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DSLR

7월 22일 - FORECAST

카메라 회사들이 DSLR을 포기한다. 사형선고는 이미 내려졌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 니콘이 DSLR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 니콘 측은 뉴스를 부인했지만, 대중은 이미 카메라 산업의 종말을 예감하고 있다.
  • DSLR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이다.

DEFINITION_ SLR
SLR 카메라는 두껍고 무거운 본체에 렌즈를 갈아 끼워가며 사용하는, 고성능 카메라다. 그리고 디지털 SLR 카메라, 즉 DSLR 시장을 몇십 년째 양분해 온 두 기업이 바로 니콘과 캐논이다. 지난주 니콘이 일안반사식(SLR) 카메라 개발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니콘 측이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해당 소식은 오보였던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각종 사진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2020년 이후 DSLR 신제품이 출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재고만 다 소진되고 나면 철수는 예정된 수순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추측에는 근거가 있다. 니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캐논은 CEO 인터뷰를 통해 DSLR의 개발 및 생산을 곧 중단할 것을 암시한 바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밀려온 디지털카메라 물결에 성공적으로 올라탔던 소니는 이미 DSLR 사업을 접었다. 올해까지 5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니콘만 홀로 독야청청 남아 크고, 무겁고, 비싸서 팔리지 않는 카메라를 계속 만들 이유가 없다. 카메라가 시한부를 선고받은 셈이다.
BACKGROUND_ 경험과 추억

카메라야말로 20세기를 매혹한 물건이다. 세계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도 누구나 모험을 떠날 수는 없었던 시절,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이국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었다. TV의 탄생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운관 TV로 보는 열악한 화질의 현지 촬영 영상보다 인쇄물에 깔끔하게 실린, 선명하고 드라마틱한 이미지 한 장이 갖는 힘이, 때로는 더 강력했다. 또, 사진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방법이기도 했다. 먹고사는 데에 딱히 관계도 없는, 특별한 날에만 장롱에서 한 번씩 꺼내어 쓰게 되는 사진기는, 그 크기에 비해 무척 비싼 물건이었고 추가로 들어가는 필름 값, 현상 및 인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한 가정의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앨범이었던 시절이다. 사진은 호사스러운 경험이었다.
STRATEGY_ 대중화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디지털카메라의 급격한 보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경험은 가족의 행사에서 개인의 만족으로 그 정체를 바꿨다.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간편한 방법을, 대중이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똑딱이에서 엔트리 모델로, 중급기로, 플래그쉽 모델로. 비싼 카메라로 옮겨갈수록, 비싼 렌즈를 끼울수록 멋진 사진이 손쉽게 찍힌다. 시장의 성장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공간의 성장이 이를 부추겼다. 사진을 찍어 남에게 보여주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디지털로 환원되면서 사진에의 진입장벽이 무너져버렸다. 어느샌가 전국의 부모가 프로 사진가가 되었다. 카메라를 목에 건 젊은이들이 홍대 거리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 국민이 아마추어 사진가의 대열에 합류한다.
KEYPLAYER_ INSTAGRAM

그런데 21세기 사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2010년 시작된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이라는 세기의 발명품과 맞물려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2년 4월,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소셜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사진은 옵션이었다. 텍스트가 주인공인 플랫폼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의 언어는 이미지다. 인류는 역사를 다시 돌고 돌아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로 회귀한 것이다.
RISK_ INSTAGRAM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스타그램은 남에게 보여줄 만한 사진의 공식을 깨뜨렸다. 더 ‘좋은’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어차피 인스타그램은 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만 이용 가능한 서비스다. 모니터를 완전히 벗어나 이제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거의 모든 사진이 소비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즉, 좋은 사진이 관건이 아니라 무엇을 어떤 식으로 찍었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경쟁적으로 향상된다. 2012년 출시된 아이폰5의 이듬해 TV 광고는 아예 카메라 광고였다. 중고가 350만 원에 달하는 DSLR 바디와 렌즈 구성을 구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REFERENCE_ 글쓰기

