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가둔 병
3화

정신 의학의 희망과 절망

증상이 진단이 되는 현실


정신적 어려움으로 정신과를 방문하면 누구나 자신의 ‘진단명’을 알고 싶어 한다. 모든 의료적 접근은 정확한 진단으로부터 출발한다. 진단이 명확해야 그에 따른 치료 방법이나 예후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 증상에 대한 일반적인 치료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먼저 환자를 대상으로 문진을 한다.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언제부터 증상이 나타났는지, 증상을 유발할 만한 특정 원인이나 사건은 없는지 확인한다. 그다음은 검사가 이루어진다. 혈액 검사, X-ray, CT, MRI, 그리고 조직 검사까지 하고 나면,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생물학적 증거들에 근거해 진단을 내린다. 어떠한 병인지 판단하면 그에 따라 치료 방법이 결정되는 식이다.

정신과 치료는 어떻게 이뤄질까?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의사는 문진을 한다. 무엇이 힘든지, 언제부터, 어떻게, 그리고 어떤 요인으로 증상이 나타나는지 환자에게 질문한다. 만약 환자가 적절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가족과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얻는다. 주변인이나 가족이 보고, 경험한 것을 통해 판단을 내린다. 그다음은 검사다. 다만 정신과에서의 검사는 대부분 환자의 자기 보고식 검사다. 가장 널리 쓰이는 심리검사는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 MMPI)’로, 총 567개의 문항에 환자가 응답한다. 신체적 검사도 이루어지지만 이는 대부분 파킨슨증, 뇌전증 같은 신경과적 질병을 파악하거나, 갑상선 질환과 같이 정신과적 증상과 유사한 신체적 질병을 감별하기 위한 목적이다. 필요하다면 입원을 통해 직접 환자의 증상을 관찰하기도 한다. 정신과의 진단은 환자와 가족이 제공하는 정보와 의사의 임상적 관찰과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고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환자나 가족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좌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정신과적 진단에 대한 오랜 비판으로 이어진다. 정신과적 증상에 대한 정의와 진단을 위한 다양한 노력은 있었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로 대표되는 정신 분석적 접근과 생물·의학적 접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재 상용되는 의학적 기준은 이러한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정신과 질환의 원인이 생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분석적, 심리적 접근들은 배척한 채 의학적인 기준을 세운 셈이다. 정신과 진단의 세계적인 표준은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 APA)에서 개발한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nual of Mental Disorders · DSM)’이다.

1952년 발표된 첫 버전 이후로 2013년, 다섯 번째 버전이 출판됐다. DSM의 가장 큰 특징은 비이론적(atheoretical)이고 기술적인(descriptive) 접근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즉, 원인은 배제한 채 증상에 대한 전형적인 특성에 근거해 진단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울의 원인이 과거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든, 부정적 사고 패턴의 인지적 오류 때문이든, 오랜 실직으로 인한 것이든 상관이 없다. 2주 이상 일상생활의 기능을 손상시킬 정도의 우울한 기분이나 즐거움의 상실이 있다면 ‘우울’로 진단된다.

서구에서는 DSM-5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미국정신의학협회의 행정관 러네이 가핑클(Renee Garfinkel)은 DSM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보여준 사고의 빈곤은 놀라울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피학성(Masochistic)을 성격장애로 포함시키는 문제에 관한 회의에서 한 유력 정신 의학자에게 개념 정의를 요청하자 “음, 그러니까, 불평이 많고… 딱 유대인 어머니 타입이죠.”라고 대답했다. 많은 정신 의학자들이 DSM의 의사 결정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1] 이러한 방식의 정신과 진단은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불안 신경증에서 광장 공포증, 특정 공포증으로, 다시 사회 불안 장애로 진단명은 늘어 갔다. 하지만 이들 진단명 간의 의학적인 구분, 그에 따른 치료의 차이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와 같이 정신과 진단이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이 여전히 ‘뇌의 병’으로, 또 정신 의학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정신과 약물의 개발 때문이다.

