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은 나의 무기

7월 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Z세대가 오프라인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밈은 그들이 가진 무기다.

  • 〈미니언즈2〉 해외 개봉과 동시에 #gentleminions 챌린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 영국 극장을 중심으로 양복을 차려 입고 난동을 피우는 청소년 관람객들의 장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 Z세대가 오프라인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BACKGROUND_ 〈미니언즈2〉
  • Z세대가 온라인에만 있을 거란 건 착각이다. 기다림은 끝났다. Z세대는 오프라인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미니언즈 시리즈가 긴 공백을 깨고 북미에 먼저 개봉했다.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에만 1620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에 개봉한 역대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 대단한 오프닝 기록에도 영화보다 관객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0대들이 극중 악당을 꿈꾸는 등장인물 ‘그루’처럼 양복을 차려 입고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 도중 방방 뛰어오르거나 바나나[1]를 던지는 등 난동을 피우고 있다.
  • 국내 개봉은 7월 20일이다. 영화와 챌린지가 하나로 묶여 국내에 들어올지 관심이 모인다. 〈미니언즈2〉가 우리나라에 상륙하기에 앞서 외국 10대들의 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NUMBER_ 5년
  • 10대들의 기묘한 난동은 철저히 계획된 장난이다. 숏폼으로 공유되고 있다. 〈미니언즈2(Minions: The Rise of Gru)〉 개봉과 함께 틱톡에 #gentleminions 태그가 넘치고 있다. 영상에서 양복을 입은 10대들은 “5년의 기다림은 끝났다(The 5 year wait is over)”고 외치며 극장으로 향한다.
  • 더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에 따르면 〈미니언즈2〉 개봉 첫 주말 관객의 34퍼센트가 13~17세 청소년이다. 전작〈슈퍼배드3〉이 개봉한 2017년엔 8~12세에 해당하는 나이다. 〈미니언즈2〉는 예고편이 공개되고 개봉까지 2년이 걸렸다. 코로나 판데믹은 한창 밖에서 놓아야 할 세대를 온라인 공간에 묶어 두었다.
  • 그동안 Z세대는 보호자 없이 극장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부모님과 봤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친구’들과 같이 본다는 건 성장을 의미하기도 했다. “5년의 기다림은 끝났다”는 메시지가 중의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DEFINITION_ #gentleminions
Z세대는 극장에 온라인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갔다. 〈미니언즈2〉상영관에는 단체 양복을 맞춰 입은 청소년 관람객 무리가 주를 이룬다. 관련 영상은 #gentleminions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챌린지는 틱톡에서 시작됐다. 미국 틱토커 ‘Meme Zee’의 영상이다.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미니언즈2’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양복을 입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친다. 스트리밍이 디폴트인 Z세대에게 극장에 가는 건 이벤트다. 맥락 없는 이 영상이 제안한 건 이벤트에 특별함을 더해줄 요소였다.
ANALYSIS_ 방향의 전환
#gentleminions 챌린지는 숏폼으로 전개된다. Z세대는 왜 숏폼에 열광할까. 숏폼의 시작은 방향의 전환이었다. 오랫동안 영상의 기준은 가로였다. TV를 기준으로 영상값이 고정됐기 때문이다. 이후 PC가 보급되고 모바일이 등장해도 영상은 여전히 가로 방향이었다. 4:3이었던 표준 비율이 16:9로 바뀌기만 했다. 숏폼이 이를 바꿔놓았다. 틱톡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주목을 받은 것도 세로 화면이었다. 숏폼의 시작은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이었다. 화면 방향을 바꾼 숏폼은 영상 길이도 확 줄였다. 이는 Z세대의 문법과 닿아있다. Z세대에게 고정된 관념은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 방향의 전환, 다시 말해 발상의 전환에 Z세대는 열광했다.
KEYPLAYER_ 틱톡
Z세대는 틱톡을 론칭 2년 만에 유니콘 기업에 올려놓았다. 틱톡의 성공을 기점으로 많은 숏폼 플랫폼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의 ‘릴스’가 있다. 하지만 두 플랫폼은 접근부터 달랐다. 콘텐츠 마케팅 인사이트 2022 컨퍼런스에서 모두 ‘발견’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지만 릴스는 ‘발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로 릴스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안정적인 기반 위에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틱톡은 ‘발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저가 재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낮췄다. 다른 유저 영상을 이어찍거나 재가공해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틱톡은 재미를 놓아두었고, Z세대는 이를 발견했다.
RECIPE_ 복제와 스토리텔링
Z세대에게 뛰어난 원본은 중요하지 않다. Z세대에게 재미는 누가 얼마나 더 잘 재가공하느냐를 겨루는 문제가 됐다. 복제와 스토리텔링은 밈의 핵심이다. 여기서 ‘발견하길 바란다’는 틱톡의 말이 의미심장해진다. 틱톡이 제시한 재미의 공식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복제와 스토리텔링은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본능이다.
  • 복제; 우리가 알고 있는 밈(Meme)이란 단어는 진화생물학에서 기원했다. 모방이라는 뜻의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라는 뜻의 진(Gene)이 합쳐진 말이다. 모방되어 전달되는 문화적 유전자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전달되기 위해서 무한 자기복제를 거치는 과정이 온라인 콘텐츠 전달방식과 닮아있다.
  • 스토리텔링; 밈은 온라인을 통한 놀이지만, 그 기반은 전통적 방식과 다르지 않다. 놀이란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합의한 규칙에 따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몰입하는 행위다. 밈은 자기복제 과정에서 스토리를 품는다. 합의된 스토리는 공감을 낳는다. <이야기의 기원>의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는 스토리텔링이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났다고 말한다. 끊임 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는 건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다.

