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도 리콜이 되나요?

7월 6일 - FORECAST

새로운 제도가 묻는다, 코인 투자는 도박인지 아닌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 ‘코인 빚투’ 손실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이 소식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며,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 ‘코로나 버블’ 붕괴 위험 신호가 깜빡이고 있지만, 미봉책으로는 사태를 키울 뿐이다.

BACKGROUND 1_ 서울회생법원

‘코인 빚투’에 면죄부를 준다는 소식에 SNS와 유튜브가 뜨겁다. 빚을 내서 코인하다 손해를 보면 그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각종 법무법인에서는 지금이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라는 식의 홍보성 동영상을 찍어내는 중이다. 사실일까? 어느정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이 이번 달부터 개인회생 신청자의 변제금 총액에 주식 및 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은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이다.
NUMBER_ 실무준칙 제408호

개인회생제도란 쉽게 말해서 심각할 정도로 큰 빚을 지게 되어 파탄에 직면한 개인을 대상으로 빚을 깎아주는 제도다. 재산과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해서 심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3년에서 5년간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만큼의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빚을 깎아준다. 물론 조건은 있다. 일정 소득이 있어서 향후 성실히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무한정 빚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담보가 있는 경우엔 15억 원, 담보가 없는 경우에는 10억 원 한도이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번 달부터 시행된 실무준칙 제408호다. 채무자가 주식 또는 가상화폐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금을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 계산 시 고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즉, 코인으로 손해를 본 만큼은 빚을 갚기 위해 처분할 재산으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CONFLICT_ 리스크의 책임

곧바로 특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자의 리스크를 왜 돈 빌려준 쪽이 떠안도록 하냐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자영업자의 회생 절차 장벽을 낮춰주는 것이 더 먼저 아니냐는 이의제기도 나온다. 법원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투자로 생긴 손실을 모두 탕감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등 다른 자산과 똑같은 평가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즉, 코인 가격이 폭락해서 투자금 1억 원을 넣었다가 천만 원이 되었으면, 현재 청산 가치는 1억 원이 아니라 천만 원이 맞다는 것이다.
BACKGROUND 2_ FEVER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코로나 버블’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년여간 팬데믹을 겪으며 전 세계는 유동성 잔치를 벌였고, 투자 시장은 뜻하지 않은 호황을 누렸다. 투자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빈곤해지는 이상 현상 속에서 20~30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 코인 FEVER ;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 신규로 계좌를 개설한 청년층이 급증했다. 2020년 4분기 전체 신규 가입자 34만여 명 가운데 12만여 명이 30대였고, 2021년 2분기에는 182만여 명의 2030이 코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 주식 FEVER ; 작년 상반기 기준 6개 주요 증권사의 신규 주식계좌 723만개 중 절반 이상이 20~30대의 계좌였고, 2030의 신용공여 잔액은 2019년 연말 대비 55퍼센트나 증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는 값비싼 대가를 예고하고 있다. 벼락부자를 꿈꾸며 투자에 나섰지만 영끌거지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 한국생명의전화에 따르면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올해 1~6월 한강 교량에서 상담 전화를 건 청년들은 전년 대비 8퍼센트 포인트 이상 급증했고, 20대의 개인회생 접수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본격적인 고금리 시대를 맞이하면서 코로나 버블이 빠른 속도로 터지고 있다.
REFERENCE_ 사건과 검색어

거품이 꺼지고 있다는 시그널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최근의 사건에서도 감지되었다. 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유나 양의 부모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실제로 가상화폐 관련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대장 코인들이 큰 폭으로 추락할 때 관련 검색량이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많이 찾아본 관련 검색어는 ‘가상화폐 전망’, ‘가상화폐 세금’, ‘가상화폐 거래소’, ‘가상화폐 규제’, ‘가상화폐 폭락’, ‘가상화폐 자살’ 순이었다.
DEFINITION_ 코인

코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는 별개로 우리 사회가 코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이며 누군가에는 ‘도박’이다. 사회의 기준대로 취업하고 돈을 모아 중산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보통의 삶은, 이제 어떻게 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신기루라는 생각이 코인 투자로 2030을 이끈다. 예전처럼 아끼고 모아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보통의 삶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상을 넘어서는 남다른 기회가 필요하다. 유동성 과잉의 기간 동안 ‘빚투’족에 코인이 기회였던 이유다. 그러나 거품이 터지면서 코인은 ‘도박’이라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RISK_ 패자 부활전의 비용

이러한 분위기가 이번 실무준칙 제408호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 원래 개인회생 절차에서 낭비나 도박, 그 밖의 사행행위에 대해서는 면책불허가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코인은 과연 과연 도박, 사행행위일까? 답은 개개인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팬데믹 기간 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다 빚을 지고, 힘들게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결정은 허무할 수 있다. 불공정의 이슈가 대두될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투자의 책임은 개인이 져야 마땅한데, 채권자가 손해를 보도록 하면서까지 패자 부활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또한 이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의 금융 위기에 불을 붙일 가능성도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은행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은행의 손실은 자연스럽게 고객들에게 전가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은행의 고객이다.
INSIGHT_ 두 개의 F

모두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시대, 자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투자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과잉 정보에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는 지금 대중의 마음속을 떠도는 두 개의 F를 자극한다. 바로 ‘FIRE족’과 ‘FOMO’다. 하나는 희망을, 하나는 불안을 상징하지만 결국 이 F들에 흔들리는 마음은 같다. 안정적인 삶을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다. 법원은 투자 실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을 구제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빚을 내서라도 자산시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감을 부추기는 신호로 곡해될 여지가 충분하다. 실패할 수 있는 사회는 추구되어야 할 명제지만, 과연 코인 투자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까.
FORESIGHT_ 나쁜 미래

팬데믹 기간 동안 불어난 청년층의 부채는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들의 몰락은 가장 생산성이 높은 연령층의 몰락을 의미하며 가뜩이나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을 우려하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의 거품을 떠받치는 미봉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리스크가 큰 투자에 뛰어드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지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양극화를 해결하고 성실한 삶이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주택 가격 폭등 앞에 답을 내놓지 못한 정부가 있었다. 주식 양도세 범위 축소와 증권거래세 인하,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 투자하는 이들만을 위한 정책에 집중하는 정부가 있다. 투자가 나쁜 것이 아니다. 투자를 강요하는 사회가 나쁘다.


우울감 등 쉽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MZ세대의 자산 현실에 관해서는 빚쟁이가 되어버린 MZ를 아시오?〉를 통해 깊이있는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