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조건

7월 1일 - FORECAST

요즘 연애의 조건이 ‘정치성향’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실과 다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 한국의 데이팅 앱이 가입자들의 ‘정치 성향’을 묻고있다.
  • 그러나 2022년 현재, 현실 연애의 키워드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페미’이다.
  • 혐오를 줄이기 위해 합리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DEFINITION_ 뉴스

보수예요 진보예요? 2030 데이트 할 때 이 질문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어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데이팅 앱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묻는 현상은, 사실 ‘뉴스’가 아니다. 당연히 있어왔던 일일 뿐이다. 뉴스가 아닌 것이 뉴스가 된 이 현상은, 이른바 ‘MZ 세대’를 관찰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非MZ 세대’의, 다분히 관음증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뉴스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데이팅 앱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 연애의 지형도다. 2022년 현대, 현실의 연애는 진보인지 보수인지 묻지 않는다. ‘페미’인지 아닌지 묻는다.
BACKGROUND_ 혐오에의 공포

‘페미’인지 아닌지에 관한 질문은, 실은 상대방이 나와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극단에 위치한 사람은 아닌가 묻는 질문이다. 즉, 이 관계가 혐오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수많은 커뮤니티와 SNS의 범람으로 21세기의 첫 20년 동안 인류는 타인이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 그 다름이 어떻게 ‘혐오’로 정착되는지를 목격했다. 이를 얼마나 직접적으로 경험했느냐에 따라 관계를 시작할 때 혐오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한다. 그리고 2022년 현재, 그 혐오를 상징하는 단어는 ‘페미’이다.
CONFLICT_ 페미니즘 말고 페미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일은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일만큼이나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요한다. 모든 자본주의가 옳거나 그를 수 없는 것처럼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관 속에도 긍정과 부정, 온건과 과격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페미’라는 용어는 이제 언급하면 안 되는 ‘볼드모트’처럼 소비되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각종 커뮤니티에서 혐오의 근거로 간편하게 소비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에 걸맞은 양극단의 헤프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클릭 장사를 했다. 이제 ‘페미’는 페미니즘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극단주의를 상징할 뿐이다. 데이터는 젊을수록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대 남성의 경우 페미니즘 지지에 동의한다는 비율이 5.5퍼센트에 불과했지만 같은 연령대 여성의 경우 40.3퍼센트에 달했다.
RECIPE_ 가치관

물론 사람들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연애의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페미’라는 단어를 둘러싼 탐색 또한 다양할 수 있다. 직설적인 검증도 있으며 다양한 이슈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을 통해 에둘러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상대방이 나와 전혀 다른, 극단에 있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썸’ 이전에 확인하는 경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따라서 혐오하지 않고, 혐오 당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가치관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이를 데이팅 앱은 이미 충성하게 반영하고 있다. ‘튤립’은 관계, 가족, 커리어, 스타일, 신념 등 5가지 카테고리에 걸쳐 50개 정도의 질문에 답변해야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 한 기사가 소개한 것처럼 정치 성향만을 납작하게 묻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2위 데이팅 앱 자리를 꿰차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범블’의 핵심 전략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만남이다.
RISK_ 확증 편향

현실의 연애 역학을 고스란히 반영할 수밖에 없는 데이팅 앱이 증명하듯, 관계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 ‘가치관’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오프라인의 확증 편향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혐오를 피하려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전부를 피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관계만을 용인하다 보면 결국 다른 생각을 용인할 수 없게 된다. 생각의 골이 점점 깊어지다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에 관해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시점마다 주저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 사회적 비용을 우리는 이미 치르고 있다.
REFERENCE 1_ 투표의 향방

지난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청년층의 투표 성향은 ‘성별’에서 갈렸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65퍼센트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33%에 그쳤다. 반면 20대 여성의 경우 정반대였다. 67퍼센트가 민주당을, 30퍼센트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 성별에 따라 정치 성향이 정반대로 엇갈렸다. 이와 같은 경향은 이미 지난 5월 대선 당시 확연히 드러난 바 있다. 연령과 성별이라는 타고난 특성이 개인의 ‘입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KEYPLAYER_ 우울한 세대

나의 입장이 공고하다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들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는 시대라는 점이 문제다. 원래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요즘 세대로 관련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MZ 세대’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다분히 마케팅적으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경제학이나 사회학이 전 세계 청년에게 붙인 이름은 훨씬 우울하다. 우리의 N포 세대를 필두로 사토리 세대, 700유로 세대, 이케아 세대 등이 그것이다. 계층 이동성이 차단되거나 오히려 하향 이동성을 보이는 저성장 시대가 만들어낸 이름들이다. 꿈과 희망을 강요받지만,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 모두를 부르는 우울한 이름들이다. 기회가 드문 시대, 살아남기 위해 지칠 때까지 노력하다 보면 피아를 구분하게 된다. 나의 고단함이 누군가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REFERENCE 2_ 설거지론

결국, 혐오를 피해 ‘페미’여부를 검열하는 연애를 제자리로 돌릴 방법은 가혹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책임은 정치에도, 경제에도,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지워져 있다. 2021년, 일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설거지론’ 뒤에는 학력이 낮을수록 낮아지는 남성의 결혼 가능성이 있다. 2015년 기준, 30대 남성 중 배우자가 있는 비율을 보면 대학원 졸업자의 경우 71퍼센트에 달하지만, 중졸 이하의 경우 30퍼센트에 그친다. 학력과 계층이, 그리고 계층과 결혼이 연쇄적으로 엮이며 혐오를 낳게 되었다. 혐오의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는,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힘이다.
INSIGHT_ 피아구분

바야흐로 피아구분의 시대다. 국제 정치판도 세계화의 계절을 끝내고 편을 가르는 신냉전,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의 관계 맺기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내 편인지, 다른 편인지부터 확인하는 피아구분이 전제되지 않으면 관계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SNS를 엿보는 행위일 수도 있고, 페미 여부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은 같다. 사랑받기 이전에 미움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필요 없는 소모를 할 필요도, 여유도 업는 시대를 거울처럼 비춘다.
FORESIGHT_ 미움을 넘을 힘

미움을 넘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미래는 예정되어 있을까? 불행하게도 아직 그러한 미래는 안갯속이다.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체인 정부의 정책부터 미흡하기 때문이다. 노동과 가족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젠더의 역할은 급변했다. 노동 불안정과 가족 구성의 불확실성이라는 현실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젠더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이를 이용할 뿐,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고유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부의 성평등 정책은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린다. 합리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몫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결국, 우리는 내가 아닌 남과도 함께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연애를 넘어, 청년의 삶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면 《불안한 어른》을 추천합니다.
한국의 30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고민에 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