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게임으로 번지 점프

5월 25일 - FORECAST

게임 회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선택은 무엇을 향하며 어디에 닿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5월 17일, 소니의 자회사인 게임제작사 ‘번지’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5월 14일 뉴욕 버팔로에서 있었던 흑인 대상 총기테러 사건에 대한 성명이었다. 번지와 번지 제작사 내 클럽인 ‘Black at Bungie’는 인종 차별적 공격에 대응하여 제작사와 플레이어, 팬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WHY_ 지금 게임 업계의 정치적 움직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의 게임은 한 명의 스타 개발자나 개인이 만들어 가는 작품이 아니다. 거대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돼 하나의 결과물을 건설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에 가깝다. 따라서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는 워라밸을 원했다. 소비자는 새로운 서사와 가치에 대한 소비 욕구가 높아졌다. 게임 업계는 경제적인 콘텐츠를 제작해야 했으며 소비자는 겁 내지 않고 움직이는 기업을 원했다. 모든 흐름들이 합쳐지며 게임 업계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임은 산업 분야이면서 직접 소비자에게 가닿는 콘텐츠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이들의 정치적 움직임이 불러올 수 있는 파급력이 큰 이유다.
MONEY_ 213조 원

코로나로 인해 신음하던 2020년과 2021년, 게임 업계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작년 게임 업계는 213조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4퍼센트포인트 성장했다. 게임 업계의 성장은 게임 플레이어의 증가세로도 엿볼 수 있었다. 2021년 게임 플레이어는 30억 명으로, 2020년과 비교해 5.3퍼센트포인트 올랐다. 게임이 차세대 콘텐츠로 주목받으며 게임 자체의 정의도 넓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메타버스 열풍과 C2E, P2E과 같은 형태가 등장하며 모두가 쉽게 게임을 접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과거 TV와 영화가 그랬듯, 게임도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
DEFINITION_ 지금의 게임

이 책무에 대한 인식은 게임 형태의 다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제한된 선택지와 일방향 소통이 전부였던 과거의 게임과 달리 지금의 게임은 메타버스, 콘솔, 온라인 등으로 다변화됐다. 다변화는 각 분류에 맞는 사용과 운영의 혼재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사람들은 콘솔 게임을 온라인처럼, 온라인 게임을 메타버스처럼, 메타버스를 콘솔 게임처럼 즐기기 시작했다. 지금의 게임은 오히려 모든 형태가 혼재된 양상에 가깝다. 유저들은 ‘로블록스’에서 수많은 게임을 즐기고, ‘동물의 숲’에서 자신의 집을 만들고, ‘오버워치’에서 캐릭터를 선택한다. 세계관, 스토리, 캐릭터, 유저의 자율적 선택 모두가 섞여있다. 그만큼 잠재적 유저는 게임 비즈니스의 역학과 영향력을 따져야 한다.
NUMBER_ 53퍼센트

EGRN(극단주의 및 게임 연구 네트워크)에 따르면 게임 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게임 플레이어의 53퍼센트가 인종과 민족, 종교, 성별, 성적 지향으로 인해 차별과 혐오, 극단주의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게임 플레이어가 늘어나고, 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할 수록 혐오에 더 자주 노출된다. 더 큰 문제는 재생산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에 노출된 아동들이 기존에 존재했던 우월주의와 혐오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게임에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한 유저는 해당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게임 업계에서 나오는 자정의 목소리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은 일종의 유저 A/S의 관점과 경제적 선택의 논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 문제는 몇몇 게임 회사의 움직임이 실제 현실, 게임에 대한 인식의 본질과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CONFLICT_ 다이버시티 스페이스 툴

지난 5월 13일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다양성을 위한 ‘다이버시티 스페이스 툴’을 공개했다. 블리자드는 2017년에서 2021년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의 80퍼센트가 백인 남성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도구가 무의식적인 편견과 배제를 방지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툴은 젊은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나이, 신체 능력, 인지 능력,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문화·사회적 배경 등의 차이를 수치화해 다양성 정도를 측정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사회적 다양성을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저는 이 도구를 “인종과 성적 지향을 정량화하는 토크니즘”이라고 수위 높게 비판했다. 비장애인 백인 헤테로 남성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KEYMAN_ 알렉스 아프라샤비

