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 세 가지 종교

7월 1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아베 전 총리가 사망했다. 그의 정치인생 뒤에 숨겨진 종교가 향후 한일 관계를 풀어갈 힌트가 된다.

  • 2010년대 이후 한결같이 우회전을 거듭하던 일본 정치에 사건이 발생했다.
  •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의 정치 인생에는 세 가지 종교가 있었다.
  • 향후 한일관계의 열쇠를 쥔 기시다 총리를 흔들게 될 것도 바로 이들 종교다.

RISK_ 통일교

아베 신조의 정치 인생을 좌지우지 했던 세 가지 종교 중 그 첫 번째는 통일교다. 정책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의 범행 동기다. 현재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일본의 온라인 매체 《현대비지니스》의 단독 보도를 시작으로 야마가미 용의자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심취해 재산을 헌납하기 시작했고,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야마가미는 아베 전 총리가 해당 종교가 일본에서 확산하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통일교와 아베 전 총리 사이의 관계성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전 총리의 롤모델이자 외조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1970년 통일교회를 방문하게 되고, 이후 당시 통일교와 관련이 깊은 반공단체, ‘일본 국제승공연합’과 자민당이 손을 잡게 되었다. 자금과 조직을 가진 통일교 세력은 자민당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CBS의 지난 2017년 보도에 따르면 신도들에게 자민당에 투표할 것을 요구하는 노골적인 지시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 한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회) 일본교회 회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격 사건 용의자에 대해 “가정연합에 속한 신자가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교회 신자로서 한 달에 한 번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또, 아베 전 총리에 관해서도 “통일교 신자로 등록한 바 없고 고문으로 일한 적도 없다”고 확인했다.

DEFENITION_ 신도

두번째는 바로 일본의 토착 종교가 발전한 형태, ‘신도’다. 2010년대 이후 일본 정치를 사실상 장악해 온 아베 신조라는 거물급 정치인에게 아마도 가장 중요했던 종교일 것이다. 우리가 일본 여행을 갔다가 발견하게 되는 신사가 바로 이 신도의 사찰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는 신도의 전성기는 사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국주의 시절이었다. 열병 같았던 국가주의와 신도가 결합해 국가신도로 발전했고, 이는 일왕의 신격화를 추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신이 통치하는 국가는 이성을 잃고 만다. 어뢰에 스스로 몸을 싣고 잠수함 폭침에 나서고, 폭탄을 실은 전투기를 몰고 적진에 추락한다.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인간성도 쉽게 포기한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에 합리화된다. 신도는 20세기 전반, 일본을 움직이는 통치 권력 그 자체였다. 그러나 끝이 왔다. 패전과 함께 일왕의 ‘인간 선언’으로 신도는 정치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신도가 다시 한번 정치를 꿈꾸게 된다.
BACKGROUND_ 일본회의

1997년에 결성된 ‘일본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신도를 중심으로 한 우익 종교단체, 그리고 문화계의 우익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가 통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97년 당시 아베 신조는 정치에 입문한 초년생이었다. 젊은 아베 신조를 우리가 아는 우경화의 기수로서 키워낸 산실이 바로 일본회의다. 그렇다면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시절, 신도가 국가의 중심이었던 그 시절의 강한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기본 강령 중 주요 네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국민통합의 중심인 황실을 존경하고, 동포애를 함양한다 ; 일왕의 신격화로 강력한 국가주의를 이루었던 메이지 유신 및 그 이후의 시기로 복귀하겠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천황제의 부활이다. 현재 일본 헌법에 따르면 일왕은 국민통합의 상징일 뿐 그 외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 우리나라 본래 특색에 바탕을 둔 ‘신헌법’ 제정을 추진한다 ; 강력했던 군국주의 시기로의 회귀를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적이다.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에는 일본 스스로 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어있다. 공격할 수 있는 자위대로 나아가겠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 독립군의 주권과 명예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도모하는 정치 실현에 이바지한다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 즉 A급 전범들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이들의 명예를 지켜야 남겨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외교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지속했던 이유다.
  • 교육에 일본의 전통적 감성을 되찾아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지닌 청소년을 육성한다 ; 이를 실천해 낸 것이 바로 아베 내각에서 통과된 ‘교육기본법’이다. 역사 왜곡 교과서의 근간이 되는 법이다. 이 법은 2006년, 아베 1차 내각에서 통과되었다.

