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단어, GREEN

8월 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러시아가 가스관 밸브를 잠그자 유럽이 탈석탄 흐름에서 유턴하고 있다. 유럽이 말하는 ‘그린’은 무엇인가.

  •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밸브를 잠그자 유럽이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다.
  • 유럽은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하며 ‘그린’을 재정의했다.
  • 우리나라는 에너지 위기에 달리 접근해야 한다. 진짜 ‘그린’을 찾아야 한다.

BACKGROUNG_ 잠긴 가스 밸브

러시아가 유럽의 에너지를 볼모로 잡았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2월부터 서방 제재에 맞서 에너지를 무기화했다.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밸브를 잠갔다. 독일은 가스 수요의 55퍼센트를 러시아 수입산에 의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트 스트림-1’의 가스 공급을 평소의 20퍼센트로 축소했다. 라트비아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거의 100퍼센트에 달한다. 러시아는 라트비아 외에도 폴란드, 네덜란드 등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독일은 당장 쓸 전력이 없어 대통령 관저인 벨뷰 궁전 조명마저 끄고 있다.
KEYPLAYER_ 미국

러시아 밸브가 잠기자 유럽은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은 2022년 상반기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되었다. 미국은 어떻게 러시아발 에너지 제재의 반사이익을 누리게 된 걸까? PNG의 공백을 LNG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 파이프라인가스(PNG, Pipeline Natural Gas) ; 파이프의 압력을 통해 수송된다. PNG 계약은 보통 국가 간의 장기계약으로 체결된다. 파이프 등 가스 수송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수입국과 수출국이 공동 투자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문제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
  •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 ; 천연가스를 액화한 형태로 선박으로 운송된다. 일시적 단기적 현물 거래가 가능하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LNG 수요로 이어진다.

STRATEGY_ 탈석탄 선도부의 유턴

미국에서 천연가스를 들여오고 있지만, 수요를 충족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마음이 급한 유럽의 국가들은 석탄에 손을 뻗고 있다. 말하자면 유럽은 탈석탄 선도부였다.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글로벌 리더를 자임해왔다. 유럽의 유턴은 ‘그린’이란 문제적 단어를 낳았다.
  •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은 최근 에너지안보 관련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석탄화력발전 폐지 조치를 2024년까지 유예했다. 이번 개정에 따라 폐지 수순에 들어섰던 발전소도 부활한다. 네덜란드는 석탄화력발전소 생산량 상한선을 없앴다. 그리스는 2024년까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도 석탄발전소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 유럽 국가들은 석탄 사재기에도 나서고 있다. 콜롬비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구매 경로도 다변화하고 있다. 유럽의 석탄 사재기로 연초 톤당 134달러였던 석탄 가격은 400달러 선까지 급등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은 올해 유럽 석탄 소비량이 지난해보다 7퍼센트 증가할 거란 예측을 내놨다.

DEFINITION_ 그린도 블랙도 아닌

그렇다고 유럽이 천연가스를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천연가스는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천연가스의 정체성은 논쟁적이지만 매력적이다. 재생에너지만큼 ‘그린(green)’하지 않지만, 석탄·석유만큼 ‘블랙(black)’하지도 않다. 천연가스의 오염물질 배출량은 0이 아니지만 황 함유량이 낮아 대기 오염이 석탄보다 덜하다. 천연가스는 석탄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향하는 가교 역할이라는 것이 유럽의 설명이다.
CONFLICT_ 천연가스는 그린?

한발 더 나아가 유럽은 천연가스를 ‘그린’으로 명명해버린다. 유럽의회는 천연가스를 녹색 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했다.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 목록을 담은 분류 체계를 말한다. 천연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했다는 것은 천연가스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엔 눈을 감겠다는 뜻이다. 유럽은 그렇게  ‘그린’이란 문제적 단어를 완성했다.
RECIPE_ 천연가스 개발

유럽은 에너지 위기의 돌파구를 천연가스에서 찾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가스 개발 사업 승인 및 재추진 사례가 늘고 있다. LNG를 수용·수송할 수 있는 터미널도 확충하고 있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유럽에서 최소 25개의 LNG 터미널 사업이 논의 중이거나 착공 중이다.
ANALYSIS_ 남 일 같지 않은 얘기
  •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국·호주로부터 선박을 통해 LNG를 들여오고 있다. 미국·호주의 천연가스를 놓고 유럽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 유럽은 겨울철 난방 수요를 맞추기 위해 LNG 비축에 한창이다. 우리나라와 유럽은 북반구에 위치해 있다. 유럽이 겨울을 준비하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란 뜻이다.

  • 유럽발 수요 증가로 LNG 재고가 급감한 호주는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고 있는 상황에서 LNG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불가피하다.

RISK_ 폭염

상승하는 LNG 가격을 감당하기에 국내 전력 상황도 여의치 않다. 폭염이 전력공급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평년의 ±1도 수준으로 예상됐던 기온의 변동폭은 ±2도로 커졌다. 더운 날씨에 전력 수요가 늘었고, 이는 자연스레 전기를 만들어내는 LNG 수요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가스공사의 LNG 비축량은 올겨울 열흘 치 수요량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8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겨울 전혀 문제 없게 비축 계획을 잡고 있다”고 밝히며 겨울철 블랙아웃 우려를 일축했다.
INSIGHT_ R의 공포
  •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유럽의 사재기로 석탄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경기 둔화로 인해 석유 수요가 감소할 거란 예측이 반영된 결과기 때문이다. 이는 인플레이션에서 침체의 공포로 향해가고 있다는 신호다.
  • 결국 에너지 안보는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얘기다.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것은 위태로운 해결책이다. 천연가스는 양이 유한하고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 경기침체라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 경기 침체란 장기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의 해답을 유럽처럼 석탄과 천연가스에서 찾을 순 없다.

FORESIGHT_ 그린가스
  •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2.8퍼센트다. 우리나라엔 석유도 천연가스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석탄, 천연가스 너머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나라 음식물쓰레기 발생량은 하루 1만4300톤이다. 가축분뇨 발생량은 14만톤이다. 이들을 그냥 두면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쓰레기지만, 바이오가스 시장에선 자원이다. 폐기물을 활용해  만드는 바이오가스의  별칭은 그린가스다. 국내 여러 기업이  바이오가스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에 바이오가스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 현 정부는 민간을 중심으로 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 등을 주요 국정 과제에 포함시켰다. 자원 안보 범위를 천연가스를 넘어 니켈 등 광물로 확대했다. 유럽의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K-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한 것도 마찬가지다. 
  • 한발 나아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되물어야 한다. 진짜 ‘그린’은 무엇인가.  ‘그린’은 문제적 단어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 기회일지 모른다. 유럽이 거꾸로 흐를 때,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이 글은 〈그린의 정의〉, 〈잘못된 선택〉와 함께 읽으시면,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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