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섀도복싱

6월 14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화물연대와 정부의 협상이 결렬됐다. 이 시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민주노총 화물연대는 지난 6월 7일 총파업에 들어갔고 4차 교섭마저 결렬됐다.
  • 안전 운임제 일몰제 폐지, 적용 범위 확대, 유가연동제 실시, 지입제 단계적 폐지 등이 주요 쟁점이다.
  • 새 정부가 맞는 첫 대규모 파업에서 노·사·정의 합의점과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CONFLICT_ 물류 대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와 정부는 파업 전인 6월 2일 첫 교섭을 시작했다. 6월 7일 자정 화물연대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첫 교섭 8일째이자 파업 나흘째인 10일에 2차 교섭에 들어갔다. 11일에 3차 교섭, 12일에는 8시간 동안 4차 교섭에 들어갔다. 모두 결렬됐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구호다. 세상은 바뀐 것 없이 ‘그대로’ 멈췄다. 아래는 물류 대란 현상의 일부다. 파업이 장기화할수록 건설 및 산업 현장의 피해는 가중되고 후폭풍은 세진다. 정부는 이번 파업으로 인한 국내 산업계의 피해 규모를 1조 6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
 
  • 전국 12개 항만의 평균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6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 시멘트와 철근의 공급이 막혀 아파트 건설 현장이 멈췄다.
  •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13일 오전부터 선재·냉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ACTORS_ 4자

정책적 합의 도출만이 답이 아니다. 합의 주체가 명확해야 한다. 한반도의 핵을 둘러싼 외교 용어 차이를 보면 쉽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주장한다.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 합의 주체의 설정은 보증의 의미도 지닌다. 6자 회담은 요컨대 북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합의문에 여섯 나라가 같은 태도와 정책을 견지하겠다는 의미다.
 
  • 화물연대와 정부의 3차 교섭은 국토부·국민의힘·화물연대·화주단체(무역협회, 시멘트협회) 4자가 합의하는 형태의 '물류 산업 정상화를 위한 공동성명서'에 대한 교섭이었다. 요컨대 정부, 여당, 노동, 자본의 합의다.
 
  • 4차 교섭에 이르러 “안전 운임제 지속 추진 및 품목 확대에 대해 적극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는 최종안은 여당의 공동 성명 반대로 결렬됐다. 국토부는 화주까지 뺀 국토부-화물연대 간 공동 성명서 추진을 요구했다. 여당은 자본의 눈치를 보고 자본은 정부와 여당 뒤에 숨었다. 파업은 이어졌다.

RECIPE_ 코포라티즘

윤석열 대통령은 2차 교섭이 열린 10일 도어 스테핑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노사 문제”라고 발언했다. 윈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입장의 인식은 그보단 낫다. 협의 주체는 노사가 맞지만 정책적 사안이 핵심 쟁점이라 정부가 정책 당국으로서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링 위의 시합이 아니다. 경기 룰을 바꾸는 문제다. 자본과 노동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출발했다. 1960~70년 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벌어진 갈등은 ‘조합주의(Corporatism)’를 통해 조정됐다. 북저널리즘의 책 《기본소득 101》은 이를 이렇게 소개한다.

“노동자는 혁명을 포기하고 사업주는 이윤의 일부를 양보하여 노동자의 복지에 사용하는 협치의 제도,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다. 국가는 노와 사를 조정하고 사회 보험을 설계·운용하는 역할을 진다. 소위 ‘노사정 합의’ 모델인 것이다.”
REFERENCE_ 노사정위원회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인해 그 과실이 충분히 분배되기 전에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맞았다. 한국식 ‘노사정 협치 모델’에 대해서 노동계의 오랜 고민이 이어진 이유다. 국가 부도의 날,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 금융을 조건으로 대대적 구조조정과 노동 시장 유연성 제고, 고용 보험 제도의 강화를 요구했다. 1997년 외환 위기다. 그 뒤에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IMF의 이행 조건 실행을 위해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협약 기구를 설치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노동계는 당시를 한국 노동 운동 역량이 취약하고 조합 조직률이 낮으며 그마저도 분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노동 정당이 부재하고 정부 정책이 자본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자본과 노동이 위원회를 인식하는 관점도 달랐다. 자본은 국가의 시장 개입 기구로, 노동은 코포라티즘으로 봤다. 중심 없는 제도는 노조 길들이기로 활용됐다. 결국 민주노총은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2022년이다. 협치는 아직도 요원하다.
DEFINITION_ 특고