STRATEGY_ 새로운 역사

극우 세력에게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었다. 동아시아를 외세로부터 지키고 해방하기 위한 ‘해방 전쟁’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일본은 그러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그것은 범죄일 뿐이었다. 그러나 범죄를 범죄라고 이야기해서는 강한 일본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편리한 도구가 바로 ‘역사수정주의’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직접 몸담았던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축이 되어 역사왜곡 교육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다. 2017년 터진 ‘사학 스캔들’에서는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씨가 명예 교장으로 있던 극우성향의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 소속의 츠카모토 유치원이 욱일기를 걸고 원생들에게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고, ‘기미가요’를 부르게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회의의 강령에 따라 역사 왜곡에 지치지 않고 매진한 아베의 노력은 결실을 맺는다. 새로운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일본의 젊은 유권자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청년 세대가 ‘우향우’하고 있다.
RECIPE_ 파벌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 것이 바로 지난 2021년 11월 일본 중의원 (하원) 선거 결과였다. 가장 주목받았던 지점이 바로 극우 정당인 ‘일본 유신회’의 돌풍이었던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지지를 받았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극단적인 정치 행보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향한 개헌 드라이브는 바로 신도를 베이스로 하는 일본회의의 힘과 함께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의 청년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자민당 내부에서 극단적인 정치 행보를 견제해 왔던 ‘파벌’ 정치도 그 영향력을 더 급격히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파벌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자민당 내부의 다당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각 파벌의 정치적 방향성이 힘을 갖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아베와는 전혀 다른, 비둘기파에 속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두고도 3차 아베 괴뢰 정권이라는 비아냥이 날아들 수밖에 없었다.
KEYPLAYER_ 기시다 후미오

사실, 현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의 대표적인 온건 보수 파벌 코치카이(宏池会, 굉지회)의 회장이다. 아베 전 총리의 극우적 성향과는 결이 다르다. 2000년대 이후 자민당 내에서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졌지만, 코치카이는 자민당 파벌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파벌이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가 그런 자신의 파벌 성향을 제대로 드러낸 일은 없다. 오히려 아베 정권의 외무상으로서 2015년 당시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로 우리에게는 각인되어있는 인물이다. 아베라는 강력한 존재가 없어진 지금, 기시다는 드디어 자기 정치를 하게 될까? 그럴 것이라는 전망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 아베는 없지만 일본회의는 건재하다. 기시다도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회원이다. 아베가 사라졌다고 기시다를 흔들 존재가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 돈과 표를 쥐고 있는 일본회의의 영향력에서, 그리고 일본회의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파벌의 입김에서 기시다라는 정치인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세 번째 종교가 등장한다.
CONFLICT_ 창가학회

바로 창가학회다. 우리나라에도 SGI(Soka Gakkai International)라는 이름으로 포교를 진행 중인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다. 이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당이 바로 공명당이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을 이루어 국회 과반을 점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명당이 자민당 파벌은 이미 상실한, 극우 견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교분리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공명당이 내세우는 불교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반전이나 평화, 복지 등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명당은 자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지만,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민당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특히 지난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합하지 않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고이케 유리코 지사와 연합해 당선까지 성공시켰다. 고이케 지사는 사사건건 아베 정부와 충돌을 빚어온 대표적인 안티 아베 세력이다. 개헌 문제에 있어서도 공명당은 아베 신조의 발목을 잡았다.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의 개헌 세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개헌 가능선을 넘겼지만, 공명당의 브레이크로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는 수준으로 개헌안이 이미 정리된 것이다. 군대를 보유하며 교전권을 가진 보통 국가로 변모하고자 했던 2012년의 자민당 개헌 초안에 비해 다분히 온건한 수준이다.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입장에서는 이 또한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한 변모다.
INSIGHT_ 종교와 정치

정치와 종교의 만남이야말로 지극히 세속적이고 속물적이다. 정치는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종교는 자금과 조직표를 동원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렇게 서로에게 수단일 뿐인 둘의 만남에는 정치적 이념도, 종교적 신념도 중요치 않다. 아베 신조라는 일본의 정치 거물의 정치 여정은 종교로 시작해서 종교로 끝났다. 신도를 중심으로 한 극우 단체 일본회의가 아베 신조라는 정치 초년생을 키워냈고,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한 공명당의 존재가 자민당에 과반 여당이라는 힘을 부여함과 동시에 극우 정책을 견제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에도, 종교가 있었다.
FORESIGHT_ 두 개의 종교

지난 일요일 일본에서 치러진 참의원 선거는 125석을 새로 뽑는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 76석을 가져가는,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사건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는 기시다 현 총리의 시간이다. 다음 선거까지 3년을 벌었다. 다만, 2015년 당시의 위안부 합의는 기시다 총리에게 커다란 정치적 위기가 된 바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볼 때 현재 한일 관계에 있어 핵심이 되고 있는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 배상 문제에도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비둘기파이다. 주변국과 굳이 분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꼬여있는 한일 관계에 변곡점을 만들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 뒤에도 일본회의와 공명당이 있다. 신도와 창가학회라는, 두 종교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상대의 선의를 가정하고 대화를 시작할 수는 없다. 일본 정치판의 흐름에 먼저 주목해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챕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이유다.


한일 관계의 지난 이야기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사도광산 트리거〉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