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자전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완결

그 많던 자전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매년 수천 대의 자전거가 버려지고 있다. 
지나치게 풍족한 삶의 그림자이자 공유 경제의 비극이다.

The Canal Saint-Martin in Paris. ⓒPhotograph: Patrick Kovarik/AFP/Getty Images

1. 거대한 수중 쓰레기장


파리 시 당국은 10여 년마다 한 번씩 생 마르탱(Saint-Martin) 운하의 물을 빼낸다. 센(Seine) 강의 우안(Rive Droite, 右岸)[1]에서 남쪽으로 4.6킬로미터를 흐르는 이 물길은 원래 콜레라와 이질(痢疾)로 오염된 파리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면서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지난 두 세기 동안 이 운하는 다른 용도로, 오히려 정반대의 기능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곳은 폐기물이 버려지는 거대한 수중 쓰레기장이다. 주기적으로 물을 빼내는 이유도 그런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물이 빠지고 나면, 수천 밤 동안 누군가 내동댕이치거나 집어던지거나 슬그머니 빠트린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2016년에 운하가 비워질 당시에, 사람들은 인도교와 선창에 몰려 나와서 청소 인력들이 진창을 헤집으며 쓰레기를 꺼내는 광경을 구경했다. 매트리스, 여행 가방, 도로 표지판, 안전 고깔(라바콘) 등 수많은 쓰레기들이 있었다. 세탁기, 재단사용 마네킹, 테이블, 의자, 욕조, 변기, 낡은 라디오, 개인용 컴퓨터도 있었다. 진창에서는 수많은 탈것도 끌려 나왔는데, 그중 원래부터 물 위를 운행하도록 설계된 것은 한 대도 없었다. 유모차와 쇼핑 카트 여러 개, 휠체어 최소 한 개, 그리고 모터 달린 자전거도 여러 대 나왔다.

현재 생 마르탱 운하와 인접한 제10구의 거리는 파리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지역 가운데 하나로,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곳이다. 그러나 밤늦은 시각에는 여전히 지나간 시절의 음습한 분위기가 일부 남아 있다. 예전에 이곳은 서민들이 거주하는 초라한 지역이었고, 그래서 누아르 영화나 탐정소설의 무대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영화나 소설들을 보면 생 마르탱 운하의 컴컴한 물속에서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곤 한다.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미스터리 범죄 소설 《매그레와 머리 없는 시체(Maigret and the Headless Corpse)》(1955)는 프랑스 경찰이 생 마르탱 운하의 발미 강둑(Quai de Valmy) 근처에서 절단된 사체를 건져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016년에 청소할 당시에는 사람 시체가 발견되진 않았지만, 가장 북쪽에 있는 수문 한 곳에서 권총 한 정이 나왔다. 이후에도 당국은 이곳에서 소총 한 자루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와인 병과 휴대 전화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발견된 물건은 자전거였다. 2007년에 파리는 벨리브(Vélib’)[2]라는 자전거 공유 사업을 시행했는데, 이는 도시 전역에 1만 4500대의 공공 자전거를 배치하여 사람들이 빌려 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운하의 물이 빠지고 나자, 벨리브 자전거 수십여 척의 뼈대가 운하 바닥의 진흙탕에 반쯤 파묻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제조사와 생산연도가 다른 여타 자전거도 많이 발견되었다. 일부는 고장이 나서 버려진 듯했다. 바퀴가 휘거나 뒤틀린 것도 있었고, 아예 바퀴가 없는 것들도 있었다. 바퀴나 프레임이 멀쩡한 경우에는 손잡이나 스템(stem)[3]이 없었다. 조르주 심농의 소설 제목처럼 ‘머리 없는 시체’였던 것이다.

순전히 우연으로 이곳 운하에 다다른 자전거들도 있을 것이다. 의도치 않은 이유로 물속에 자전거를 폐기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나 안개가 자욱할 때 강둑을 따라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거나 방향을 잃어서 운하에 빠졌을 수도 있다. 술에 취한 채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경찰을 피해 도주하던 범죄자들이 갑자기 강물로 방향을 틀었을 수도 있다. 운하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는 헤엄쳐서 무사히 땅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때로는 자전거까지 함께 가지고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가 때로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신문사의 자료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을 생생하게 보도하는 기사 제목들을 접할 수 있다. “운하에서 익사한 소년, 자전거와 함께 발견”, “자전거를 타던 여성, 강물 다리의 난간 너머로 떨어져 익사”,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글로스터(Gloucester)[4] 남성, 의식을 잃고 운하로 추락하여 익사”, “자전거 타다가 익사한 사람, 어쩌다 이런 참변이?” 등등. 때로는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일부러 자전거를 몰고 물속으로 질주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가을, 미국 뉴욕주의 시러큐스(Syracuse)에서 멀지 않은 드윗(DeWitt)에 살던 38세의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에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인근의 주립공원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자기 손목에 수갑을 채워 산악자전거에 걸고 호수로 질주했다. 그녀의 사체는 일주일 뒤에 발견되었는데, 여전히 수갑으로 자전거에 묶여 있었다.

