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의 다음 미장센은?

6월 2일 - FORECAST

칸에서 들어올린 트로피 뒤에는 CJ의 미디어제국이 있다. 제국의 역사는 계속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 앞에 선 것은 감독 박찬욱, 그리고 배우 송강호다. 그러나 그들 뒤에서 웃음꽃을 피운 것은 따로 있다. 바로 CJ ENM의 주가다. CJ ENM은 두 영화의 투자·배급사다. 그리고 CJ그룹은 향후 5년간 총 2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WHY_ 지금 CJ의 투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 한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Made in Korea는 한 때 페널티였으며 숨겨야 브랜딩이었지만, 지금은 어드벤티지이며 노출해야 팔린다. 이러한 시대의 최대 수혜주 중 하나가 바로 CJ다. 탄생부터 '달콤한 인생'을 팔아온 회사다. 그리고 달라지는 '달콤함'의 정의에 따라 CJ는 변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과감한 투자 계획과 함께 더욱 강력한 '단맛'을 준비 중이다. 콘텐츠 산업의 향방이 그 단맛에 달렸다.
DEFINITION_ 제일제당

CJ는 '필수'를 파는 기업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α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밥을 못 먹으면 살 수 없지만, 설탕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설탕은, 모두가 사랑하는 +α다. 마찬가지로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된장찌개는 충분히 맛있다. 그러나 조미료를 넣는 순간 우리는 '고향의 맛'에 중독되고 만다. 제일제당은 이렇게, 풍요롭지 않았던 시절의 가장 중요한 경험, '식사'를 '즐길 거리'로 만들어주는 제품으로 성장했다. 없어도 살지만, 없으면 불행한 재화를 판매해 온 것이다.
KEYMAN_ 이미경

그렇다면 어느새 먹을 것 과잉의 시대에 접어든 현대 사회의 인류에게는 어떨까? 없어도 살지만 없으면 불행한 것의 정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아마도 답은 콘텐츠일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CJ는 이미 설탕 회사가 아니라 미디어 회사다. 내가 먹는 설탕이 백설표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tvN이나 CGV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드림웍스 설립을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가 삼성의 이건희 당시 회장을 만났다. 투자를 요청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녁 식사 내내 오간 대화는 반도체 이야기로 채워졌다. 결국 드림웍스의 2대주주로 투자하면서 한국 내 드림웍스 독점 배급권을 따낸 것은 삼성이 아니라 막 삼성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CJ였다. 이를 성사시킨 인물이 바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RECIPE_ 수직계열화

물론 영화 산업은 설탕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배급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극장에 걸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충무로는 극장주와의 관계가 권력이 되고, 수익이 되는 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극장주가 영화를 걸어줘야 찍어 둔 영화가 돈이되는 구조였다. 관행과 텃세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미경은 1996년 제일제당그룹(C),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G), 호주의 빌리지 로드쇼 픽쳐스(V)가 함께 손잡은 극장 사업을 시작했다. CGV다. 90년대 말부터 대기업이 극장을 소유하게 된 것을 계기로 충무로의 사업 공식이 바닥부터 무너져내렸다. 한국 영화판에는 없었던 제작과 (한국 영화) 배급이라는 체계가 잡혔다. 그리고 스타 제작자 '차승재'의 싸이더스와 손을 잡으면서 CJ는 2000년대 들어 제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생태계가 완성되었다.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으로 금지된, 한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CJ는 극장 스크린 뿐만 아니라 거실의 스크린까지 독점에 나선다. tvN과 m.net을 필두로 해 OCN과 채널CGV 등의 주요 영화채널까지 포함하는 총 14개의 채널이 CJ의 소유다. 2016년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하면서 방송 프로그램 외주 제작까지 영토 확장을 마쳤다.
RISK_ Global

이렇게 완벽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CJ는 그러나, 최근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CJ CGV의 부실이 뼈아팠다. 원인은 CJ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에 있다. 한국은 세련된 나라이며 한국 콘텐츠는 수준 높다. 이런 한국을 파는 사업인데 잘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먹거리도 '식문화'로 포장해서 팔아야 할 판이다. 그러나 CJ의 세계 진출에는 운이 따라주질 않았다. 이미경 부회장은 누구보다 영화 산업에서 극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터키, 인도네시아, 중국 등 해외 진출에 CGV가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악재가 터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키 리라화가 급락했다. 결국 CJ CGV의 실적은 부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CJ ENM도 갈수록 치솟는 제작비에 수익율이 휘청였다. 올해 1분기 실적을 보면 미디어 부문의 덩치를 키우면서 매출은 약 40퍼센트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38퍼센트 감소했다.
CONFLICT_ 넷플릭스

