 노동, 제품에 붙어있던 국적의 딱지를 떼어버리면서 물건을 생산해 내기 위한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졌다. 자연스럽게 물건값이 싸졌다. 저물가는 풍요를 가져왔다. 그렇게 전 세계가 미국의 시장이 되었다. 이 시기의 적은 IS나 북한, 시리아 등과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였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몸을 낮추고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던 중국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과 함께 중국의 야망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감히,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펴지 않는 국가가 존재한다. 바로 중국이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이제 미국의 제국,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는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RECIPE_ 깐부 외교

그래서 바이든은 깐부 외교로 새판을 짜고자 한다. 동맹의 힘으로 위협에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전 세계는 “우리 깐부잖아?” 라는 질문에 “YES” or “No”로 답변을 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미 답을 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안미경중이라는,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신성시 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동지 관계를 소중히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 줄타기는 달라진 세계에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선을 긋겠다는데 그러지 말라고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번 방한에서 나온 북한에 대한 강경 슬로건, ‘핵에는 핵’이 확실하게 선긋기를 하는 조 바이든의 깐부 외교 스타일을 방증한다. 북한은 깐부가 아니라고, 대화든 원조든 깐부끼리 하겠다는 얘기다. 김정은에게 한마디 해 달란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답변은 이것이다. “Hello! Period.” (“안녕하시오! 이상.”)
RISK_ 프레임, 워크

바이든 대통령이 짜고 있는 ‘깐부 외교’라는 새 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IPEF다. 지도상으로 보면 참여 국가들이 중국을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가 나온다. 누가 봐도 중국에 대한 견제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이야기처럼 한국이 중국을 IPEF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현실 가능성이 극히 낮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깐부 프레임을 짰는데 그 안으로 중국을 끌고 들어온다니 모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PEF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직 모른다.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명칭을 통해 짐작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 경제 공동체나 FTA같은 조약의 형태가 아니다. ‘프레임 워크’다. 즉,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구축해 둔 국경없는 시장에서 중국이든 누구든 소재나 부품 등을 가지고 공격을 해 올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우리만의 경기장을 만들고 거기에 펜스를 두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깐부간의 룰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2019년도에 있었던 일본의 수출규제와 같은 보복성 움직임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INSIGHT_ 공생의 냉전

그런데 문제는 지금 중국을 배제하고 경제가 돌아가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이 빠진 국제 양궁 선수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느슨한 프레임 워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힘을 가질 수도 있고 와해될 수도 있다. 즉, 바이든 대통령의 깐부 외교는 깐부끼리 뭉친다고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냉전시대와 달리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지나며 이미 적과의 공생관계를 구축해 두었다. 전세계의 권력이 서로 엉켜 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가운데, 깐부라고 끌어안고 깐부가 아니라고 잘라냈다간 내 자신의 팔이 함께 잘려나간다는 이야기다. 어디에 줄을 설까 고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FORESIGHT_ 정답 밖의 정답

결국 관건은 누구에게든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느냐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배터리 분야를 보자. 탄소 중립이 국제적인 키워드가 된 지금, 지속 가능한 녹색 에너지는 당연히 도래할 선택이다. 그런데 이 녹색 에너지는 햇빛이나 바람, 파도 등 예측하기 어렵고 일정치 않은 자연의 힘에 의존한다. 당연히 생산한 에너지를 저장해 두었다가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배터리 기술이 핵심이 된다. 이것은 미국도 중국도 피해 갈 수 없는 미래다. 이런 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가진 힘이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힘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당장 11월 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면 중국은 가차 없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깐부인지 말이다. 어떤 답변이 정답인지 고민해도 정답은 없다. 어떤 답변을 해도 괜찮은 위치를 선점하는 쪽이 현명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시다면 〈미·중 전쟁을 막아라〉를 추천합니다.
전 호주 총리인 저자가 제시하는 달라진 역학관계의 지형도와 시진핑의 리더쉽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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