생 마르탱 운하에 빠진 자전거에 대해 말하자면, 대부분은 어떤 사고나 비극적인 상황에서 물속으로 내던져진 것은 아니라고 추정해도 될 것 같다.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전거가 매력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가해질 수도 있었던 폭력적인 충동의 방향이, 우연히 마주친 생명 없는 물체로 돌려진 것일 수도 있다. 벨리브와 같은 공유 자전거 사업이 성장하면서 전 세계의 도시에 더욱 많은 자전거가 놓이게 되었는데, 이런 자전거들이 기물 파손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자전거는 특정한 개인 소유의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전거 거치소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 위에 그대로 세워두는 도크리스(dockless) 방식의 대여 자전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바퀴를 후려치거나 프레임에 상처를 내거나 브레이크 케이블을 절단하는 등의 자기표현 행위를 막는 걸림돌이 사라졌다. 때로는 더욱 기발한 방식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철제 울타리 위에 자전거를 매달아 놓거나, 신호등이나 버스 정류장의 꼭대기에 올려놓거나, 거대한 익룡들이 둥지를 틀기라도 한 것처럼 높은 나뭇가지 위에 자전거를 모아놓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물속에 자전거를 던져 넣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도 있다. 자전거를 버리는 것이 그 자체로 특유의 만족감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검색해 보면 장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방을 따라 호수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강둑의 난간 위로 자전거를 들어 올린 다음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거친 물속으로 던져 넣는 동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한 영상을 보면 한 십 대 소년이 낡은 파란색 BMX(묘기용 자전거)를 붙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마이크, 이건 네 자전거야. 우리 집 차고에 있던 건데, 나는 이게 별로야. 그래서 이걸 연못에 던져버릴 거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줘.” 그런 다음 소년은 자전거를 끌고 거친 길을 달려서 호수로 밀어 넣는데, 자전거는 나무판자 위를 날아서 물속으로 고꾸라진다. 자전거가 순식간에 소멸하는 이 순간이 불안정한 구도로 담기는 가운데, 주변에서는 감탄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수면 위에서는 자전거의 뒷바퀴가 잠시 거품을 일으키고, 결국 자전거는 그걸 꿀꺽 삼켜버리는 연못 속으로 사라진다. 익살스러운 장면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재미있어 보인다.
Canal Saint-Martin maintenance in Paris in 2016. ⓒPhotograph: Yoan Valat/EPA


2. 자전거 무덤


확실한 것은, 이걸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전염성이 아주 높다. 케임브리지셔(Cambridgeshire)의 피터버러(Peterborough)에서 자란 영국 사람이라면 1960년대에 이 지역 소년들이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나는 일이 흔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일탈 행위는 결국 자전거를 넨(Nene)강에 던져버리는 의식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다 “물속에 산더미처럼 쌓인 자전거 무더기에 보트 한 척이 걸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행위의 실체가 밝혀졌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한때 165개에 달하는 도시 운하에 버려지는 자전거들이 너무 높이 쌓이는 바람에 바닥이 평평한 바지선들의 아랫면을 긁어댈 정도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피첸 피센(fietsen vissen)’, 다시 말해서 ‘자전거 낚시’였다. 예전에는 좁다란 배를 타고 운하에서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고물상들이 이런 일을 처리했다. 그들은 낚싯대로 자전거를 건져 올린 다음 고물상에 팔았다.

