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홍수

6월 3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엔터계의 ESG 경영이 화제다. 음반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리는 음악 산업의 구조는 변할 수 있을까.

  •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음악 앨범과 이를 사재기하는 문화를 향한 비판이 잇따른다.
  • 소속사의 ESG 경영, 공연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그린 투어 등이 주목받고 있다. 
  • 팬덤 경제는 기후 위기 대응과 같은 세계적 의제의 해결책이 된다.

BACKGROUND_ ESG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ESG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 지난달 SM엔터테인먼트는 이사회에서 ‘ESG 실무 협의체’를 구성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보고서를 제작하는 등 ESG 전문성을 강화하겠단 계획을 밝혔다.
  • 지난 6월 16일 JYP엔터테인먼트가 엔터 업계 최초로 한국형 RE100[1]을 이행했다. JYP엔터 측이 재생 에너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루트에너지’와 협력해 전국 14개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인증서를 구매한 것이다.
  • 하이브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사외 이사로 환경재단 이미경 대표를 선임했다. 이 대표는 ESG 포럼을 주도하고, 탄소중립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한편 하이브 엔터는 지난해 11월, BTS의 NFT 발행 계획을 발표해 팬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반발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BTS를 지나치게 상업화한다는 것, 그리고 NFT 채굴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이었다.

DEFINITION_  음반
 
  • ESG 열풍에 가려진 것은 음반 마케팅의 빛과 어둠이다. 음반 판매는 엔터사 매출의 핵심이다. JYP 엔터 2021년 매출액의 58퍼센트는 음반 및 음원 수입이 차지한다. 하이브의 경우 매출액에서 ‘앨범(음반/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0퍼센트, 2021년 30퍼센트였다.
  •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 상위 400개의 국내 앨범의 국내외 판매량은 5708만 9160장에 육박했다. 전년 대비 37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 참고로 5708만 장 중 1500만 장은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몫이었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음반 판매량 또한 1000만 장을 넘었다. ‘스트리밍 시대’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앨범의 위력이 커지는 아이러니는 팬덤 문화에서 기인한다. 

CONFLICT_ 앨범깡

‘앨범깡’은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돌 문화가 발달한 K 팬덤의 특징이다. 포켓몬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스티커를 얻고자 편의점을 전전하며 포켓몬빵을 사들였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앨범 속 포장된 아티스트의 포토 카드나 팬 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한 명의 팬이 온오프라인 구매처를 막론하고 수십, 수백 장의 음반을 구매한다. “굿즈를 받기 위해 00를 구매한다”는 공식은 진부해진 지 오래고, 단기간 대량 매입한 앨범은 쉽게 소장 가치를 잃는다.
NUMBER_ 11.5

앨범깡이 아니라 한 장의 CD를 구매하더라도 다음 질문은 유효하다. 듣지 않는 앨범을 구매해야 하는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음악 이용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CD 등 음반을 통해 음악을 감상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11.5퍼센트에 그쳤다. CD, LP 등 앨범의 본질적인 가치에 던지는 질문이다.
EFFECT1_ 그린 앨범

음반이 자원 낭비라는 비판에 따라, 최근 엔터계는 친환경 재료로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 CD의 원재료는 폴리카보네이트, 흔히 ‘PC’라 불리는 플라스틱이다. 자연 분해되기까지 100만 년이 걸리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송민호는 3집 앨범 〈To Infinity〉에서 콩기름 잉크와 생분해 플라스틱 등 친환경 재료를 활용했다. MNH엔터테인먼트 소속 청하는 1집 〈Querencia〉의 포장재와 화보, 가사집 등을 재생 종이로 제작했다. IST엔터테인먼트의 에이핑크는 아예 플라스틱 CD를 제외하고 포토 카드만 담은 ‘플랫폼 앨범’으로 〈HORN〉을 발매했다. 실물 CD 대신 앨범 내 큐알 코드를 인식시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형태다.

