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MBTI
6화

Making a World of Differences

‘너’를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


MBTI는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할 때 그 활용도가 가장 높다. 개인은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이를 사용하며 내적 만족감을 얻는다. 이 만족감은 나를 넘어서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지평이 된다. MBTI를 통한 선순환인 셈이다. 검사 한 번으로 단 시간에 나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다. 정확한 검사 결과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즉, MBTI를 통해서도 나 자신의 성격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최근, MBTI를 ‘나’가 아닌 ‘너’를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보인다. ‘짜증나게 만드는 MBTI 순위’, ‘스트레스 받게 하는 MBTI 순위’, ‘공부 잘 못하는 MBTI’ 등이 그렇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MBTI를 ‘나와 너’의 장점보다는 ‘너’의 성격의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고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행여 특정 성격유형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해당 유형이 부정적일 가능성보다는 특정 유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심리적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심리적 흐름을 방어(defenses) 기제 속 ‘투사(projection)’로 설명하기도 한다. 방어는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내적, 외적 스트레스와 정서적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방어는 개인이 의식하는 불안, 우울, 질투와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제한하며 내적인 정서적 갈등을 해소한다. 투사는 자아(ego)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 느낌, 공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 책임이 외부 상황과 타인에게 있다고 보는 기제다.[1]

MBTI에서는 개인의 반대 선호의 특징이 무의식에 있다고 판단한다. 의식(consciousness)은 ‘나(Ego, Ich, I)’와 관련된 심리적 요소다. 다시 말해,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 내가 경험한 이 세계에서 ‘나’를 통해 연상되는 모든 정신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무의식(unconsciousness)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정신 세계다. 개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억압시켰거나, 현실 속에서는 다루기가 어려워 의식 세계에서 밀어낸 것들이 무의식에 담겨 있다. 따라서 무의식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곳이다. 무의식 속의 나는 일상의 의식 세계 속에서 빈번하게 만나는 내가 아니기에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의 개인은 자신의 무의식을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일상생활에서 마주친다.

감각형은 직관형을 허황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오해의 근거는 실제 직관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감각형의 무의식에 있는, 아직 경험하거나 살아보지 못한 직관형의 특징이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만들어진 방어기제다. 익숙하지 않은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가 타인에게 투사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결국 MBTI는 ‘너’가 아닌 ‘나’의 이야기다. MBTI를 통해 내가 아직 모르는 ‘나’의 무의식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너’를 만들어 낸 주체는 ‘나’지만, 내 안의 ‘너’는 내가 만들어 놓은 투사된 ‘나’일 수 있다. 때문에 주의 깊고 신중하게 ‘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셜 미디어에 떠도는 유형설명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설명은 타 유형에 대한 근거 없는 평가를 양산하고 있다. 자신의 성격유형이 아닌 반대 유형의 특징 역시 자신이 받아들이고 살아 내야 하는 무의식의 모습이다. 나의 무의식이 투사된 모습으로 반대 유형을 바라보는 것에서 반대 유형 본연의 모습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다른 성격유형을 쉽게 판단하고 단정하는 실수를 줄이게 될 것이다. 다른 유형을 가벼운 웃음거리 정도로 소비하는 행위는 자칫 자기 자신을 향하는 화살이 될 수 있다.

 

독특한 나와 너


인간은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을 갖고 살아간다. MBTI를 개발한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이 지점에 주목했다. 모두가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이들은 강점을 키워나가는 것이 이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고 보았다. 강점을 통해 형성된 자존감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저서 《나와 너》에서 말했듯, 타인을 ‘그것(it)’이 아닌 ’너(you)’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 MBTI는 나다움을 찾은 이후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라고 말한다. 외국어를 배우듯, 다양한 유형의 몸짓을 배우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다른 이의 언어를 흉내 내기도 하면서 서로 간 다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코드의 미학이라고 표현할 만큼 MBTI는 코드를 통해 개인의 다양성을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 코드가 합쳐질 때 새로운 역동(Dynamics)이 생겨난다. ‘나’는 이러한 역동을 간직한 존재다. 개인의 다양성은 점(點)도, 선(線)도, 면(面)도 아닌 구(球)에 가깝다. 구의 형태는 하나의 시선으로는 완벽히 관찰할 수 없다. 다양한 각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만 그 형태가 드러난다. 이처럼 인간은 단면적인 존재가 아닌 입체적인 존재다. MBTI 선호지표 코드가 E, I, S, N, T, F, J, P처럼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선호지표가 합쳐질 때마다 생기는 역동은 단순하지 않다. ISTJ라는 유형은 I, S, T, J가 합쳐진 유형이기는 하지만, 개별 코드를 하나씩 설명한다고 ISTJ라는 유형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코드가 합쳐질 때 생기는 역동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입체적인 역동의 모습에 자신의 독특한 삶의 경험이 더해지면 개인은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은 자신만의 성격을 갖게 된다.

자신의 성격유형을 알게 되었다고 갑자기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특한 ‘나’를 알게 된 나의 관점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포용하고 그를 삶 속에서 펼쳐나갈 수 있다. 이런 개인들이 모이고, 모두가 타인을 수용하고 이해한다면 점차 세상도 바뀌게 된다.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바랐던 궁극적인 세상의 모습일 테다.
[1]
데보라 카바니스 외 3인(박용천·오대영 譯), 《정신역동적 정신치료》, 학지사, 2015, 6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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