1960년대에는 암스테르담의 수자원 당국이 자전거 낚시 업무를 총괄했다. 요즘에는 지자체 소속 노동자들이 유압식 집게 갈퀴가 달린 크레인 배를 타고 물에 빠진 자전거를 훑고 다닌다. 문제는, 예전만큼 그 정도가 심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매년 1만 5000대의 자전거를 꺼내고 있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도 이런 현장에 많은 구경꾼이 몰리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거대한 철제 집게발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전거 바퀴와 프레임과 바구니들을 물 밖으로 건져 올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건져낸 자전거들은 쓰레기 바지선에 실려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동한 후 재활용된다. 재활용되는 자전거의 상당수는 맥주 캔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암스테르담에서도 그렇게 수많은 자전거가 물속에 버려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시 관계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기물 파손이나 절도의 탓으로 슬그머니 돌린다. 알코올이 한몫을 하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일종의 순환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운하에서 꺼낸 자전거는 맥주 캔으로 재활용된다. 암스테르담 주민들이 캔에 담긴 맥주를 들이켠다. 어느 주민 한 명이 그렇게 밤늦게까지 진창으로 마신 뒤에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러다가 자전거 한 대를 발견하고는 그걸 운하로 집어 던지고픈 강한 충동에 사로잡히는 식이다. 

작가인 피트 조던(Pete Jordan)은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와 그곳의 자전거 문화에 대한 매력적인 내용을 담은 《자전거의 도시에서(In the City of Bikes)》라는 책에서, 물속에 버려지는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는 그 원인의 일부가 이 도시의 격랑과도 같은 정치사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193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들이 파시스트들의 자전거를 ‘왕자의 운하’라는 뜻을 가진 프린센그라흐트(Prinsengracht)에 던져버리면서 그들에게 골탕을 먹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에는 레지스탕스 지도자들이 암스테르담 주민들에게 각자 보유한 자전거를 운하에 던져버려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에는 나치가 자전거를 몰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들의 자전거가 나치의 수중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조던은 또한 1963년에 출간된 소설 《자전거로 달까지(Fietsen naar der maan)》를 언급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정교한 방식으로 자전거를 물에 빠트리는 절도 범죄를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서는 한 자전거 낚시꾼이 밤에 몰래 암스테르담의 어느 운하에 여러 대의 자전거를 빠트린다. 다음날 아침 돌아온 그는 자전거들을 다시 건져 올려서 장물아비에게 팔아넘긴다.

암스테르담의 이런 상황은 아마도 간단한 셈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에는 대략 200만 대의 자전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어딘가에는 필요 없어진 자전거들이 당연히 한두 대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48킬로미터에 달하는 운하가 있다. 따라서 암스테르담 주민들이 낡은 자전거를 처분해야 한다면, 이 물길이 아주 편리한 폐기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일간지 《트라우(Trouw)》는 예전에 암스테르담의 운하를 두고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관광객들을 보트에 태워서 암스테르담 전통의 쓰레기장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이는 단지 네덜란드만의 현상은 아니다. 2014년에 도쿄의 공원녹지부(公園綠地部)는 도시 서부의 이노카시라온시 공원(井の頭恩賜公園)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연못에 외래종 물고기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전 주인들이 유기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물고기들은 이곳 환경에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그래서 관계 당국은 물을 모두 빼내서 해당 물고기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연못의 물을 모두 비워내자 다른 종류의 침입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여 대의 자전거였다. 이 사실은 도쿄의 많은 시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람들이 도시의 길거리와 골목과 주차장에 쓸모없어진 자전거를 버린다는 건 예전부터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물속에 자전거를 폐기한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숨겨진 관행이었다.

전 세계의 물속에는 얼마나 많은 자전거가 숨겨져 있을까? 수많은 연못과 호수, 운하, 다뉴브강, 갠지스강, 나일강, 미시시피강 등에는 얼마나 더 많은 자전거가 가라앉아 있을까?
A bike uncovered during maintenance of Canal Saint-Martin in Paris in 2016. ⓒPhotograph: Yoan Valat/EPA


3. 공유 자전거의 비극


아마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리고 공유 자전거 사업이 확산하는 만큼 더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벨리브 사업을 시행한 첫해에 파리 경찰은 센강에서 수십여 대의 자전거를 건져냈다.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공유 자전거 사업을 하던 어느 기업은 자사의 자전거들이 티베르(Tiber)강에 너무 많이 버려지는 바람에 결국 사업을 중단했다.

