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라는 성역

7월 25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언론의 2차 가해는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팩트는 어떻게 언론의 방패가 되나?

  • 인하대학교가 교내 성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한 2차 가해에 대응한다.
  • 이번 사건의 가장 큰 2차 가해자는 언론이다.
  • 언론은 2차 가해 책임에서 자유롭다. 면책사유는 다름 아닌 ‘팩트’다.

BACKGROUND_ 불필요하게 자세한

지난 15일, 대학교 캠퍼스 내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심정지 전 상태의 학생이 발견됐다. 이 문장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성별, 피해 상태 등이 불필요하게 자세히 보도됐다. 최초보도는 연합뉴스에서 나왔다. 기사 제목은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흘리고 쓰러져”... 경찰 수사〉였다. 주요 통신사와 언론사도 비슷한 제목으로 해당 사건을 보도했다. 선정적인 기사 제목으로 사건은 조사 전부터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성폭행 가해자가 드러났다. 증거나 정황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거의 생중계로 보도됐다. 모든 것은 조사 중이고, 확실한 것은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됐다는 사실뿐이다. 부족한 기사거리를 채우는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등 가십에 가까운 정보였다.
EFFECT_ 인하대학교의 대응

불필요하게 자세한 정보는 2차 가해로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의 글이 공유됐다. 모두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인하대학교는 강력 대응하겠다 밝혔다. 유가족, 학교본부, 총학생회는 ‘공동대응 TF’를 꾸렸다.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바로 민·형사상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피해자에 책임을 전가하는 댓글을 향한 경고였다.
DEFINITION_ 2차 가해
  • 2차 가해는 ‘2차 피해(Secondary Victimization)’라는 학술 용어에서 비롯됐다. 범죄학자 윌리엄스 J. E.는 1984년 논문에서 2차 피해를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부정적인 처우’로 정의했다.

  • 우리나라에서는 피해가 아닌 가해를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2차 가해라는 용어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일각에선 2차 가해라는 단어로 굳어지며 피해보다 행위의 위법성만을 따지기 급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종합하면, 직·간접적으로 2차 피해를 일으키는 모든 행위는 2차 가해로 봐야 한다. 인하대학교의 대응은 온라인의 댓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2차 가해라는 단어의 시작점을 떠올리면, 부적절한 초기 보도를 한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KEYPLAYER_ 언론

모든 사망 사건이 기사가 되진 않는다. 언론이 선택한 사건이 기사가 된다. 이번 사건에 쏠리는 여론의 큰 관심은 ‘뉴스 가치’가 되기에 충분했다. 언론은 너나할 것 없이 ‘인하대’를 포함한 기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팩트를 전한다는 명목 하에 언론은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있다.
  •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5일 오후 3시 기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된 관련 뉴스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술’ ‘나체’ 등 선정적인 표현과 ‘여대생’ ‘20대 여성’ 등 성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는 각각 68개, 42개였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이어졌다.
  • 논란 재생산 ; 지나친 관심은 ‘신상털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방식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신상털이’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상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SNS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오히려 신상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효과가 됐다. 가해자의 것으로 지목된 계정의 팔로어 수가 급증했고, 몇몇 언론사는 이 내용도 기사에 포함했다.

OPINION_ 알 권리? 호기심?

이번 사건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 행태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숭인의 김영미 변호사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 뒤로 안 보고 있다. 너무 괴로워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최초 보도가 이뤄지고 사건을 둘러싼 맥락이 드러나고 있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피해를 당했다는 자체가 여론의 관심을 사는 것 같다. 피해자 가족들 입장에서 더 괴롭겠단 생각을 했다.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일까?

호기심이 크지 않을까. 왜 그 자리에 있었나.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됐나. 원인 규명에 대한 궁금증이 큰 것 같다.

그 자체로 2차 가해 아닌가. 관련된 기사 제목도 많이 보이는데.

지금이야 언론에서 자극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 같다. 초반엔 여과 없이 보도했다. 피해 상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까지 알릴 필요는 없다. 알 권리가 거기까지 미치진 못 한다.

여론의 관심이 조사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관심을 받는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자 입장에서는 의식이 될 수 있다. 여론을 통해 간과했던 것들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가해자가 주요 정황과 증거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이용해 방어 논리를 만들 수도 있다.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언론 2차 가해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기본적으로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그렇다. 가해자는 세상에 없고 그 이후에 남은 피해자가 계속 기사화됐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언론 보도에 달리는 댓글로 고소·고발전을 이어간다. 애초에 그런 기사가 없었다면 댓글을 쓸 데도 없다. 언론이 계속해서 재가공 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거 아닌가.

