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비즘 2.0

8월 1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벤앤제리스가 이스라엘 사업권을 두고 모회사와 소송전에 돌입했다. 아이스크림 회사는 왜 중동 분쟁에 목소리를 내는가.

  • 미국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Ben&Jerry’s)가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모회사 유니레버(Unilever)가 이스라엘 사업권을 매각하겠다고 밝히며 갈등이 두드러졌다.
  • 문제의 핵심은 모회사와 자회사 간 갈등이 아니다. 성숙한 행동주의에 대한 요청이다.

DEFINITION_ 벤앤제리스
  • 미국의 아이스크림 브랜드다. 벤(Ben Cohen)과 제리(Jerry Greenfield)가 만들었다. 스쿱 샵 운영은 물론 완제품도 전 세계로 수출 중이다. 국내에선 DV점 중심으로만 운영한다.
  • 우수한 식감을 자랑한다.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워야 한다”는 기존 편견을 탈피해, 수분 함량을 낮춰 꾸덕한 텍스처를 만들었다. 초콜릿, 견과류 등 큼직한 청크도 아낌없이 넣었다.
  • 행동주의 기업으로 유명하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치관(VALUES)’ 탭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KEYPLAYER_ Ben & Jerry
공동 창업자 벤과 제리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동네 친구로 지냈다. 둘 다 1951년생이다. 60, 70년대 히피 문화와 반전 시위를 일상처럼 겪은 그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각자 사업과 학업의 실패를 겪은 뒤 1977년, 벤과 제리는 미국 동부의 버몬트 주로 향한다. 복잡한 뉴욕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그들이 창업 아이템으로 택한 것은 아이스크림. 1978년, 고작 1만 2000달러 소자본으로 벌링턴 시내 버려진 주유소 공간을 사들여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 벤앤제리스의 시작이었다.
STRATEGY_ 액티비즘
창업 5년간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은 버몬트 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순풍을 탔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맛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 이상이었다. 1)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것, 2)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도모할 것, 3)세상을 보다 나은 공간으로 만들 것. 벤앤제리스의 세 가지 사명이다.
  • 본격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1988년이다. 비영리 재단을 설립하고 미 국방비 예산의 1퍼센트를 평화주의적(peace-promoting) 행동을 위한 예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 2005년에는 북극의 유정 굴착 사업을 비판하며 베이크드 알래스카(Baked Alaska)맛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초대형 아이스크림을 떠 먹는 퍼포먼스로 화제가 됐다.
  • 벤앤제리스가 출범한 버몬트 주에서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통과된 2009년에는 기존 ‘처비 허비(Chubby Hubby)’ 맛을 ‘허비 허비(Hubby Hubby)’맛으로 바꿨다.[1]
  •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정책들을 비판하는 ‘피칸 레지스트(Pecan Resist)’ 맛도 출시했다.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We Can Resist)’와 발음이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MONEY_ 9억 3600만 달러
벤앤제리스 행동주의의 효과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미국 아이스크림 브랜드 1위는 하겐다즈가 아니었다. 벤앤제리스였다. 지난해 기준 9억 3600만 달러, 한화 약 1조 2270억 원 어치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2위인 하겐다즈를 약 2억 달러 차이로 앞지른다.
CONFLICT_ 유니레버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벤앤제리스의 액션에 제동을 건 것은 모회사 유니레버(Unilever)였다. 유니레버는 지난 2000년 벤앤제리스의 독립적인 이사회를 존중한다는 독특한 조건 하에 벤앤제리스를 인수했다.
  • 지난해 7월, 벤앤제리스는 서안 지구(West Bank)와 동예루살렘(East Jerusalem)에서 자사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스라엘의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는 법적 조치 등을 비롯해 벤앤제리스 측에 강력히 대응하겠다 밝혔다. 반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Palestinian Solidarity Campaign) 측은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며 벤앤제리스의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 타격을 입은 것은 모회사 유니레버다. 벤앤제리스의 선언 직후 유니레버의 주가는 13퍼센트 하락했다. 경쟁사 P&G 컴퍼니와 네슬레에 비해 부진한 실적과 더불어, 지나친 ESG 경영에 대한 주주들의 비판이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 이에 유니레버 측은 벤앤제리스의 이스라엘 사업권을 협력 업체에 매각하기로 발표했다. 35년 전통의 행동주의 철학을 고수해 온 벤앤제리스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유니레버가 자사의 사회적 미션을 훼손한다”며 현지 시간 8월 8일, 유니레버 매각권에 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

