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이 가린 균형

7월 1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식량 패권 시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0퍼센트다. CPTPP의 문이 열리기 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평균 관세 철폐율 96퍼센트에 달하는 CPTPP 가입을 앞두고 있다. 
  • 식량패권 시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퍼센트다. 
  • 메가 자유무역협정의 문이 열리기 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BACKGROUND_ 메가 FTA

어떤 것보다 큰놈이 오고 있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13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의 메가 자유무역시장이 열린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는 문재인 정부가 띄우고 윤석열 정부가 이어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참여하는 CPTPP는 2018년 12월에 발효했다. 우리나라엔 아직 적용되지 않지만,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에 CPTPP 가입을 포함하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양자 FTA가 그냥 고래라면, CPTPP는 흰수염고래다. CPTPP라는 거대한 파도를 우리나라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NUMBER_ 100퍼센트
  • CPTPP 가입국 평균 관세 철폐율은 96퍼센트다. 농수산물, 공산품 등을 원산지 가격 거의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여올 수 있다. 이 숫자에 제조업은 웃고 농축산업은 울고 있다.
  • CPTPP 가입국 중 8개국이 공산품에 대해 100퍼센트 관세를 철폐했다. 남은 국가들의 철폐율도 97.7퍼센트에 달한다. 제조업 분야에서 1조 1800억원의 생산 증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수산물에 대한 관세도 100퍼센트 철폐된다. 농산물은 95퍼센트다. 농축산업 강국 호주, 뉴질랜드와 수산물 강국 베트남, 일본의 참여가 확정됐다.
  • 중국은 가입 신청한 상태로 다른 가입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11개국의 만장일치를 거쳐야 합류할 수 있다. 중국은 빼놓고 보더라도 상당한 폭의 우리나라 농수산물 생산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ANALYSIS_ 옅어진 견제의 의미
  • CPTPP의 시작은 중국 견제였다. CPTPP의 뿌리격인 TPP는 오바마 정부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외교에 집중해온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미국 내 반대로 TPP 비준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권이 바뀌었다. 트럼프 정부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TPP에서 탈퇴했다. 그 후 일본 주도로 지금의 CPTPP가 됐다.
  • 그 사이 우리나라는 중국 주도의 RCEP에 가입했다. 2022년 2월 국내에서 정식발효됐다. 중국 주도로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가 참여한 경제협력기구 RCEP은 TPP 견제 성격이 강했다. RCEP과 CPTPP를 두고 ‘중국이나 미국이냐’라는 질문이 거론됐던 이유다. 
  • 이 질문은 바이든 정부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CPTPP가 아닌 인도태평양을 선택한 모양새다. 중국이 가입 신청을 한 마당에 주도권 싸움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CPTPP가 가진 미-중 패권 경쟁의 성격은 옅어진 상황이다.

CONFLICT_ 농민 반발

CPTPP의 파도는 밖이 아닌 안에서 일고 있다. 12일, 서울역 앞 도로에 5천 명이 넘는 농민이 모였다. 우리나라 농가는 최근 농자재값 폭등, 일손 부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물가는 농자재값에도 영향을 끼쳤다. 농촌인구 감소는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CPTPP 가입 공식화는 농심에 불을 붙였다. 추경호 부총리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CPTPP 가입 추진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 필연적으로 피해를 보는 부분이 생기는데 특히 농업 분야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농업 분야의 피해가 불가피함을 인정한 것이다.
ANALYSIS_ 아래부터 무너지는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배경엔 기술과 자본으로 산정되는 세계경제 질서가 있다. 농업의 필연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 얻을 이익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세계는 지금 가장 아래부터 무너지고 있다. 흔들리는 ‘식량의 고리’에 주목해야 한다.
  •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빵바구니’가 닫혔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경작지가 파괴되고 정상적인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빈곤국에 공급하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다. 밀로 만든 빵은 빈곤국 국민의 주식이다. 이는 식량 안보 취약국의 기아로 이어진다.
  •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생태계의 가장 아래를 흔들고 있다. 벌집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CCD는 꿀을 채집하러 나간 일벌이 어떤 이유로 돌아오지 않아, 벌집의 유충과 여왕벌이 집단 폐사하는 것을 말한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 되어 최근 우리나라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질 경우, 쌀, 과일, 채소 수확량이 줄어든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당장 꿀벌이 없으면 10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29퍼센트 줄어들 것”이라 밝혔다.

