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폰의 부활

5월 26일 - FORECAST

샤오미와 라이카가 합작 휴대폰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돌아온 디카폰은 휴대폰 업계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샤오미가 독일의 카메라 명가 라이카와 중장기 전략 협력을 맺었다. 오는 7월에 합작 플래그십 휴대폰을 출시할 예정이다. 스마트폰의 사용성이 다양해진 요즘, 다시 돌아온 디카폰은 샤오미의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WHY_지금 샤오미와 라이카의 콜라보를 읽어야 하는 이유

2010년대 모바일 산업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터치 인터페이스의 도입과 함께 반듯한 직사각형으로 획일화된 핸드폰의 모양새에 이견은 없었다. 2020년대, 업계는 폼팩터(form-factor) 경쟁에 돌입했다. 소비자를 매료할 만큼 대단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선보이기 어려운 탓이다. 현재 모바일 산업은 휴대폰 아닌 것으로 휴대폰을 판매하는 것에서 경쟁력을 찾고 있다. 함께 쓰는 스마트 워치나 헤드셋 등의 악세서리가 그렇고, 타 기기와의 호환성이 그렇다. 라이카 렌즈도 마찬가지다. 샤오미와 라이카의 콜라보는 소구력이 말라가는 모바일 업계가 시도하는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DEFINITION_ 샤오미 12 울트라

출시 예정인 라이카x샤오미폰의 모델이 공식 발표된 바는 없다. 그러나 5월 초 렌더링 이미지가 유출된 ‘샤오미 12 울트라’일 것으로 예상된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특징이다. 기기 후면의 절반을 차지한다. 기기를 가로로 돌리면 흡사 디지털 카메라와 유사한 외관이다. 포스터 또한 한손으로 핸드폰 촬영을 하는 손동작이 아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작으로 디자인됐다.


NUMBER_ 2000

라이카의 디지털 이미징 분야 확장은 새롭지 않다. 대표적으로 카메라 제조사 파나소닉과의 협업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나소닉 디지털 카메라에 라이카 렌즈를 탑재하는 형식이었다. 고가의 라이카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하는 촬영 애호가들에겐 인기 있는 대체재였다. 이후 2016년부터 라이카는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와 합작을 시작했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P 시리즈, 메이트(Mate) 시리즈에 라이카 카메라를 탑재하며 주목을 받았다. 5년 넘게 화웨이와 협업을 유지하던 라이카가 화웨이로부터 돌아선 것은 2020년 말부터였다.

CONFLICT_ 미국

계기는 미국 트럼프 정부에 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군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미국 장비·기술이 사용된 반도체 공급 불가’ 제재를 가하며 중국발 중저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2020년 9월, 화웨이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사실상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당한 것은 물론 중국 스마트폰 3강(화웨이, 오포, 비보)에서도 밀려났다. 반면 샤오미는 최근 리스트에서 해제됐다. 미중 갈등의 리스크가 존재하는 화웨이와 인연을 끊고 샤오미로 돌아선 라이카의 선택은 당연했다. 주목할 것은 아너(Honor)다. 아너는 화웨이가 출범시킨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다. 아너가 화웨이로부터 분사한 것은 2020년 11월, 미국 제재가 이뤄진 직후다. 샤오미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는 아너가 라이카의 또다른 협업사가 될 수 있다.


RECIPE_빨간딱지

중저가 스마트폰 제조사는 왜 라이카와 손을 잡을까. 애플과 삼성이 라이카와 손을 잡지 않는 이유와 같다. 기술과 서비스와  감성이다. 샤오미나 화웨이의 저렴한 가격은 GPU 및 소프트웨어 성능에서 드러난다. 또 화웨이의 서비스는 제한적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으로는 구글이 제공하는 유튜브, 지메일, 구글맵, 플레이 스토어 등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수출보다는 중국 내수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남은 것은 감성이다. 애플이 갖춘 것, 삼성은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다. 라이카의 빨간 딱지는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기존 스마트폰 협력체들은 후면 카메라 옆에 ‘LEICA’ 글자만 소심하게 새겼다. 이번에 유출된 샤오미 모델에선 라이카의 붉은 로고가 눈에 띈다.

REFERENCE_ 패션

패션 업계의 럭셔리 브랜드와 스파 브랜드의 협업은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 H&M에서 지미추 구두를 신어 보거나 유니클로에서 화이트 마운티니어링 패딩을 10분의 1 가격으로 사는 것이 놀랍지 않다. 접하기 힘든 명품을 저렴이 버전으로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기술도 마찬가지다. 라이카 카메라의 가격은 필름 카메라 기준 평균 1000만 원이 넘는다. 디지털 카메라도 기본 500만 원 선이다. 한때 야시카가 ‘가난한 자의 라이카’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엄두도 내지 못하던 라이카의 기술과 감성을 다른 형태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큰 기회다.


