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라는 쉬운 문법

7월 2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MZ세대론이 ‘진짜’ 문제를 가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MZ세대를 쪼개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보인다.

 

  • 고인플레이션(高inflation)이 전 세계를 덮쳤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현실이 MZ세대의 ‘무지출 챌린지’로 포장됐다.
  • 이건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양극화다.

BACKGROUND_ MZ라는 쉬운 문법
  •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떨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MZ세대의 ‘무지출 챌린지’가 주목받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지갑을 열지 않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 인플레이션은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삶에 닿진 않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보고서에 따르면, G20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5.3퍼센트 올랐다. 2021년 이전 평균 상승률은 2.73퍼센트였다. 숫자만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MZ세대가 굶고 있다”는 문장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 하루 종일 돈을 쓰지 않고 생활하는 것은 MZ세대의 챌린지가 아니다. 현실이다. MZ라는 쉬운 문법이 가린 현실을 봐야 한다.

ANALYSIS_ 욜로와 무지출 사이

MZ세대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이들을 그저 나이로만 엮는 덴 한계가 있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MZ세대의 특징은 모순적이다. 욜로(YOLO)와 무지출 사이를 오간다. 
  • 지갑 여는 MZ ; 코로나19를 기점으로 MZ세대는 골프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유원골프재단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30대 이하 골프 인구는 이미 2020년 100만 명을 돌파했다. 또 BC카드 AI빅데이터본부의 분석에 따르면 2030세대 골프 관련 매출 비중은 2년 사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고물가에도 MZ세대의 골프 바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 지갑 닫는 MZ ; 한편 짠테크 바람도 불고 있다. 원하는 품목을 지정하면 한 달 동안 할인 받을 수 있는 유료 멤버십 서비스 ‘CU 구독 쿠폰 서비스’는 올해 6월까지 가입자가 51.4퍼센트 증가했다. 걷기, 영수증 인증 등으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캐시슬라이드, 네이버 마이플레이스도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여가에 투자할 만큼의 재력을 갖춘 MZ세대도 있는 반면, 적립금 100원에 필사적인 MZ세대도 있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MZ세대를 나눠 봐야 한다. 그러면 양극화가 보인다.
DEFINITION_ K자형 회복

경제적 수준은 회복의 양극화를 낳는다. K자형 회복은 고소득 노동자는 경기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하고 저소득 노동자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코로나19 판데믹 회복세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IT 기업은 코로나19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과 거리두기 해제의 수혜를 입고 있는 반면, 코로나19의 피해를 떠안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여전히 대출에 묶여 있다. 고인플레이션의 여파도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KEYPLAYER_ 정부

정부는 먼저 고물가라는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 밥상 물가 잡기에 나섰다. 굶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열린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관련 대책들이 마련됐다.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되는 돼지, 소, 닭고기 등에 대한 할당관세 면제,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에너지・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흔들고 있는 시점에 지금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장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STRATEGY_ 금리 인상

관세 면제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한정된 예산을 쏟는 일이다. 앞서 언급된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에 편성된 예산은 예비비 500억 원이다. 50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지만, 1인당 체감 효과는 1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는 마지막 카드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 즉 금리인상이다. 한국은행도 계속해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RISK_ 취약차주

고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은 취약차주부터 무너뜨린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동시에 저소득 상태에 놓인 차주를 말한다. 우리나라 청년 4명 중 1명은 이미 취약차주에 해당하거나 잠재적 취약차주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의 ‘청년층 가계대출 상황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청년층의 취약차주 혹은 잠재적 취약차주는 24퍼센트에 달했다. 우리나라 청년 4명 중 1명이 고인플레이션에 흔들리고 있다.
RECIPE_ 빚 탕감?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에서 ‘125조 원+α’ 규모 채무 부담 경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금융 취약층의 부채 부담을 덜어주려는 목적이었다. 청년의 빚을 탕감해줄 수 있다는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가 포함됐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으며 대상 청년은 34세 이하, 약 4만 8000명 정도였다.
CONFLICT_ 형평성

논란이 거셌다. 영끌, 빚투로 대변되는 청년 대출을 국가가 변제해주는 건 온당하지 않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청년 지원 정책은 일부일 뿐이고, 원금 탕감 조치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고 대출 만기 연장과 금리를 일부 낮춰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이번 제도는 별도 지원이 없이는 원금 상환이 어려운 청년 차주가 낮은 금리로 전액 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NUMBER_ 7.7배

통계청의 2019년 기준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19~34세에 해당하는 청년층 내 소득격차는 7.7배다. 소득 1분위에 해당하는 저소득 청년층 평균소득은 84만 9000원, 고소득 청년층은 655만 6000원이었다. 평균자산 격차는 저소득 청년층 6000만 원, 고소득 청년층 15억 7000만 원으로 드러났다. SBS가 개인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20대 서울 청년 5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3퍼센트가 빚의 원인으로 생활고를 지목했다. 또 부모나 친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청년이 79퍼센트,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청년이 66퍼센트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언급한 “별도 지원이 없이는 원금 상환이 어려운 청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EFFECT_ 체감의 양극화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는 경제 속에서 모두가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를 체감하는 정도는 경제적 수준에 달라진다. 21년 만에 국내 엥겔 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소득층일수록 식료품이 지출 총액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줄이고 줄이면 남는 건 결국 식비다. 고물가 시대, 누군가 여가 활동을 포기할 때 누군가 포기하는 건 밥 한 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K자형 양극화 시대에서 이러한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경기 회복 이후까지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INSIGHT_ 끝과 끝

지금 대형마트엔 가성비와 프리미엄이 한데 모여 있다. 치솟는 물가에 이마트는 시즌 대표 먹거리 상품을 업계 최저가로 공급하는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편 판데믹 이후 보복 소비로 수요가 증가한 프리미엄 상품도 확대했다.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동탄 지역의 이마트 트레이더스 지점에선 슈퍼카, 소형 주택, 골프 박스가 팔리고 있다. 한쪽에선 가격의 끝을 외치는 동안, 한쪽에선 2억 6500만 원짜리 중고 페라리가 팔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형마트 업계의 트렌드로 해석된다. 트렌드라는 이름을 씌우는 순간, 모든 문제의 심각성은 희석된다. 끝과 끝에 닿아 있는 사회 문제가 아닌 잠깐의 현상으로 축소된다. 무지출 챌린지를 MZ세대의 트렌드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FORESIGHT_ 시간 싸움

MZ라는 쉬운 문법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가려 왔다. MZ세대를 트렌드로만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있다. MZ세대는 더 이상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꽤 오래 전 시작된 양극화, 그 간극 사이에서 탄생한 세대다. 어쩌면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MZ세대를 하나로 묶으려는 동안, MZ세대 내 간극은 더 커졌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MZ세대라는 가림막을 치우고 진짜 문제를 마주할 때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간극은 더 커진다.


이 글은 〈빚쟁이가 되어버린 MZ를 아시오?〉와 함께 읽으시면,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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