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속사정

7월 2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표절 논란에 휩싸인 유희열이 결국 스케치북을 덮는다. 그는 왜 그렇게 해명할 수밖에 없었나.

  • 작곡가 유희열은 지난 6월부터 계속된 표절 논란으로 13년 만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하차를 선언했다.
  • 사과문에서 유희열은 곡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도적 표절이 아님을 주장했다.
  • 시원하지 않은 그의 해명에는 음악인 유희열이 해결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CONFLICT 1_ 아주 사적인 밤
©안테나 Antenna
2021년 9월 발표된 유희열의 피아노곡 〈아주 사적인 밤〉에 대해 2021년 12월 30일 한 유튜버가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일본 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龍一 坂本)와 시티팝 장르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오오누키 타에코(大貫 妙子)의 합작 앨범 《UTAU》에 수록된 〈Aqua〉라는 노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유희열이 대표로 있는 안테나 측은 지난 6월 14일, 두 곡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즉각 사과했다. 일단 부인하고 보는 것이 익숙한 공인의 세계에서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CONFLICT 2_ 아주 사적인 메시지

입장문과 별개로 아주 사적인 메시지 하나가 파장을 불렀다. 표절은 상습·반복·악의적 표절이 아닌 이상 으레 친고죄로 처리되기에 원곡자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입장이 중요했던 상황이었다.
  • 잇뮤직크리에티브 ; ‘류이치 사카모토 소셜 프로젝트 코리아’라는 인터넷 아카이빙을 기획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입장문을 공개했다. “유사성은 인정되나 표절이나 법적 대응까지 필요한 수준은 아니다”라는 것이 요지다. 사카모토의 인품을 칭찬하는 여론이 일었다.
  • 제보자 ; 이상함을 느낀 최초 제보자는 사카모토의 공식 매니지먼트 Kab Inc.에 직접 이메일 문의를 넣어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사카모토의 공식 대리인이 아님을 밝혔다. 게다가 잇뮤직이 가입 장벽이 매우 높은 ‘토이 뮤직 팬클럽’ 게시판에 글을 쓴 흔적이 발견돼 유희열의 팬이었음이 드러났다.
  • Kab Inc. ; 최초 제보자에 대한 답변에서 사카모토 측은 잇뮤직 측에 전달한 내용은 공식 입장이 아닌 사카모토가 유희열에 전하는 ‘사적인 메시지(private message)’였다고 밝히며 이를 무단으로 공개하고 인용한 모두에게 경고했다. 음악인 사이의 사적 메시지가 공적 메시지로 포장된 사실이 드러나며 비난은 거세졌다.

REFERENCE_ 레퍼런스

많은 유튜버들은 일제히 유희열이 작곡한 과거의 곡들을 끄집어내며 유사도 판단에 들어갔다. 과거 방송의 모습도 조명됐다. 어떤 곡이든 속된 말로 ‘우라까이’(인용)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유희열이 레퍼런스로 삼았을 수 있는 곡들은 모두 유희열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레퍼런스가 됐다. 관련 주제로 MBC의 〈100분 토론〉이 편성되고, 원곡으로 지목된 노래의 유튜브 동영상엔 수많은 비난성 댓글이 달렸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렸다. 논란이 된 지 약 한 달 만에 유희열을 둘러싼 여론은 빠르게 세력화됐다.
KEYPLAYER 1_ 나만의 유희열

유희열은 공인이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사적인 사람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만의 유희열’이 있다. 방대한 기간 활동하며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작곡가이자 방송인이며 종합 연예 기획사인 안테나의 대표다. 1994년 원맨 밴드 ‘토이(TOY)’로 데뷔 후 30년 가까이 한국 대중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0년간 사랑받은 라디오 DJ이자 13년 동안 KBS 2TV의 간판 음악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였다. 우리 모두 유희열을 처음 만난 순간이 다르고 간직하는 모습 역시 다르다. 누구에겐 영원한 ‘토이’라면, 누구에겐 무한도전과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음악 전문가 아저씨고, 누구에겐 이수만이나 박진영 같은 음악 산업의 대부, 누구에겐 유스케와 라디오를 통해 세월을 함께한 DJ이자 MC다.
KEYPLAYER 2_ 세 명의 유희열