 

정신 약물의 탄생


1952년 1월 19일, 프랑스 발 드 그라스 군(軍)병원의 신경정신과 과장 조제프 아몽(Joseph Hamon) 대령과 의사 두 명은 심각한 조증으로 입원한 24세 조증 환자 자크에게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이라는 약물을 투여했다. 자크는 그간 몇 차례나 발 드 그라스에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일명 ‘회전문’ 환자였다. 회복할 가망이 없어 보였던 이 환자는 20일 동안 클로르프로마진 총 855밀리그램을 투약 받은 후 발 드 그라스 의료진에게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2] 머리에 화분을 뒤집어쓰고, 명왕성에게서 자유를 빼앗겼다고 두서없이 열변을 토하던 자크에게 정상적인 삶을 안겨주었던 클로르프로마진은 1954년 미국에서 ‘소라진(thorazine)’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등장했다. 소라진은 정신 질환의 치료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송곳으로 전두엽을 잘라내던 전두엽 절제술, 호흡기 자극제로 사용되던 ‘메트라졸(Metrazol)’로 조현병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발작을 유도하던 메트라졸 경련요법 등이 사라졌으며, 쇠사슬과 구속복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환자를 통제하던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정신 병원 입원 환자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라진이 정신 병원의 문을 열어젖히던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소라진이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서 조현병을 치료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비밀은 1957년에 영국 런웰 병원의 연구원 캐슬린 몬터규(Kathleen Montagu)가 인간의 뇌에 도파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이어 스웨덴의 신경 약리학자인 아르비드 칼손(Arvid Carlsson)이 도파민(dopamine)이 신경 전달 물질임을 증명[3]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후 정신 약리학은 정신 질환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 전달 물질을 발견하고, 이들이 뇌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뇌의 언어라 불리는 신경 전달 물질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정신과 약’의 탄생이었다.

‘화학적 불균형 이론’은 도파민, 세로토닌(serotonin), 가바(gaba) 등 뇌 속에 있는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조현증이나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즉, 몸의 생화학적 이상이 정신 이상의 본질이라고 판단한다. 치료와 개입의 대상은 정신이 아닌 몸이라고 보는데, 이를 ‘생물 정신 의학’이라고 한다. 소라진 등장 이후, 정신 의학과 정신과 치료는 정신 질환을 신체 질환의 한 분야로 재구성했다. 이를 통해 정신 질환을 과학적으로 치료하는 정신 의학의 독점적 지위와 경제적 이득을 획득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약물 처방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제약 회사의 막대한 투자,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성찰하기보다는 물과 함께 알약 몇 개를 삼키는 것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소비자의 열망도 크게 한몫 했다.

자크가 현대적 의미의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퇴원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 조현병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정신 질환은 약물 치료를 기반으로 한다. 정신 질환에 있어 약물 복용은 치료뿐 아니라 사회적 개입의 목적이자 목표가 됐다. 약물 출현 이후 오늘날의 치료 경과는 어떨까?

미국의 정신 의학자이자 치료 옹호 센터(Treatment Advocacy Center · TAC)의 창립자인 E. 풀러 토리(E. Fuller Torrey)는 최근까지의 조현병 경과 연구를 종합해 조현병을 앓은 환자의 치료 10년 후와 30년 후의 경과를 《조현병의 모든 것》에서 밝히고 있다.[4] 조현병 치료로부터 10년과 30년의 경과를 보면 대략 과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완전히 회복하거나 상당히 개선돼 비교적 독립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10년보다 30년 후의 경과가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노화 덕분인데, 노화가 신경 전달 물질의 과활성화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E. 풀러 토리, 《조현병의 모든 것》
이런 경과는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조현병이 황폐해진 삶을 살다가 이른 죽음을 맞는 불치병으로 인식됐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런 변화의 상당 부분이 정신 약물 덕분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완전한 회복을 이루지 못하는 75퍼센트의 사람들이다.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 의학은 이들에게 완치를 약속하지 못하며, 15퍼센트에 이르는 사람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왜 4분의 3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치료는 부족하거나 무기력한 것일까?