미국 보스턴을 비롯한 교외 지역에 자전거 공유 기업들이 설립된 직후인 2018년,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는 “도크리스 공유 자전거들이 계속해서 물에 빠지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2019년 2월 뉴욕에서는 ‘시티바이크(Citi Bike)’의 자전거 한 대가 어느 날 갑자기 맨해튼의 어퍼웨스트사이드(Upper West Side)에 있는 거치보관소에 나타났는데, 언뜻 보기에도 허드슨강의 물속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바퀴살은 수초에 덮여 있었고, 몸통은 따개비와 연체동물들 때문에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인터넷 매체인 《고다미스트(Gothamist)》는 허드슨강 보존 전문가에게 그 자전거가 물속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핸들에 붙어 있는 여러 마리의 굴을 보면, 이 자전거는 적어도 지난해 8월부터, 길게는 6월부터 강물 속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멜번, 홍콩, 샌디에이고, 시애틀, 스웨덴의 말뫼(Malmö̈) 등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에서도 똑같이 보고되는 현상이다. 영국에서는 런던과 맨체스터의 운하에서, 그리고 템스강, 캠(Cam)강, 에이번(Avon)강, 타인(Tyne)강에서 대여 자전거들을 건져내고 있다. 2016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수로에 대한 관리 권한을 가진 캐널앤드리버트러스트(Canal & River Trust)는 충격적인 동영상을 하나 공개했다. 이 영상을 보면 물고기가 운하의 바닥에서 수초로 덮인 자전거 바퀴 근처를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자전거 무단 투기나 인양에 대하여 가장 놀라운 소식은 중국에서 들려왔다. 2016년과 2017년에 당시 세계 최대의 자전거 공유 업체였던 ‘오포(Ofo)’와 ‘모바이크(Mobike)’는 중국 남부의 여러 강에서 자사의 도크리스 대여 자전거를 수천 대나 건져 올렸다. 널리 공유된 동영상 하나를 보면,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어느 인도교 위에서 한 남성이 모바이크의 자전거를 상하이 황푸강(黄浦江)에 던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SNS에 올라온 다른 동영상들에서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공유 자전거를 파손하거나 나이 든 여성이 해머를 휘두르며 공유 자전거를 내려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공유 자전거를 통째로 훔쳐 가거나 부품만 분해해서 가져가기도 하며, 자동차 바퀴 밑에 던지고, 건축 공사장에 묻어버리고, 불을 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파손 행위 때문에 중국에서도 자성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에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사람들이 공유 자전거를 두고 ‘조요경(照妖镜, 요괴에게 비추면 그 정체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걸 흔히 들을 수 있다. 공유 자전거가 중국인들의 본성을 드러내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거울이 우리 시대의 보다 거대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상 속 상하이의 강물에 자전거를 던지는 남성은 홍콩에서 건너온 이주민이었는데, 그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추가로 아홉 대의 모바이크 자전거를 해머로 부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모바이크가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모바이크에 들어있는 칩은 안전하지 않으며, 사용자의 위치와 같은 개인정보를 노출합니다.”

