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만나도, 고민은 계속된다

6월 3일 - FORECAST

강남언니에 홍보 수수료를 지급한 의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미용과 의료의 불분명한 경계에 선 강남언니는 어떤 향방을 보일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5월 26일 성형·미용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에 수수료를 지급하며 병원 홍보 및 환자 소개를 요청한 의사가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강남언니는 고객이 성형·미용 쿠폰 구매 시 해당 병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수익 모델을 운영한 바 있다. 미용과 의료의 불분명한 경계에서, 강남언니는 어떤 향방을 보일까.

WHY_ 지금 강남언니를 읽어야 하는 이유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의료 플랫폼에서의 수수료 수익 모델'에 대한 판례가 존재하지 않았다. 법률 해석상 회색 영역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성형·미용 플랫폼에 대한 대한의협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즉 강남언니는 시장 경제적 속성을 띄기 시작한 의료 영역의 대표적인 모델인 동시에, 플랫폼-기존 사업자 간 갈등이 본격화될 DT 시대의 단면이다.


DEFINITION_ 강남언니

강남언니는 2015년 성형 견적 서비스 플랫폼으로 출범했다. 현재는 ‘성형 미용 정보 플랫폼’을 표방한다. 메인 탭은 홈, 이벤트, 시술후기, 수다방 네 개로 구성됐다. 현 강남언니 마케팅의 핵심은 세 번째 ‘시술후기’ 탭이다. 카테고리별로 다른 멤버의 시술 사진을 병원 및 의사명과 함께 볼 수 있다. 또 누구나 시술 뒤 사진만 첨부하면 후기를 쓸 수 있다. 정보 비대칭성이 심한 의료계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했다는 것이 홍승일 힐링페이퍼 대표의 창업 동기다.
KEYMAN_ 홍승일

홍승일 대표는 의과 대학 출신이다. 본과 3학년 때 만성질환자 건강 관리앱 힐링페이퍼를 출시했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인이 함께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앱이었으나 의료 보험 영역에 있는 탓에 수익 모델 발전이 어려웠다.[1] 그래서 향한 곳이 비급여 영역인 성형 시장이다. 2015년 피벗에 성공 후 2년 만에 입점 병원 1400여 개 확보, 앱 다운로드 누적 160만 건을 넘기며 승승장구했다. 문제된 것은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환자 중개 수수료 모델이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2019년 1월 강남 경찰서에 고발됐고 올해 1월 징역 8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홍 대표는 해당 수수료 모델로 71개 병원에 환자 9215명을 알선하고 1억 7600만 원 규모의 수익을 얻었다.

MONEY_ 2100만원

이번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부과 의사는 2년 6개월간 강남언니로부터 환자 1300여 명을 소개받았다. 그 대가로 약 2100만 원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이 수수료가 쌓여 1억 7600만 원이 됐다. 그러나 해당 수익 모델은 당시 힐링페이퍼 전체 매출의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의료 광고 수익이다. 논란에 휩싸이며 수수료 모델은 폐기됐다. 참고로 힐링페이퍼의 작년 매출은 159억 원이었다. 강남언니 앱은 무료다. 즉 대다수 광고 수익이다.


RECIPE_ 앱

강남언니가 출범한 배경엔 국내 성형 커뮤니티 특유의 무질서함이 있다. 무한 검색과 댓글과 쪽지를 통해 시술 가격 및 병원 정보를 짜깁기하는 식이었다. 2000년대 중반 만들어진 여우야성형위키백과는 네이버 카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예사의 웹사이트 또한 세련과는 거리가 멀다. 명동으로, 압구정으로 발품 팔던 유저들에게 강남언니는 편리한 UI, UX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NUMBER_ 3575

그러나 플랫폼이라는 형식 외에 획기적인 서비스를 선보인 적은 거의 없다. 처음 출범 시 내세운 “발품 팔지 않는 성형 견적 서비스”는 중단한 지 오래다. 의료진의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견적 상담이 시술 예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간편하게 확인하는 투명한 성형 후기”를 강조하는 만큼 타 커뮤니티에 비해 스크리닝이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앱에서 예약 후 내원했을 시 실제 수술 비용은 훨씬 높거나, 비용을 할인하는 조건으로 후기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눈여겨볼 것은 앱 내 ‘CCTV 병원’ 검색 기능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강남언니 앱에서 사용자가 단어 ‘CCTV’를 언급한 횟수는 3575회였다. 전년 283회 대비 12.6배 증가했다. 수술실 CCTV 논란과 별개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폭이 확장된 것, 그걸 범주화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앱의 매력이다.