이런 CJ에게 기회이자 위기인 상황이 바로 OTT의 급부상이다. 우리나라 10대의 91퍼센트, 20대의 95퍼센트가 OTT를 이용한다.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은 진작에 뒤집혔다. 어차피 몇 년 전에 시청 점유율로 지상파 방송국을 제친 CJ ENM이지만, 이제는 지상파라는 플랫폼이 가지는 기득권이 아예 제로에 가깝게 수렴해 버린 상황이다. 즉, 콘텐츠 경쟁력이 전부다. 넷플릭스에서 잘 팔릴 수 있으면 TV에 방송된 일이 없어도 국제적 규모의 대박을 누린다. 그러나 이 상황은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프리미엄 구독료가 1만 7천 원이다. CGV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한 티켓 값이 1만 5천 원이다. 게다가 CJ의 자체 OTT인 tving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액제 혹은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OTT를 이용하는 비율은 약 35퍼센트이다. 이 중 3분의 1이 넘는 24퍼센트는 넷플릭스를 이용한다. 티빙은 4.4퍼센트에 불과하다.
MONEY_ 12조 원

물론 CJ는 제국의 역사를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 최근 CJ그룹은 향후 5년간 총 2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12조 원이 문화 부문이다.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개한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를 보면 CJ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스튜디오에 돈과 기술을 쏟아부어 자산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그만큼 운명을 걸겠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INSIGHT_ 팝콘 냄새

그리고 CJ의 이러한 투자에는 근거가 있다. 리오프닝과 함께 보복경험의 시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서사 중심의 콘텐츠는 스마트폰으로 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좋은 콘텐츠는 기본이고, +α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CJ는 갖고 있고 넷플릭스는 갖지 못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바로 극장이라는 공간이다. 즉,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에 답이 있다. 극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팬덤을 확보한 콘텐츠의 힘은 OTT에서 사랑받은 콘텐츠보다 힘이 세고 수명이 길다. 당연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일단 효용을 인정하면 그 효용에 지불한 가격만큼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1만 5천 원을 지불하고 영화 티켓을 예매하게 만들까? 그것은 공간이 주는 경험이다. 팝콘 냄새와 커다란 콜라잔. 낯선 사람들과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고 반전이 폭로되는 순간에는 함께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 느슨한 공유. 그리고 여기에 급하게 올라버린 티켓 가격 인상분 만큼 더 특별한 경험을 얹어야 한다.
REFERENCE_ 듄

지난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상영을 보이콧했다. VOD 서비스가 극장 상영보다 앞서거나 동시에 진행될 수 없다는, 다분히 20세기적인 논리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신성시 했던 극장과 스크린에 멀티플렉스들은 과연 어떤 투자를 했나? 2017년과 2022년의 극장 풍경은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답변이 군색하다면 지금이라도 극장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돌비 애트모스나 아이맥스 같은 규모와 기술일 수도 있고, 영화를 향한 애정에 기댄 굿즈 프로모션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경험을 선보일 의무가 지금의 극장에는 있다. 코로나19 기간 중임에도 흥행에 성공하며 화제가 된 영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듄〉이다. 1만 7천 원의 넷플릭스로는 얻을 수 없는 감각의 스펙터클이 돋보였던 영화다. 특히 섬세하게 기획된 사운드는, 스마트폰이나 테블릿의 스피커로는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지극히 호사스러운 경험이었다.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의 새로운 정의가 무엇인지, 〈듄〉의 성공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FORESIGHT_ 새로운 챕터

해외에서는 왜 삼성이 미디어 산업에 뛰어들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소니도, 애플도 소프트파워를 소유하고자 했으며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포기한 미디어 산업이 CJ의 미디어 제국을 일구어냈다. 물론 이를 둘러싸고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영화판에서는 독한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CJ라는 대기업 자본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규모와 수준에 있어 비약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박찬욱과 봉준호라는 걸출한 감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CJ의 지속적인 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투자는 당장의 매출로는 계산할 수 없는 자산이 쌓여가고 있음을 볼 줄 아는 사람, 이미경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지속 가능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콘텐츠 제작 쪽으로는 기대를 이어갈 만하다. 특히 〈라라랜드〉를 제작한 헐리우드의 제작사 '엔데버'를 인수하고 'CJ ENM 스튜디오스'를 신설하는 등 멀티 스튜디오 체제를 완성했다. 의외로 관건은 플랫폼이다. 2년동안 극장을 가지 않았던 관객들을 다시 CGV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넷플릭스에 독식된 OTT 생태계 안에서 tving을 살려낼 수 있을지가 숙제다. 제국의 역사는 이제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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