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도 가불이 되나요

8월 3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만 5세 입학 논란의 뒤에는 정치와 경제 논리, 그리고 언론의 편협함이 있다.

  • 교육부가 ‘만 5세 입학’ 이슈를 꺼내 들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 이 논의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2017년도를 들여다보면 답이 있다.
  • ‘박순애 세대’의 출현은 당사자와 학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충격이다.

BACKGROUND_ 다섯 살

다섯 살이 화두로 떠올랐다. 교육부의 업무보고 후폭풍이다. 우여곡절 끝에 임명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실상 처음으로 이번 정부의 교육 로드맵을 밝히는 자리였다. 다양한 내용이 담겼지만, 여론은 서프라이즈에 주목했다. 다름 아닌 학제 개편, 구체적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한 살 낮추는 방안이다. 2019년 출생 아동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만만찮은 여론에 교육부는 추후 논의로 입장을 일단 선회했다. 사실, 입학 연령 하향 문제는 낡은 이슈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 정부에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번번이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야말로 깜짝 놀라고만 까닭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단 한 번도 관련 내용이 언급된 바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갑툭튀’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논의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2017년에 이미 시작되었다.
KEYPLAYER 1_ 박순애?

이 논의가 어떻게 나왔는지 추론하기 위해서는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4월의 상황을 상기해 보자. 당시 윤석열 당선인의 조각 인선을 둘러싸고 이른바 ‘안철수 패싱’사태가 있었다. 결국 갈등은 봉합되었지만, 이후에도 거국적인 단일화의 결과치고는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누가 봐도 확실한 안철수계 인물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었다. 바로 박순애 당시 인수위원이다. 2017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지지 선언에 동참한 바 있으며, 안철수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태규 의원과는 사제지간이다. 행정 전문가인 박 부총리는 조각 기간 동안 여성가족부 장관의 후보자로 언급되었으며 환경부 장관 하마평에도 올랐다. 결국, 김인철 부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안철수계 박순애 부총리가 탄생한다. 교육 전문가가 아닌 교육부 장관의 탄생이었다.
KEYPLAYER 2_ 안철수!

따라서 박순애 표 교육 정책에 안철수 의원의 정책 방향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은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 포함된다. 실제로 2017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교육 정책에 이 학제 개편이 포함되어 있었다. 요약하면 만 5세 입학 + 5-5-2 학제로의 개편이다.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5년간의 초등교육, 5년간의 중고등교육을 마친 후 2년간 진로직업탐색학교를 거치며 미래를 준비한다. 이 뼈대를 만든 것은 당시 안 후보의 교육 자문을 맡았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조영달 교수다. 조 교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 서울시 교육감 보수진영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CONFLICT_ 합리적 의심

물론, 이번 5세 입학 학제 개편이 온전히 정치권의 자리 나누기와 그 여파로 나온 정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당사자들의 언급이 없는 한, 해당 내용이 어째서 사회적 합의 없이 업무보고에 포함된 것인지는 추측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정황이라는 것이 단단할수록 합리적 의심이 힘을 얻는다. 여러 정황 중 하나가 바로 지난달 27일에 보도된 안철수 의원의 인터뷰다. 교육 정책 관련, 안 의원은 2017년도의 공약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만 5세 입학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하게 된다. 교육 정책에 정치가 ‘묻어버리는’ 과정 아니었는지를 말이다.
KEYPLAYER 3_ 언론

정치권이 이 이슈를 가지고 서브를 넣었다면 리시브를 한 것은 언론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입학 연령 하향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커뮤니티의 분노를 읽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에펨코리아, 클리앙 등의 커뮤니티만큼이나 강한 발언력을 가진, 맘카페다. 사실 2010년대 후반 이후 언론이 이야기하는 ‘민심’이라는 것은 저잣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이미 언론이 민심을 읽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되어있다. 전문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와 주요 커뮤니티 모니터링이 그것이다. 물론, 만 5세 입학 이슈는 우리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이슈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시각은 다분히 맘카페에 맞춰져 있다. 언론은 그 사실을 당당히 고백한다.
RISK_ 세대의 탄생까지