EFFECT_ 식량패권 시대
  • 식량보호주의; 식량이 귀해질수록 국가는 곳간 문을 걸어잠근다. 식량 수출을 중단하는 ‘식량 보호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러시아는 밀과 보리, 옥수수 등의 주요 곡물 수출을 금지했다.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등의 국가가 영향을 받는다. 이집트, 헝가리도 곡물 수출 중단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는 대두유와 콩가루에 붙는 수출세를 연말까지 인상하며 수출 장벽을 높였다.
  • 애그플레이션; 식량의 고리에서 시작된 진동은 물가 상승이란 파도를 만든다. 우리나라에도 ‘애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높아지는 식료품·외식 물가는 국제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퍼센트다. 2008년 6월 이후 14년 만에 5퍼센트대에 진입했다. 외식물가의 경우 7.4퍼센트로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REFERENCE_ 노르웨이 연어의 비극

식량 패권은 그 나라의 가장 아래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중국은 종종 정치·외교·군사적 갈등을 이유로 상대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는 전략을 취한다. 과거 노르웨이도 ‘차이나 불링’의 대상이 됐다. 중국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사오보에게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시상국인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제한했다. 당시 노르웨이는 최소 8억 달러, 한화 1조 규모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노르웨이 연어 수입 제재는 6년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2020년 중국은 수산물 도매시장 내 도마에서 코로나19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유럽산 연어 수입을 제한했다. 이는 로열새먼 등 노르웨이의 주요 연어수출업체들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미 식량은 국가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STRATEGY_ 유지
  •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쌀값에도 영향을 미쳤다. 밀 수출이 막히며 쌀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국제 쌀값 폭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세계 쌀 수출량 1위 국가인 인도의 경우, 식량 안보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쌀 수출량 2위인 태국은 비료 가격 상승으로 쌀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 쌀값은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줄어든 것에 비해 공급은 과잉됐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 논리대로라면 국내 쌀 공급을 줄이는 게 맞다. 하지만 식량패권 시대, 그건 위험한 해답이 될 수 있다.
  •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세계식량안보지수’에서 지난해 한국은 32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꼴찌 수준이다. 2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식량자급률이라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식량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때로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돌파구일 수도 있다. 
  • 농민 수당; 농촌을 유지할 수단으로 농민 수당이 거론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가 수는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 그 중 65세 이상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 농가가 고령화 흐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농민 수당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농민 수당은 농민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임은 맞다. 다만,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전국 지자체가 농민 수당을 지급할 경우, 관련한 한 해 예산은 6천 억으로 추산된다.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20~30퍼센트라는 걸 감안하면 한계점도 분명하다.

RECIPE_ 도시 정원

식량위기 역사에서 인류를 구한 건 ‘가드닝’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드닝 트렌드가 일고 있다. ‘반려동물’이 항상 우위를 점하던 포털 검색어 트래픽은 판데믹 이후 달라졌다. ‘반려식물’에 대한 검색이 ‘반려동물’을 따라잡았다.

  • 다차(Дача); 다차는 러시아 4대 문화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주말농장 개념이다. 러시아 도시민의 70퍼센트가 다차를 소유하고 있고, 러시아 전체에 3200만 개의 다차가 있다고 한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러시아 인민들을 구한 건 다차였다. 작은 텃밭에서 스스로 식량을 조달한 것이다.

  •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 독일의 체험농장 클라인가르텐은 도시 농업을 장려하고 근교를 발전시킨다. 클라인가르텐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가난한 독일 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놓은 농업 복지 프로그램이다. 천정부지의 물가로 시민들이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자, 클라인가르텐을 통한 자급자족을 장려했다. 현재는 독일 정부가 모든 지자체가 어느 정도의 클라인가르텐 부지를 보유하도록 법적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 빅토리 가든; 제2차 세계 대전은 빅토리 가든을 만들었다. 전쟁 중 미국은 텃밭과 가드닝을 장려했다. 국민의 자급자족을 돕고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빅토리 가든 문화가 흥할 땐, 미국에서 소비되는 야채 40퍼센트가 여기서 나왔다. 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퍼졌다. 대공항, 코로나19 판데믹에도 빅토리 가든은 큰 역할을 했다.


RISK_ 아파트 공화국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표한 ‘2021년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도시에 산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는 이미 2018년에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율이 50%를 넘었다고 설명한다. 현재 한국은 도시 아파트 공화국이다.
INSIGHT_ 방구석 정원

도시 아파트에 집중된 한국 주거 문화는 가드닝에 대한 열망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틔운’이다. 씨앗 키트와 물, 영양제, LED 조명만으로 식물을 키울 수 있다. 흙이 필요하지 않다. 방 한 켠에 놓아둘 수 있는 컴팩트한 정원이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도시 정원은 사치다. 방구석 정원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FORESIGHT_ 농지 없는 미래

세계는 아래부터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촌부터 무너지고 있다. CPTPP로 촉발된 농민들의 시위는 이 같은 붕괴를 감내하던 자들의 외침이다. 최근 5년간 국토면적은 늘고 있는 반면 경지면적은 줄어들고 있다. 농지를 주택이나 공장 부지로 돌려 쓰는 농지 전용 허가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 선거철 지역균형발전은 국가 주요 청사 이전, 신공항이나 백화점 건설 등의 공약으로 대변된다. 물론 살기 좋은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농지를 없애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하다. CPTPP가 만든 파도는 지역균형발전이란 단어를 흩어 놓았다. ‘지역. 균형. 발전’ 그간 어떤 단어에 무게를 실어 왔는지, ‘발전’에 매몰돼 ‘균형’을 놓친 것은 아닐지, 어떤 단어에 무게를 더할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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