현대사의 노동 운동은 자본과 노동의 계급 갈등으로 특징지어진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이 구도를 무너뜨렸다. 대표적인 예가 화물연대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약칭 특고)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로 대표되는 플랫폼 노동자를 떠올리면 쉽다. 특고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저 임금이나 사회 보험, 단결권, 교섭권 등에서 빗겨나 있었다. 표준적 고용 관계도 아니고 화주에게 있어 파편화된 개별 업체나 다름없어 노조 조직이 어려웠는데 이를 민노총에서 2002년 당시 화물연대로 꾸렸다. 싸울 수 없으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안전운임제가 대두된 배경이다. 다행히 고용 보험도 지난 2021년 7월부터 시행됐다. 유가 상승이 몰아쳤고 다시 한 번 싸워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정부는 “불법 집단 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특고의 설움은 반복되고 화물연대는 다시 불법의 프레임 안에 갇혔다.
RISK_ 명분

화물연대의 시위가 정의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시위는 과격하기로 유명하다. 택배 노조의 사례처럼 노조 가담을 거부하는 비조합원의 차량을 파손하고 불 지르는 등 파업마다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업 4일 차인 6월 10일 기준으로 화물연대 조합원 중 34퍼센트가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간극을 크게 다룬다. 마치 프롤레타리아와 프레카리아트를 나누듯 조합원의 이권만을 생각하는 집단으로 그린다. 파업을 긍정하는 쪽에선 조합원의 투쟁으로 근무의 질이 나아졌다는 의견을 소개한다. 모두 사실이고 관점의 차이다. 중요한 건 여론이다. 보통 싸움을 거는 쪽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왜 엄한 사람이 희생해야 하냐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전장연 시위에서도 그랬다. ‘공익’의 내러티브는 화물연대의 명분을 쉽게 무력화한다.
ISSUE 1_ 안전운임제

쟁점을 따져보자.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는 쉽게 말해 B2B(기업 간 거래) 형태의 화물차주가 보장받을 수 있는 최저 임금과 같다. 운임의 평균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2020년에 3년 일몰제로 시행됐다. 일몰제는 일정 기간 정책을 운용한 후 자동으로 폐기되는 제도를 뜻한다. 2022년인 올해 말 종료다.
 
  • 화물연대는 이 제도가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 안전을 확보하는 제도라 설명한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의 주요 원인 1위가 졸음(42퍼센트), 2위가 주시태만(34퍼센트), 3위가 과속(8퍼센트)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정책 효과도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몰제 폐지와 더불어 품목 확대를 요구한다.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영속화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행 효과의 측정 때문에 일몰제로 일단 시행했다는 것인데 판데믹과 고유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 화주는 안전운임제로 운임이 30~40퍼센트 올랐다고 주장한다. 2017년 대비 단거리 콘테이너 ‘운송 요금’이 최대 42.6퍼센트 올랐다는 자료를 기반으로 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 자체만 따진 통계를 내세운다. 안전운임인상률은 시행 원년인 2020년에 12.5퍼센트 오른 이후 매년 2퍼센트 이하로 올랐다. 제대로 지켜지긴 했을까? JTBC의 보도에 따르면 별도로 입수한 ‘안전운임 최종 보고서’에서 최근 2년 동안 안전 운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단 신고가 2000건이 넘었고, 처벌 받은 사례는 단 한 건이었다.

