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라...고?

8월 1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일본 정부가 청년 세대의 연애 기술까지 챙기고 나섰다. 저출산 시대,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초식남에 이어 절식남까지, 연애와 결혼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 청년을 위해 일본 정부가 연애의 기술까지 챙겨주고 있다.
  • 언뜻 신기한 옆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는 우리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일 뿐이다. 더한 방법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 문제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해결 방법이 보인다. 서울 수도권 지역의 높은 인구압이 키워드가 될 수 있다.

DEFINITION_ 연애학 개론

일본 정부가 젊은이들의 연애를 독려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4월, 이성에게 고백하는 방법이나 프로포즈 연습, 연애 강좌 등을 포함한 연애 지원안을 공개했다. 자료에는 ‘카베동’을 교육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포함되었다. 벽에 상대를 밀어붙인 후 팔로 둘러 싸는 고백 방식을 이야기한다. 물론, 일본 정부는 해당 자료가 관련 부서 연구회에 참여한 전문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황급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본이 청년세대의 연애에 관해 얼마나 지극 정성을 쏟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야 출산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저출산 대책이다.
BACKGROUND_ 실패의 답습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2049년이면 일본의 인구는 1억 명을 밑돌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인구 감소를 “북한 문제와 함께 2대 국난”으로 지정한 바 있다. 실제로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3명이다. 무난하게 1.5를 넘기는 독일, 스웨덴, 중국 등과 비교해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정부가 나섰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 면에 있어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 1994년 보육·육아 대책 엔젤플랜 수립 ; 집단 따돌림 방지 대책, 이동권 약자 관련 정책 등도 저출산 정책으로 제시되는 등 부실한 내용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 2015년 내각부 저출산 담당 장관 임명 ; 저출산 담당 장관은 다른 직을 겸하도록 되어 있어 저출산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였으며, 잦은 교체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현재 내각부에는 한국의 여성가족부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는 남녀공동참획국(男女共同参画局)과 아동·청소년육성지원추진본부, 저출산사회대책회의 등이 해당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2017년 자녀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한 육아 안심 계획 수립 ; 예산확보 등의 문제로 보육원의 정원 초과 및 그로 인한 대기 아동 발생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상황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상황은 오히려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1명이다. 일본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진다. 4년 연속 1명을 밑돌고 있다. 저출산 대책은 일본과 방향이 비슷하다. 따라서 실효성도 일본처럼 떨어진다. 2021년 기준으로 약 43조 원이 저출산 정책에 투입되었지만, 실제 예산 집행 내용을 들여다보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에 쏟은 돈이 저출산 예산으로 잡혀 있는 식이다.
REFERENCE_ 스파르타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듯 보였던 한국의 저출산 상황은 왜 더 지독하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이유에 관해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 속에 그 답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다. 스파르타는 저출산으로 망했다. 사회구조가 문제였다. 스파르타의 시민은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개인이 무조건 다 부담해야 했다. ‘아고게’로 불린 교육 시스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만약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댈 수 없게 되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중간 계급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들은 생존과 재생산 사이에서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스파르타의 시민들은 생존을 택했고, 결국 전투에 나가 싸울 전사가 급감했다. 그 결과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테베에 패배한 스파르타는 멸망의 길을 걷게되었다. 한국의 현실이 거울처럼 비춰 보인다.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저출산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부동산 가격과 함께 높은 교육비를 꼽은 바 있다.
RISK_ 인구압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높은 교육 비용만으로는 한국의 기형적인 저출산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한국 고유의 특수한 상황을 찾아야 한다. 일본 등 다른 비교 국가에 비해 유달리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바로 서울이다.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Gridded Population ©worldmapper.org

1960년대 말 동물학자 존 컬훈은 제한된 공간에 쥐를 풀어놓고 번식시키는 실험을 했다. 폭발적으로 개체 수를 늘려가던 쥐들은 어느 순간 출산율 감소 현상을 보였다. 개체 수의 밀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쥐들은 높은 공격성을 보였고, 구애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젖을 떼기도 전인 아기 쥐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현상도 발생했다. 개체수가 정점을 찍은 후, 쥐들은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았으며 멸종 위기 상태까지 이른다. 인구 밀도가 출산을 가로막는다는 증거다.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이 저출산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10년, 서울의 인구밀도는 뉴욕의 8배, 도쿄의 3배에 달했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비교해 봐도,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저출산이 더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4월 발표된 바 있다. 인구 집중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인구압이 높아지면 재생산을 포기한다. 이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RECIPE 1_ 혁신도시?