RISK1_ 반유대주의
여론은 엇갈린다. 벤앤제리스의 행동을 지지하는 입장과, 이스라엘 사업권 매각이 벤앤제리스 브랜드 정체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벤앤제리스의 행보가 반유대주의적 선전이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러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이란, 중국을 비롯해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다른 여러 국가에서 제품을 정상 판매하는 와중, 왜 이스라엘에서 이례적인 보이콧을 펼치냐는 지적이다. 이에 벤앤제리스 측은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아닌 점령(settlement)에 대한 보이콧”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내놓진 못했다. 한편 “조지아, 텍사스를 비롯해 임신 중단이 금지되고 있는 지역에선 판매를 지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모르겠다, 이제부터 생각해 보겠다"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악시오스인터뷰
RISK2_ 팔레스타인
벤앤제리스의 선언을 단순히 ‘평화를 수호하는 인류애적 행동’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 세력이다. 1960년대 이래 팔레스타인은 ‘자치 기구’라는 이름으로 대이스라엘 투쟁을 선포했고, 그 수단으로 테러를 택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집권당 하마스(HAMAS)와 헤즈볼라[3]의 지원을 받는 PIJ(Palestine Islamic Jihad) 등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국제법상 명백한 위법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초래한 인명 피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자국 영토를 외부 세력과 물리적으로 공유한다는 역사적 아픔과 그것을 또 다른 폭력으로 이끈 무장 행동은 별개다. 벤앤제리스의 선언은 전자에 대해 효과적인 연대가 됐을지라도, 후자의 책임에 대해선 묵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REFERENCE1_ 반아파르트헤이트
국제적 보이콧의 힘은 차원이 다르다. 20세기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4]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은 것은 영국을 필두로 주류 서구권 국가들이 갈등에 개입하면서부터다. 1980년대 영국 시민들은 자국 상점 내 남아공산 제품을 퇴출시키고, 남아공의 국제 문화 행사 참여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부 시대가 막을 내린 배경엔 넬슨 만델라만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남아공의 제품과 서비스를 불매하는 국제적 보이콧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INSIGHT1_ 서투른 행동주의
  • 벤앤제리스의 이번 선언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이스라엘 경제에서 벤앤제리스가 미치는 영향은 극소하다. 그러나 이번 벤앤제리스 선언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전 세계적인 액티비즘 기업인 만큼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 그 상징성에 비해 벤앤제리스의 이번 접근은 섬세하진 못했다. 이-팔 분쟁은 벤앤제리스가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오던 이슈들과는 결이 다르다. 성소수자 지지 및 인종 차별 반대, 환경 보호와 기후 위기 대응. 벤앤제리스는 지금껏 주로 전 지구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이슈에 한해 행동했다. 반면 이-팔 분쟁은 팔레스타인 난민과 유대인 정착촌, 나아가 팔레스타인을 정의하는 중동 국가들의 이해 관계까지 복합적인 이슈가 얽힌 사안이다. UN조차 50년간 해결하지 못한 민족 분쟁에 벤앤제리스라는 외국 기업의 개입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서투른 행동주의가 낳은 결과다.

REFERENCE2_ 에어비앤비
  • 지난 2019년 4월, 에어비앤비는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내 200여 개의 매물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오랜 압박을 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에어비앤비 측은 불과 다섯 달 만에 해당 선언을 번복했다.
  • 번복의 이유는 다양하다. 이스라엘 정착촌 내 반발이 거셌고, 에이비앤비 호스트 및 여행자들로부터 소송에 휘말렸다. 무엇보다 미국 내 반-BDS 여론의 입김이 셌다.[5] 현재 미국 내 28개 주에서 ‘반 BDS 법안’, 일명 ‘이스라엘 반대 금지법’이 통과됐거나 행정 명령으로 채택됐다. 이스라엘 보이콧을 처벌하는 기조가 미국 사회의 절반을 장악한 가운데, 에어비앤비 입장에서 반유대주의 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큰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INSIGHT2_ 새로운 갈등
현재 벤앤제리스를 둘러싼 갈등은 유니레버-벤앤제리스의 구도로 두드러진다. 투자의 압박을 받는 모회사와 브랜드 가치를 고수하는 자회사 각각의 운영진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나 벤앤제리스에겐 더 큰 위협이 기다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압박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사회의 견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 BDS 여론이다. 다양한 갈등이 심화된다면 벤앤제리스의 액티비즘은 힘을 잃고 에어비앤비의 전례를 밟을 수밖에 없다.
FORESIGHT_ 액티비즘 2.0
  • 벤앤제리스 논쟁은 진행형이다. 가처분 신청에 승소하든 패소하든, 무거운 과제들이 벤앤제리스를 기다리고 있다. 패소한다면 수십 년간 지켜 온 행동주의 브랜드로서의 철학이 무너지게 된다. 승소한다면 반유대주의 비판에 대한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그들의 군사 통제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의 보이콧 대상은 이스라엘이 아닌 불법 점령”이라는 논리는 국제 사회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 이-팔 분쟁 개입은 벤앤제리스 행동주의 역사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대중은 벤앤제리스가 전쟁, 여성, 빈부 격차 등 더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즉 벤앤제리스의 액티비즘 또한 진행형이다. 가치 소비 시대는 더욱 완전한 액티비즘, 성숙한 액티비즘을 요구한다. 소비자의 신뢰가 녹는 것은 한순간이다. 아이스크림을 팔아 신뢰를 쌓아온 기업의 어깨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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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ubby’는 영단어 ‘Husband(남편)’의 애칭이다. 
[2]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은 1)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2)팔레스타인 인구 밀집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 3차 중동 전쟁 이래로 해당 지역을 점령해 왔다. 즉 벤앤제리스의 판매 금지 선언은 팔레스타인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였다.
[3]
레바논에 기반을 둔 시아파 이슬람 무장 투쟁 조직이다.
[4]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1950~9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인종 차별 정책을 지칭한다. 인종 간의 사회적 접촉을 금지하고 공공 시설과 거주 지역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AAM, Anti-Apartheid Movement)이 시작됐다.
[5]
BDS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보이콧(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다. 거칠게 말해 BDS 측이 팔레스타인에 연대를 표하는 반면, 반-BDS 측은 이스라엘을 변호하고 유대인 정착촌의 합법성을 인정한다. 대표적으로 2020년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제시한 중동평화구상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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