ISSUE 2_ 유가 보조금

정부는 애초 유가 연동 보조금 인상을 카드로 꺼냈다. 화물연대 관계자가 밝힌 대형차량 기준 유류비 부담액은 월 250~350만 원 수준이다. 경유 1리터당 1750원 이상부터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월 30만 원이 채 안 되는 보조금이다. 유류세 인하가 유가 보조금을 덩달아 깎기도 했다. 안전운임제를 중단하고 유가 연동제를 조정하자는 정부의 애초 입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화물차 기사들은 최근 ‘요소수 대란’을 겪었고, 경윳값은 리터당 2070원에 육박하며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화물차가 전체 5퍼센트 남짓한 상황에서 모두를 위험한 배에 태우는 것보다 최저 임금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ISSUE 3_ 지입제

지입제 역시 오랜 논란이다. 이번 파업에서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화물연대의 창설과 관련이 깊은 이슈다. 쉽게 표현하자면 지입은 직영의 반대다. 운송 회사가 차를 저렴하게 불하해 개인 기사들이 화물 운송 시장에서 유상 운송할 수 있는 권한을 위탁받는 제도다. 제도만 보면 화물 운송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춘 제도 같기도, 특수고용직을 양산한 원흉 같기도 하다.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구교훈 회장과 화물연대 심동진 전략조직국장의 라디오에서 쉽게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요는 아래와 같다.
 
  • 1990년대까지 직영을 고수하던 많은 대형 운송사들이 경제 위기로 회사 차를 개인 불하하며 기사들을 내보냈다. 당시엔 운송량이 많아 위수탁 기사들이 돈을 훨씬 많이 벌었으나 2000년대 이후 물류 급감으로 오히려 화물 업계의 발목을 잡는 제도가 됐다.
 
  • 지입제는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제도로 현재 대만과 한국에만 있다. 사실상 차에 대한 권한이 모두 운송 사업자에게 있다. 매달 번호판 가격에 해당하는 비싼 지입료를 권리금 형태로 내야 하고 처분도 운송 사업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화물연대는 단계적 폐지를 주장한다.

INSIGHT_ 20년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정당한가? 그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고 그 피해는 어디로 누적되는가? 싸움을 회피하다 여론이 먼저 뭇매를 들게 하는 방식은 고전적 수법이다. 여론은 쉽게 끓고 식는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목소리도 어느덧 유가족을 힐난하는 목소리에 가려졌다. 결국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 같은 기관의 유권 해석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결론지어진다. 화물연대 역시 20년을 싸웠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여론의 응원과 지탄을 동시에 받았다. 그들의 구호에 따라 가까스로 바뀌어 가던 세상은 여지없이 탄성력을 보였다. 협의 대상들은 서로를 탓하며 폭탄 돌리기를 했고 뒤로는 여론 대응 매뉴얼을 준비했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섀도복싱이 됐다. 논의는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왔다. 화물연대는 자신들이 노조인가 아닌가, 자신들의 행위가 파업이냐 집단 운송 거부냐를 국제 노동기구(ILO)에 묻고자 한다. 20년을 외친 명분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노사정의 협치는 무너진채 이 싸움은 지난한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FORESIGHT_ 전선 확대

판데믹과 공급망 대란을 지나며 노동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은 노조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6월 7일에 열린 ILO 총회에서는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Safe and healthy working environment)’이 노동기본권에 포함했다. 국제적 상황은 이런데 한국은 세월이 지날수록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자유’라는 레토릭은 강해졌다. 시장 자율, 민간 주도, 법치주의와 같은 키워드는 각자의 맥락이 무시된 채 일정한 서사와 문맥으로 소비된다. 그리고 이는 ‘공정’의 가면을 쓰려 한다. 이번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파업의 장기화와 파업 전선의 확대를 예고한다. 노사 갈등이 발생하면 사측은 정부 뒤로, 정부는 의회 뒤로 숨고, 여야가 대치하는 가운데 파업 주체는 섀도복서가 되는, 그런 클리셰가 5년간 방영될 수 있다.


사회 복지와 노동에 대해 궁금하다면 《기본소득 101》 4화를 추천합니다.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과 함께 노동 운동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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