인구압이 저출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정부도 알고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외침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 과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혁신도시’라는 대안이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겨 인구와 경제 효과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쇠락해 가는 도시에 공공기관 하나가 이전해 간다고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 리 없다. 어차피 공공기관이 신규로 채용하는 인원 자체가 다 따져서 한 해 3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미 서울 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기혼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말 부부 체제에 돌입한다. 경제적 효과도 미미하다. 이전하는 기관 주변으로 신도심을 개발하면 새로운 경제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구도심의 유동 인구를 흡수하는 데에 그친다. 결국 구도심은 슬럼화된다. 인구 분산은 요원한 얘기다.
CONFLICT_ 대한민국 2대 국교

물론 혁신도시라는 대안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이전을 포함한 지역 개발로 인구 분산에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강남이라는 신화다. 강남 개발은 1970년도부터 가속이 붙었다. 한국전력 등 당시 국영기업은 물론 정부 종합청사 일부가 강남으로 이전했다. 서초동 법원단지도 이때 강남에 자리를 잡는다. 이로써 급증하던 강북의 인구를 분산시키는 데에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강남으로의 인구 분산을 성공시킨 진짜 저력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대한민국의 숨겨진 2대 국교, 부동산과 교육이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이자 기득권 대물림의 도구다. 특히 8학군의 존재는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며 강남 열풍을 주도했다. 그러나 혁신도시는 강남이 될 수 없다. 강남은 교육과 부동산이라는 미래를 약속했지만, 지금의 혁신도시는 그 어떤 미래도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의 강남”을 만들겠다며 공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데에 핏대를 세우지만, 결국 남는 것은 누군가의 정치적 모뉴먼트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서울·수도권에 남아 있는 164개 기관의 상당수를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국정과제로 최종 확정한 바 있다.
RECIPE 2_ 베이비부머

미래가 있어야, 기회가 약속되어야 인구 분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꼭 청년 세대가 분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발상을 전환해 볼 시점이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440만 명의 베이비부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삶을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이들이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 은퇴 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5년 이내 농산어촌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준비 중인 50대 이상은 266만 7000명에 달한다. 다만, 이들은 귀농이 아니라 귀촌을 원한다. 도시만큼 쾌적한 주거와 인생 2막을 준비할 일자리가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 안락한 노년을 위한 준비는 복지의 영역에서, 상생의 영역에서 계획 가능하다.
FORESIGHT_ 가장 자유로운 결혼

직접적으로 청년 세대가 가정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처럼 젊은이들에게 연애 방법을 교육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낮추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프랑스의 팍스(PACs·시민연대계약) 제도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도 구속력이 강하다. 팍스는 훨씬 가볍다. 세액 공제 등 결혼 부부와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보장받지만, 계약을 맺고 해지할 때 법적으로 기록이 남지 않는다.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인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 도입된만큼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열려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팍스는 프랑스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1.5까지 떨어졌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2019년 1.97까지 회복했다. 인구 분산을 포함해 사회 전체의 경쟁과 압력을 낮추는 노력보다 좀 더 직접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INSIGHT_ 예정된 질문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정치를 개그로 만든다. 일본 정부의 ‘연애 교육 논의’가 그러하며 우리 정부의 ‘만 5세 입학 논의’가 그러하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을 크게,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이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동원 가능한 해결책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적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인 25세에서 59세까지의 인구 약 200만 명이 2030년이면 사라진다. 노동력 부족이 코앞으로 닥쳤다. 이미 농촌 지역에서는 겪고 있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의 먹거리는 이미 이주 노동자들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다. 메꿔야 할 일손 부족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도 정해져 있다. 과연, 우리는 인구 절벽 시대에 이주 노동자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은 이민의 문호를 개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당장, 답변을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의 가족구성을 고민하는 북저널리즘의 종이책,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