MONEY_ 9469억

라이카는 왜 자꾸 스마트폰 업계에 발을 들이려는 걸까.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라이카의 기업 가치는 2017년 기준 7억 유로, 한화 약 9469원 규모로 추정된다. 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 AG)는 1996년 라이카 그룹 본사(Leica Group)로부터 분사 후 흥망성쇠를 겪었다. 현 라이카의 지분은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회장 55퍼센트, 블랙스톤 45퍼센트 소유다. 한때 라이카 지분의 97퍼센트 가까이 보유하던 카우프만 회장이 2011년 절반을 블랙스톤에 매각한 것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 또한 몇 년 전부터 라이카에서 손을 털고 싶어 한다는 루머가 있다. 100년 기업 라이카의 고고한 감성 뒤엔 카메라 산업의 고투가 숨어 있다.

KEYMAN_안드레아스 카우프만

라이카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는 자는 20년 경력의 현 라이카 회장 안드레아스 카우프만(Andreas Kaufmann)이다. 투자에 대한 남다른 감각은 맨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가 태어난 카우프만 일가는 오스트리아에서 100년 넘게 대규모 종이 및 펄프 사업을 운영하다 자본적지출 리스크를 감지하고 서서히 매각한 가문이다. 안드레아스 카우프만은 2002년 서른 살 나이에 ACM(Austrian Capital Management)를 설립하고 라이카 지분을 사들였다. 2005년 라이카가 1억 5500만 파운드 규모의 손실로 위기에 닥쳤을 당시, 아날로그적 감수성에만 함몰된 운영진을 비판하며 디지털 영역으로의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한 것 또한 카우프만이었다. 그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라이카의 꿈은 ‘사진이 살아 숨쉬는 슈퍼 스토어(Super Store, where the picture comes alive)’라 밝혔다. 카우프만이 그리는 라이카의 미래는 사진이 적용될 수 있는 모든 곳에 있다. 스마트폰이 그 중 하나다.


INSIGHT_라이츠폰

라이카는 지난해 6월 자사 브랜드의 첫 스마트폰 라이츠폰1(LEITZ Phone 1)을 출시했다. 일본 시장에서 소규모로만 판매했기에 큰 이슈가 되진 않았다. 공교롭게도 라이츠폰1은 바로 전 5월, 샤프(SHARP)와 라이카가 공동 설계한 스마트폰 '아쿠오스(AQUOS) R6'와 매우 유사하다.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도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카의 스마트폰 협업은 단순히 휴대폰 제조사 측의 제안이 아닌, 업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었던 것이다. ‘휴대폰은 카메라를 따라올 수 없다’고 강조하던 라이카가, ‘스마트폰이 사진 업계에 유익하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시장 협업을 넘어 시장 진출에 돌입했다.
RISK_ 네임밸류

라이카가 사랑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예쁘고, 비싸고, 독일산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을 강조하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카메라, 렌즈는 물론 수리비까지 초고가로 내세우는 프리미엄 전략도 라이카의 강점이다. 출시 가격도 비싼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격이 오르는 점에 주목해 ‘주식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말은 라이카 소비자들 사이에서 꽤 흔한 농담이다. 독일산인 것도 한몫한다. ‘MADE IN GERMANY’의 이미지에 걸맞게 튼튼하고 내구성이 좋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장점 중 ‘라이카 렌즈를 탑재한 스마트폰’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투박하고, 저렴하고, 중국산이다. 밸류는 사라지고 남는 건 네임뿐일 때, 지갑을 열고 싶어하는 소비자는 없다.
FORESIGHT_니치

휴대폰의 사용성은 전례 없이 다양해졌다. 누구는 필요한 연락을 취하는 것이, 누구는 SNS나 게임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휴대폰 사용의 주목적이다. 필요한 업무의 상당량을 휴대폰으로 처리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있다. 사용성이 다양해진 만큼, 개인이 휴대폰을 구매 시 고려하는 조건 또한 다양해졌다. 결국 소비자를 단번에 사로잡을 획기적인 기능과 디자인은 없는가, 라는 모바일 업계의 고민은 애초에 우문인지 모른다. 대중적인 모델이 아닌, 특정 목적과 취향의 집단을 공략한 니치 모델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등장할 때 휴대폰 업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라이카의 온보딩이 성공할 경우, 후자의 표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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