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치료제

5월 31일 - FORECAST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뜨겁다. 게임사까지 이곳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디지털 치료제가 제약·바이오 산업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굵직한 투자가 이어지며 이른바 ‘3세대 치료제’로 불린다. 과연 디지털 치료제는 제약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져’가 될 수 있을까?
WHY _ 지금 디지털 치료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월에 열린 ‘소비자 가전 쇼(CES) 2022’에서 행사 기조 연설을 맡으며 푸드 테크 이상으로 주목을 받은 분야는 ‘헬스 케어’다. 그중 가장 큰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단연 디지털 치료제다.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치료제와 같이 효과가 좋으며 부작용이 적고 가격이 저렴하며 환자 모니터링이 용이한 것으로 홍보된다. 과장이 아니라면 혁신이다. 윤석열 정부의 인공지능 신약 개발 플랫폼에서 지원할 주요 분야이기도 하다.
DEFINITION _ 무경계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DTx)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디지털 치료제 협회(Digital Therapeutics Alliance·DTA)에 따르면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 치료제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 기기”다. 말마따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식약처, 미국으로 따지면 식품의약국(FDA) 등 허가 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치료적 개입’이 되어야 하므로 ‘디지털 헬스’라는 큰 범주 안에서 단순한 건강 관리나 정보 수집에 그치는 ‘헬스 케어’ 개념과도 다르다. 두드러지는 차이는 정의의 마지막이다. 디지털 치료제의 형태는 소프트웨어, 앱, 게임, 챗봇, VR·AR·XR[1] 기기, AI 기반 도구 등 다양하다. 물성을 뛰어넘은, 그야말로 무경계로 특징지을 수 있다.
RECIPE _ 진화의 발자국

디지털 치료제의 등장은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의약품 혁신의 개념으로 보면 차세대 신약이다. 1세대는 1900년대에 출시된 독일 화학업체 바이엘의 아스피린이다.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알약과 캡슐이었다. 2세대 신약은 1990년대 중반을 휩쓴 단백질, 항체 등의 생물학적 제제다. 지금 세대는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T, 키메라 항원 수용체 T)’ 등으로 대표되는 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가 혁신으로 꼽힌다. 디지털 치료제는 이 흐름의 뒤를 잇는다.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맥락에서 보자. 코로나19 판데믹, AI 기술 발전 등 4차 산업혁명 심화로 의약 업계도 예외 없이 ‘비대면’, ‘자동화’의 흐름에 놓였다. 북저널리즘이 인터뷰한 ‘닥터 나우’와 같은 비대면 진료, 약 배달을 넘어 치료제에도 디지털 전환(DT)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CONFLICT _ 부작용

디지털 치료제는 정말 부작용이 없을까?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는 “생체에서의 작동 원리를 고려하면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도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효과가 있다면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존 치료제와 같은 엄격한 임상 실험이 요구된다. 다만 인지 행동 치료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다. 현재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엔비져블’의 허윤실 공동대표는, 개발 중인 ‘디지털 치료 경험’[2]에 대해 서면으로 “화학적 약물을 직접 인체에 투여하는 일반적인 약물 치료제의 임상 실험과는 달리, 게임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플레이하고 개선 사항을 관찰하는 방식이라 상대적으로 부작용의 위험이 매우 낮다”고 전했다.
NUMBER _ TOP 5

아직 국내에 임상을 통과한 곳은 없다. 다만 유망한 ‘Top 5’가 있다. 웰트, 에임메드, 하이, 뉴냅스, 라이프시맨틱스다. 보통 3상까지 나뉘는 약물과 달리 디지털 치료제는 탐색 임상과 확증 임상 두 단계로 나뉘는데 위 업체들은 확증 임상 단계에 들어간 경우다. 특히 지난 1월 시리즈 B로 110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웰트는 아시아 최초로 DTA의 멤버사가 됐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다. 현재 임상에 돌입한 국내 업체는 총 10곳이지만 전문성 없이 뛰어드는 업체도 많다. 치료 기전에 대한 이해 없이 상관성을 인과성으로 오인한 결과다.
REFERENCE _ 페어 테라퓨틱스

해외는 어떨까.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보스턴 기반의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만든 ‘reSET’이다. reSET은 모바일 앱으로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로 2017년 9월에 승인받았다. 2020년 3월에는 불면증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인 Somryst를 추가로 허가받았다. 아킬리(Akili Interactive)도 대표적 회사다. EndeaverRx라는 소아 ADHD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를 게임으로 만들어 2020년 6월에 승인받았다. FDA에 도전한 한국 회사도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케이피에스의 바이오 자회사 ‘빅씽크테라퓨틱스’다. 강박 장애 치료용 앱으로 탐색 임상에 나섰다. 국내 기업 ‘하이’도 치매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알츠가드’로 고령층이 많은 일본을 노린다. 시장이 형성됐거나 잠재력이 높은 곳을 조준하는 것이다.
RISK _ 사용 비율

