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것, 세계관

8월 5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민희진의 아이들 ‘뉴진스’의 인기가 심상찮다. 세계관이 지배한 아이돌 산업에서 뉴진스의 전략은 무엇일까?

  • 하이브 산하 기획사 ‘어도어(ADOR)’의 신인 그룹 ‘뉴진스’가 올해 데뷔한 걸그룹 중 최고 성적을 거뒀다.
  • 세계관이 필수 요소가 된 엔터 업계에서 뉴진스는 자연스러움과 친근함을 내세운다.
  • 친근하지만 닮고 싶은 아이돌에서 우리는 어떤 공식을 읽을 수 있을까?

WHY_ 지금 뉴진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세계관은 익숙한 문법을 넘어서 필수가 됐다. 마블 유니버스의 글로벌한 성공과 함께 SM과 하이브 등 거대 엔터 기업들이 하나의 그룹에 세계관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SM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하이브 산하 기획사의 대표가 된 민희진이 내놓은 뉴진스가 색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뉴진스는 당연한 듯 여겨졌던 세계관 문법을 당당히 빗겨 섰다. 친근함을 겨냥하는 이들의 전략을 읽으면 관성적인 세계관 바깥의 것이 보인다.
DEFINITION_ 세계관
  • MCU; 콘텐츠의 세계관은 일종의 가상 세계다. 마블 스튜디오의 개별 캐릭터와 서사는 〈어벤져스〉에서 만나 마블 유니버스가 된다. 〈어벤져스〉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블의 다른 영화를 봐야한다는 뜻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과거의 서사에서 실마리를 찾고, 미래의 서사를 예상한다. 한 번 몰입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 EXO; 2012년 데뷔한 SM의 ‘엑소’는 엑소플래닛에서 온 초능력자다. 엑소에게 부여된 시간적, 공간적 당위는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다. 앨범과 뮤직비디오에는 이 세계관을 구축하는 수많은 상징이 숨어있다. 팬들은 데뷔 전 공개된 티저와 새로 공개된 뮤직비디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낸다. 엑소는 한정적으로만 작동했던 콘셉트를 그룹 단위로 확장했다. 엑소의 성공은 레드오션에 잠긴 엔터 산업에게는 신대륙 발견과도 같았다.

EFFECT_ 세계관+아이돌

어쩌다 아이돌에게 세계관은 신대륙이 되었을까? 기상천외한 세계관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이른바 ‘덕질’의 재미를 추구하는 팬들에게 세계관은 부가 콘텐츠가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한계가 분명했던 아이돌 산업을 전방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이 됐다.
  • 능동적인 팬; 엑소는 데뷔 전부터 스물 세 편의 티저를 공개하며 세계관을 설득시키기 위한 초석을 단단히 했다. 팬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해석하듯 아이돌 세계관을 소비했다. 음악 분야에서 앨범과 가사를 통해 서사를 풀어나가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영국의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1972년에 발표된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통해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자신의 가상적 페르소나와 그의 팬인 ‘화성의 거미’를 다룬다. 첫 번째 트랙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지기 스타더스트는 마지막 트랙에서 죽음을 맞는다. 록에 열광했던 팬들은 수수께끼 같은 노래 가사들을 훑으며 지기 스타더스트의 인생 곡선을 해석했다. K팝은 이 팬들의 열정을 토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했다.
  • 확장과 연결; SM은 초기 단계였던 엑소의 세계관을 ‘NCT’와 ‘에스파’로 이어나갔다. 2022년 SM의 세계관은 SMCU로 닿는다. 그룹 단위의 세계관에서 SM 전체의 세계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에 맞춰 팬덤 커뮤니티 플랫폼도 변화했다. 개별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버블(리슨)’에서 ‘광야클럽’으로 커뮤니티가 바뀌고 있다. SM의 한 그룹을 좋아하면 광야 세계관으로 엮인 다른 그룹에 관심을 갖게 되고 락인 효과를 발휘한다. 하이브의 전략은 조금 달랐다. BTS의 성장 서사에 내용적 초점을 맞추되 웹툰이나 캐릭터 등으로 미디어를 확장했다. OSMU 전략이 세계관을 통해 가능해졌다. 대세계관의 시대에서 엔터 기업에게 아티스트는 하나의 구성 요소다. 수많은 요소가 엮이는 아이돌 특성상 춤과 노래, 비주얼, 콘셉트, 사람 등을 하나로 엮을 경첩, 즉 세계관이 필요했다.