CONFLICT_ 플랫폼정부

2020년 6월 문재인 정부는 ‘한걸음모델’을 발표했다. 신규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을 중재하고 상생안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올해 3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강남언니를 해당 모델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잇따른 것은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의 반발이다. 과도한 마케팅 경쟁, 의료 서비스 저하 등의 이유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 광고 심의 대상을 확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법안 소위에 상정했다. 의협 측의 비판에 따라 의료 광고 관련 모호한 표현이나 심의 기준 또한 수정한 것이다. 의료 업계의 신구 갈등은 현 정부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민간 주도 성장의 디지털플랫폼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다. 그러나 의협 회원 수 10만 명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RISK_ 나의변호사

플랫폼과 기성 권력의 충돌은 낯설지 않다. 지난 5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로톡에 가입하는 변호사를 막으려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일부 내규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변호사의 표현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 또한 표현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변협 측은 주요 조항이 합헌이라는 점, 따라서 로톡 등의 플랫폼에 가입하는 변호사 징계를 그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최근 변협은 자체 법률 서비스 플랫폼 나의 변호사까지 출시했다. 성형·미용 플랫폼과의 갈등이 심화된다면, 의료계 또한 자체 플랫폼을 내놓을 수 있다.


REFERENCE_ 신양커지

신양커지(新氧科技)는 2013년 출범한 중국판 성형 뷰티 플랫폼이다. 성형 상담 및 수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련 업체 7000여 개가 등록돼 있었다. 유료 회원은 17만 4000명에 달했고 2019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그러던 신양커지가 지난해 11월 상장 폐지 절차를 밟았다. 원인은 지난해 6월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불법 의료·뷰티 서비스 단속, 11월 국가시장감독총국의 의료 미용 광고 규제에 있다. 한때 글로벌 뷰티 플랫폼으로 승승장구하던 신양커지가 갑작스런 규제로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다. 강남언니가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아닌 지금부터의 단계적 조율이다.


INSIGHT_ 새로운 정의

성형은 양가적이다. 미용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의료 영역에 걸쳐 있다. 타투와 비슷하다. 문제는 경각심이다. 타투는 생사를 위협하는 시술이 아니다. 반면 성형 시술·수술은 사고 위험이 다분할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미용’이라는 단어가 의료적 속성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강남언니를 비롯한 뷰티 플랫폼 화면에서 뜨는 광고들이 그 결과물이다. ‘의료’라는 영역의 신성함과 ‘미용’이라는 영역의 세속성이 충돌하는 탓에 법관은 헤매고, 플랫폼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온도차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행 의료법과 별개의 성형·미용에 관한 법률적 정의가 필요하다. 세속적인 것을 쉬쉬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사회를 안전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누구나 누릴 수 있게”라는 강남언니의 모토는 다음과 같이 수정돼야 한다. “더 유용한 성형 정보를 누구나 누릴 수 있게.”


FORESIGHT_ 커뮤니티

정보 전달을 표방하는 많은 플랫폼이 유저들만의 자생하는 생태계를 가꾸고 싶어 한다. 강남언니도 마찬가지다. ‘수다방’ 탭에는 성형 질문, 발품 후기, 시술 칼럼 등 종류별 커뮤니티가 마련돼 있다. 병원과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예뻐지면 자랑하고 싶어서 후기를 쓰는 것이 MZ세대의 속마음이다. 강남언니는 이들의 마음을 잡고 싶다. 정보는 이미 포화다.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지만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에는 끝이 없다. 그렇기에 뷰티 + 커뮤니티의 조합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미래다.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플랫폼과 기존 권력의 갈등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는 변호사 있으세요?〉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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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든지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 기관 또는 의료인에게 소개·알선 기타 유인하거나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의료법 제25조 제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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