기업인 유희열의 대처는 빨랐다. 문제가 되는 음악을 발매하지 않겠다고 했고 안테나 공식 채널을 통해 유사성을 단번에 인정하며 사과했다. 방송인 유희열의 대처도 프로다웠다. 13년을 전 국민과 함께한 유스케의 의미를 지키고자 600회까지는 방송을 진행하고 이후 하차를 선언했다. 음악인 유희열은 아니었다.
RISK_ 무의식

유희열은 앞선 입장문에서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썼다고 밝혔다. 유희열은 다룰 수 있는 장르의 폭이 매우 넓고 각 장르만의 클리셰를 독파해 어떤 레퍼런스라도 자신의 스타일로 잘 녹여내는 데 강점이 있다. 오랜 팬들은 이를 모두 알고 있고 대부분 문제 삼지 않는다. 〈아주 사적인 밤〉의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한 댓글(Goldy)은 이 ‘무의식’ 발언에 대한 한 오랜 팬의 입장을 통렬하게 대변하고 있다. 의도성을 부정하기에 원곡은 너무나 유명하고 원곡자는 저명하다. 그는 유희열의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의 경력을 부정한 것이라 말한다. 유희열 본인이 무의식의 산물로만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곡들 모두에서 레퍼런스가 용인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게 신뢰는 깨졌다. 
OPINION_ 유사성과 의도성

평소 레퍼런스를 즐겨 쓰는 유희열임을 참작한다고 해도 왜 특정 곡에서 여전히 표절 시비가 이는 것일까? 100분 토론에서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현업에 있는 프로듀서라면 다를 것이다. 주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익명의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표절 논란이 있는 곡들을 들어봤나.

모두 들어 봤고 관련 논란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유사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아주 사적인 밤〉을 포함해 현재 논란이 되는 많은 곡이 매우 유사하다. 물론 노래가 단순히 듣기에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 보통 해외의 판례를 보면 원곡의 ‘메인 테마’가 의혹이 되는 곡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지금 논란이 되는 곡은 대부분 메인 테마가 비중 있게 사용됐다.

‘메인 테마’의 비중은 어떻게 판단하나?

가령 어떤 노래의 ‘후렴 멜로디’가 이 곡을 떠올리게 하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가정해 보자. 곡의 도입부를 작곡할 때 해당 후렴 멜로디의 일부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 인용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후렴 멜로디가 자신의 곡의 후렴에도 동일하게 들어가 이 곡의 정체성이 된다면 표절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성의 문제겠다. 창작자 본인만 알겠지만, 같은 프로듀서로서 표절의 의도성이 있다고 보나?

일단 심증의 영역임을 확실히 해야겠다. 또한 논란이 되는 곡 중 〈Happy Birthday To You〉처럼 번안곡 수준으로 비슷한 것은 너무 당연하니 논외로 하겠다. 제일 처음 논란이 된 〈아주 사적인 밤〉을 예로 들자면 의도성이 있다고 본다. 자신이 영향을 많이 받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프로듀서로서 납득이 어렵다. 깊게 들어가면 ‘부존재의 증명’ 차원까지 도달할 거다.
STRATEGY 1_ 기업인 유희열

몇 곡에서 유희열의 표절은 명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유희열은 왜 이를 ‘무의식’의 영역으로 해명했을까? 지금의 유희열은 더 이상 음악인 유희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겐 얽힌 이해관계가 많다.
  • 안테나는 1997년 ‘토이 뮤직’을 시작으로 2007년 ‘안테나 뮤직’으로 사명을 변경, 2015년에 회사 규모의 확장과 함께 다양한 연예인을 영입하며 지금의 안테나가 됐다. 2021년 5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일부 지분을 인수 후 국민 MC인 유재석까지 합류하며 명실상부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현재는 카카오의 자회사가 됐다.
  • CEO의 미디어 영향력이 큰 만큼 유희열의 표절 시인은 안테나와 소속 아티스트, 모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작자와의 법적 공방을 고려하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STRATEGY 2_ 방송인 유희열