REFERENCE_ 버니 샌더스와 정세균
  • 지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별안간 신 스틸러가 됐다. 각계 고위 인사들이 총출동한 취임식에 샌더스는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손뜨개 장갑을 끼고 다소 불만스럽게 앉아 있는 사진은 온라인 상에서 여기저기로 복제되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사랑의 김장 담가주기’ 사진에 샌더스를 편집한 밈을 국내에 공유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복제된 샌더스 밈엔 스토리가 쌓였다. WP는 샌더스 밈을 두고 "세계가 코로나 판데믹으로 경제·사회적 분열을 겪으며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누리꾼들이 샌더스 의원의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에 정치인과 정치 체제에 대한 반감을 투영한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 그런가 하면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정세균 전 총리는 틱톡 영상으로 곤혹을 겪었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캐나다 퀘벡주 정부 기획의 ‘레스트페페’ 계정에 올라온 영상의 구도와 비슷하다는 지적에 표절 논란까지 불거졌다. 재가공이라는 틱톡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서의 문제제기였다. 하지만 이 마저도 스토리가 되어 틱톡 세대의 밈이 되었다.

STRATEGY_ 전유
재가공의 문화에 익숙한 Z세대가 재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택한 건 전유(appropriation)다. 문화연구에서 전유는 특정 문화자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콘텐츠가 가진 맥락을 변경함으로써 다른 의미를 덧씌운다. 중요한 건 원본에 적대적인 형태로 재가공한다는 점이다. 전유는 주로 맥락을 전복함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에 대상이 권위적이면 권위적일수록 효과가 크다. Z세대에겐 샌더스 밈을 둘러싼 WP의 ‘장황한’ 해설이, 정세균 전 총리의 틱톡 영상을 향한 ‘진지한’ 문제제기가 재미 요소가 된다. 조금이나마 권위가 엿보이면 전유의 대상이 된다.
RISK_ 또래효과
#gentleminions 챌린지의 주체가 되는 연령은 13~17세다. 또래효과(peer pressure)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강할 때다. 또래효과는 때때로 과잉된 열광을 낳기도 한다. #gentleminions 챌린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다. 양복을 입은 일부 청소년 관람객들의 난동으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극장도 있다. 영국의 한 극장은 양복 입은 단체 청소년 관람객의 입장을 제한했다. 몇 극장은 〈미니언즈2〉상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Z세대의 주된 SNS 이용동기 중 하나는 소외감이다. ‘친구들이 하니 나도 해야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압박은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크게 느껴진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만날 수 있는 초연결 시대지만, 연대의 감각은 느슨하기 때문이다. 느슨한 관계는 쉽게 소외감에 대한 불안을 불러온다. 집단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 이면에 있는 문제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INSIGHT_ 알고리즘 네트워크
코로나 판데믹으로 집 문이 닫혀 있는 동안, 또래 문화를 형성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동네에서 만나 재미를 공유하고 문화를 나누던 시대는 지났다. Z세대는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동네라는 같은 공간이 아닌 #해시태그라는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다. 알고리즘을 중심으로 모인 세대는 폐쇄적이다. 관심사가 다르면 아예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밖에서 보면 맥락이 없어 보이는 상황도 알고리즘 안에선 당위성을 가진다. 〈미니언즈2〉상영관에 양복 입고 나타난 모습이 뜬금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Z세대에겐 그들의 알고리즘 안에서 서서히 형성된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FORESIGHT_ 밈이라는 무기
Z세대에게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건’ 없다. 권위도 언제든 전복시켜 버리는 Z세대다. 양복 입은 관람객에 대한 입장 제한 조치 후, #gentleminions 챌린지는 더 거세졌다. 영화관에 붙은 입장 제한 안내문을 찍어 올리고, “우리를 막을 수 없다”며 평상복 안에 양복을 갖춰 입고 영화관으로 향한다. 자리에 앉아 평상복을 벗어 버린다. 양복을 입은 채 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미니언즈들을 바라본다. 어떤 상황도 밈화한다. 이것이 Z세대가 문화를 누리는 방식이다. 가장 큰 아이러니가 여기서 발생한다. 권위를 우습게 만드는 힘이 그들이 앞으로 가질 권력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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