 

정신 의학의 그림자


인체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흐름이 필요하다. 신경계에서의 신호 전달은 전기적 신경 전달과 화학적 신호 전달이 있다. 전기로 된 신경 신호가 신경 말단에 도달하면 신경 전달 물질이 유리되어 다음 세포에 도달하고, 이를 통해 정보가 전달된다. 생물 정신 의학은 정신 질환의 본질이 우리 몸, 그중에서도 뇌 속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의 결과라고 본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발견된 1950년대를 지나면서 신경 세포들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 물질인 신경 전달 물질이 정신 질환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루트라고 인식됐다.

1980년대까지는 하나의 신경 전달 물질이 하나의 질병과 연관된다는 1:1 이론이 강세를 보였다. 예를 들면 도파민 과잉이 조현병을 초래하고, 항정신병 약물은 도파민을 차단함으로써 효과를 낸다는 도파민 가설이 널리 퍼졌다. 안타깝게도 지난 40년 동안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더 최근에 나온 일부 항정신병 약물은 도파민을 차단하지 않고도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 인간의 뇌에 작동하는 신경 전달 물질은 100가지가 넘는다. 모든 신경 전달 물질은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기능한다. 조현병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도파민은 최소 일 억 년 전부터 생체 기능 조절 물질로 작용했다. 개체 발생 과정에서도 배아기 뇌에서 가장 먼저 발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다. 도파민은 가장 원초적인 생명 유지부터 동기화된 행동, 학습, 주의력과 기억, 의식과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뇌의 광범위한 기능에 관여한다. 만약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될 경우 뇌의 기능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데,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 각성 수준이나 탐색 활동을 증가시킨다.[5] 도파민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해 내는 것과 같이 무작위적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데 관여한다.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아낼 수 있고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한다.[6] 하지만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 조현병에서는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 환청, 환시 등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파민은 조현병 외에도 중독, 주의력 결핍, 스트레스 반응, 강박, 조증 등 다양한 진단 혹은 증상과도 관련이 있다. 조현병 환자에게 도파민 이상이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이상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전(機轉)으로 증상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과연 질병 과정의 원인인지 혹은 결과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7]

정신과 약물에 대한 제한된 근거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단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상황이며 정신과 약물의 사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는 제약 회사의 영향력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제약 회사들은 정신 의학 연구에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메사추세츠대학의 연구팀은 DSM에 새로운 진단명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연구진과 제약 회사 간에 발생하는 이해 충돌을 조사했다. 조사된 정신 질환은 사별과 관련된 우울증, 폭식 장애, 파괴적 기분조절부전장애, 월경전불쾌감 등이다. 이들의 진단은 신뢰도와 타당도에 문제 제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단을 과도하게 늘린다는 ‘진단 인플레이션(diagnostic inflation)’의 우려도 있었다. 연구 결과 13개의 약물 실험 중 12개에서 DSM 의사 결정 연구자와 제약 회사들 간의 재정적인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의 실험 대상은 특허가 만료되거나 2년 이내에 만료될 예정인 의약물이었다. 제약 회사는 새로운 진단을 만들어 내고 이를 치료하는 약물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함으로써 적어도 1년 동안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정신 의학, 절대적 권력


정신과 진단과 약물 치료가 가진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만드는 권력은 강력하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정신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진단은 치료적 개입의 근거가 될 뿐 아니라, 장애 등록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나쁜 행위를 아픈 행위로 바꿔줌으로써 교도소에서 처벌받을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정신 의학의 여전한 과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데 있다. 정신과 의사가 내리는 조현병이나 양극성 기분 장애라는 진단은 일종의 사회적 선언이 되어 환자의 삶을 규정한다. 잠재적 정신 질환자에서 공식적 정신 질환자로 신분이 전환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통해 정신 질환으로 규정되면, 그때부터 그 고통에 담긴 개인의 서사는 사라지고 ‘증상’에 대한 전문가의 치료가 시작된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영주(가명) 씨는 친구들이 수군거리고 놀리는 소리가 어느 순간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환청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신과를 찾았고 의사는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영주 씨는 자신이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학교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정신과 의사가 깊이 있는 상담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의사는 약물 치료를 통해 환청이 줄어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의사는 그 소리가 가지는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조울증 당사자로서 정신 질환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 ‘리단’은 의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상처가 아니라, 내 생활에 방해가 되는 증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정신과를 처음 찾는 초심자에게 정신과 상담은 약물 치료를 위한 상담이지 심리 상담이 아님을 조언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의사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의사의 말들에 나를 돌아보기보다 바뀐 약물이 주는 느낌을 조목조목 기록하는 편이 낫다.”[8]

