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향기는 ESG하지 않다

8월 1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취향이 사치가 되는 시대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 위스키의 깊은 풍미는 유죄다. 탄소 중립 관점에서 그러하다.
  • 이제 기후 위기는 직접적인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위스키 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 지속 가능한 취향을 위해 사치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이다.

DEFINITION 1_ PEAT

위스키를 삼키는 행위는 향을 삼키는 행위이다. 겹겹이 쌓인 향이 후두부에서 코끝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섬세하고 강렬한 향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오크통인 캐스크(Cask), 증류 방법, 수원(水原)이나 원료 등이 그것이다. 스카치위스키에서는 피트(Peat)가 특히 중요하다. 흔히 아드벡이나 라프로익 등 아일라 싱글 몰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데, 매캐한 탄 냄새 같은 향을 만드는 것이 바로 피트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탄(泥炭)’이다.
BACKGROUND_ 이탄

이탄은 말 그대로 진흙 상태의 석탄이다. 식물이 땅에 묻혀 시간과 열, 압력을 받아 돌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 석탄이 되는데, 이탄은 불완전 분해된 식물이 습한 지역에 쌓여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진흙 반, 석탄 반이다. 탄소 함유량은 60퍼센트 미만이고, 지표면에서 바로 얻을 수 있다. 때문에 거름으로 쓰이기도 하고 말려서 난방용 연료로 쓰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이탄지(泥炭地)가 특히 잘 알려져 있고, 스코틀랜드 지방에도 음산하고 우중충한 날씨 탓에 이탄층이 펼쳐져 있다.
CONFLICT_ 위스키와 탄소

스코틀랜드 습지에 널린 값싼 이탄은 위스키 제조 과정에서 맥아를 말리기 위한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거름도 아닌 것이 석탄도 아닌 존재, 이탄으로 불을 피우니 당연히 강한 연기가 날 수밖에 없다. 그 향이 위스키에 깊이 스며들어 고유의 훈연향, 강한 피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매캐한 풍미가 매력이 된다. 애호가들은 피트에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거친 자연을 느낀다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위스키 제조를 위해 이탄 습지를 희생하는 과정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문제다. 전 지구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이탄지대가 전체 식수의 약 85퍼센트를 공급한다. 게다가 이탄지는 지구 표면의 3퍼센트를 덮고 있을 뿐이지만, 전 세계 모든 숲보다 두 배나 많은 탄소를 품고 있다.
RISK_ 이탄지의 비극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논의일 수 있지만, 사실 이탄지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늦춰줄 중요한 ‘탄소 흡수원’인 동시에 파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해 버릴 수도 있는 ‘탄소 시한폭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발생했던 인도네시아 산불은 두 달째 계속되었다. 이탄지 지역에서 계속해서 번져가는 불길을 잡기 힘들었던 점이 원인 중 하나였다. 이탄지에 불을 지르면 비옥한 농토가 된다. 야자나무를 심어 팜유를 생산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식량안보의 논리를 들어 이탄지 개간 문제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최근 콩고는 이탄지를 포함한 석유 및 가스 매장지들을 경매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콩고 정부는 기근에 내몰린 국민부터 챙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DEFINITION 2_ 기후위기 시대의 사치

위스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먹고 살기 위해 이탄지를 파괴하는 인도네시아나 콩고를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호사스러운 취향을 위해 이탄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위스키의 본고장 영국은 올여름 살인적인 폭염을 호되게 겪고 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열기 앞에 시민들이 쓰러졌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더욱 잔인한 여름이 예고되어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더 이상 사치의 기준은 가격일 수 없다. 이탄은 분명 저렴하다. 그러나 농밀한 한 모금을 즐기기 위해 이탄을 사용하는 것은 이제 명백한 사치다.
RECIPE_ 위스키 2.0

그렇다면 우리는 스카치 위스키를 그만 마셔야 할까? 여기에 답을 내놓고 있는 증류소들이 있다. 탄소 중립을 지키며 취향도 함께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적극적인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증류소들이다.
  • 눅니안 (Nc'nean) ;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자리 잡은 눅니안 증류소는 이탄을 사용하지 않는다. 피트를 포기한 대신 눅니안의 위스키에는 두가지 다른 풍미가 담겼다. 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강한 베리 향과 하이볼에 적합한 레시피를 함께 표시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2020년 첫 위스키를 출시한 이 증류소의 오너, 아나벨 토머스(Annabel Thomas)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사랑받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스카치위스키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 브뤼클라딕 (Bruichladich) ; 브뤼클라딕 증류소는 아드벡이나 라프로익 등 강한 피트를 특징으로 하는 증류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 아일라섬에 위치한다. 브뤼클라딕은 2025년까지 증류 공정에서 탄소 제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실현 중이다. 솔루션은 바로 수소에너지다. 위스키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연료를 수소로 전환해 온실가스 배출 없이도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브뤼클라딕은 작년, 이 프로젝트를 위해 265만 파운드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또 향후 섬 주변 환경을 이용한 풍력·조력 발전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 벨그로브 (Belgrove) ; 피트를 포기하되 포기하지 않은 증류소도 있다. 호주 테즈메니아에 위치한 벨그로브 증류소가 바로 그렇다. 이곳에서는 이탄 대신 양의 배설물을 사용해 피트의 풍미를 재현한다.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품질을 인정한 바 있다. 이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맥아를 물에 적시거나 부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사용량을 최소화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또한 감자튀김 가게의 폐식용유를 사용해 만든 재생 연료로 증류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KEYPLAYER_ SWA

영국 스카치위스키협회(SWA)도 탄소 중립 위스키라는 시대적 흐름에 동참했다. 오는 2040년까지 ‘net zero’ 즉, 온실가스 순 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발효주를 가열하여 생산하는 ‘증류주’의 특성상, 위스키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맥아의 건조 과정에 굳이 이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체 공정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유’로 불을 때 온 것이다. 위스키의 성지 아일라섬의 경우 아홉 군데 증류소에서 매년 석유 1천500만 리터를 태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다. 위스키 찌꺼기를 활용한 바이오 연료, 100퍼센트 재생 유리를 사용한 위스키 병, 천연 냉각지를 거쳐온 물을 재활용하는 방식 등이 활용되고 있다. 위스키 생산업자들이 탄소 중립에 동참하게 된 것은 사실 생존 전략에 가깝다. SWA의 모라그 가든 지속가능성 책임자는 "위스키 생산업자들이 기후 변화에 따른 가뭄이 보리 작황에 악영향을 주고, 홍수도 물품 운송 등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FORESIGHT_ 가치소비

이러한 흐름은 바다 건너 영국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도 이제 이 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3차를 위한 술’이란 딱지를 떼고, 위스키가 본격적인 대중화의 흐름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치소비’의 중심에 있는 20~30대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위스키 수입액은 1억 7535만 달러로 2020년 대비 32.3퍼센트 급증했다. 와인의 대중화 이후 유기농 와인이 중요한 트렌드로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위스키의 소비에도 비슷한 경향을 예측해 볼 수 있다. 특히, 위스키가 취향의 영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무엇을 선택하여 즐기느냐가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가치소비에 딱 맞는 타깃이 될 수 있다.
INSIGHT_ 한 모금의 가치

취향은 무죄다. 그러나 무관심은 유죄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충족시키는, 한 모금이 지속가능하려면 그 향의 진정한 가치에 관해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위스키는 사실, 수많은 사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 뜨거운 여름을 원망하기 전에 우리 삶의 방식 전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향기롭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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