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함수가 될 때

7월 2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네이버 하이퍼클로바가 텍스트 시장에 주목한다. 초거대 AI는 인간이 말하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 네이버의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가 각종 텍스트 분야에 힘을 기울인다.
  • 스토리텔링부터 문장 다듬기까지, 텍스트 시장에서 AI의 다양한 역할이 기대된다.
  • AI 워크툴이 상용화된 시대에서, 경쟁력은 결국 리소스 분배에 있다.

BACKGROUND_ 딥드림과 틸다
텍스트는 가장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구글의 딥 드림이 그림을 그리고 LG의 틸다가 드레스를 디자인하지만, 텍스트만큼 AI가 인간의 뇌를 정확히 학습하고 전달할 분야는 없다. 그림 그리는 AI보다 말하는 AI가 더 인간과 닮게 느껴지는 이유다. 네이버 파파고부터 구글 음성 인식까지, 인공지능이 전달하는 말과 글에 주목할 때 초거대 AI의 잠재력과 위험성을 살필 수 있다.
RECIPE_ 초거대 AI
  • 초거대 AI[1]란 인간의 뇌처럼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한 AI다. 알파고 같은 기존 AI처럼 특정 분야에 특화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 걸맞는 판단 능력을 가진다. 즉 기존 AI보다 수백 배가 넘는 데이터를 학습한다.
  • 오픈AI가 개발한 ‘GPT-3’가 대표적이다. 오픈AI는 일론 머스크와 샘 일트만이 투자한 인공지능 서비스다. GPT-3의 핵심은 딥러닝으로 사람이 말한 것 같은 언어를 구현하는 것이다. GPT-3가 하나의 완성된 칼럼을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것은 이미 2년 전 일이다.

REFERENCE_ 하이퍼클로바
  •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는 국내 최초 초거대 AI다. 작년 5월 출시됐다. 세계적인 초거대 AI GPT-3에 비교할 수 있을까? 확실한 강점은 한국어 서비스에 특화됐다는 점이다.
  • “우리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하는 최초의 초대형 한국어 인공지능”을 표방한다. 클로바노트와 같이 녹음된 음성을 듣고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클로바스피치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 주는 클로바보이스, 파파고처럼 이미지 속 텍스트를 추출해 내는 클로바OCR 등이 있다.
  • 주목할 것은 최근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다. 네이버 클로바 스튜디오는 올해 2월 AI 스타트업들에 클로즈드 베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100여 개의 스타트업과 협업 중이다. 핵심은 노코드다. 노코드(no-code)는 코딩 경험이 전무한 이도 최소한의 입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개발 방식이다.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각 스타트업의 일반 인력이 클로바 언어 모델을 손쉽게 자사 서비스에 연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RECIPE_ 현지화
GPT-3 언어 분포의 약 93퍼센트가 영어다. 한국어 비중은 0.1퍼센트 미만이다. 정석근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는 GPT-3가 “사실상 영어 전용이고 이외의 언어, 특히 한국어에 있어서는 생성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하며 한국어 모델의 AI 주권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네이버 클로바의 전략이 현지화라면, 라이벌은 구글이나 오픈 AI가 아니다. 국내의 카카오와 엘지다.
CONFLICT_ 네이버, 카카오, 엘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의 등장 이후 카카오와 LG도 잇따라 초거대 AI 언어 모델을 출시했다. 작년 11월 출범한 카카오 KoGPT(Korean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와 올해 2월 출범한 LG 엑사원(EXAONE, Expert AI for everyONE) 모두 긴 글을 짧게 요약하고, 이미지를 텍스트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기능은 하이퍼클로바와 유사하다. 결국 국내 시장에서 누가 더 많은 한국어 데이터를 보유하고, 빠르게 처리하냐의 문제다.
ANALYSIS 1_ 창작
  • AI가 텍스트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스타트업 우주문방구가 운영하는 콘텐츠 창작 플랫폼 스토리네이션은 지난 7월 13일 ‘토리 AI’를 출시했다. 네이버 하이버클로바의 기술로 제작한 인공지능 보조 작가다. 작가가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그와 어울리는 표현들을 추천해 준다. 소설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작가 입장에선 표현을 고를 때 들이는 시간을 단축하고, 단어의 풀을 넓힌다는 장점이 있다.
  • 인공지능의 소설 창작은 하이버클로바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국내 최초 AI 장편 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됐다. ‘소설 감독’ 김태연과 ‘AI 소설가’ 바람풍이 공동 저자다. “반복 어구와 단순 작업을 싫어했고, 소설을 쓸 때도 단순 반복에 가까운 작업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고 소설가 김태연은 밝혔다.
  • 소설 창작에서 인공지능의 현 역할은 웹소설의 후처리 과정과 비슷하다. 뼈대와 단계를 세운 뒤 디테일을 작성한다. 초거대 AI의 등장으로, AI 작가의 역할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것을 넘어 각 장면을 기획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ANALYSIS 2_ 마케팅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구도 작성한다. 하이퍼클로바의 기술을 이용한 AI 기반 작문 보조 도구 뤼튼카피라이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AI가 직접 제품 소개글, SNS 광고 문구, 마케팅 카피 등을 써준다. 제품 이름과 설명, 톤앤매너를 기입하면 해당 제품과 어울리는 문구들을 제시한다. 잊고 있던 표현을 상기시키고, 새로운 표현을 제안하는 것이 AI 카피라이터의 역할이다.[2]
  • 해외의 AI 카피라이팅 서비스는 이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비스(Jarvis), 카피에이아이(Copy AI), 라이츠소닉(Writesonic) 등이 GPT-3와의 협업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단순한 카피라이팅 문구 제작이 아니다. 수신인과 핵심 메시지를 적으면 비즈니스 메일을 써준다. 홍보하고 싶은 제품의 특징을 적으면 장문의 블로그 포스트도 작성해 준다. 즉 비즈니스 인력의 일부 역할을 대체한다.