KEYPLAYER_ 민희진

민희진의 경력은 2007년 SM에서 시작된다. 소녀시대부터 NCT까지 모두 민희진의 디렉팅을 거쳤다. 민희진은 2019년 SM을 퇴사한 후 하이브로 거처를 옮겼다. 그에게 있어 기획의 원칙은 ‘정반합’이다. 성공 공식(正)을 만들었다면 새로운 시도(反)로 확장하고 이전을 참고해 더 나은 결과(合)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일종의 진화론에 가깝다. 민희진 영입 이후 하이브도 비슷한 정체성을 내세웠다. ‘확장-연결-관계’다. 하이브는 플랫폼으로서 산하 기획사와 콘텐츠, 서비스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민희진의 이적은 새로운 ’합‘을 찾는 과정일 수 있다.
STRATEGY_ 뉴진스

그렇게 탄생한 민희진 대표의 아이돌 그룹 뉴진스는 에스파와도, BTS와도 달랐다. 뉴진스는 공격적인 확장 가능성과 락인 효과를 노린 세계관 전략과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친근함; 뉴진스는 이름부터 언제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청바지를 표방한다. 친근하고 편안하다는 콘셉트의 핵심에는 뉴진스의 팬덤 플랫폼인 ‘포닝(Phoning)’이 있다. 포닝은 어도어와 위버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뉴진스의 소통 어플리케이션이다. 공개 첫 날 앱스토어 소셜 네트워크 부문에서 14위를 기록했다. 아티스트가 시작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은 팬에게 영상통화처럼 걸려온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를 하는 듯한 감각을 준다. 캘린더를 통해 모든 멤버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뉴진스의 친구라는 글귀가 적힌 ID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 익숙함; 뉴진스는 데뷔 전 티징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한 곡을 네 편의 뮤직비디오로 공개하면서 멤버 개인을 강조했다. 세계관을 외부의 스토리에서 끌고 오는 대신 개인 각자의 서사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모든 멤버를 보려면 뮤직비디오를 네 번 보게되니 멤버와 노래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익숙함이라는 테마 자체가 그룹의 정체성이자 진입 장벽이 낮은 세계관이 된 셈이다.

ANALYSIS_ 뉴진스 문화

뉴진스가 멤버 개인을 내세우면서 팬들도 그들과 같은 개인의 위치에 놓인다. 자연스러움과 익숙함이라는 콘셉트와 합쳐져 팬과 뉴진스 멤버는 ‘친구’가 된다. 민희진은 이미 힙하고 팝한 디렉팅으로 인기를 얻었다. 개인과 내밀한 소통을 강조하는 전략은 비범하지 않다. 그러나 비범하지 않기에 누구나 뉴진스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
RECIPE_ 유대감과 진입 장벽 사이

세계관 전략은 타 비즈니스 분야로의 확장을 가능케 하고 팬덤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피로함과 진입 장벽을 높이기도 한다. 음악 평론가 정민재는 본인의 SNS에 K팝의 세계관이 슬슬 지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몇몇 팬들은 덕질하기 위해 회사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게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뉴진스가 개인성을 강조하고 익숙한 디지털 문화를 내세우며 하이틴의 성장 서사를 담아내려는 이유다. 가상만이 주목받는 세계에서 오히려 가까운 물질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주적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논문 수준의 세계관을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들 사이에 섞이면 된다.
INSIGHT_ 너의 세계, 나의 세계

지금의 엔터 산업은 상상 속 유니콘이 아닌 아름다운 백마를 판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히어로보다는 나의 친구들일 수 있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세계관을 내세웠던 그룹도 이런 선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팬들은 기획사에서 내놓는 ‘자컨(자체 제작 콘텐츠)’ 영상을 활발히 소비한다. 팬들은 내 가수의 완벽한 모습뿐 아니라 소소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원한다. ‘비리얼(Bereal)’의 선풍적인 인기는 자연스러움이 트렌디함이 된 지금을 반영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성장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SM의 세계관이 광야라는 공간적 축이라면 어도어의 세계관은 개인과 관계의 성숙이라는 시간적 축을 상정한다. 평범한 ‘나’의 세계에 밀착하기 위해 세계관은 개인화 됐다.
FORESIGHT_ 가상인간 아이돌?

언젠가 가상인간 아이돌이 인간 아이돌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가상인간은 영원히 아름답다. 이 말은 성장하거나 늙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이 지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상인간에는 여러 설정이 덧붙는다. 직업, MBTI, 관심사 등이다. 그런데도 가상인간이 말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는 건 기이하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가상의 힘이 강하지만 동시에 연결과 물성을 내세우는 레트로가 유행하는 시대다. 가상에만 집중하면 또 다른 흐름을 놓칠 수 있다. 아이돌 산업은 그들을 닮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을 연료 삼아 작동한다. 가상인간 아이돌은 자컨과 팬 미팅의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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