정신과 진단을 받고 나면, 치료는 전문가의 권위에 종속되고, 환자는 치료에 순응해야 한다. 외과 수술과 같이 환자의 수동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신체 질환과 달리 정신 질환은 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증상을 인지하는 것도,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는 것도, 그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결국 환자의 역할이다. 모든 약이 그렇듯이 정신과 약물도 부작용이 따른다. 가볍게는 입 마름, 변비에서부터 하루 종일 졸리고 몸이 가라앉는 진정 작용, 성기능 장애, 그리고 틱 증상과 유사하게 얼굴 근육이 불수의적으로 움직이는 지연성 운동 장애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부작용도 있다. 치료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작용이 당사자에게는 증상만큼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환자는 약을 먹어 증상이 나아진다고 해도, 부작용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 약을 끊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의 종류와 용량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약에 대한 반응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환자 당사자가 치료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약물을 강요하거나, 당연한 감정도 약으로 통제하는 것은 정신 질환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 치료는 절대적이다.

정신 질환을 의료적 치료로만 접근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강제적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을 강제적으로 구금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정신 질환이 있을 때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이 장애로 인한 강제 구금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가 정신 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 제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진국일수록 강제 입원의 기준과 절차가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정신 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의 판단을 법원이 내리도록 되어 있으며 호주 등의 국가는 준사법 기관인 정신건강심판원을 두고 있다. 정신 질환으로 인해 자타해의 위험이 있는 경우 (준)사법적 절차를 통해 강제 입원을 진행한다. 입원 기간도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 이내로 최소화하고 있다.

강제 입원의 경우 정신과 의사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대부분 민간 의료 기관에 소속된 의사들이 병원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서구의 강제 입원율은 영국 13.5퍼센트, 이탈리아 12퍼센트, 독일 17퍼센트 등으로 나타난다. OECD 국가들이 대부분 10퍼센트 대인데 반해 한국은 32.1퍼센트로 두 배 가까이 된다. 한 개인을 강제로 구금할 수 있는 권력이 정신과 의사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은 어쩌다 생존자가 되었나


강제 입원한 환자에게는 강제적 약물 치료, 사지 결박, 안정실 감금, 통신 제한 등의 제약적 조치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2016년 4월, 20대 남성이 알코올 중독으로 영등포 소재의 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병원의 알코올 솜을 몰래 훔쳐 알코올을 짜내 섭취하자 의사는 간호사에게 전화로 결박을 지시했다. 환자는 양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인 채 11시간 동안 구속 상태에 놓였다. 가까스로 몸부림을 쳐 스스로 탈출했지만 이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이상 반응을 보였다. 의료진은 환자에 대해 심장 마사지와 심폐 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시행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통상 입원 환자들은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특히 정신 질환 약물 투여자는 장시간 움직이지 못하면 혈액이 굳어 혈류 정체와 과응고 상태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강박 조치를 하더라도 한 시간마다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두 시간 마다 팔다리를 움직여줘야 한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고 업무상 주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업무상 과실 치사 협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업무 소홀과 사망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9] 2020년에도 경남 합천의 한 정신 병원에서 정신 질환자가 구타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당사자 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폐쇄 정신 병원에서 자행되는 것은 치료가 아닌 감금이다!”[10]