언론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사실 보도’는 면책 대상이다. 이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알 권리 충족이라는 면에서 면책된다. 보도 지침을 어기는 경우, 처벌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웬만한 언론사는 당연히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처벌 사례는 없다. 알아서 다 피해가니까. 
RISK_ 공허한 자성

언론이 사실 보도라는 명목 하에 저지르는 2차 가해를 지적하는 기사도 물론 있다. 다만,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한계상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끝맺음 된다. 언론의 자유는 대한민국헌법 제21조에 의해 존중받는 개념이다. 사실상 언론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자성을 요구 받을 뿐 강제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자성은 공허해진다.
RECIPE_ 보도하지 않을 책임

외부의 시각에서 언론의 자성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과연 내부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언론사 내부에서 자성은 이뤄지고 있을까? 주요 언론사의 현직 사회부 기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과 관련한 보도를 어떻게 지켜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초기 보도 당시 사건의 경위를 알기 어려운 수준의 묘사가 궁금증을 자극했다. 최초보도는 추락했다는 내용도 없이 ‘머리와 귀에서 피를 흘렸다’는 묘사만 있었다. 사건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 ‘나체’ ‘여대생’ 키워드와 결합돼 대중의 관음증을 더 자극한 것 같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기사 제목에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 목록을 발표했다. 본인이 속한 언론사도 있는데 내부에서 볼 때 어땠나?

기자 개인이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타 매체의 내용을 검증 없이 보도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개인적으로 단독 경쟁, 속도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최초 보도 당시 경찰이 어떤 혐의로 접근해 수사 중인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 조사가 정리되기 전에 보도 됐기 때문에 불필요한 내용들이 포함된 것 같다. 다른 매체가 써서 보도하기 전에  가진 내용을 최대한 활용해서 써야 하는 시스템이다. 사망 사건, 더구나 타살로 추정되는 사건은 정황이 어떻든 그 자체로 보도할 의무가 있다.

특히 성범죄 관련 보도에서 언론의 2차 가해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내부 시스템의 부재다. 자체적인 젠더 보도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해당 사건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다. 사건 개요에 대해 1-2 분 단위로 파악하는 훈련을 받고 그에 적응돼 일을 하다보니 성범죄에 있어서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젠더 관련 보도는 회사 내부적으로 다시 한 번 검증해서 내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언급되는 건 언론의 자성이다. 가끔은 공허하게 들린다.

자성이 제도적인 시스템으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성범죄에 있어서는 범죄 사실을 보도하는 것 자체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많다. 알 권리를 명목으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젠더 데스킹과 별도로 기자 개인이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자 개인이 취재 과정에서 깊은 고민을 했다면, 이번 사안과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보도하지 않을 책임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보도하지 않을 책임은 필요하다. 현장에서 그 시스템이 아예 작동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보도하지 않는 사안도 물론 있다. 다만, 이번 사안처럼 이미 보도가 이뤄진 상황에서는 더 큰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회사 내 고민이 필요하다. 계속 말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매체에서도 했으니까’하며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

사실보도는 언론의 면책사유가 되기도 하는데 팩트는 성역인가? 기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럼에도 팩트는 성역이다. 언론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자에겐 최대한 구체적으로 취재할 의무가 있다. 맥락에 대해 파악해야 사안에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팩트를 여과 없이 내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도하지 않을 책임이 보도할 책임보다 크다고 느낀다.
REFERENCE_ 젠더보도 가이드라인

18일, 한겨레는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보냈다. 사건과 관련한 최초 보도부터의 제목 변천사를 시간대 별로 설명했다. 〈‘대학 내 알몸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 숨져…경찰 수사’〉라는 제목은 사내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인하대 교내서 피흘린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가 됐다.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했음을 고백했다. 언론의 자성을 기사로 표현한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INSIGHT_ 팩트라는 딜레마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한국 뉴스 신뢰도는 2016년 이후로 계속 최하위였다. 그런데 2021년 한국 언론 신뢰도가 처음으로 46개국 중 38위를 기록했다. 언론 환경엔 변화가 없는데 소폭 상승한 것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뉴스 신뢰도 상승이 코로나19 판데믹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적 재난 속에서 시민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뉴스에 의존한 경험이 긍적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시민들이 평소엔 유튜브, SNS에서 정보를 찾아도, 위급한 상황엔 여전히 언론에서 팩트를 찾는다는 뜻이다.
FORESIGHT_ 언론개혁?

팩트는 성역이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 지켜야 하는 가치지 누려야 하는 건 아니다. 시민들이 팩트에 있어서 언론의 권위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그 성역이 깨지긴 힘들다. 이를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정치권이다. 권력을 잡은 정치권이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건 늘 언론개혁이다. 언론의 자성이 공허해 보여도 계속 요구되어야 하는 이유다. 팩트라는 성역에 안주하면 언론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언론 견제 장치에 대한 논의는 언제든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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