EFFECT2_ 그린 투어

친환경적으로 기획·구성한 콘서트, 일명 ‘그린 투어’를 지향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빌리 아일리시는 2019년 환경 단체 리버브(Reverb)와 협업해 ‘웨얼 두 위 고(Where Do We Go)’ 콘서트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고, 급수 시설을 마련해 관중들이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도록 권장했다. 마룬파이브 또한 2019년도 콘서트에서 공연팀 이동 인원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무대 조명 장치를 이용하는 등 친환경적 방식을 지향했다. 그 결과 34일간의 투어 기간 동안 마룬파이브가 감축한 쓰레기 양은 9800리터에 달한다. 콘서트 폐기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속 가능한 공연 문화를 고민하는 것이 뉴노멀로 자리잡고 있다.

EFFECT3_ 그린 스트리밍

스트리밍 사이트와 같은 유통사에서도 움직임을 보인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멜론의 ‘숲;트리밍’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딴 숲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선택해 두면 매달 결제 금액의 2퍼센트가 적립된다. 해당 아티스트 앞으로 적립금이 2000만 원 누적되면 멜론은 이를 서울환경연합으로 기부해, 아티스트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할 예정이다.
RECIPE_ 팬덤

단단한 문화는 어떤 규제보다 파급력이 크다.  팬덤 문화는 한국적 특수성이 글로벌 보편성으로 이어진 기이한 현상이며, 기후 위기와 같은 세계적인 의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결속력을 부여한다.
  •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케이팝 팬들이 결성한 플랫폼이다. 지난 4월엔 하이브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BTS 노래에 춤추며 친환경 앨범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5월엔 팬들로부터 버려진 K팝 앨범 8000여 장을 모아 각 엔터사에 전달했다. 이들은 앨범 구매 시 친환경 선택지[2]가 주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환경 관련 메시지를 담고, 저탄소 공연을 기획할 것을 요구한다.
독특한 것은 이들의 행동이 엔터사의 변화 촉구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BTS 〈Butter〉 앨범 재킷 촬영지 삼척 맹방 해수욕장에 화력 발전소가 건설되는 것을 반대하는 ‘Save Butter Beach’ 청원을 직접 진행했다. 《브랜드의 브랜드》 이규탁 저자는 BTS의 성공 요인을 “팬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한 진정성 이미지 구축”이라고 분석했다. 아티스트와 팬덤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을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십의 구도로 가고 있다. 즉 케이팝포플래닛의 동력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함께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문화를 생산해 간다는 자부심이다.
INSIGHT_ 앨범의 무게

모든 분야에서 탈소비를 외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물질적 형태로 소유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음반만이 줄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음반을 구매하는 문화를 멸종시킬 까닭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을 ‘음악 아닌 것’의 끼워팔기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엔터사의 마케팅과, 그에 따라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이 앨범 사재기로 표출되는 경도된 팬덤 경제다. 음반의 첫 탄생은 낭비가 아닌 선물이었다. 모든 선물은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앨범 한 장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 자신이다.
FORESIGHT_ 키워드
 
  • 최근 가수 싸이의 여름 콘서트 ‘흠뻑쇼’가 논란이 됐다. 장기간 지속되는 가뭄 상황에서, 300톤이라는 방대한 양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금까지 엔터계는 친환경 논의의 성역이었다. 순간을 ‘즐기는(entertainment)’ 분야에서까지 지속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유난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가치를 사고파는 시대에선 기준이 달라졌다.
  • 앨범은 음악이라기보단 굿즈에 가깝다. 친필 사인, 포토 카드, 팬미팅 초대권이 포함되면서부터 음악 자체가 돈이 되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굿즈 전성기가 시작됐다. 앨범의 가치에 대한 질문은 이러한 굿즈 시대에 깊은 의문을 던진다. 플라스틱 CD를 향한 비판은 엔터 산업의 위기라기보단 새로운 아이템을 향한 제안이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는 국내 엔터사가 간과해 온 블루 오션이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키워드를 선점하는 것이 미래 엔터 산업의 경쟁력일 것이다.

오늘의 포캐스트는 《갈등하는 케이, 팝》, 《브랜드의 브랜드》, 〈덕후가 기술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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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생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100퍼센트 사용하고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확인서를 발급받는 제도다.
[2]
앨범 본품을 모두 받을지, 포토 카드만 받을지, 혹은 디지털 음원만 받을지를 선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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