ANALYSIS 3_ 작문
  • 살면서 AI를 활용해 소설을 써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혹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캐치 프레이즈를 고민하다 AI의 힘을 빌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작문은 다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다양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기초 자질이다. 이 기초 영역에 AI가 침투하고 있다.
  • 뤼튼 트레이닝 서비스는 글쓰기를 연습할 수 있는 툴이다. 사용자가 쓰고 싶은 주제를 입력하면, AI가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활용할 만한 자료를 추천한다. 무엇을 쓸지 난감한 경우 직접 글감을 던져 주기도 한다. 개요, 본문, 퇴고의 3단계만 거치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 작문은 단순히 글쓰기의 영역이 아니다. 글에 대한 조언은 글쓴이의 사고의 흐름에 대한 조언과 같다. 뤼튼 트레이닝은 ‘글쓰기 튜터’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작문에 대한 AI의 피드백은 역으로 인간이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RISK
  • 개인정보 ; 하이퍼클로바의 자부심은 한국어 데이터 확보량에서 나온다. GPT-3가 보유한 한국어 데이터의 6500배 이상을 학습했다. 모두 네이버 포털이 보유한 자료에 뿌리를 둔다. 뉴스, 블로그, 지식인, 카페 등이다. 네이버 지식인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2년이다. 네이버 블로그가 공식 출범한 것은 2003년이다. 20년간 쌓인 대국민 데이터가 인공지능 개발 목적으로 사용된다. 상상은 구체적일수록 아찔하다. 강인호 네이버 서치 CIC 책임리더는“개인 정보 수집은 지양하고 있지만 사용자 전체 공개로 지정해서 수집된 정보나 검색 허용된 문서의 경우, 포함될 수 있는 개인 정보는 제거 또는 비식별화 처리했다”고 밝혔다.
  • 편향 ; 초거대 AI가 기존 AI에 비해 주목받는 이유는 그 방식이 아니라 규모다.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파라미터 수를 극단적으로 늘려 그만큼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AI가 갖는 편견 및 편향의 종류와 갯수도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은 단순히 AI 모델의 사이즈를 늘리는 것에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초거대 AI가 생산해 내는 결과물의 윤리적 여파에 주목할 시점이다.

INSIGHT
  • 기계적 창의성 ; 작문은 사고의 지평을 드러낸다. 인간의 사고방식과 그 깊이를 보여 주던 텍스트에 인공지능이 뛰어들고 있다. 더 나은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론 더 깊은 사고를 한다는 증거가 된다. AI의 텍스트 창작은 기계의 창의성이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가장 확실한 물증이 될 수 있다.
  • 일상의 함수화 ; 과거엔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지 고민했다. 이제는 어떤 키워드로 구글링해도 ‘관련 정보’가 잘 짜여진 질문과 답변의 형태로 나온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지를 고민할 필요가 사라지고 있다. AI가 묻는 질문에만 충실하게 답변하면, 한 편의 괜찮은 글이 나온다.
  • 토론의 종말 ; “질문을 주고 받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며 마음이 맞는 동료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이는 현대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뤼튼이 글쓰기 연습 툴을 만든 이유〉의 일부다. 내 생각의 근거와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AI 코치는 이제껏 인간이 소통해 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불필요한 대화는 소거하고, 내게 지금 꼭 필요한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좋게 말하면 리소스를 줄인다. 다르게 말하면 소통은 피곤한 것이 된다.

FORESIGHT_ 도메인 전문가
  • 미국 정보 기술 연구소 가트너는 2025년까지 새롭게 개발되는 앱의 약 70퍼센트가 로우코드 및 노코드 플랫폼에서 탄생할 것으로 예측한다.[3] 개발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자신의 플랫폼에서 AI 툴의 주도권을 잡고 앱을 설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텍스트 시장으로 말하자면 개발자가 아니라 작가 혹은 에디터가 툴을 자유자재로 쓰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가 지향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나 어도비 포토샵처럼, AI를 일상적인 워크툴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의 경쟁력은 리소스 싸움이다. 내가 운영하는 도메인의 전문가가 되어 AI 툴을 이용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업무, 텍스트 분야에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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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다. 해외에선 LLM(Lare Language Model, 거대 언어 모델) 혹은 NLP(Natural Language Processing, 자연어 처리 모델) 등으로 불린다. 혹은 ‘large scale AI’, ‘hyperscale AI’, ‘big size AI’ 등 캐주얼한 용어로 쓰인다. 톤앤매너는 다음 기사 참고.
[2]
현재 베타 테스트 준비 단계에 있다.
[3]
로우코드(low-code)는 간단한 템플릿을 통해 개발 경험이 부족한 사람도 빠르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개발 방식이다. 이를 한 단계 넘어선 노코드(no-code)는 코딩 경험이 전무한 이도 최소한의 입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개발 방식이다. 아직은 상용화 전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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