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동물학자 존 컬훈은 제한된 공간에 쥐를 풀어놓고 번식시키는 실험을 했다. 폭발적으로 개체 수를 늘려가던 쥐들은 어느 순간 출산율 감소 현상을 보였다. 개체 수의 밀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쥐들은 높은 공격성을 보였고, 구애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젖을 떼기도 전인 아기 쥐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현상도 발생했다. 개체수가 정점을 찍은 후, 쥐들은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았으며 멸종 위기 상태까지 이른다. 인구 밀도가 출산을 가로막는다는 증거다.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이 저출산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10년, 서울의 인구밀도는 뉴욕의 8배, 도쿄의 3배에 달했다. 우리나라 안에서만 비교해 봐도,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저출산이 더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 4월 발표된 바 있다. 인구 집중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인구압이 높아지면 재생산을 포기한다. 이는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RECIPE 1_ 혁신도시?
인구압이 저출산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정부도 알고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외침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 과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혁신도시’라는 대안이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겨 인구와 경제 효과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쇠락해 가는 도시에 공공기관 하나가 이전해 간다고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들 리 없다. 어차피 공공기관이 신규로 채용하는 인원 자체가 다 따져서
한 해 3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미 서울 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기혼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말 부부 체제에 돌입한다. 경제적 효과도 미미하다. 이전하는 기관 주변으로 신도심을 개발하면 새로운 경제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구도심의 유동 인구를 흡수하는 데에
그친다. 결국 구도심은 슬럼화된다. 인구 분산은 요원한 얘기다.
CONFLICT_ 대한민국 2대 국교
물론 혁신도시라는 대안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이전을 포함한 지역 개발로 인구 분산에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강남이라는 신화다. 강남 개발은 1970년도부터 가속이 붙었다. 한국전력 등 당시 국영기업은 물론 정부 종합청사 일부가 강남으로 이전했다. 서초동 법원단지도 이때 강남에 자리를 잡는다. 이로써 급증하던 강북의 인구를 분산시키는 데에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강남으로의 인구 분산을 성공시킨 진짜 저력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대한민국의 숨겨진 2대 국교, 부동산과 교육이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이자 기득권 대물림의 도구다. 특히 8학군의 존재는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며 강남 열풍을 주도했다. 그러나 혁신도시는 강남이 될 수 없다. 강남은 교육과 부동산이라는 미래를 약속했지만, 지금의 혁신도시는 그 어떤 미래도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의 강남”을 만들겠다며 공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데에 핏대를 세우지만,
결국 남는 것은 누군가의 정치적 모뉴먼트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서울·수도권에 남아 있는 164개 기관의 상당수를 지방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국정과제로 최종 확정한 바 있다.
RECIPE 2_ 베이비부머
미래가 있어야, 기회가 약속되어야 인구 분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꼭 청년 세대가 분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발상을 전환해 볼 시점이다. 특히 지방에서 태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440만 명의 베이비부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삶을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이들이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 은퇴 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5년 이내 농산어촌에서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준비 중인 50대 이상은 266만 7000명에 달한다. 다만, 이들은 귀농이 아니라 귀촌을 원한다. 도시만큼 쾌적한 주거와 인생 2막을 준비할 일자리가 필요하다. 성공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 안락한 노년을 위한 준비는 복지의 영역에서, 상생의 영역에서 계획 가능하다.
FORESIGHT_ 가장 자유로운 결혼
직접적으로 청년 세대가 가정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처럼 젊은이들에게 연애 방법을 교육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낮추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프랑스의 팍스(PACs·시민연대계약) 제도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도 구속력이 강하다. 팍스는 훨씬 가볍다. 세액 공제 등 결혼 부부와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보장받지만, 계약을 맺고 해지할 때 법적으로 기록이 남지 않는다.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인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 도입된만큼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열려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팍스는 프랑스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1.5까지 떨어졌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2019년 1.97까지 회복했다. 인구 분산을 포함해 사회 전체의 경쟁과 압력을 낮추는 노력보다 좀 더 직접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INSIGHT_ 예정된 질문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정치를 개그로 만든다. 일본 정부의 ‘연애 교육 논의’가 그러하며 우리 정부의 ‘만 5세 입학 논의’가 그러하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을 크게, 멀리 봐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진짜 해결책이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동원 가능한 해결책도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적인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인 25세에서 59세까지의 인구 약 200만 명이 2030년이면 사라진다. 노동력 부족이 코앞으로 닥쳤다. 이미 농촌 지역에서는 겪고 있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의 먹거리는 이미 이주 노동자들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다. 메꿔야 할 일손 부족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도 정해져 있다. 과연, 우리는 인구 절벽 시대에 이주 노동자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은 이민의 문호를 개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당장, 답변을 생각해야 한다.