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탄생

2022년 열여덟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우리에게 잡지가 더 필요할까요? 그것도 종이 잡지가?


네,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잡지가 필요합니다. 아니, 절실합니다. 잡지는 시대의 담론이며 정서입니다. 또한 시대의 욕망이며 취향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잡지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줄, 나의 욕망을 비춰 줄 잡지가 필요합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무언가를 만들어 줄 잡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북저널리즘은 《THREAD》를 창간합니다.
 

雜: 지금이 아니라 시대


신문과 잡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매일 발행되는 신문에는 ‘지금’이 담깁니다. 매일 아침 어제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신문은, 그래서 사실에 천착합니다. ‘지금’을 또렷하고 왜곡 없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물론, ‘지금’을 상징하는 사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신문사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논조’입니다. 그러나 논조는 달라도 글투와 스타일은 비슷합니다. 사실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스타일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단단하게 자리 잡은 탓입니다. 신문은 반드시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사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전달했다가는 존재 가치가 하락하게 됩니다. 글에 군더더기가 없고 속보를 추구하는 이유입니다.

잡지도 정기적으로 간행되어 독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신문과는 달리 급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시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보를 차지하기 위해 신문이 앞서 달릴 때 잡지는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시대의 흐름과 공기를 탐색합니다. 시대의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 에너지는 무엇을 만들어내며 파괴하는지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잡지는 시간과 성의를 들여 판단하고 분석하고 예측합니다. 그것이 잡지의 의무입니다. 고유의 시각으로 해석한 시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잡지의 영역은 무한합니다. 그야말로 ‘잡스럽게’ 많은 주제를 다룰수록, ‘잡스럽게’ 다양한 방법으로 스토리를 전달할수록 우리 시대의 다층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잡지는 신문이 주목하지 않는 주제를 주목하고 신문이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합니다. 마치 미국의 시사잡지 《LIFE》가 온 세상 구석구석을 사진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여 독자에게 전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품속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아진 그 시절 기술의 총아, 라이카 카메라를 품고 전장으로 떠났던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LIFE》라는 잡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 닿았습니다. 잡지를 선택한 독자들은 잡지 속 사진들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급박한 현장에서 숨 가쁘게 셔터를 눌러 담아낸 전쟁의 참혹함을, 한 생명이 태어나는 출생의 낯설고 생생한 순간을, 앙상한 모습으로 고요한 독서를 하는 마하트마 간디의 사유를 말입니다. 로버트 카파, 앙리 브레송, 유진 스미스 등 20세기를 고발한 쟁쟁한 사진작가들의 이름이 바로 《LIFE》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사실, 잡지를 펼쳐보기 전까지는 무엇이 담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잡지의 스타일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잡지의 스타일이 독자를 선택합니다. 어떤 독자들이 이 잡지를 구매하여 펼쳐 들지를 말입니다.
 

이렇게 잡지를 선택하는 행위는 일종의 자아 규정이 됩니다. 그 어떤 소비 행위보다도 개인의 취향을 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로 잡지를 구매하는 순간입니다. 이 세상 잡스러운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골라 이야기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어떤 질감의 종이 위에 올렸는지, 이 모든 것이 뒤섞이고 혼재되어 잡지와 독자가 공유하는 개성이 탄생합니다. 이 개성이야말로 잡지와 독자가 서로를 선택하는 근거가 됩니다.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만들어가고 또 깨닫는 방법으로서의 잡지 읽기는, 그래서 가장 개인적이며 자아도취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紙: 한계가 만드는 가치


개인적인 매체로써 잡지는, 그래서 종이라는 유한한 재질 안에 갇힐 때 가장 완벽할 수 있습니다. 물성으로 존재하는 콘텐츠만이 우리의 필요와 무관하게 읽힐 기회를 획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부터 태블릿, 노트북, 심지어 스마트 워치까지 등장한 디바이스 홍수의 시대입니다. ‘온라인’은 이제 선택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잡지에 담길 법한 콘텐츠들은 디지털의 형태로 언제든지 우리 주위를 부유하고 있죠. 그러나 그러한 부유의 상태에서 콘텐츠는 그 어떠한 의미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필요에 의해서만 디지털 콘텐츠를 선택하여 소비하고 있지 않나요? 뒤집어 말하자면, 필요 범주 안에 들지 않는 한 디지털 형태의 콘텐츠는 소비될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재미가 있든, 궁금하든, 일이나 공부를 위해 필요하든, 이유가 있어야만 클릭을 하게 되죠. 뿐만 아닙니다. 클릭을 한 이후에도 우리는 이 선택이 맞는지 계속해서 의심하게 됩니다. 넷플릭스에서 고심 끝에 고른 영화를 시작하고 딱 10분 후, 더 재미있는 영화 없을까 하는 생각에 화면을 껐던 경험처럼 말입니다.

종이 잡지는 일단 손에 넣으면 언젠가는 읽게 됩니다. 후루룩 넘겨보는 정도의 가벼운 독서가 될 수도 있고, 새벽을 밝히며 고민하게 될 담론에 빠지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죠. 지금 내 눈앞에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에, 종이 잡지는 평소 생각해 보지 않은 주제까지 제안하고, 또 고민하게 만들만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물성의 힘입니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인쇄 잉크의 냄새를 맡으며 ‘습득’이 아니라 ‘경험’을 하게 합니다.
 

더군다나 그 지면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아무리 더 읽고 싶어도 끝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콘텐츠가 주는 그 숨막히는 망설임으로부터 독자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만드는 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공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정성 들여 골라야 합니다. 바로 ‘큐레이션’과 ‘편집’입니다. 그래서 종이 잡지에는 품이 듭니다. 망설임이 담깁니다. 그 모든 가치가 모여 제본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권’의 잡지가 탄생합니다.
 

《THREAD》


그래서 《THREAD》의 탄생이 벅찹니다. 북저널리즘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렸던 정보와 지식 그 이상을 전해드릴 기회와 조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THREAD》는 북저널리즘의 스타일을 보여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시선이 관찰해 낸 이번 달의 시대정신을 키워드로 정의하고 그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포캐스트에 미처 담지 못한 에디터의 생각과 수다도 담았습니다. 북저널리즘 디자이너들의 재치와 재주를 빌려 사사로운 소통까지 시도합니다.

속보전에 매몰되어 치열함만 남아버린 뉴스 생태계에서 조금 멀리 벗어나 시대를 통찰하는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간편하게 집어 들고 사적인 기분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THREAD》가 참으로 적당할 것입니다. 애써 배우고 이해해야 할 만큼 이 세상에 관심을 두고 싶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안부를 놓치지 않고 전해 받고 싶으신 분에게도 추천합니다.

잡지가, 종이 잡지가 탄생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2022년 6월 첫째 주, 월간《THREAD》를 환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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