감성변태’, ‘매희열’ 등 수많은 별명을 얻으며 만들어진 방송인 유희열은 유재석과 마찬가지로 안티 없는 연예인이다. 음악인 유희열의 캐릭터와 겹치는 라디오와 유스케를 넘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굵직한 예능에서 그는 소위 ‘무해’한 이미지로 소비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진심 어린 모습으로 조언하고 자극적 예능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자세에 많은 대중이 호감을 느꼈다. 방송을 통해 얻은 인지도를 통해 안테나도 키울 수 있었다. 의도적 표절을 시인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이미지와 정면 배치되는 일이다.
BACKGROUND_ 에피소드

해명이 이뤄진 곡이 브랜드와의 협업인 점도 주효했을 것이다. 안테나는 코리빙 브랜드 ‘에피소드’와 협업을 진행하며 콜라보 콘텐츠로 ‘유희열의 생활음악’이라는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한 달에 한 곡, 해당 브랜드 주거 공간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유희열이 작곡한 피아노 소품 하나와 뮤직비디오, 안테나 뮤직에서 발매한 노래를 포함한 기성곡의 플레이리스트를 내보이는 방식이었다. 8개의 EP(에피소드)가 완성되면 앨범으로 발매할 계획이었다. 〈아주 사적인 밤〉은 이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곡이었다. 브랜드의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INSIGHT_ 좋은 사람
©KBS Kpop
무엇이 표절이고 레퍼런스, 오마주인가는 정량화하기 어려우며 결국 심증의 영역이다. 음악인 개개인의 양심만이 답할 수 있다. 유희열은 좋은 음악인이다. 음악인 유희열이었다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양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팬덤은 여전히 공고하고 그의 창작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적다. 그러나 그는 더 나아가 ‘좋은 사람’이 되길 택했다. 종합적 인성을 요구하는 방송가에, 손익 계산이 필요한 엔터 산업에 발을 들여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역설적으로 ‘좋은 사람’ 유희열은 나쁜 해명을 할 수밖에 없던 셈이다.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표절 시비는 늘 있었지만 지금 유희열이 겪는 논란은 많은 연예인의 논란이 그러하듯 그의 인성에 대한 재단에 가까워지고 있다.
FORESIGHT_ 표절의 미래

이 논란은 마구잡이 표절 의혹 제기로 확산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대중음악의 특성상 이는 굉장한 위험을 안고 있다. 모든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문명의 축적도 마찬가지다. 아이작 뉴턴이 인용한 것으로 유명한 ‘거인의 어깨’는 예술에도 적용된다. 현대 대중음악은 축적된 예술에서 영감을 받는 수준을 넘어 이를 적절하게 인용하고 편집하고 가공하는 형태로도 발전해 왔다.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DAW)의 탄생은 이를 손쉽게 만들었다. 어떤 노래의 아주 작은 특정 부분을 잘라내 새로운 소스로 사용하는 ‘샘플링’ 작법도 있고, 같은 가상 악기 패키지를 구매하면 기본적으로 같은 요소와 ‘프리셋’을 사용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손쉽게 표절로 낙인 찍기 시작하면 DJ, 전자음악 프로듀서 등을 포함해 수많은 음악가의 활동이 불가하고 많은 장르가 사라질 수 있다. 다음은 위 익명의 전문가와의 대담이다.

샘플링, 레퍼런스, 오마주 등 현대 대중음악 작법에서 표절의 범주를 정할 수 있을까?

‘표절’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바는 링이 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형화된 산업이 아닌 예술을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법 해석과 음악적 해석이 다르듯 음악에서는 용인되는 것이 법적으로는 물고 늘어질 변수가 되기도 한다. 한번 선이 그어지면 선이 그어진 다음 세대부터는 창작에 상당한 제약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론 자유주의자적 입장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면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가?

현재 한국에서는 샘플링을 할 때 미리 원곡자에게 돈을 주는 ‘샘플 클리어’나 레퍼런스의 원곡자를 크레딧에 포함하는 것이 음악가 양심에 달렸고, 인식 기반이 미비하다. 미국은 표절에 엄격해 표절로 판단되면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한다. 다만 샘플링 등에는 매우 관대하다. 해외 사례 중 가장 최근에 있던 논란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good 4 u〉다. 밴드 파라모어(Paramore)의 〈Misery Business〉와 유사성 논란이 일었다. 로드리고는 논란 끝에 이들의 이름을 자신의 곡 크레딧에 추가했다. 아무래도 미국이 음악 시장이 가장 크고 관련 판례가 많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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