이론적으로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은 도시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더욱 생태적으로, 더욱 공평하고 공정하며 자유롭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수의 자전거 공유 사업이 공공과 민간의 협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다국적 은행의 후원을 받아서 그들의 로고를 자전거의 머드가드(흙받기)[5]에 새겨놓는 경우가 많다. 도크리스 자전거 공유 산업은 기술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그들은 관련 규제나 인프라가 미처 마련되기도 전에 길거리와 인도에 자전거를 봇물처럼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또, 이런 공유 시스템은 대부분 앱 기반이다. 이는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장점이지만, 사실 이런 편의성과 편리함은 프라이버시를 내주고 얻는 대가다. 이런 앱들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며, 공유 자전거는 내장된 GPS 칩과 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몇 초마다 한 번씩 전송한다. 자전거가 사용자의 활동을 감시하는 셈이다. 이는 자전거의 역사에서는 놀라운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가 크게 유행하며 절정기를 누리던 19세기만 하더라도, 자전거는 사람들에게 그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를 약속하는 새로운 문물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벤처캐피털(VC)들로부터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원받은 70여 개의 도크리스 자전거 공유 스타트업들이 2016년과 2017년에만 수백만 대의 자전거를 여러 도시에 쏟아냈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면서 도시에는 자전거들이 말 그대로 쌓이게 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샤먼(廈門)을 비롯한 많은 도시의 외곽에는 수만 대의 자전거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완전히 새것이다. 이들은 지상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더미로 쌓여서 광활한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곳은 ‘자전거 공동묘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나 드론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그 광경은 오히려 꽃밭처럼 보이기도 한다. 밝은 노랑과 오렌지와 분홍색의 자전거 프레임들이 수천 제곱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대지에 화려한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진들을 보고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 투기 광풍을 일으켰던 ‘튤립 파동(tulip mania)’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경기 순환의 흐름을 타며 기물 파손의 대상이 되는 이동수단에는 자전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도시에 도입된 전기 스쿠터 공유 비즈니스 또한 보행자들로부터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공유 스쿠터가 인도 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화를 내며, 자동차 운전자들 역시 도로 위를 질주하는 공유 스쿠터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뉴스들은 전 세계에서 흘러넘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전기 스쿠터를 공중화장실에 쑤셔 넣거나, 모래밭에 묻거나, 바다에 던져버리는 일이 있었다. 독일의 쾰른에서는 다이버들이 라인(Rhine)강 바닥에 수백 대의 전기 스쿠터가 가라앉아 있는 걸 발견했는데, 스쿠터의 배터리 케이스로부터 오염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스쿠터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버드(Bird)’나 ‘라임(Lime)’과 같은 전기 스쿠터 업계의 대표적인 기업들은 보안을 더욱 개선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스쿠터의 브레이크 케이블을 절단하거나 QR 코드를 제거하는 등의 파손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러한 기물 파손 행위는 좀 더 거대한 전쟁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게릴라 공격으로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도로에 대한 권리를 두고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전쟁인데, 최근 몇 년 동안 각국의 도시들이 자전거 친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을 비롯한 ‘마이크로모빌리티(micromobility, 소형 이동수단)’를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는 등 자동차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전세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전은 아마도 배터리로 작동하는 모터를 장착한 전기 자전거의 출현일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쓰는 이러한 전기 자전거의 인기는, 어쩌면 1890년대의 자전거 대유행 이후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자전거의 역사에서 새로운 혁명이 거의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중국에만 3억 대의 전기 자전거가 도로 위에 있으며, 2010년대 말에 거의 파산했던 중국의 자전거 공유 산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주된 이유도 전기 자전거가 공유 자전거 함대에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시 사보타주(sabotage) 행위가 벌어졌다. 그 옛날 부랑아들이 훔친 이륜차를 타고 넨강을 달렸던 피터버러에서는, 전기 자전거들이 기물 파손 행위 때문에 수천 파운드 상당의 피해를 입으면서 결국 지난해 대여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한 번에 50대의 자전거가 파손된 사건도 있었다. 전 세계의 자전거 공유 산업을 조사한 2021년의 보고서를 보면, “자전거의 파손 및 도난 사례가 증가하면서 시장의 성장이 저해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무엇이든 간에, 대여 자전거들이 망가지거나 불에 타거나 강에 던져지거나 폐기장에 산처럼 쌓이는 현실은 21세기의 일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 이야기의 의미와 그 대단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앞으로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든 간에, 자전거 사체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Abandoned shared bicycles in Shanghai. ⓒPhotograph: Jackal Pan/Getty Images


4. 돌고 도는 자전거


물론 자전거의 공동묘지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산업지대에 있는 황량한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고철 덩어리를 모아놓은 시설을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러한 폐기물 무더기 가운데 자전거나 그 부품들이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사는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는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커다란 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거대한 굴착기들이 고철 산더미 위에서 하루종일 쉭쉭거리고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인접한 거와너스(Gowanus) 운하의 바지선에 각종 물건을 싣고 내린다. 이곳에서는 고철 더미를 압축기 위에 올려놓고 220킬로그램의 네모난 모양으로 찌그러트린다. 나는 가끔씩 직육면체로 압축된 그 커다란 덩어리들 사이에 자전거 부품들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곤 한다. 자전거의 프레임과 바퀴를 비롯한 각종 부위가 마치 화석의 잔해들처럼 납작하게 뭉쳐져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뉴욕주의 환경보호국(NYSDEC)은 이곳에서 100건 이상의 ‘금속 유출’이 이뤄진 사실을 적발했고, 처리장은 8만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해당 유출물들은 이 시설이 운하에 무단으로 폐기한 것이었다. 파리의 멋진 생 마르탱 운하나 암스테르담의 그림 같은 그라흐트(gracht, 운하)들과 마찬가지로, 뉴욕의 더러운 거와너스도 그 물길 아래에는 수많은 자전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전 내가 타던 자전거 중 하나도 이 운하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소유했던 자전거는 모두 20여 대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건 현재 우리 집 근처의 가로등에 묶어둔 검은색 자전거뿐이다. 도난 당한 자전거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런데 자전거를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았던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폐기장에 버린 적도 없다. 아마 한두 대 정도는 예전에 살던 집의 지하실에 내버려 두고 이사를 갔던 것 같다.