그러나 이 이슈는 다각도에서 분석해 봐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다. 셀 수 없이 많은 층위에 생각지도 못할 영향을 미치게 될 결정이다. 이미 드러난 영향 중 일부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다.
  • 대학교육과 취업시장 ; 이 이슈는 교육 공무원 및 유관 직업을 준비하고 있는 2030 세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만 5세가 초등교육에 편입될 경우, 당장 유아교육과와 초등교육과의 학과 구분에 혼선이 생긴다. 쉽게 말하자면 초등학교에서 놀이로 가르칠지 책으로 가르칠지, 그 영역과 범주는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다시 논의한 후 각 교육학과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해진다. 또한, 초등 교사와 국공립 유치원 교사의 수요도 변화한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국공립 유치원 교사 충원 속도를 조절한 바 있다. 유아교육과 학생들의 진로에 더 짙은 먹구름이 낄 수 있다.
  • 돌봄 노동자의 정의 ; 만 5세 입학을 둘러싸고 가장 크게 제기되는 우려 중 하나가 바로 돌봄이다. 보통 저녁 7시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유치원과는 달리, 초등학교는 1시면 끝난다. 방과 후 돌봄교실은 대부분 5시까지이며 그마저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하여 박순애 부총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돌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저녁 8시까지 돌봄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장의 해묵은 갈등을 외면한 발언이다.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은 방과 후 돌봄교실을 지자체 소관으로 분리하자고 주장해 왔다. 학교와 돌봄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돌봄전담사 사이의 입장 차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갈등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방과 후 돌봄을 급격히 확대한다는 계획은 비현실적이다. 박 부총리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돌봄전담사의 정의부터 확실히 내려야 한다. 교육 공무원인지, 아닌지. 시간제 노동자인지, 전일제 노동자인지 말이다.
  • 박순애 세대의 탄생 ; “사회적 협의를 거치겠다”라며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만약 애초의 정부안대로 입학 연령 조정이 시행될 경우 2025학년도 입학생부터는 6만~8만 명의 추가 경쟁자가 생긴다. 바로 앞 세대와 바로 뒷 세대에 비해 짊어질 부담이 큰 것이다. 이 불안감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교육부의 업무보고 이후 첫 월요일이었던 지난 8월 1일, 교육주가 급등했다.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세대는 사회 전체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일본의 빙하기 세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 사회의 시한폭탄이라 불리고 있다. 만약, ‘박순애 세대’가 현실이 된다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존재가 될까?

STRATEGY_ 공정의 방법

교육부의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입”하는 방안은 “교육의 출발선부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초등교육 이전 단계에서 소득 격차가 학력 격차로 전이되는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치고는 너무 급격한 변화다. 오히려 현실적인 방안이, 현장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유치원이 서서히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월 10만 원, 사립 유치원의 경우 월 28만 원의 유아 학비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국공립 유치원의 비율을 순차적으로 늘리고, 교육 과정을 탄탄히 지원하는 등, 이미 논의되고 있는 현실 가능한 방안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INSIGHT_ 너의 이름은

그래서 결국 진심을 묻게 된다. 혹시 이 정책의 진짜 이름이 ‘입학 연령 하향’이 아닌 ‘인구 가불’인지 말이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절벽 위협을 넘어서기 위해 1년 치의 인구를 당겨오겠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논의에 너무나 게을렀다는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출산 저성장 사회의 부담을 4년간 태어난 아이들 어깨에 고스란히 지우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FORESIGHT_ 한국의 미래를 묻거든 태권도장을 보게하라

동네마다 태권도장이 있다. 반드시 있다. 우리나라의 국기(國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태권도장이 우리나라 초등학생 돌봄 체계에서 허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등학교가 1시에 끝나면 돌봄교실에 남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돈다. 이때 A 학원에서 태권도장으로, 태권도장에서 B 학원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태권도장의 셔틀 차량이다. 이는 교육과 돌봄을 그 자체로 보지 않은 결과다. 정치 논리에 흔들리고, 경제 논리에 흔들리고, 게으른 언론에 의해 납작하게 해석된 결과다. 언제까지고 태권도장에 미래를 맡겨둘 수는 없다.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초등학생이 성장해 청년이 되었을 때 노년을 맞게 될, 바로 우리의 문제 말이다.


팬데믹을 겪고 난 우리의 교육 격차에 관한 포캐스트, 〈모니터 크기의 학교〉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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