강제 입원 경험은 정신 질환자에게 심각한 트라우마가 된다. 2018년 미국에서 정신 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500명 중 절반 이상이 정신과 병동에서의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답했으며, 37퍼센트는 강제적 치료를 포함한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약 7퍼센트는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답했다.[11] 한국에서도 많은 정신 질환자들이 강제 치료 경험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정신 질환 당사자였던 박여리 씨는 정신 병원에서 영문도 모른 채 ‘CR룸’이라는 독방에 갇힌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독방에 갇힌 채 온 신경이 다 할퀴어진 상태로 밤을 새워야 했고,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하자 초록색으로 된 오줌통을 독방에 던져 준 것 또한 선명하다고 한다. 강제 치료의 고통은 매번 병원을 뛰쳐나오게 만들었고, 치료 중단은 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이유가 되었다.[12] 폐쇄된 병원에서 치료진이 가지는 절대적인 권력은 정신 질환자의 인권과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열악한 치료 환경은 인권 침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전국 230여 개의 정신 병원 중 대다수가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비좁고 과밀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정신 의료 기관의 입원 병실은 일반 의료 기관과 달리 다인 입원실 면적이 1인당 4.3제곱미터가 적용되고, 입원실 당 최대 10개의 병상을 둘 수 있다. 일반 의료 시설의 경우 2015년 메르스 유행 이후 다인실은 1인당 6.3제곱미터, 병상 간 1.5미터 이상 이격 거리 확보, 입원실은 6인실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등, 설치 기준 강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신 의료 기관은 안전사고 방지를 이유로 예외가 인정돼 과거 기준이 여전히 유지되어 왔다. 급기야 코로나19 사태 때는 열악한 치료 환경으로 인해 첫 사망자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인한 집단 감염으로 청도대남병원에서는 확진자가 114명, 사망자가 일곱 명 발생하였으며, 제이미주병원에서는 135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그중 한 명이 사망했다. 모두 병원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정부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정신 병원도 일반 의료 기관과 동일한 시설 기준을 지키도록 조치했다.

정신 질환자는 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한 고통만큼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 말 그대로 살아남아야 한다. 중증 정신 질환자의 경우 강제적인 치료, 약물 치료의 고통, 열악한 치료 환경, 사회적 낙인과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 실제로 정신 질환자의 초과사망률은 일반 인구의 네 배 이상, 퇴원 후 1년 이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50명, 자살률은 전체 인구 대비 7.2배로 나타났다.[13] 이러한 맥락에서 정신 질환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로 정의하기도 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정신 질환 당사자 운동에서는 억압적인 정신 건강 서비스 체계에서 살아남았음을 의미하는 ‘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강제 치료를 경험한 후 정신 질환자 당사자 운동의 선구자가 된 주디 챔벌린(Judi Chamberlin)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신 병원 입원 경험은 의존과 약함을 조장한다. 환자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통제가 정신 질환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신 질환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정신 질환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게 되며, 권위에 과도하게 순종하게 되고, 바깥세상을 무서워하게 된다. 정신 병원 입원은 그 자체로 반치료적이다.”
[1]
크리스토퍼 레인(이문희 譯), 《만들어진 우울증》, 한겨레출판, 2007년, 85쪽.
[2]
로렌 슬레이터(유혜인 譯). 《블루 드림스》, 브론스테인, 2020년, 49쪽.
[3]
로렌 슬레이터(유혜인 譯). 《블루 드림스》, 브론스테인, 2020년, 75쪽.
[4]
E. 풀러 토리(정지인 譯), 《조현병의 모든 것》, 심심, 2021년, 168쪽.
[5]
강웅구, 〈도파민 시스템과 항정신병 약물의 작용에 대한 이해〉, 《신경정신의학》, 50(4), 2011, 251-272쪽.
[6]
정재승,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년, 176-177쪽.
[7]
E. 풀러 토리(정지인 譯), 《조현병의 모든 것》, 심심, 2021년, 220쪽.
[8]
리단,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반비, 2021년, 163-165쪽.
[9]
조민정, 〈정신 병원 침대 묶여 사망한 알코올 중독자… 담당 의사는 무죄?〉, 《이데일리》, 2022년 2월 11일.
[10]
박종언, 〈정신장애 단체들 “정신병원의 정신장애인 폭행 사망 규탄〉, 《마인드포스트》, 2020년 7월 28일.
[11]
Michael Simonson, 〈MIA Survey: Ex-patients Tell of Force, Trauma and Sexual Abuse in America’s Mental Hospitals〉, 《Mad in America》, 2018년 12월 9일.
[12]
박여리, 〈박여리의 고백 1화: 나는 아파서 왔는데 머물 수가 없는 곳이 정신 병원이었다〉, 《마인드포스트》, 2021년 11월 8일
[13]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정신질환과 사망〉, 《NMHC 정신건강동향》, 25, 2021년,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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