다이버시티 스페이스 툴에 대한 비판에 블리자드는 해당 도구가 단독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토론하고, 협의하기 위한 보조일 뿐이라고 답했다. 이 도구가 비판받는 이유는 또 있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작년 여름 권력형 성범죄와 수직적인 조직문화로 악명을 떨쳤다.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이었던 알렉스 아프라샤비는 ‘월드 오브 워 크래프트’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실바나스’의 개발을 총괄했던 디렉터였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행위는 비판받지 않는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PC라는 가면을 쓰고 노동자로 하여금 PC함이 실재하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도록 했다.
REFERENCE_ 벡델 테스트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만화인 《주목할 만한 레즈들(Dykes to Watch Out For)》에서 고안한 영화의 성 평등 평가 방식이다. 세 가지의 항목을 통해 이 테스트가 이뤄진다. 1.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한다. 2. 여성들이 서로 이야기를 한다. 3. 여성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 영화는 어렵지 않게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성적 편향에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작품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이용하는 관객이다. 콘텐츠는 제작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든, 게임이든 그를 이용하고 소비하는 유저가 중요하다.
RECIPE_ 비즈니스

지금의 유저는 무엇을 원할까? 지속 가능한 경영이 2020년 이후를 설명하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게임 업계도 이와 무관할 수는 없다. 지금은 팩맨과 테트리스와 같은 메가 게임이 전 세계를 휩쓰는 시장이 아니다. 유저들은 ‘로블록스’에서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즐기고, 페이커의 게임 영상을 보며 감탄한다. 누군가는 ‘오버워치’의 캐릭터 솔져76을 FPS의 문법 아래에서 사용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그 캐릭터가 멋져서 선택하기도 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지 않더라도 넷플릭스에서 〈아케인〉을 보며 새로운 세계관을 학습한다. 게임은 즐기는 것에서 만들고, 보고, 소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게임 업계는 현실의 불의에 참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어 직접 워라밸을 요구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든다. 이는 미래의 비즈니스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RISK_ 게임의 본질

모두가 정치적 올바름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게임의 PC함은 유저의 거센 항의와 부딪혔다. 이들은 그간 해당 게임 제작사가 유지했던 게임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새로운 선택과 충돌한다는 이유를 말한다. ‘라스트 오브 어스2’는 전작의 세계관과 스토리 라인을 뒤엎는 신작이라며 유저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2편에서는 전작에서 활약했던 주인공의 비중이 줄었고, 유저가 좋아하지 않았던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내용이 담겼다. 게임 제작사 ‘EA’는 ‘배틀필드5’에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관과 여성의 등장이 충돌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임이 유저와 스토리, 세계관, 캐릭터로 이루어진 종합 콘텐츠라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가상은 그 가상을 선택하는 이들로 인해 가상으로서 태어난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가상은 버림받은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INSIGHT_ 기업의 선택

그렇기에 번지의 Black at Bungie 클럽과 낙태 판결에 대한 목소리는 그들이 선택한 하나의 세계관이자 노선이다. 지금의 소비자는 단순히 물건과 콘텐츠를 소비하고 소진하지 않는다. 개인의 구매 목록과 시청 목록, 구독 목록은 취향과 상상력을 대변한다. 잠시 눈을 돌려 영화를 보자. 고전 영화의 황금기,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 황금기를 거쳐 성장한 영화 산업은 관객에게 선택권을 줬다. 동시상영관에서 끼워 팔던 B무비와 정치적 혁명기를 거쳐 관객에게 당도한 비디오 영화가 그 사례다. B무비는 깔끔하지도,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지만 분명 새로운 관객을 길렀고 영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키웠다. 
FORESIGHT_ 소비자의 선택

모든 콘텐츠는 기업의 선택에서 출발해 소비자의 선택으로 닿는다. 과거 소비자의 선택은 콘텐츠를 통해 느끼는 재미였다.  지금은 그 가치를 소비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소비자는 조금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화장품을 택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선택한다. 게임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해당 게임의 다양한 캐릭터와 제작사가 선택한 정치적 목소리에 동의해 게임을 구매할 수 있다. 기업이 선택한 방향을 다시금 소비자가 선택하는 셈이다. 1991년 창립된 번지의 목적은 두 가지다. 최고의 그래픽과 스토리, 플레이를 최첨단 기술로 구현하는 것과 세계 게임 시장을 정복하기. 허울 좋은 원칙은 시장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은 시장을 조직하는 힘을 가졌다. 번지의 게임을 즐겨하는 한 유저는 이렇게 말했다. “LGBTQ 프라이드에 이어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회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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