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2022년 열아홉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디렉터입니다.

지난주 북저널리즘 개편이 있었습니다.


콘텐츠가 담고 있는 내용은 그대로지만, 더 간결하게 더 가깝게 독자 여러분께 가 닿을 수 있도록 겉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북저널리즘의 모든 구성원이 오랫동안 깊이 고민하고 또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며 만들어낸 변화입니다.

먼저 저희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흔히 텍스트는 구태의연한 스타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단이 나누어져 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가게끔 되어있는 구성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글을 접하고 있습니다. 개조식의 보고서, 정리된 구어체로 서술된 인터뷰, 문단 사이의 공백이 너무나 광활한 웹소설까지. 텍스트가 독자를 만나는 형식은 무궁무진합니다.

개조식의 글은 효율적입니다. 빙빙 돌리지 않고 핵심적인 정보를 직구로 날립니다. 대충 훑어 읽어도 텍스트가 담고 있는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좋습니다. 표나 그래프가 따라붙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또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에 알맞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조식으로 깊은 함의나 어조를 담기는 힘듭니다. 언어마다 ‘뉘앙스’를 담당하는 부분이 따로 있을 텐데요, 우리 말에서는 조사와 어미가 그 역할을 크게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내가 갔어.”와 “나도 갔어요.”는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르죠. 또, 단어 상의 미묘한 차이도 개조식 글에서는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앞뒤 문장의 맥락이 있어야 비슷하지만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담고 있는 단어들의 가치가 제대로 빛나게 됩니다.

인터뷰는 고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말을 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서걱거리는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이 글을 쓸 때와 말을 할 때 사고 과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사람의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는 형태는 아마도 인터뷰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기사에서 ‘전문가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는 식의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대중’이 하나의 인격이 될 수 없듯, ‘전문가’ 또한 균질한 집단이 아닙니다. 대화의 형식을 그대로 살린 인터뷰를 통해 ‘이 사람’의 생각과 근거를 훨씬 사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의견’을 경청하기에 좋은 글쓰기입니다.

이번 개편에서는 이와 같은 텍스트의 가능성을 모두 적극적으로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더 나은 가치’라는 것은 사실 인류 역사에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식’은 늘 인류를 환기하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포캐스트의 콘텐츠는 여전히 살아있고 인사이트풀한 내용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형식에 있어서는 온건한 변화를 꾀합니다. 개편은 현재 진행형이며 독자 여러분의 피드백으로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봐주세요


이미지의 변화는 텍스트 이상으로 더 강렬하게 다가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서점에서 이미 《스레드》를 만나보신 독자님들께서는 눈치채셨겠지만, 북저널리즘 구성원들의 캐릭터들이 포캐스트 이미지의 주인공이 되어 등장합니다. 무거운 의미는 덜어내고 독자와 매체 사이의 ‘소통’을 강조하는 변화입니다. 초연결 시대의 ‘사실’이란 먼지처럼 우리 주변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에 관해 대화해야 합니다. 포캐스트의 이미지는 북저널리즘의 구성원이 직접 독자 여러분 앞에 나서서 무엇을 왜 이야기할 것인가를 소개하는 형식입니다.

화려하고 밀도 높은 이미지와 깨알 같은 텍스트로 가득 차 있는 포털 메인 화면을 볼 때마다 갑갑함을 느껴본 경험, 아마 많은 분께서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다고들 하죠.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을 그득히 메우고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밀도가 임계치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줄 수 없게 됩니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포털 메인을 스크롤 해 내려가지만, 결국 아무것도 읽고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북저널리즘의 새로운 이미지들은 여러분께서 메꿀 수 있는 여백을 남겨드릴 것입니다. 비어 있는 배경에 어떤 함의가 숨어있을지, 함께 생각해 주시고 의견을 나눠주셨으면 합니다. 상상력을 활용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북저널리즘의 콘텐츠가 부디, 여러분께 상상하고, 논쟁하고, 그리하여 가치 있는 결론에 이르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지 못한 말들


그동안 독자 여러분께 총 아홉 번의 편지, 프라임 레터를 부쳐드렸습니다. 제 편지를 받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설도 아니고, 브리핑도 아니고, 편지글을 쓴다는 것은 제게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지 못한 채 글을 마무리하기도 했고, 때로는 저 스스로의 결론도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달아 주신 댓글은 답장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꼼꼼히 읽었습니다. 박수를 주신 분께도, 다른 생각을 전해주신 분께도 힘을 얻었습니다.

평소에는 정말 슬픈 일이 닥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냉혈한입니다만, 〈일상 전야〉를 쓰면서는 꺽꺽 울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통화만 몇 차례 했던 정유엽 군의 아버지를 직접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공의료 확충을 외치는 운동가가 된 아버지는, 그것이 유엽이가 남긴 숙제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지친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만한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저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늘 그렇습니다. 늘 고맙다고, 우리 아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 전 만난 후배는 기자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팽목항에 갔던 일을 추억했습니다. 세월호를 수면 위로 끌어내던 날, 부모님들께 차마 질문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보며 한 아버지가 제 후배에게 “아무리 그래도 기자면 질문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부모니까, 부모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적인 편지글이라고 생각하며 썼지만, 결국 저라는 사람이 다정한 사람은 못 되는지라 종종 화도 내고 정색도 했습니다. 〈맛있는 시대〉는 제목을 붙이고 난 뒤 어조를 다시 다듬었습니다. 부조리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읽고 나서 입맛이 쓴 정도가 아니라 불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개구진 제목까지 붙고 나니 비아냥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문장을 걷어내고 추억을 얹어 새로 써낸 글은, 그러나 끝까지 제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 관련 글을 쓰면서는 많이 긴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습니다. 자신은 누구보다 중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누구보다도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는, 종종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보수적인 생각을 중도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90년대의 정의가 2020년대에도 여전히 정의라고 믿고 있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와 관련해서는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제 의견을 단정적으로 쓰기보다는 상황을 바라보는 제 시각을, 사고의 틀을 적어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은연중에 제 생각이 베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그럽게 읽어 주시고, 다른 생각을 용인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치며


지금은 우크라이나인 오데사 지역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러시아의 작가, 이사크 바벨은 “적절한 장소에 찍힌 마침표만큼 심장을 강하게 꿰뚫는 무기는 없다”고 했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의 심장을 꿰뚫는 종류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지금 이 자리에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프라임 레터의 마침표 말입니다. 대신 여러분께 주 5일 내내 포캐스트를 전해드립니다. 이제 매주 월요일 아침에도 현재 진행형의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스레드》의 창간, 포캐스트 개편, 뉴스레터 개편 등과 함께 북저널리즘의 월요일 아침도 반가운 변화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올여름, 북저널리즘의 변화를 지켜봐 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제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북저널리즘 신아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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