큰 병이 아니면 보통 사흘 치 약을 처방받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처방받아온 약을 다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페어 테라퓨틱스의 2021년 실적에서 주목할 곳은 바로 사용 비율(Fulfillment Rate)이다. 앱을 다운받고 실제 치료 콘텐츠를 이용한 환자의 비율이다. 가이던스는 50퍼센트지만 실제로는 51퍼센트가 사용했다. 바꿔 말하면 이용하지 않은 비율도 절반에 가까운 것이다. reSET, reSET-O, Somryst 세 가지의 치료제는 프로그램에 따라 최소 9~12주 동안을 사용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콘텐츠 이용도 사용 비율에 잡히기 때문에 실제로 프로그램을 완벽히 이행한 사람은 훨씬 적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푸드 테크라도 소비자의 수용성이 낮으면 의미가 퇴색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용 비율은 디지털 치료제의 복병이다.
MONEY _ 42억 달러

그럼에도 엄청난 돈이 오가고 있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42억 달러(5조 2000억 원)다. 전망은 어떨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1년 보고서에서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연평균 약 20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6년에는 12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인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는 2030년, 전 세계 29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봤다. 생각보다 적다고 느껴진다면 숫자에 무뎌진 것이다. 이건 ‘디지털 치료제’에만 한정한 숫자다. ‘디지털 헬스’로 넓히면 2020년 약 174조 원, 2027년까지 582조 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20년 기준 4742만 달러(587억 원)이나 최근 굵직한 투자가 늘고 있다. 통상 유망한 분야에 투자를 단행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최근 눈여겨볼 투자가 있었다. 위메이드의 엔비져블 투자다.
KEYMAN _ 위메이드와 엔비져블

지난 5월 27일, 위메이드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스타트업인 엔비져블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아킬리가 게임을 적용한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었듯, 역으로 게임사가 접근한 경우다. 본 인수 건을 보도한 기사들은 엔비져블을 ‘메타버스 전문 개발사’로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펀토리 하우스’라는 인터랙티브 실내 놀이터 브랜드를 론칭해 6년간 운영하며 아이들의 인지발달을 돕는 디지털 콘텐츠의 유효성에 관해 연구 개발을 해왔다. 현재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으로 임상을 계획하고 있으며, 향후 학습장애, ADHD,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 아동의 치료와 훈련에 쓸 수 있도록 FDA 승인을 목표로 한다. 엔비져블이 개발하는 메타버스와 DTx의 효과에 관한 에디터의 질문에 허 공동대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게임처럼 플레이하며 발달장애 아동의 치료와 훈련을 돕고, 신체 활동과 연계하여 놀면서 성장하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답해왔다. 요컨대 약과 주사라면 학을 떼는 아이들의 ‘사용 비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지향하는 위믹스 3.0에서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INSIGHT _ 게이미피케이션

닥터나우가 치렀던 홍역을 생각하면 디지털 치료제가 맞닥뜨릴 문제는 가볍지 않다. 기존 의료계의 반발은 물론이고 정책적 쟁점이 숱하게 남았다. 그럼에도 기대되는 것은 초대형 게임 회사와 디지털 치료제의 융합이다. 이는 에듀테크인 ‘듀오링고(Duolingo)’를 연상케 한다. 듀오링고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통해 학습력을 증진하고 진입 장벽을 낮춰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자 했다. 과거 게임을 질병으로 매도하던 시절을 지나 “게임은 문화다”라는 표어가 등장했고 이제 게임은 다양한 산업에서 범용성이 높은 콘텐츠다. 디지털 치료제와 게임의 결합이 주목되는 이유는 특히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엔비져블의 허 공동대표는 “시스템화된 교육 제도와 고도로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인지, 사회적 발달 지연을 모니터링하고 지연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게임을 하며 치료 효과도 얻을 수 있다면 게임 강국인 한국의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FORESIGHT _ 급여

상용화를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은 결국 가격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어디까지 저렴해질 수 있을까? 처방에 따라 앱을 설치하고 플레이하는 정도라면 혁신적인 수준으로 치료비가 낮아질 수 있다. 다만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 다양한 기기가 필요한 경우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급여’ 여부가 중요해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치료 앱 등이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청(CMS)에서 보험 급여 코드를 부여받았다. 인지중재치료학회 강성민 대표에 따르면 “독일 역시 수가 지원을 위해 앱 기반 디지털 치료제 20개에 임시 수가를 신설, 그중 5개에는 보험 급여 자격을 부여”했다. 보건복지부는 아직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지만 디지털 치료제 상용화의 가장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 규제의 강도가 생태계 조성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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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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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허윤실 공동대표는 디지털 치료제와 디지털 치료 경험의 차이를 묻는 에디터의 질문에, “디지털 치료제와 디지털 치료 경험 모두 DTx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화학적 치료제와 구별짓고 애플리케이션을 플레이하면서 치료의 효과를 얻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치료 경험’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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