그 나머지의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 도대체 수명을 다한 자전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자전거는 내구성이 좋지만 폐기하기도 쉬운 물건이다. 쉽게 처리해버릴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그것이 약간 반사회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적어도 부유한 선진국들에서는 자전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자전거가 망가지거나 새 자전거를 구입하게 되면, 그 주인은 오래된 자전거를 버리고픈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자전거를 길거리의 어딘가에 놓아두면 지나가는 사람이 가져가거나 폐기물 처리 업체에서 수거해 간다.

그렇지만 좀 더 인적이 드문 지역에 버려지는 자전거들도 있다. 그곳에서 자전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흉물스러워지며, 비바람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방치된다. 도시에서는 기둥이나 펜스에 낡은 체인이나 자물쇠로 채워져서 버려진 자전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그 사체를 덮쳐서 바퀴 한 짝이나 두 짝, 또는 손잡이 세트 등 뜯어갈 수 있는 물건들은 이미 모두 가져간 경우가 많다. 이렇게 탈탈 털린 자전거는 그 자체만으로도 애처로워 보일 정도이다. 낡아빠진 체인링[6]의 체인은 축 늘어져 있고, 반사판은 부서진 채 바닥에 흩어져 있으며, 바퀴살과 브레이크 케이블은 마치 조지 부스(George Booth)의 만화에 등장하는 지저분한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풀려 있다. 그걸 보면 나는 가수 톰 웨이츠(Tom Waits)의 ‘부서진 자전거(Broken Bicycles)’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부서진 자전거 / 끊어진 낡은 체인 / 녹이 슨 손잡이 / 비를 맞으며 / 뼈대만 남은 채 / 풀밭에 버려져 있네.” 이 노래는 무너진 사랑에 관한 내용으로 그 가사는 다분히 은유적이지만, 마치 어떤 보도 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풀밭에 버려진 자전거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런 자전거라면, 그것들은 주로 철이나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전거는 원래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이나 퇴적암의 형태로 지하에서부터 기원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전거의 부품 중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건 거의 없다. 산화된 알루미늄 표면에 뒤덮인 녹슨 철 조각이나 잘게 바스러진 입자들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거나 빗물에 씻겨서 하수구로 흘러갈 것이다.

낡은 자전거들 가운데 일부는 제2의 삶을 얻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폐기물 처리장은 압축한 고철 덩어리들을 재활용 처리시설로 보낸다. 그곳에서는 고철을 세척하고 분류한 다음 용광로에 넣어서 녹이고 제련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금속은 주물이나 판형으로 제작되어 다시 한번 자원 순환 사이클 안으로 들어온다. 철과 알루미늄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재활용되는 재료 가운데 하나다. 때로는 암스테르담에서처럼 폐기된 자전거 프레임이 음료 캔이나 다른 식품 저장 용기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재활용 철과 알루미늄은 도로 시설물이나 주택 및 아파트 건축에 사용된다. 비행기나 자동차의 재료로도 사용되며, 당연히 다시 자전거를 만드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나와 같은 신비주의자들은 도시의 풍경이 낡은 자전거들로 만들어졌다고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과거의 자전거가 환생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의 프레임을 재활용해서 만든 대들보와 철강과 철근이 떠받치고 있는 초고층 건물들을 지나쳐 가며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폐기된 자전거에서 얻은 재료들로 조립해 만든 비행기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금속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는 환경에 해로운 폐기물이 발생하지만, 이 중에서도 일부 부산물은 재활용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알루미늄 주물 작업에서 나오는 잔여물이나 찌꺼기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혼합물의 충전재로 활용할 수 있으니, 어떤 장소에서는 도로 그 자체가 일종의 자전거 공동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일요일에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는 사람들은, 바로 자전거의 뼈대로 만들어진 풍경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조디 로즌(Jody Rosen)의 책 《투 휠즈 굿, 자전거의 역사와 미스터리(Two Wheels Good: The History and Mystery of the Bicycle)》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1]
엄밀히는 센강의 북쪽 지역이라서 서울로 치면 강북에 해당하지만, 센강의 상류에서 하류를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보이기 때문에 리브 드와(Rive Droite), 우안(右岸)이라고 부른다.
[2]
자전거(vélo)와 자유(liberté)를 조합하여 만든 명칭
[3]
앞바퀴를 고정하는 축인 포크(fork)와 손잡이가 달린 핸들을 연결하는 부품
[4]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인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주의 도시.
[5]
자전거, 자동차 따위의 바퀴 뒤에 덧대어 튀어 오르는 흙을 막는 장치.
[6]
페달을 밟아서 회전시키는 둥그런 회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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