문자가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양피지와 잉크는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으며 책이란 것은 특권층을 위한 보물이었다. 15세기 독일에서는 설교집 한 권이 양 200마리에 수십 가마의 보리와 호밀을 얹은 가치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 재산’이다. 문장을 써 내려갈 때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가치 있는 문장이 아니고서야 적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고 책이 대중의 것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글이 모두의 것이 되면서 아름답지 않은 문장도 쓰일 권리를 얻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촬영의 권리를 얻은 순간, 잘 찍어야 할 의무가 소멸했다.
CONFLICT_ 스톡 사진
그렇다면 프로 작가의 세계는 어떨까? 하이엔드 시장 쪽도 디지털 전환과 함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매스 마켓으로 넘어오면 세상이 뒤집힌 것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환경이 변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플랫폼 경제에 편입되어 버린 것이다. 게티이미지, 어도비스톡, 셔터스톡 등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상업 이미지가 대부분 업로드되어있다. 이 사진들은 이들 회사가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부터 전문 사진작가까지 모두 작가로 등록할 수 있다. 가격은 사이트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올린 사진이 한 번 팔릴 때마다 몇백원에서 천 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이 시장은 완벽하거나 미학적인 가치를 지닌 사진이 먹히는 곳이 아니다. 블로그나 홍보 마케팅 분야에 문제의 소지 없이 사용될 수 있는, 무던하고 흠결 없는 사진이 잘 팔린다. 화질만 일정 정도 이상 받쳐준다면, 더 이상 비싼 장비와 오랜 손기술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상업 사진작가라는 직업 자체의 정의가 다시 쓰이고 있다.
FORESIGHT_ 사망선고?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가 극복해야 할 것은 렌즈의 해상도와 센서의 크기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온 시장이기 때문에, 미래는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카메라는, 특히 고성능 카메라는 사망하게 될까? 아니다. 더 정확히는, 아직은 아니다.

  • 미러리스설령 DSLR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아직 미러리스 카메라가 있다. 말 그대로 DSLR 카메라에서 거울을 제거한 카메라다. 거울이야말로 DSLR 카메라가 품고 있는 아날로그 DNA의 핵심이다. 거울이 있기에 뷰파인더가 있고, 거울을 통해 뷰파인더를 확인하기에 ‘찰칵’하는 소리가 난다. 그것을 제거한 미러리스는 DSLR보다 얇고 가볍게 만들기에 유리하다. 기술력을 쌓아나가며 성능 면에서도 따라잡을 만큼 따라잡았다. 정밀한 기술을 즐기는 아마추어는 물론, 상업 및 예술 사진의 분야에서도 미러리스 카메라는 유효한 선택지이다. 또, 유튜브의 시대를 맞아 미러리스 카메라는 동영상 촬영용으로도 일정 정도의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미러리스 시장의 미래도 마냥 밝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카메라 시장 자체가 너무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2021년 일본은 약 5백 30만 대의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출고했다. 2012년 2천만 대가 넘었던 수준을 생각하면 시장 규모가 4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 삼성의 포기 ; 이를 진작에 예측하고 빠르게 판단을 내린 기업이 있다. 바로 삼성이다. 사실 70~80년대의 삼성 미놀타 시절이나 2000년대 펜탁스와 제휴하여 출시했던 DSLR 라인업 GX 시리즈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를 맞아 강력한 셀카 기능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던 ‘한효주 디카’를 시작으로 삼성은 카메라 시장을 무섭게 공략했다. 미러리스의 부상이라는 시장 기회도 잘 잡았다. 2010년 처음으로 출시한 NX 시리즈는 애호가 커뮤니티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던 삼성은 2016년 돌연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다. 2012년부터 가속화한 카메라 시장의 축소를 근거로 사업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의 도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일례로,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인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소니에 이은 이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메라에서는 필름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스마트폰은 물론 CCTV, 자율주행 자동차 등 렌즈가 달린 모든 전자기기에 필수다.

INSIGHT_ B컷의 종말

마치 LP처럼, 이제 카메라는 필요가 아니라 취향의 영역으로 서서히 편입되고 있다. 필름 카메라가 이미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의 파트가 되기 이전, 카메라는 완벽한 기계가 아니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중고 시장에서 구한, 상표도 제대로 새겨져 있지 않은 싸구려 렌즈를 어찌어찌 바디에 마운트 하여 찍어낸 사진들은 어둡고, 왜곡되었고, 초점이 맞지 않았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름답기도 했다. B컷은 원래 A컷보다 매력적인 법이다. 그러나 B컷이란 깎아 만든 렌즈가 모아낸 빛을 필름에 각인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이 세계가 밝고 선명해졌다. 그 선명한 이미지를 주저 없이 누구나 늘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불완전하고 특별한 사진의 시대는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사진이야말로 서사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란 어차피, 이런 이미지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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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와 샤오미의 기묘한 조합이 꿈꾸는 새로운 시장에 관해 고찰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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